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중력’ 금리, 높아지면 자산시장 짓눌러
미국-이란 전쟁으로 금리인상 가능성↑ 증시 운명은?
반도체 기업 실적, 고금리 우려 압도…멀티플 재평가는 아직
다가오는 고금리 시대, 현금 창출력 갖춘 기업 가치 오를 것

고금리 우려가 커지면 기업의 주가는 꺾이기 마련이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인공지능(AI) 생태계 기업의 현금 창출력이 훨씬 강력한 탓에 주가가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자본시장의 중력’ 금리, 높아지면 자산시장 짓눌러
투자는 시간을 다루는 일이다. 자본시장에서 시간은 대체로 뉴턴적 세계관 위에 놓여 있다. 어떤 대상에 힘이 가해지면 앞으로 나아가고, 힘이 사라지면 멈추며, 힘이 클수록 더 빠르게 가속하는 세계다. 투자 역시 비슷하다. 금융 데이터를 해석할 때 우리는 기업의 이익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성장 가속도가 언제 둔화하는지를 끊임없이 추적한다. 실제로 수학적 도구를 활용한 수많은 투자 이론 역시 이런 뉴턴적 사고를 바탕에 두고 있다.하지만 세상은 뉴턴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뉴턴적 세계관에서 시간·공간·질량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절대적 존재다. 반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시간·공간·질량은 고정된 절댓값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그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뉴턴적 세계관을 전복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단순히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보지 않았다. 거대한 질량은 시공간 자체를 휘게 만드는데, 중력이란 물체가 휘어진 시공간의 측지선을 따라 운동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가령 트램펄린 위에 무거운 공을 올려놓으면 공의 무게만큼 그물이 아래로 휘고, 주변의 작은 공들은 그 곡면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때 공의 질량이 클수록 파임의 정도는 깊어진다. 마찬가지로 일반상대성이론의 정수는 중력이 강할수록 시공간이 휘어지고, 시간의 흐름마저 느려진다는 통찰에 있다.
자본시장 역시 이러한 물리법칙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주식시장이란 결국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사고파는 공간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로 끌어오기 위해 ‘할인율’이라는 척도를 사용한다. 이때 금리의 상승은 자본 세계에서 중력이 강해지는 것과 같다.
고금리라는 압도적 질량이 시장 한복판에 들어서는 순간, 미래의 가치가 현재로 도달하는 경로는 트램펄린 위에 공이 놓일 때처럼 푹 꺼진다. 평탄했던 길은 가파른 경사면이 되고, 굴곡진 경로를 타고 현재로 넘어오는 미래 가치의 속도는 한없이 더뎌진다. 마치 강한 중력장 근처에서 시간이 지연되듯, 고금리 환경에서 미래의 가치가 현재에 닿기까지의 ‘경제적 거리’는 아득하게 늘어난다. 먼 별빛이 강한 중력장을 통과하며 에너지를 잃고 붉게 희미해지는 것처럼, 성장주들의 장밋빛 미래 역시 금리라는 중력을 거치며 흐릿해진다.
