공감이 많이 가는 얘기다. 나는 여러 가지 책 가운데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즐겨 읽는 편이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런 책들이 자기 자랑이나 과장이 많다는 이유로 읽기를 꺼린다. 하지만 내겐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은이의 몫이며 나는 거기서 배울 점만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즐겨 읽는 이유
20여 년 전 나온 최형우 전 국회의원의 자서전도 나를 크게 일깨워준 책이다. 경남 양산에서 재선된 뒤 낙선해 야인으로 있던 그는 어느 날 산 중턱에 집이 몇 채 있는 걸 보고 비서한테 그리로 차를 몰라고 했다. 비서는 “서너 명밖에 안 사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최 의원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에 가서 말씀을 들어드리는 게 진짜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형우 전 의원의 이 말은 이후 나의 생각과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줬다.앞서 소개한 책 ‘생각하는 마카를 위하여’의 저자인 오준 대사와는 2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사이다. 특히 그의 두 동생 중 한 명인 오룡은 한겨레신문 입사 동기이자 친구다. 그는 내가 대표이사 겸 발행인으로 있는 ‘매거진N’ 창간 편집국장을 맡아 기틀을 잘 잡아줬다. 오 대사의 부모님 상사(喪事) 때 월차를 내고 장지까지 가서 함께한 기억이 새롭다. 오 대사가 유엔 차석대사와 싱가포르 대사로 있을 때는 현지 출장 때 공관에서 묵기도 했다.
나름대로 오 대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진면모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자전적 성격의 책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 책 끝부분에 나오는 오 대사의 ‘내가 지키려고 하는 삶의 습관 7가지’는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줬다. 특히 다음 세 대목은 압권이다.
“나는 소중한 것에 시간을 준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우리의 생명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일부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나에게 뻗어온 손은 반드시 잡는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어올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필요한 것만 소유한다. 나는 여름 양복과 겨울 양복이 각각 5벌씩 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양복을 입는다. 그리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가장 오래된 양복을 한 벌씩 버리고 새 양복을 구입한다.”
이 가운데 특히 옷과 관련한 대목을 읽다가 ‘아, 내 생각과 똑같네’ 하고 탄성을 질렀다. 지난해 초 옷을 정리한 적이 있는데 짧게는 2, 3년에서 수십 년 된 것도 있었다. 적어도 10여 벌은 되는 것 같았다. 그때 결심했다. ‘앞으로 옷은 절대 사지 않겠다. 이 옷들만 번갈아 입어도 될 터이니….’ 셰익스피어가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생각은 고상하게, 생활은 검소하게(High thinking, simple living).”
敎師 혹은 反面敎師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건 틀린 말이다. 내가 열두 살 때부터 톱이나 도끼로 온갖 나무를 다 베어봐서 아는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허다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단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넘어갈 때까지 더 찍어야 한다.”
“시련은 산삼보다 더 귀한 보약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는 오히려 더 큰 성공의 기회, 성공은 견뎌낸 자,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고인이 된 분의 글이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이는 오롯이 책의 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책’보다 삶의 생생한 경험을 들려주는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가진 놀라운 힘이다.
그런데 자서전이나 회고록 쓰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한데, 특히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로 누군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분들한테 이렇게 권한다.
“절대 겁내지 마시라. 어차피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비교되고 평가받기 마련이다. 당신이 어떤 이를 폄훼하거나 오도하지 않는 한 자서전 쓰기를 주저하지 마시라. 당신이 지나온 길은 누구에겐 교사로, 또 다른 누구에겐 반면교사가 되어 세상에 빛을 비출 것이니….”
그래도 주저하는 이들에겐 이렇게 전하고 싶다.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굳이 당신 생전에 낼 필요는 없다. 당신의 관 뚜껑이 덮인 후 공개해도 늦지 않다.”
이 상 기
● 1958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 前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한국기자협회장
● 現 아시아엔, 매거진N 발행인·대표이사
● 저서 :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 ‘요즘 한국기자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