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예일대 재학 시절 만난 남편인 빌 클린턴이 1978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되며 공인의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시절 ‘미세스 프레지던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해 구설에 올랐다. 1993년 힐러리가 야심차게 추진한 의료 개혁법안은 대실패로 끝났으나, 아동 보건 및 보호 관련 법안을 다수 제정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후 힐러리는 뉴욕 주 상원의원을 두 번 맡고 2008년 도전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으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아 4년간 대외정책을 지휘했다. 국무장관 재임 때 힐러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오바마 대통령과 보조를 잘 맞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임기 말 리비아 벵가지에서 4명의 미국 외교관이 테러로 사망한 것은 국무장관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黨籍 여러 번 옮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941년생으로 주요 후보들 중 최고령이다(그래도 힐러리보다 6세, 트럼프보다 5세 많을 뿐이다). 유대계인 샌더스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연인관계이던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고, 이후 현재 부인인 제인 샌더스와 결혼했다.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적 비주류의 행보를 거듭했다. 시카고대 재학 시절에는 사회주의 청년연맹(Young People's Socialist League) 소속이었고, 1971~1979년 사회주의 성향의 진보 정당 자유연대당(Liberty Union Party) 소속으로 버몬트 주의 공직에 몇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무소속으로 도전해 당선되면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해 시장직을 3차례 연임했다. 1988년 역시 무소속으로 도전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16년간 의원 생활을 했고, 2006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5월 민주당에 가입해 대선 후보 경선전에 참여했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1946년 부동산 개발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당시 미국에서 부동산학을 개설한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이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인 아버지의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이후 택지 개발, 골프장·호텔 건설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하지만 사업이 언제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어서, 4번의 파산 경험도 있다.
트럼프의 다양한 관심사 중에는 정치가 늘 포함됐으나 당적은 여러 차례 바꿨다. 젊은 시절엔 민주당 당적을 가졌다가 1987년 공화당에 입당했으나 1999년 개혁당(Reform Party)으로 옮긴다. 2001~2009년엔 다시 민주당 소속으로, 2009~2011년엔 공화당, 그리고 잠시 무소속으로 지내다 결국 2012년에 공화당에 복당했다.
선거 출마 의사도 여러 번 밝혔다. 대선 출마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1988년이며, 2004년에도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고, 2006년에는 뉴욕 주지사 출마를 거론했다. 2012년엔 다시 대선 출마, 2014년에는 뉴욕 주지사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이번에 드디어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왜 아웃사이더에게 환호할까
플로리다 주 하원을 거쳐 201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쿠바계 마르코 루비오는 의회 내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으며 2012년 대선에서 부통령감으로 거론된 바 있다. 의회에서 일관되게 보수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활동해왔다. 하지만 2012년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사이에 연방정부 예산안을 둘러싼 대결이 벌어졌을 때는 ‘영세 사업자와 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행정부 편을 들어 보수층의 비난을 받았다.상원의 초당적 모임인 ‘8인의 갱(Gang of Eight)’ 멤버인 루비오는 민주당 의원들과 다수의 법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그가 보수 색채를 명확히 하면서도 초당적 활동을 벌인 점, 상원에서 외교위원회와 정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점을 보면 대권을 향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조한 의회 출석률 및 표결 참가율, 공금 유용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역시 쿠바계인 테드 크루즈는 프린스턴대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뒤 텍사스 주 법무차관을 지내는 등 공직과 대형 로펌을 넘나들다 2012년 도전한 연방 상원에 당선돼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아웃사이더들의 돌풍이 이번 대선의 최대 관심사다. 한 사람은 이념의 오른편 극단에, 다른 사람은 왼편 극단에 서 있는데도 높은 지지를 받는 현상의 원인은 바로 후보들의 발밑에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가 디디고 올라선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가 원인인 것이다.
