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혁신 CEO

“전기화재율 15%로 낮춰 ‘전기안전 선진국’ 될 것”

2년 연속 ‘전기화재’ 줄인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사장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6-02-22 1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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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에 충실한 CEO
    • 2년 연속 연간 전기화재 600여 건 줄여
    • 해외 진출 박차…“지멘스, 알스톰과 당당하게 겨룬다”
    • “겨울에 쓴 난방기구 안전하게 보관해달라”
    이상권(62)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사장은 15년가량 ‘범인 잡는’ 검사로 재직한 법조인 출신이다.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마치고 검찰을 나와 18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인천계양을)을 지냈고, 2014년 2월 전기안전공사에 몸을 담았다. 그가 ‘낯선’ 전기안전 분야에 발을 들이며 처음 한 일은 ‘법조문’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전기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전기안전에 관한 조사·연구·기술개발 및 홍보 업무와 전기설비에 대한 검사·점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전기안전공사를 설립한다.’(전기사업법 제74조 1항)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의 총 화재 건수 중 전기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21.7%(2013년)에서 17.5%(2015년)로 ‘드라마틱하게’ 낮아졌다. 총 화재 건수는 매년 비슷한 수준인데, 전기화재만 연간 500, 600건씩 줄었다. 지난 20, 30년간 전기화재  율이 20%에서 30% 사이를 오락가락한 점을 감안할 때 ‘이상 징후’가 아닐 수 없다.
    ▼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법에 명시된 전기안전공사의 존립 근거는 ‘전기로 인한 재해 예방’입니다.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우리 공사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오랫동안 전기화재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어요. 반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전기화재율은 15% 안팎입니다. 그래서 임기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전기화재 율을 낮추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뜻하고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스스로에게 99점을 줘도 되겠지요(웃음)?”



    현장 직원 노고에 감사

    이상권 사장은 전기화재율을 임기 첫해에는 2.0%포인트, 두 번째 해에는 2.2%포인트 연속해서 낮출 수 있었던 비결로 “뭐든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전기화재를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잘 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독려했다. 별도로 만든 안전기획단이 주축이 돼 전기화재 감축을 위한 크고 작은 과제 30여 개를 도출하고 실천 전략을 짰다. 영·유아 자녀를 둔 주부를 대상으로 ‘전기안전 주부교실’을 운영하는 것에서부터 전기로 인한 화재가 아닌데도 전기화재로 분류되는 일은 없는지 점검하는 일까지 다양한 과제를 전 부서, 전 직원이 분담해 추진했다.
    ▼ 특히 기억에 남는 과제를 꼽는다면.
    “전국 60개 사업소 현장 직원들이 각 가정에 3년마다 한 번씩 전기 점검을 나갑니다. 보통 ‘두꺼비집’이라고 하는 분전반(分電盤)을 체크하는데, 직원들에게 거주자의 양해를 구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도록 했어요. 전선이 툭 튀어나온 데는 없는지, 콘센트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 있진 않은지 하나씩 챙기도록 한 거죠. 이게 우리 권한도, 의무도 아닌 데다가 많은 국민이 귀찮아하시기 때문에 현장 직원들이 참 많이 애먹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준 직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지요.”
    효과적인 로드맵을 짜는 데는 해외파견 조사가 큰 참고가 됐다. 전기화재 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뉴질랜드로 5%에 불과하고, 대만은 35%로 무척 높았다. 그는 “그런데 아무도 뉴질랜드나 대만에 가서 왜 전기화재율이 낮고 높은지 따져보지 않았다”며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을 두 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 뉴질랜드는 어떻게 해서 전기화재율 5%를 달성한 건가요.
    “뉴질랜드에서 배울 점은 딱 하나였습니다. 법으로 국민에게 전기안전 수칙을 지킬 의무를 부과해 어길 경우 형사적 제재까지 가능하도록 했어요. 자연히 전기안전과 관련한 국민의식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산불이 워낙 많이 발생해 전기화재 비율이 낮은 측면이 있어요. 오히려 배울 점은 대만에 더 많았습니다.”
    ▼ 대만?
    “일관된 정부 정책과 화재 발생 후 강력한 법적 사후조치로 10여 년 전부터 화재건수가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대만에선 화재가 발생하면 형법인 ‘공공위험죄’가 적용돼 무조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해요. 경제기획원 중앙표준국이 모든 전기제품에 대해 인증 검사를 철저하게 하고, 각 지역 소방서 산하 화재감정위원회는 화재 원인을 철저하게 파악합니다. 대만의 이런 정책들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 사장은 올 한 해도 전기화재 예방에 박차를 가해 또 2%포인트를 줄여 (전체 화재 중) 전기화재율 15%대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살이 쑥쑥 빠진다. 어려운 것은 웬만큼 살을 뺀 다음에 살을 더 빼는 것이다. 그는 “올해 또 전기화재 건수를 500~600건 줄이는 것이 예년보다 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못 하겠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점검 거부하면 과태료

