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가보니 제주는 제주일 뿐 그 어디에도 편입되지 않는다. 이곳의 독자성은 실로 하늘을 찌른다. 민란의 땅. 그 민란의 원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제주에는 핏빛 역사가 흐른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어쩌면 영화가 가장 먼저 풀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 거대 소금호수(The Great Salt Lake, 분지인 유타 주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의 염도가 형성됨)에서 카카오톡으로 비행 12시간 거리의 한국과 바로 연결됨에 따라 제주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받고 있었다. 한국의 친구가 카톡으로 말을 건다. “여기는 아수라장이야. 거기는 더 춥다며?” 내가 답했다. “하나도 안 추워, 미안해.” 그리고 농담을 덧붙였다. “원희룡은?” 친구가 말했다. “이러다 다음엔 내주겠어.”
파크시티의 날씨는 낮에는 몽글몽글하다가도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온이 급강하한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스키장 활강(滑降) 코스 바로 아래 동네에 있는 11개의 영화제 상영관(5개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음)은 차갑고 습하게 얼어붙는다. 때론 칼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자주 친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대의 영화를 끝내고 12시 가까이 솔트레이크로 돌아가다가 차가 스키 활강하듯 미끄러지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도로든 공항이든 이용객들의 항의로 도시가 들썩이는 듯 보이진 않는다.
理想의 섬은 평화로울까
제주도에서 비행기 결항 사태로 ‘후진국형’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들은 바로 그날 밤, 제주도 꿈을 꿨다. 마라도에 가는 꿈. 꿈에서 다시 마라도를 간 것이다. 그곳은 정녕 차마 잊힐 리 없는 곳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솔트레이크보다 마라도 가는 것이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지난번 제주도 여행길의 이틀째 아침, 마라도행 선착장에서 공을 친 우리는 셋째 날 서귀포의 한 저렴한 호텔에서 눈을 뜨곤 아예 다른 일정을 짰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는데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아서 배가 뜰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전화나 한번 해보자고 한 것이 그날 아침 우리를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게 했다.
서귀포에서 마라도행 이송선을 타는 모슬포항까지 빠르면 30분. 렌트한 경차 엑셀러레이트를 내리 밟으면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그날 아침 서귀포의 풍광이 자꾸 시선을 뺏는 데 있었다. 포토그래퍼가 카메라 셔터를 영화 ‘퓨리(Fury)’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차부대 전차장(브래드 피트)이 M50 기관총을 난사하듯 눌러대고 나서야 간신히 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배를 꽉 채웠다. 다들 마라도를 볼 수 있게 됐다는 데 대해 흥분감 같은 것을 못 감추는 표정이다. 우리도 그랬다. 지금껏 마라도를 한 번도 못 가봤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며 살았다.
그러나 제주도에 오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자꾸 엉뚱한 영화를 예로 드는 것 같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듣고 끝까지 읽을 일이다. 역시 ‘퓨리’에 나온 대사다. 부대가 독일의 한 마을을 점령하자 전차장은 신참 병사(로건 레먼)에게 말한다. “보여줄 것이 있어.” 그러고는 병사를 어느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거기엔 아리안족 귀족처럼 보이는 남녀들이 동반자살한 상태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열렬한 나치 신봉자, 극우 파시스트들이다.
전차장은 말한다. “우리가 오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 질펀하게 퍼 마시고 각자 자살한 거지.” 신참 병사가 의아하다는 듯, 약간은 반항하듯 질문한다. “왜 제게 이걸 보여주시는 거죠?” 북아프리카에서부터 독일군과 싸워온, 오랜 전투 경력의 전차장의 대답이 중요하다. 제주도와 마라도를 연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야(The ideal is peaceful, History is violent).”
큰넓궤에서 만난 4·3사건의 흔적은 제주의 역사가 폭력적이었음을 일깨웠다. 브래드 피트의 대사를 떠올리며 ‘그렇다면 마라도라는 이상의 공간은 과연 평화로울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바다 끝 섬마을 사람들이 그 긴긴 세월 행복과 불행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어도’를 찍은 김기영 감독이 꿈꾼 것은 바로 그 영화적 이상이 아니었을까. 이상이기 때문에 결국 평화로울 수밖에 없는 그 지점이 아니었을까.
