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反DJ는 끝! 이회창노믹스로 대세 굳힌다

이회창의 대권전략

  • 정연욱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jyw11@donga.com

    입력2004-11-15 14: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민주당 사태를 바라보는 한나라당도 한가하지만은 않다. DJ의 총재직 사퇴로 촉발된 달라진 정치환경이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한나라당의 집권에 만만찮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어떻게 하면 ‘이회창 대세론’을 잘 유지해 집권에 이를 것인가. 한나라당의 ‘머리’들이 바빠졌다.
    10·25 재보궐선거 압승 후 승운의 전기를 잡은 한나라당은 갑작스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카드에 주춤해 있다.

    DJ가 총재직 사퇴를 단행하기 전까지 한나라당은 재·보선 후 국회의석 과반수(137석)에 딱 1석 모자라는 거대 야당으로 확고한 원내 입지를 굳힌 가운데 연일 계속되는 민주당 내분 사태를 ‘느긋이’ 즐기며 국민을 향한 직접 정치에 시동을 걸던 터였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예상치 못한 김대통령의 정국반전 카드에 ‘허를 찔린’ 셈이다.

    총재직 사퇴 이후 조금씩 바뀌는 정국 기류도 한나라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DJ가 정쟁에서 한 발 비껴서면서 그동안 한나라당에 반사이익을 주던 ‘반(反) DJ’ 승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DJ의 ‘복심(腹心)’을 읽어내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의원이 “김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3김(金) 정치’의 종식”이라고 공세를 펴고 나선 것도 3김정치 청산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존립 근거를 뒤흔드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여권의 이같은 공세는 이총재를 새로운 시험대로 떠밀고 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당 안팎에서 이총재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역풍이 불어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험대에 선 이회창 총재

    우선 당내에서는 여권의 야당파괴 전략에 맞서 일치단결하자는 이총재의 슬로건이 조금씩 그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변화된 정치지형에 따른 여야관계의 새 틀과 함께 원내 1당의 ‘통 큰 야당’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분출하고 있는 당내 민주화의 물결이 언제 한나라당으로 넘쳐올지 모르는 상황도 이총재 진영의 변신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어쨌든 이제 국민들은 ‘반DJ’의 그늘이 걷히는 상황에서 이총재의 ‘홀로서기’를 지켜보게 됐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이인제 진영과 반(反)이인제 진영간의 다툼’으로 당분간 혼란한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무성(金武星) 총재비서실장은 “이인제(李仁濟) 진영과 반(反)이인제 진영간 혈전이 예상된다”며 “그러나 양 진영의 갈등은 현상황에서 이총재를 이길 수 없는 점을 고려, 차기 대선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최근 민주당 사태의 기본구도를 이렇게 보고 있다. 어차피 양자대결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상승무드를 타고 있는 이총재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여권의 주자가 아직은 없는 만큼, 대선 이후 정국 주도권 장악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심(金心)의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DJ는 아직 특정인에 대한 지지 결심을 굳히지 않았다는 게 한나라당 인사들의 분석. 좀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DJ가 최근 ‘문호개방’을 언급하면서 외부인사 영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여권내 주자군(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총재 진영은 민주당 사태가 가닥을 잡고 대선주자를 선정하는 경선 끝에 누가 되더라도 이총재에 맞설 만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11월12일 갤럽이 전국의 성인남녀 1068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이총재는 여권의 대선주자 누구와 경쟁하더라도 월등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상임고문이 양자대결을 벌인다면 43.2% 대 33.6%로 이총재가 앞서고, 이총재와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의 경우에도 44.9% 대 31.8%로 역시 이총재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시점에서 다른 여권 내 주자들도 이총재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남은 문제는 여권이 현재와 같은 정치지형을 계속 끌고갈 계획이 있냐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권 내에서 양자대결구도의 ‘필패론’이 부각될 경우, 여권은 현 구도를 깨버리는 승부수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실상 본격적인 정계개편의 서막이 오르는 셈이다. 정치지형이 복잡해질수록 ‘반DJ, 비(非)이회창’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간 연대의 힘은 강해질 공산이 커진다.

    주목받는 YS와 JP의 역할

    여야를 넘나들며 재편될 대선구도는 양자대결에 익숙한 한나라당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 정권의 대항마로 이미지를 굳혀온 한나라당으로서는 정치지형 교란이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총재직 사퇴후 DJ의 발빠른 행보에 주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DJ가 초당적 대통령으로 남고 정치개입 탈색에 주력하는 것도 다자구도를 노리는 정계개편을 준비하는 포석일 수 있다”며 “아직 DJ의 진의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 상황이 앞으로 1년만 계속된다면….”

    10·25 재·보선 후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정권 탈환의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을 뜻하지만 뒤집어보면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가 재·보선 후 느슨해진 당 분위기를 바짝 조여야 한다고 거듭 이총재에게 건의한 것도 이같은 당내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총재가 넘어야 할 산은 무엇일까.

    첫째, 당내 ‘비토(veto) 세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다.