퓨리서치가 1994년부터 10년 주기로 미국인의 정치 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994년에는 중도적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 성향을 띤 공화당 지지자가 조사 대상 공화당 지지자 중 36%였는데 2014년 조사에서는 8%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중도적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는 1994년에는 조사 대상 민주당 지지자의 30%인 데 비해 2014년에는 6%로 나타났다. 정치적 중도층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이다.
정치적 중도층 감소 현상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는 중도층 감소세의 가속화다. 1994~2004년 중도적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인 공화당 지지자는 6% 감소했으나, 2004~2014년엔 22% 감소했다. 중도적 공화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는 1994~2004년 2% 증가했으나 2004~2014년엔 28% 감소했다.
제대로 열 받은 진보진영
둘째는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 격화다. 퓨리서치 조사 중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에게 상대 정당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항목의 결과를 보면, 공화당에 대해 ‘매우 비호감(very unfavorable)’이라고 답한 민주당 지지자의 비율은 1994년 16%, 2004년 29%, 2014년 38%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에 대해 ‘매우 비호감’이라 답한 공화당 지지자의 비율도 1994년 17%, 2004년 21%, 2014년 43%로 치솟았다. 더욱이 2014년 조사 대상 민주당 지지자 중 27%와 공화당 지지자 중 36%가 각각 ‘상대 정당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a threat to the nation's well-being)’라고 응답했다.최근 로이터가 시장조사업체 입소스(Ipsos)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 중 87%, 샌더스 지지자 중 54%가 ‘현재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와 샌더스 돌풍은 이 같은 정치적 중도층의 감소와 양극화, 상대에 대한 혐오 증가 현상이 중첩된 미국 정치 지형 변화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즉, 기존의 미국 정치 지형으로 보면 아웃사이더여야 할 트럼프와 샌더스가 정치 지형의 양극화로 인해 두 그룹으로 나뉜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인사이더가 된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유는 뭘까. 진보진영 좌경화의 중심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있다. 오바마 집권기에 일어난 변화에 대한 불만으로 진보층이 더욱 좌경화한 것이다. 물론 진보층이 ‘오바마 행정부가 한 일이 없다’고 비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이전 시기에 비해 큰 폭의 변화가 일었다.
오바마 집권기에 정치·사회적 영향이 컸던 변화로는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의료보험 개혁, 동성결혼 합법화, 동성애자임을 공개하는 사람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이른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입법화 등을 꼽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통한 중국 견제, 이란 핵 합의, 쿠바와의 외교 정상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설립 등이 있다.
이런 변화에도 진보진영의 불만이 큰 까닭은 오바마 행정부 아래서 일어난 변화가 정치적 산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거나, 변화의 정도가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연방대법원을 통해 사법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Don′t Ask, Don′t Tell’ 정책은 폐지됐으나 만족스러운 후속 정책이 나오지 못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 역시 입법화는 됐지만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은 미진하다.
진보진영의 불만이 큰 또 다른 이슈는 흑인 인권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등장으로 흑인 인권 개선에 대한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나 비무장 흑인들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시민운동이 시작될 만큼 흑인 인권 개선을 실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상대적 빈곤 + 절대적 빈곤
진보진영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최고 업적으로 여기는 경제다.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면 오바마 재임 중 미국 경제가 회복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나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다. 시사월간지 ‘워싱턴 먼슬리’(Washington Monthly)는 연방준비은행 샌프란시스코 지부에서 발간된 자료를 분석한 보도에서 “최근의 빈부 격차는 세대의 문제까지 중첩돼 청년층이 노년층보다 더 빈곤해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심화했을 뿐 아니라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가장이 25~34세인 ‘청년층 가정’의 중위 수입(median income)과 가장이 65~74세인 ‘노년층 가정’의 중위 수입 비교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와 청장년층 가정의 중위 수입과 노년층 가정의 중위 수입 간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더니 급기야 2009년부터는 노년층의 수입이 청년층의 수입을 앞질렀고, 이후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부의 분배 메커니즘 문제도 있다. 미국 의회 예산처는 ‘1979~2009년 하위 80% 가계의 소득은 계속 하락한 반면 상위 1% 가계의 소득은 2배 이상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제이콥 해커 예일대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금융규제 해제가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 낙수효과(trickle-down)가 아니라 역낙수효과(trickle-up)를 불러일으켰다”며 소수의 부유층이 부를 독과점하며 중산층 및 빈곤층과의 격차가 벌어져가는 현상의 주범으로 ‘탐욕적 금융업’을 지목했다.
