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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태동지? 팽창주의 발원지!

日 이중성의 뿌리 야마구치

  • 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w68@daum.net

근대화 태동지? 팽창주의 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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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요시다 쇼인 ‘정한론’ 본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 총리 8명 배출…아베로 계승
  • ● 위안부 합의 말 바꾸기…‘신념’으로 한일관계 접근
  • ● ‘日 역사는 불가피한 상황’ 자위…객관적 평가 실종
야마구치(山口)현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本州) 지방 서남쪽 끝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변방이지만 강대국 일본의 출발지다. 인구 140만 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1억2800만여 명)의 1%를 조금 넘는 이곳에서 역대 총리 57명 중 8명이 배출됐다. 그중에서도 인구 5만 명의 하기(萩)시는 지난 150년간 일본 근현대사를 장식한 역사의 발원지다. 이토 히로부미가 태어난 곳이자, 아베 신조 총리 집안도 이곳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아베 총리의 중의원선거 지역구도 야마구치다.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배출됐을까. 당연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 튀어나온다. 2월 초 필자는 대학교수, 언론인 등과 함께 하기를 찾았다. 도시 곳곳에 내걸린 크고 작은 현수막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을 배경으로 한 NHK 대하드라마 ‘하나모유(花燃ゆ, 꽃 타오르다)’의 세트장도 있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정신

하기의 자랑인 사설 서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식민지 침탈 논란에도 일본 메이지유신(1868) 시기의 제철, 철강, 조선, 석탄산업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산업시설이 아닌데도 쇼카손주쿠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역사 단체들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한 정한론(征韓論) 사상의 뿌리인 만큼 문화유산 등재는 불가하다”고 주장하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유네스코 정신이 ‘평화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기 뜻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쇼카손주쿠는 아베 총리의 의지대로 ‘당당하게’ 유네스코 유산이 됐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이 ‘산업’이라는 이름의 유산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베 정부가 ‘끼워 넣기를 해서라도’ 세계유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의도는 읽을 수 있었다. 아베의 정신 세계에 쇼카손주쿠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쇼카손주쿠는 우리말로 ‘소나무 아래 공부방’이다. 1858년 몰락해가던 봉건 막부시대의 열도 끝자락 시골에서 체제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가 나왔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그는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실천가였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지만 그는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제자를 모아 혁명정신을 불어넣었다. 천황을 앞세우고 서양을 배척하면서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자는 게 핵심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에 지방의 서원에서 혁명사상을 키우고 왕조를 무너뜨리려 역모를 꾀한 것과 같다.  
요시다 쇼인은 무능한 집권세력(막부정권)이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굴복해 강제 개항을 당하는 광경을 봤다. 동시에 그는 서양의 힘을 객관적으로 읽었다. 이듬해 서양을 배우려고 해외 밀항을 시도하다 잡혀 감옥에 갇혔을 때 ‘유수록(幽囚錄)’을 썼고, 몇 년 뒤 자유의 몸이 되자 1857년 쇼카손주쿠를 열어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10대와 20대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체제 전복은 물론 서양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이웃 나라에서 되찾아와야 한다고 가르쳤다. 홋카이도(北海島) 개척, 류큐(琉球, 오키나와)와 조선 정벌, 만주와 필리핀 노획 등을 지침으로 내렸다.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설파했다. 요시다 쇼인은 자신의 체제 전복(막부 타도) 계획이 발각돼 1859년 30세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의 사후 9년 만에 일본 하급 무사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메이지혁명을 성공시켰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쇼인은 쇼카손주쿠에서 2~3년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깊숙하고도 철저하게 각인시켰다. 지금도 원형이 보존돼 있는 쇼카손주쿠 30㎡ 다다미방에서 일본 초대 총리와 조선 초대 총독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 매국노 이완용과 함께 한일병합에 도장을 찍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미국과 함께 필리핀과 조선을 각각 나눠 먹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 가쓰라 고로, 청일전쟁 당시 조선 제1사령관을 지내고 아시아 팽창주의를 주도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공부했다. 작은 어촌 마을 ‘소나무 공부방’에서 일본을 뒤집고 아시아를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괴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쇼카손주쿠는 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본산으로 불린다. 학당 앞 대형 비석에는 아베의 작은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직접 쓴 ‘메이지유신 태동지지(明治維新胎動之地)’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역사는 해석’이라고 했던가. 우리 일행에게는 혁명의 태동지가 아니라 아시아 팽창주의의 발원지로 읽혔다.


아베 총리는 2013년 8월 쇼카손주쿠 뒷산에 있는 요시다 쇼인의 묘소를 찾았다. 집단자위권 문제로 주변국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였다. 미국의 경고에도 일본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라고 했고, 무덤 앞에 무릎 꿇고 “결심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심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를 본 이들은 아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해 12월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가고시마에 뿌리를 둔 고이즈미 준이치로에 이어 역대 일본 총리로는 두 번째 참배였다. 한국과 중국이 크게 반발했지만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아베의 참배 이후 일본 극우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상이 됐고, 최근에는 참배 자체가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위패가 있는 곳이 국가 공인 참배지로 바뀐 셈이다.




