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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구

지략과 책략의 광휘였으되 구차하고 초라하도다

1896년 병신년 아관파천

  • 송우혜 | 소설가 swhoo@daum.net

지략과 책략의 광휘였으되 구차하고 초라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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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지도를 바꾸다

임금과 그의 후계자인 동궁을 함께 경복궁에서 탈출시키는 데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분리되면 나라도, 권력도 분리될 것이다. 친일, 친러, 친미 등등 저마다 배경이 다른 세력에 등을 대고 있는 신하들이 두 사람 중 하나를 확보한 뒤 서로 자신들의 ‘포로’를 명목상의 통치자로 내세워 권력 다툼을 가중시킬 것이었다.
엄 상궁의 계획은 그 점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고종은 엄 상궁의 계획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해서는 아니었다. 다른 길이 전혀 없었기에 그런 황당한 시도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극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엄 상궁은 춘생문 사건의 여파로 여기저기로 숨은 친러파 및 친미파 인사들과 비밀리에 연락해 자신이 임금과 동궁을 모시고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한 뒤의 일을 맡아 처리하도록 주선해놓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처지에 있는 한 나라의 임금과 동궁을 그처럼 위험하고 기괴한 모험을 하도록 몰아넣은 엄 상궁의 거사는 결국 성공했다. 모든 것이 엄 상궁의 계획대로 됐다. 상식과 법도를 뛰어넘는 고도의 심리조작 기법이 활용된 놀라운 사례다.
본래 궁궐 안에서는 왕족과 삼공(三公,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외에는 가마를 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엄 상궁은 ‘두 채의 가마 작전’을 기획했고, 실제 거사에 들어가자 가마꾼들이 평소와 달리 한 가마에 두 사람을 태우고도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엄 상궁의 사전 공작에 길든 건춘문 수문병들은 가마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통과시

지략과 책략의 광휘였으되 구차하고 초라하도다

황귀비 엄씨. 동아일보

켰으며, 단 한 명의 경호인도 없이 홀홀히 건춘문을 빠져나간 두 채의 가마가 광화문 앞 큰길을 유유히 질러가도  누구 하나 의심을 품지 않았다.
임금과 동궁이 탄 두 채의 가마가 러시아공사관 정문 안에 들어간 때는 1896년 2월 11일 오전 7시 20분. 그 순간부터 조선 천지의 권력 지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일본인들이 판을 치던 세상에서 러시아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엄 상궁은 여러모로 특출한 인물이다. 그녀는 철종 5년 갑인년(1854)에 태어나 만 5세에 ‘아기 내인’으로 입궁해 궁녀가 됐다. 어릴 때부터 궁 안에서 자라 궁궐살이의 전모를 꿰고 있는 데다 두뇌와 체력이 비상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 명성황후가 부리는 지밀상궁이 됐다. 지밀상궁은 통치자의 최측근이기에 궁 안에서 대단한 권력자로 꼽힌다. 엄 상궁이 지닌 단 하나의 흠은 얼굴이 너무도 못생겼다는 것. 그런데도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그녀는 만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고종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승은(承恩)’을 입었다.  



역사의 거울 속 아관파천

독점욕이 강한 중전 명성황후는 자신을 직접 모시는 궁녀인 엄 상궁이 승은을 입은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형틀을 차려놓고 때려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엄 상궁 측에도 사람이 있어 이를 즉각 고종에게 알렸고, 급히 현장에 온 그가 극력 만류해 궐 밖으로 내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엄 상궁이 다시 고종을 본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뒤였다. 중전 시해 뒤 일본인과 친일파들은 대궐에서 근무하는 자들을 자기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따라서 주위 사람들을 전혀 믿지 못한 고종은 중전 시해 5일 만에 엄 상궁을 궁으로 불러들이게 명하고 대전 소속 지밀상궁으로 임명해 최측근에 뒀다.
고종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 상궁을 생각해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10년 전 승은할 무렵 엄 상궁이 고종에게 자신의 충성심과 명민함, 유용함을 확고하게 각인시켰다는 의미다. 엄 상궁에 대한 고종의 안목은 정확했다. 엄 상궁은 재입궁 4개월 만에 아관파천이라는 초유의 대사건을 기획하고 성사시켰다.
아관파천으로 일본 세력권에서 벗어난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뒤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했고, 엄 상궁은 만 43세의 늦은 나이에 러시아공사관에서 임신한 고종의 아기를 대한제국 수립 후에 경운궁에서 낳았다. 그 아기가 영친왕 이은으로, 뒤에 대한제국 황태자가 됐다. 황족 아기를 낳은 엄 상궁은 ‘황귀비 엄씨(약칭 엄 귀비)’라는 높은 지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제 엄 상궁과 아관파천 성공이라는 그녀의 업적을 역사라는 이름의 거울에 비춰보자. 그녀가 지닌 뛰어난 지략과 책략의 광휘(光輝)가 초라하게 오그라들어 금세 빛이 죽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 그녀의 지략과 책략은 태생부터 구차하고 서글픈 한계를 지닌 것으로서, 오로지 패배자의 보신(保身)에나 유용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에 휘둘리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래서 아관파천의 기억과 치욕이 더욱 아프다. 음습한 사잇길에 해당하는 괴이하고 기묘한 술책을 통해서 이루어진 아관파천, 과연 그런 오욕의 역사는 이제 우리에게서 아주 멀어졌는가. 우리가 방심할 때, 다시 난민수용소와 같은 고통의 역사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좌절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신동아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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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혜 | 소설가 swho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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