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현장고발

어딘지 말 못해도 ‘현직’은 맞다? 수상쩍은 ‘대기업 직원’ 취업강사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이규원 인턴기자 |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입력2016-03-07 14: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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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대 대기업 중 한 곳에서 근무하는 인사담당자”
    • 반년 전 퇴사하고도 ‘현직’ 타이틀 유지
    • 10위권 밖 그룹 계열사를 ‘3대 대기업’으로 포장
    • 해당 대기업들 “있을 수 없고, 사실이면 중징계감”
    “질문에 대한 답도 모르고 자기 얘기만 하고 앉았죠? 미친 거 아닙니까. (‘후배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세 권을 고르세요’ 라는) 이 쉬운 질문에 거지같이 말하니까 떨어지지. 현직자를 만나 정확한 판단을 배울 필요가 있는 거죠.”
    ‘S사, H사, L사…’ 빔 프로젝터 스크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이름 6개를 띄워놓았다. A 강사는 “나는 현재 이 기업들 중 한 곳의 인사팀에서 근무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특강’ 내내 자신이 현업에서 겪은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와 면접 사례를 소개하며 ‘준비 안 된’ 취업준비생들을 질타했다. 그는 “나는 우리 회사 서류전형에 투입되고 있다”며 자신에게 채용 관련 권한이 어느 정도 있음을 시사했다. “얘도 봉사활동 갔네. 페루래…이러면서 (다른 인사담당자들과 함께) 깔깔 웃는다”고 덧붙였다.  
    “제 인생관은 ‘자기계발’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말을 잘한다는 걸 알아요. 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어서 지금 여기서 강의하는 겁니다. 학원 원장님이 ‘왜 투잡(two job) 뛰는 당신을 채용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한 답변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논리가 명확하지요?”
    특강 도중 뒷문으로 슬그머니 나간 한 여학생을 제외하고는, 30여 명의 취업준비생은 A강사의 말을 받아 적으며, 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후 9시 반까지 특강이 열린 강의실을 지켰다.
    2월 1일 기자가 참석한 이 특강을 주관한 곳은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모 취업전문학원. 이 학원은 ‘국내 최다 대기업 합격자 배출 학원’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걸고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전략 등 취업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홈페이지에 공개해놓은 20여 명의 ‘선생님’ 대부분은 전직 대기업 종사자. A강사와 같이 현직이라고 밝힌 사람은 3명이다.



    시간당 10만~20만 원

    수강료는 상당히 비싸다. 주말에 ‘1:1 관리형 취업강의’를 한다는 A강사는 2시간 반 수업에 12만8000원을 받는다. 정가는 16만 원인데, 특강 참여자에 한해 20% 할인해준다고 한다. 유수의 대기업 S사에만 ‘특화’해 컨설팅을 해준다는, S사 출신 강사에게는 시간당 25만 원을 내야 한다.
    이 학원에 출강하는 ‘현직자’들은 공통적으로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 학원 홈페이지에는 본인 사진을 아예 공개하지 않거나 캐리커처를 올린다. A강사는 별칭을 사용하며, ‘現 대기업 인사팀 재직 중’이라는 B씨와 ‘국내 3대 대기업 현직 인사담당자’라는 C씨가 내건 이름은 가명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정말 국내 대기업 직원일까. 특강이 끝난 뒤 기자가 A 강사에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현직자는 아니다. 4월에 퇴사할 예정”이라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취재 결과 B씨는 국내 모 통신회사에서 4~5년 근무하다 2015년 9월 1일자로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학원에 정보 수정을 요청했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나머지는 학원에 확인하라”고 했다. B씨는 취업 컨설팅 강사 일을 2013년경부터 해왔고, 2014년에는 강사 일을 할 때 사용하는 가명으로 자기소개서 관련 책을 펴냈다. ‘현직’ 강사로 2년여 활동하다, 반년 전부터 ‘전직’ 강사가 된 셈이다.





    “취업난 악용한 상술”

    한편 현재 대기업에 근무 중인 것은 맞지만, 과포장해 자신을 홍보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학원 홈페이지에 ‘現 국내 3대 대기업 인사팀’이란 문구를 내건 C씨가 근무하는 회사는 취재 결과 자산 총액 기준 10위권 밖 그룹의 물류 관련 계열사로 확인됐다. C씨는 “(1990년대에) 계열 분리되기 전에는 우리 회사가 국내 최대 그룹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학원 측에서) ‘3대 대기업’으로 표기한 것 같다”고 해명하면서 “(취업학원 출강은) 목을 걸고 하는 일이고, 회사에선 이 사실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학원의) 다른 강사들도 마찬가지”라며 “지금은 회사를 그만둔 강사 중 상당수는 회사 재직 중에 취업 강의를 시작한 사람들”이라고도 덧붙였다.
    기업들은 자사 인사담당 직원의 취업전문학원 출강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뛴다. A강사가 자신이 현재 근무 중이라고 제시한 6개 대기업은 모두 “만일 사실이라면 엄격한 징계 대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K기업 홍보팀은 “겸직을 금지한 복무관리지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L그룹 측은 “회사 정보를 활용해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L그룹의 한 임원은 “초청 강연도 아니고 돈을 받고 사설학원에 나갔다면 당연히 징계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했다. S그룹과 H그룹 관계자는 “만일 사실로 밝혀진다면 바로 퇴사 조치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소속 강사의 이력에 허위 사실이 없는지, 현직에 있는 인사담당자가 회사 몰래 취업 강의를 하는 것에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한 ‘신동아’ 질의에 해당 취업전문학원은 “확인해본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2월 15일 현재까지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업에 있지도 않거나, 사실과 다른 정보를 내세워 수강생을 끌어들이는 것은 취업난 세태를 악용하는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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