‘재해석’한 피의 역사

요시다 쇼인의 묘소 뒤쪽에는 하급무사로서 기마병 부대를 만들어 전설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제자 다카스키 신사쿠의 무덤이 있다. 아베 총리의 집안이 아베 신조(安倍晉三)의 ‘신(晉)’ 자를 다카스키 신사쿠(高衫晉作)의 ‘신(晉)’ 자를 따서 지었을 정도라니 그 존경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월 말 필자 일행이 요시다 쇼인 묘소를 찾았을  때, 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각오를 다지는 듯한 비장함이 느껴졌다. 가족 단위로 묘소를 찾은 사람도 있고, 동호회 모임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관광객이었다. 보통의 일본 사람은 요시다 쇼인을 근대사상가, 일본을 일으킨 혁명가로 기억한다. 제국주의 사상과 침략 역사를 설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그들은 쇼인에 대해 일본을 근대화한 인물로만 교육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파의 ‘요시다 쇼인 독법(讀法)’은 다르다. 요시다 쇼인이 기초한 제국주의 사상을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이 이어받고, 군국주의자들에게 교육을 받은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로 연결된다. 기시 노부스케는 전범으로 감옥에 있었지만 무죄로 풀려나 총리를 지냈고, 그의 동생도 총리를 지내며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헌법 제9조(평화헌법)의 영구적인 전쟁 포기 문구를 ‘재해석’하며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어버렸다. 아베 정권은 근대화-제국주의-군국주의-식민지 침략-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피의 역사를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고 나섰다.
‘아픔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 일본은 강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것이 아베 총리가 요시다 쇼인 묘소 앞에서 다진 결심일지도 모른다.


군국주의는 休火山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왜곡은 오늘날 한일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미국은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자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 중국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가운데 그런 한일관계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한일 양국은 미국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위안부 문제 합의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합의서마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파열음을 일으켰다.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한다.”(2015년 12월, 한일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문)
“군 및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2016년 1월, 일본 외무상의 유엔 답변)
일본 정부의 말이 바뀌자 양국 관계는 이전보다 더 꼬여버렸다. 그래놓고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합의를 ‘영원히 건드릴 수 없는(불가역적)’ 합의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과거사 문제를 미래 지향적으로 풀어갈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관련한 문제에는 더욱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폭력에 의해 좌우된 지난 ‘흑역사’를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신념을 지녔다. 그것이 ‘쇼인 정신’이고, 자신의 외조부 정신이며, 강한 일본을 만들려는 아베의 시대정신이다.
필자는 일본을 오갈 때마다 아베 집권기 동안 한일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우리와 달리 아베는 한일관계를 ‘국익’의 관점이 아니라 ‘신념’을 기준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세계에는 자신과 일본 역사의 ‘불가피한 상황’만 존재할 뿐 ‘객관적인 평가’는 없다. 보수 자민당이 50년 이상 대부분의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정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심판받지 않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자기신념을 더욱 잘 지키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그는 과거사에 대한 사죄나 반성 없이 유체이탈 수준의 화법을 구사했다.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2013년 12월 26일)
“21세기에도 분쟁지역에서 여성의 성적 유린이 자행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2013년 9월 27일)
태평양전쟁 전범 합사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알면서도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아베 총리의 ‘계산’이 아니다. 아베 총리를 들여다볼수록 이런 발언이 ‘진심’이라는 사실에 필자는 크게 놀랐다. 일본 군국주의는 언제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전쟁의 꽃, 평화의 꽃

하기를 둘러본 일행은 발길을 도쿄로 돌려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23일 한국인이 야스쿠니 신사 남쪽 화장실에 사제 폭탄을 터뜨린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당시 필자는 일본 경찰이 야스쿠니 신사 주변 한국인 사무실을 예외 없이 수색했다는 재일 민단 관계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사 주변 경비가 삼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월 말 다시 찾은 신사는 예상외로 조용했다.
신사 정문에서 본전으로 이어지는 50m 폭의 벚꽃(사쿠라)길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봄에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필자는 이 벚꽃을 볼 때마다 꽃말을 생각했다. 일본에서 벚꽃은 평화를 상징한다. 일본 패망을 앞둔 1945년 자살폭탄을 싣고 미국 항공모함으로 날아간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환송식에도 어김없이 ‘사쿠라’가 등장했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활주로에 길게 늘어서 사쿠라를 흔드는 장면엔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보고 신사 오른쪽에 있는 전시관을 찾았다. 일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마련한 전시관에는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전시실도 마련해놓았다. 일본어와 영어로 설명하는 전시관을 둘러보고 필자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평양전쟁이 미국의 일본 석유금수조치로 인한 결과라는 일방적인 설명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 일본은 잘못이 없고, 현재의 일본이 존재하는 것도 오직 전쟁 덕택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마치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준다. 일본은 무서운 나라다.”(이정태 경북대 교수)
“전시관을 보면 제국주의 침략 당사자가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한국과 중국을 이상한 나라로 볼 수밖에. 앞으로 과거사를 둘러싼 인식차가 더 벌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박영식 연합뉴스TV 앵커)
도쿄에서 보면 서남쪽 끝 작은 마을인 야마구치에서 제국주의 사상이 싹을 틔웠다. 요시다 쇼인은 사형장에서 “일본의 혼(大和魂, 야마토 다마시)은 영원하다”며 죽어갔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혁명을 성공시키고 도쿄를 장악했다. 그러면서 야마구치 출신은 역대 최다 총리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직도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의문이 든다. 요시다 쇼인의 ‘대화혼’은 진실로 150년 동안 일본을 지탱해준 정신일까. 그럴 수 없다. 공존과 번영을 버리고 남을 밟고 나를 키우는 정신은 결코 한 나라의 혼(魂)이 될 수 없다. ‘정상 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제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은 아직도 이를 유효하다고 믿는다. 그 중심에 아베 신조 총리가 있다. 답답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우리는 어떤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갈 것인가.
사쿠라는 평화의 꽃이기도, 전쟁의 꽃이기도 하다. 사쿠라는 생명의 꽃이기도, 피의 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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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w6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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