우주의 심연, 내 안의 심연
‘국토 최남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마라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馬羅里)다. 선착장에서 내려 우르르 몰려 섬의 뭍으로 올라선 후 왼쪽 코스로든 오른쪽 코스로든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1시간 반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크기는 약 9만 평(30만㎡) 정도로 낮고 평평한 섬이다. 서른 가구가 매서운 바람과 폭풍에 맞서며 살아간다.일본 영화 중에는 ‘카모메 식당’이나 ‘해피해피 와이너리’ 같은 ‘슬로 라이프 무비’ 스타일이 많은데, 그런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커피 하우스가 길 중간쯤 덩그러니 있고, 카페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사람이 동그란 선글라스를 낀 채 가게 앞 벤치에 앉아 볕을 쬐며 유유자적한다. 하긴 햇살이 강하다. 집을 나와 방랑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마라도로 들어온 지 7개월째라고 했다. 나가는 배를 놓칠세라 바쁘게 움직이려는 우리를 보고 그가 발목을 잡는다. “얘기 좀 하고 가세요.”
그가 만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바다일 터. 360도로 펼쳐진 바다. 온통 바다. 바다가 아니면 바람일 것이고 결국 자기 자신과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는 대화가 고플 것이다. 사람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잡담이 그리운 것이다. 솔직함은 잡담 속에 있지, 이런저런 양식 미가 가미된 수사(修辭)의 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왜 여기 들어와서 사는 걸까. 저녁 시간이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오로지 할 일은 그 정도밖에 없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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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여행기’는 주인공 미라의 여행이 주된 얘기이며 아무것도 몰랐던 이 어린 처녀가 강정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또 보고 나서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설익다. 다소 한가하다. 그래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럼에도 강정마을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점찍어 둘 만한
영화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란 해군기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국가 근본주의자들’과 기지따위는 없어야 한다는 ‘국가 해체주의자들’의 대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올리버 스톤 감독도 강정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의 현재 아내는 한국인이고, 그래서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것에 푹 빠져 있는데, 명절이나 장모 생일엔 처가에 와야 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강정마을 얘기를 듣게 됐고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젠가 올리버 스톤의 시선으로 강정마을 사태가 영화로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스톤이 만든 다큐멘터리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나 ‘미국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 등은 그가 정치와 역사에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감독인지를 보여준다.
장동건·고소영 이어준 사려니숲
그래서 관음사는 그저 앞마당을 훑고 나오는 정도였지만, 제주도는 절도 다른 곳과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긴 통로 같은 입구에 작은 불상들이 도열한 형국은 아무래도 ‘육지 것’들의 사찰과는 다른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이건 일본도 아니다. 중국도 아니다. 불상들은 패랭이 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 지역의 전통 복식이었을 공산이 크다.
사려니숲은 아름다운 숲길이다.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 봉개동에 있는 비자림로에서 서귀포 사려니오름까지 15km 정도 이어진 길에 삼나무를 중심으로 편백나무 등등 온갖 나무가 우거져 있다. 사려니숲은 최대의 삼림욕 공간으로 아마도 국내에 이만한 곳이 또 없을 만큼 청정하다.
이곳에서 ‘이재수의 난’을 찍은 1999년에 장동건, 고소영이 결혼하기 전 같이 나온 ‘연풍연가’를 만들었다. ‘접속’을 만든 장윤현 감독이 제작과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인데, 특이하게도 월트 디즈니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브에나비스타 코리아라는 이름의 할리우드 메이저가 투자했다. 흥행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남자가 슬럼프를 겪던 끝에 제주도에 와서 여행 가이드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인데, 그다지 새로운 감각의 연애담을 보여주진 못했다.
결국 이 영화는 두 남녀 배우가 실제로 짝을 맺는 계기만 됐다고 하면 지나친 폄하일까. 어쨌든 지금 한국에선 브에나비스타의 존재도 사라졌다. 장윤현 감독도 국내보다는 중국에서 더 활동이 잦다. 영화를 만든 박대영 감독도 2007년 ‘허밍’ 이후 감감 무소식이다. 사려니숲만이 여전히, 조용히, 고즈넉이 길을 열어놓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영화보다 드라마와 CF 촬영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는 과거와 사연을 담는 데 주력하는 편이고, 드라마는 현재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데 좋은 매체이고, 광고는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러나 무엇이 됐든 지금껏 제주도를 올곧이, 전부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만이 담길 뿐인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제주를 가보니 제주 자체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는 제주일 뿐 그 어디에도 편입되지를 않는다. 그러기에는 여기의 독자성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란의 땅 제주. 그 민란의 원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제주에는 핏빛 역사가 흐른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어쩌면 영화가 가장 먼저 풀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