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연속기획

‘부품 전문’ 만족 말고 ‘플랫폼’에 도전하라

삼성의 도전, 한국의 과제 ②스마트카

  • 강지남 기자 | ayra@donga.com

    입력2016-03-02 14: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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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기간 역량 확보가 목표”
    • ‘소품종 다량’→‘다품종 소량’ 체질개선 과제
    • 삼성-현대차 협력은 요원?
    • 삼성, ‘흩뿌리기’ 끝내고 리더십 발휘해야
    “삼성자동차의 시작과 끝을 경험한 사람이 15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가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박종환(55) 부사장을 팀장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삼성자동차 출신 인사가 한 말이다.
    삼성전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박 부사장은 1990년대 초반 태스크포스(TF)팀 시절부터 삼성자동차에 합류해 경영전략 실무를 맡았다. 2000년 삼성이 프랑스 르노에 자동차 사업을 매각한 뒤 그는 ‘친정’ 삼성전자로 복귀하지 않았다. 대신 기업구조조정본부(현 미래전략실) 재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앞의 인사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르노삼성 지분 19.9%를 관리하는 임무를 박 부사장이 맡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경험한 ‘오리지널’  전자맨. 그런 그가 다시 ‘자동차업계’로 돌아온 것이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와 함께 스마트카를 선택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단기간 내 전장사업 역량 확보가 목표”라며 “초기에는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기기), 자율주행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계열사 간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를 사라?

    전장(電裝)이란 차량에 들어가는 전기 및 전자장치를 가리킨다. 자동차 전체 부품 중 전장부품 비율은 35%쯤 된다. 하지만 자율주행 등 스마트카를 향한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향후 5년 내에 전장 부품 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그래서 요즘 스마트카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비유될 정도다.
    삼성전자가 자동차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시장의 ‘파이’ 때문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3700억 달러 규모이고, 생활가전은 2000억 달러, TV는 800억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에서 보듯 이 시장의 내일은 밝지 않다. 그런데 자동차 시장은 스마트폰 시장보다 몇 배 큰 1조4000억 달러 규모다. 게다가 친환경차, 스마트카 등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앞으로의 발전 ‘방향’도 삼성전자 같은 전자·IT 업체에 유리하다.
    향후 스마트카 시장은 매년 15~20%씩 성장하고, 2035년경 북미, 유럽, 아시아태평양 등 세계 3대 자동차시장에서 자율주행차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의 75%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 적극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래학자인 최윤식 뉴욕주립대 미래기술경영연구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삼성에 ‘스마트폰 사업부를 팔고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삼성의 자동차 관련 사업은 여러 계열사로 나뉘어 있다.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한다. 삼성벤처투자는 스마트카 관련 기술을 가진 해외 벤처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무선통신장치), 차량용 반도체 등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전장사업팀이 꾸려진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이 조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전장사업팀은 지난 연말 박 부사장 등 4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했다가, 최근에는 3명의 임원을 포함해 20여 명 규모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장사업팀 은 아직 조직 세팅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자동차 출신 인사는 “삼성자동차 TF팀 시절만 해도 인원이 50명이 넘었다”며 “정말로 삼성이 스마트카 진출에 무게를 둔다면 이렇게 작은 규모는 아닐 텐데 의아하다”고 했다. 전장사업팀이 그룹 내 스마트카 관련 여러 조직을 한데 엮을 ‘컨트롤타워’ 기능을 맡을지도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정리된 바 없다”고 했다. 삼성 경영진 출신 인사는 “여러모로 볼 때 아직은 구체적인 스마트카 전략과 비전이 수립됐다기보다는 ‘흩뿌리기’ 차원에 머무는 것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전장사업팀 신설을 발표하며 언급한 ‘단기간’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가 ‘단기간 내’ 전장사업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합병(M&A), 합작투자(Joint Venture) 등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스마트카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해외 벤처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삼성벤처투자 행보 눈길