비록 오바마 취임 이전 시기에 비해 경제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체감할 정도는 아니며, 그나마 그 혜택도 경제적 상위계층이 상당 부분을 흡수하는 구조가 심화하면서 민주당 지지 기반인 청장년층, 노동자 계층은 상대적 빈곤뿐 아니라 절대적 빈곤까지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편 보수층이 우경화한 데에는 공화당 내부 변화의 영향이 크다. 9·11 테러 이후 반(反)이슬람 및 반이민자 정서가 높아진 상황에서 흑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전통적 비주류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졌다. 이에 보수층은 비주류들을 포용하기보다 반오바마 공세를 통한 전통 지지층의 결속을 택했다. 그러한 선택의 중심에는 반이민, 총기 소유권 보호, 세금 인하, 정부 기능 축소 등을 주장하는 극우 정치조직 ‘티파티(Tea Party)’가 있다. 티파티는 보수적 부유층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사라 페일린,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폴 라이언 등 유망한 정치인들을 발굴·후원하는 방식으로 공화당 우경화를 촉진했다.
강경 보수들의 선동
티파티를 중심으로 한 극우 보수층의 반오바마 공세에 이용된 이슈 중 하나는 총기 소유권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때부터 보수층에서는 그가 총기 소유권을 제한하려 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고, 이는 총기 사재기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의 첫 임기 시작인 2009년 1월 한 달 동안 팔린 총기류는 110만 정에 달하며, 재임 첫 해인 2013년 1월에는 200만 정이 팔렸다. 2000년대 들어 이같이 비정상적으로 판매가 증가한 시기는 9·11 테러 직후인데, 당시 팔려나간 총기는 75만4000정으로, ‘총기 소유를 원하는 미국민은 테러보다 오바마를 더 무서워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류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올해 1월이다. 합법적 소유 총기에 의한 대량 살상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후에 나온 조처라 오히려 때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보수층이 민감해하는 총기 소유권과 관련해 반오바마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근거 없는 루머가 퍼지는 데 직간접적으로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이민자 정서도 비슷한 사례다. 9·11 테러, 보스턴 테러 등으로 고조된 반이슬람 정서에 편승한 강경 보수층은 “IS의 등장이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또한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백인들을 의식해 “이민자들 때문에 테러 위협이 증가할 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직업마저 뺏을 것”이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이렇듯 보수층의 우경화는 반이슬람 및 반이민자 정서,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백인 주류 보수층의 반감, 테러에 대한 공포 등을 티파티가 세력 확장에 적극 활용하며 일어난 현상이다. 트럼프는 이 토양을 기반으로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며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지지를 얻고 있다. 앞서 언급한 로이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은 사안이 이민과 테러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요 후보들의 대외 정책관 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아시아 및 한반도에 대한 정책이다. 힐러리는 기본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려 한다. 따라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유지하며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함께 하는 강온 양면 전술을 쓸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는 북한의 변화가 없는 한 오바마 행정부의 현 대북 정책기조와 다른 자세를 취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샌더스는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해 중국과 북한 모두를 인권, 언론자유 등의 이슈에서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對北 유연책은 없다
트럼프는 군사력 증강에 힘을 쓰면서도 자신의 친기업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를 더 강화하려 들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더 큰 기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루비오는 북한을 범죄집단으로 규정한 전력을 볼 때 강력한 대북제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이들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당분간 북한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우리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끌고 나갈 것이며 미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에게 우리의 처지를 어떻게 설득해나갈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 1973년 전남 순천 출생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대 박사(국제정치학)
● 現 한국국제정치학회 기획이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