물론 금리는 경제의 활력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회의 기초체력이 튼튼하고 기업과 가계의 기대 성장이 높을수록, 자본에 대한 수요 역시 커지고 금리 역시 상승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시장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그 위에 덧씌워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변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화폐가치 하락 속에서도 비교적 낮은 물가상승률을 유지해 왔다. 넘쳐나는 돈은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갔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4월 13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유가 알림판. 뉴스1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가치를 갉아먹는 일종의 ‘부식 현상’에 가깝다. 오늘 가진 1만 원의 실질 가치가 내일 9000원으로 줄어든다면, 사람들은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된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이 펼쳐지면 집요하게 금리를 끌어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위적으로 거대한 중력장을 형성해 폭주하는 물가와 유동성을 억눌러 보려는 긴급조치를 취하는 셈이다. 문제는 금리라는 중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다. 과도한 금리는 소비·투자·고용을 동시에 짓누르며 경제 생태계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매달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고용지표 하나하나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여기에 ‘리스크 프리미엄’이라는 불확실성의 안개가 거듭 시야를 방해한다. 미래는 언제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전쟁의 포화나 기업 부도와 같은 공포가 시장을 잠식할 때, 투자자들은 짙은 안개 속을 항해하는 대가로 훨씬 높은 수준의 보상을 요구한다. 공포는 금리라는 중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도록 하고,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반도체 기업 실적, 고금리 우려 압도…
멀티플 재평가는 아직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 기조에 들어섰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5월 3일 “금리인하를 멈추고 인상하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쟁 발발 후 한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던 반면 물가는 더 높게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을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강화되면서 장기채 금리가 다시 치솟는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의 예상 경로만 놓고 본다면 지금의 주가 상승 랠리가 장기화하기란 쉽지 않다. 
SK하이닉스는 4월 23일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2조5763억 원, 37조6103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하지만 시장은 아직 이러한 비관적 시나리오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인공지능(AI) 생태계 기업의 현금 창출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그 중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중력이 아무리 강해도 그 대상을 지탱하는 내부의 에너지가 폭발적이라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근 행보가 그렇다.
두 기업의 변화는 단순히 매출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10% 안팎에 머물던 메모리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실적 개선이 아니라, 자본의 질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금리라는 중력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이 이를 압도하는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셈이다.
다가오는 고금리 시대,
현금 창출력 갖춘 기업 가치 오를 것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멀티플을 재평가하진 않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여전히 낮은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시장이 두 기업을 경기순환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공급과잉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꺾이면 오랜 기간 주가가 부진할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들 기업이 경기순환주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과거보단 주가의 진폭이 크고 길어진 점은 분명하다. 만일 ‘코스피 1만 시대’가 펼쳐진다면, 그 이유는 두 기업이 앞서의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재평가받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고금리라는 강한 중력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눈앞에서 확실하게 현금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희소성은 더욱 커진다. 결국 2026년과 2027년은 AI가 ‘가능성의 영역’에서 ‘실재의 시대’로 진입하는 속도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다. 아직은 하이퍼스케일러인 빅테크 기업들의 현금 창출 능력이 이 같은 기대치를 온전히 채울 만큼 궤도에 오르지는 못한 상태다.
과거 제로금리 시대는 중력이 거의 없는 ‘무중력 상태’였다. 어떤 허황된 꿈도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다닐 수 있었고, 서사가 실적을 압도했다. 하지만 이제 자본의 시공간은 정상적 중력을 회복하고 있다. 높아진 금리는 시장에 엄격한 법칙을 강요한다. 이제 투자자들은 당장 손에 쥘 잉여현금흐름의 무게를 따져봐야 한다. 할인율이 높아진 시대에는 먼 미래의 약속은 눈앞의 현금보다 훨씬 가볍게 취급받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시선은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다. 투자자는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미래의 수익을 위해 오늘의 소비를 유예한다. 대부분의 투자 이론이 ‘현재 가치’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투자란 미래의 시간을 현재의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투자자가 감수해야 하는 ‘기다림의 비용’, 다시 말해 주관적 시간의 무게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 금리다. 그래서 금리는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니다. 자본이 흐르는 속도와 방향, 그리고 미래 가치의 무게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금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시간의 비용이 더 비싸게 청구되고 있다는 의미다. 강한 중력의 시대, 즉 고금리 시대일수록 시장은 더 냉혹해지고, 막연한 서사와 기대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당장 현금을 만들어내는 기업, 높은 할인율조차 견뎌낼 만큼 충분한 ‘실재의 질량’을 가진 자산만이 이러한 중력을 버텨낼 수 있다. 오늘날 시장은 투자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금리라는 중력을 견딜 수 있는 ‘실재의 질량’을 확보하고 있는가.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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