    삼성벤처투자는 2014년 라이다(lider, 레이저 광선을 활용해 외부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자율주행의 핵심 부품) 제조업체 쿼너지(Quanergy), 리튬이온 배터리 수명 연장 기술을 가진 시오(Seeo)에 각각 450만, 17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엔 구형 자동차를 스마트카로 바꿔주는 시스템 개발사 빈리(Vinli)에 650만 달러를 투자했다. 전장사업팀 신설 이후 첫 관련 투자는 누토노미(nuTonomy)에 360만 달러의 자금을 대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자율주행차의 두뇌 구실을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한다.
    현 시점에선 LG가 삼성보다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LG는 구본무 회장의 진두지휘하에 10년 전부터 전장사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육성해왔다. LG전자 내 VC(Vehicle Components)사업부도 삼성전자 전장사업팀보다 2년 앞선 2013년에 신설됐다. LG화학의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GM, 포드, 아우디, 현대·기아차 등 20여 개 완성차에 납품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11%의 점유율을 확보했다(지난해 2분기 기준).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차량 부품은 안전과 직결되므로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삼성은 LG에 비해 완성차 업체와의 거래 실적이 매우 적은 편”이라며 “스마트카로의 전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삼성이 M&A 등을 통해 속도를 내지 않으면 많은 기회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관심을 두는 전장부품 중 하나는 차량용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독일 아우디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스마트카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수백 개에 달한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뉘는데, 자동차에는 이 두 종류의 반도체가 모두 쓰인다. 하지만 ‘차량용’이라 특수성도 요구된다. 영하 40℃, 영상 155℃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돼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세계적인 메모리 강자일 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역시 20년 이상 연구개발해왔다”며 “이런 강점을 살려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로 꼽히지만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삼성은 소품종 다량 생산에 강점이 있는 기업인데, 차량용 반도체는 종류가 무수히 많을 뿐만 아니라 업체마다, 차종마다 달리 만들어줘야(customize) 한다는 특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삼성이 몇 년 전 차량용 반도체에 특화한 소재 개발을 하다가 시장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안다”며 “지금부터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품 전문’에 멈춘다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지난해 9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거론하며 “삼성과 현대차가 합병하거나 조인트(joint)해서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바꿔야 산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는 “삼성전자는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경험이 있기에 이 기술을 발전시켜 현대·기아차에 적용한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라며 “양사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은 아우디와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BMW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계열사 현대오트론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등 핵심 IT 부품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설립된 현대오트론은 차량용 반도체, 제어기, 소프트웨어, 전자제어 부품 등의 개발을 담당한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과 사업 영역이 상당 부분 겹치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오트론에 2018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해 자율주행 차량의 칩과 센서를 자체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차량 부품에서 IT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지기 때문에 주도권 유지를 위해 완성차 업체가 스스로 IT 기술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삼성 부품’은 없다. 반면 현대·기아차의 모든 하이브리드 차량에는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다.
    삼성은, 그리고 한국은 그간 쌓아온 IT 기술력과 완성차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스마트카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까. 혹은 ‘부품 전문기업’ 지위에 머물게 될까. 익명을 요구한 삼성 출신 인사는 “안타까운 것은, 삼성을 포함해 그 누구도 스마트폰 시장의 애플처럼 스마트카에서 플랫폼(platform)을 만들어내겠다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新성장 동력은 스마트카라는데… ▼ “각자도생 벗어나 ‘투 트랙’으로 가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과학기술 전문가 23명은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를 묻는 ‘한국경제’의 설문조사 요청에 ‘스마트카’를 가장 많이 꼽았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도 자율주행 자동차를 ‘앞으로 키워야 하는 분야’ 1위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펴낸 ‘산업기술수준조사’ 보고서(2013년 12월)에 따르면 스마트카 관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유럽 기술력이 100일 때 한국은 2011년 86.6에서 2013년 83.8로 오히려 낮아졌다. 스마트카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스마트카의 주요 분야인 2차전지 사례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한국은 2차전지 강국이다. 시작은 일본이 했다. 1992년 소니가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지만, 2011년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년 만에 ‘원조’ 일본을 누른 배경으로는 3가지가 꼽힌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휴대전화, 노트북 등 때마침 폭발하기 시작한 수요 △정부 주도의 산학연 연구개발(R&D)이다. 2004년 정부는 10개의 성장동력사업 중 하나로 2차전지를 꼽았다. 다음은 차세대 전지 성장동력사업단장을 맡았던 오승모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의 말.
    “사업단 출범 때 기업과 학계,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이 합심해 전지산업 인프라를 구축, 2015년 즈음 세계 1위의 2차전지 생산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몇몇 공무원이 피식 웃었다. 불가능한 꿈으로 보인 거다. 하지만 목표보다 4년 앞선 2011년에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2차전지 분야 세계 1위가 됐다.”
    이런 ‘반전’을 일본은 쇼크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가동한 것이 대규모의 리튬 2차전지 산학연 R&D 지원인 ‘올 재팬 프로젝트’다.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을 댔고, 전지 및 자동차 업체들과 각 대학 및 연구소가 적극 참여했다. 차세대 2차전지를 연구하는 강기석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모토가 ‘리튬 2차전지를 제2의 반도체로 만들자’였다”고 전했다. 일본은 가까운 미래에 리튬 2차전지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강 교수는 “그 결과가 지금부터 나오고 있다”며 “아직까지 소형전지는 한국이 더 우수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은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강자 테슬라가 사용하는 배터리는 대부분 파나소닉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양산에만 집중하면 미래 없다”

    오승모 교수는 지난 10여 년에 걸친 2차전지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전기차·스마트카 전환기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주문량이 크게 늘다 보니 기술 개발은 뒷전이고 생산에만 매달렸다”며 “대학이 키워낸 박사급 인력들도 모두 생산라인에 투입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이 올 재팬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도 양산에만 집중하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2차전지 시장은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로 향후 20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리튬이온에 강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리튬-황, 리튬-공기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아예 게임의 ‘룰’을 뒤집으려 한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강 교수는 “한 가지 노선만 고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며 “투 트랙(two track)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현재의 리튬이온 기술을 더욱 향상시키는 연구를 계속하고, 정부와 대학은 차세대 기술개발에 매진함으로써 미래의 ‘기술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 혼자서만 잘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다 함께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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