    ▼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가 ‘전기안전관리법’ 제정입니다.
    “개인의 안전을 위한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은 법으로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물론 이웃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전기 재해와 관련해선 마땅한 법안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요. 전기안전관리법은 국민이 전기사용 중 안전 확보를 위해 어떤 의무를 져야 하고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 의무는 뭐고 권리는 뭔가요.
    “처음부터 뉴질랜드처럼 강력하게 할 순 없고, 우선은 각 국민이 안전관리기관의 점검 요청에 응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지금은 ‘사생활 침해’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우리 직원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법안이 마련되면 점검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또한 정전 등 전기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 국민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의무를 새로 도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전력산업 기본계획은 있는데 전기안전관리 기본계획은 없어요. 앞으로는 국가가 주기적으로 전기안전 관련 정책과 실행계획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전기안전공사는 ‘수출’ 기업이다. 정밀안전진단사업 매출액이 지난해 155억 원 규모로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는데, 해외 수출 신장에 기인한 바 크다. 그간에는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에 동반하는 방식으로 전기안전진단 서비스를 수출했는데, 최근에는 아예 직접 수주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를 꾀한다. 지난해에는 12억 원 규모의 카타르 발주사업을 직접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 85억 원 규모의 카타르 정부 발주 ‘카라마 변전설비 검사 사업’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프랑스 알스톰이 낙찰을 받았어요. 비록 수주에 실패했지만, 단독 입찰을 해서 알스톰, 지멘스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기술력에서 뒤진 게 아니라, 입찰가격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봐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여기며 계속 노하우를 쌓아 세계적인 전기안전관리 기업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한국형 안전관리’ 해외 전수

    전기안전공사는 몽골, 베트남 등 전기안전관리 시스템이 뒤처지는 아시아 국가에 ‘한국형’ 전기안전관리 시스템을 이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연말 베트남 정부는 전기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사용전검사, 정기검사, 안전진단 등 한국의 전기안전관리체계를 반영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전기안전연맹 포럼에 전기안전공사 초청으로 참여한 몽골 정부는 한국의 선진적인 시스템에 놀라 “전기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한국의 전기안전 관리체계를 해외에  이식한 첫 성공사례로 꼽히는 베트남 건과 관련해 이 사장은 “내가 베트남 법무부 장관을 만나 ‘나도 법조인 출신인데, 전기안전을 법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설득했다”며 후일담을 전했다.
    “5월에는 국제전기안전연맹 내 아프리카워킹그룹과 전기안전관리 시스템 교육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입니다. 전기안전 분야 후발 국가들은 미래의 ‘고객’입니다. 교육 등 각종 교류를 통해 한국의 전기안전관리 시스템을 이식하는 것은 주효한 해외사업 진출 전략이 될 것입니다.”
    전기안전공사는 2014년 6월 전북 완주군 이서면 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했다. 지난 6월에는 혁신도시 이전기관 중 최초로 지역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새울림음악회’를 개최했는데, 3500여 명의 인파가 몰렸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혁신도시 주민 3명 중 1명이 음악회에 온 셈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혁신도시 이전 기관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근 정읍에는 연구원과 교육원을 건립한다. 정읍시는 이 연구원과 교육원이 최소 150명 이상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4000명 이상 교육생이 정읍 지역으로 유입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 사장은 “실험실증단지를 만드는 게 주 목적”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전북을 미래 전기안전 연구개발(R&D) 산업 중심 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기장판 관리법’

    이 사장을 만난 2월 12일은 하루 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매섭지는 않고 슬그머니 차가운 빗물에선 어렴풋이 봄 냄새가 났다. “이제 겨울이 다 지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전기장판 보관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말을 받았다.
    “전기장판을 이불 개듯 접어서 장롱에 넣어놓는데, 이거 정말 위험하거든요. 그렇게 보관하면 전기장판 안의 전선이 느슨하게 끊어진 상태가 돼서 다음 겨울에 사용할 때 전기저항이 커지고 열이 발생해 불이 날 수 있어요. 접지 말고 동그랗게 말아서 세워놔야 해요. 또 습기 예방 차원에서 장판 사이에 신문지를 끼워놓는 게 좋습니다. 습기가 합선을 유발하거든요. 태양 표면온도가 6000℃인데, 벼락이 떨어진 자리의 온도는 3만℃라고 합니다. 전기에너지가 저항을 받아 불꽃으로 변할 때 온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요. 그래서 순식간에 불이 붙는 거죠.”
    그는 저소득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전열기구의 안전한 사용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엄청난 소비전력으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도 문제지만, 전열기구의 바닥이 매우 뜨거워져서 화재 발생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시간 켜고 10분간 꺼놓고, 전열기구 위치도 자주 바꿔주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전기안전공사와 검찰은 ‘국민 안전’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그는 “안전을 얘기할 때 내가 즐겨 거론하는 사례가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라며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안전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풍구 위에 여러 사람이 올라간 걸 보고 머리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잠깐 보고 내려오지 뭐’ 하며 몸은 자연스럽게 환풍구 위로 올라갔을 겁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이 딱 이 수준이에요. 하지만 안전은 삶의 기본이자 미래입니다. 전기안전의 최전선에 있는 수장(首長)으로서 전기안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기본’을 다지는 데 계속 매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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