    지난해 4·13총선 공천을 통해 이총재 진영은 상당한 반발을 무릅쓰고 당내 비주류 진영을 제거하며 한나라당을 명실상부한 ‘이회창 당’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총재의 우위가 두드러지자 ‘이회창 대세론’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여서 당내 비주류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한 강창희(姜昌熙) 의원은 사석에서 “JP를 따랐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 갔나. 많은 사람들이 JP를 떠나지 않았냐”며 “이총재는 어찌됐든 야당을 지금까지 끌고온 것 아닌가. 나름대로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총재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확고해 보이는 지도력이지만 대선을 앞둔 이총재 앞에 당내 분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총재 입장에서는 당내 비주류 중진들의 행보가 여전히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향수를 업고 영남권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의 행보가 일차적 관심사다. 박부총재는 11월15일 전주 우석대 초청 특강에서 DJ의 당 총재직 사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1인 보스’ 중심의 정당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박부총재는 “지금까지 1인 보스가 지배해온 정당은 지역주의를 청산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이용하며 존속해 왔다”며 “국가를 대표해야 할 집권여당이 특정 지역을 대표해서 기능하고, 또 정부 여당을 국가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야당도 지역을 대표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고 비판했다. 2002년도 예산안을 심사하기도 전에 한나라당이 총액을 사전 합의해 주고,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 사전 의견수렴 없이 갑자기 결정된 점 등도 당내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박근혜·김덕룡의 비판

    박부총재는 특히 “1인 보스 정당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의 공천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민주화해야 하며 총재가 공천권을 독점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이총재의 당 운영방식에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계 중진인 김덕룡(金德龍) 의원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김의원은 직접적으로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김의원은 11월14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DJ가 총재직만이 아니라 당적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며, DJ가 완전히 정치권 2선으로 물러선다면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정치구도가 친(親)DJ 대 반(反)DJ 양분구도로 짜여 있었지만, DJ가 물러선다면 다자(多者)의 새로운 정치구도가 짜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내에서 확산중인 ‘이회창 대세론’에 대해서도 김의원은 “친DJ 대 반DJ 양분구도에서 한나라당이 유일한 반DJ이고 이총재가 확고부동한 자기 위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세론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양분구도가 깨지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의원측은 내년 상반기중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의원의 거취 표명도 그 무렵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독자적으로 개혁세력 규합을 외치고 있는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도 당 안팎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총재 진영은 당내 비주류 중진들의 움직임을 가급적 무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맞대응할 경우 당 운영방식을 둘러싼 쟁점이 이슈화돼 이총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총재 진영은 ‘이회창 대세론’의 확산에 주력하면 비주류 진영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97년 대선 패배 후 최대 목표가 정권탈환인 만큼 당내 분란으로 비쳐지는 행동이 당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점이 이총재측 대응전략의 핵심이다.

    이총재도 자신에 대한 당내 일부 개혁파 의원들의 비판에 대해 ‘허허실실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특보단과의 회식자리에서 보여준 이총재의 행동이 이를 잘 나타낸다.

    이날 이총재는 특보단과 골프를 즐긴 뒤 저녁시간 폭탄주를 돌리는 회식자리를 가졌다. 참석자가 한사람씩 돌아가며 이총재에 대한 ‘충성’ 발언을 한 뒤 건배를 제창하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이총재도 4∼5잔 정도의 폭탄주를 마시며 분위기에 취했다고 한다.

    술자리 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개혁파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의 발언 순서가 됐다. 그런데 이 초선의원이 평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총재에 대한 쓴말을 하는 스타일이라 좌중에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로 그때 이총재가 술잔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 초선 의원을 가리키며 ‘실력있고 똑똑한 의원’이라고 추켜세우고는 건배를 제안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나올까봐 이총재가 선수를 친 것인데 해당 의원도 별 불만없이 이총재의 건배 제의에 잔을 높이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총재의 여유가 화제가 된 술자리였다.

    그러나 여당의 대권 레이스가 치열해져 분출하는 당내 민주화 요구가 자연스럽게 야당으로 넘쳐올 경우 이총재로서 어떻게 대응할는지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 수도권 출신의 개혁성향 의원들은 “여당이 당내 민주화를 내세워 변화를 주도하는 시점에 한나라당이 옛 모습을 그대로 끌고갈 수 있겠느냐”며 당내 보수 회귀 움직임을 경계했다.

    이총재측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대통령후보 선출 전당대회 이전에 자연스럽게 당내 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발표, 비주류 진영의 반발 명분을 거세한다는 계획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집권후 대통령은 당 운영에서 가급적 손을 떼고 당 운영의 민주화를 유도하는 것을 비롯해 국회의원 공천제도의 획기적 개선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총재 진영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의 과열분위기를 가급적 억제하는 방향으로 유도해나갈 방침이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경우 자칫 인신공격성 상호 비방이 난무, ‘메인 게임’을 앞두고 무장해제하는 불상사가 우려된다는 것.

    실제로 1997년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벌어졌던 후보진영간 갈등은 경선후에도 앙금으로 남아 심각한 후유증의 원인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

    둘째, 영남후보론 차단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의 최대 기반은 영남권이다. 영남권의 표 결집이 내년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영남권 출신이 아닌 이총재의 틈새를 파고들려는 당 안팎의 견제가 예상된다.

    당장 민주당의 노무현 김중권(金重權) 고문이 각각 부산·경남과 대구·경북 출신임을 내세워 영남후보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YS와 JP도 영남후보의 출현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총재를 자극하고 있다. 김윤환(金潤煥) 민국당 대표 등도 이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박근혜 부총재 등이 영남권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영남후보론의 동력은 역대 집권세력의 기반이었던 영남권이 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로 인해 정권을 내준 뒤 겪고 있는 정신적 허탈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내년 선거에서 영남표의 향배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양김의 캐스팅보트 전략

    이총재 진영은 무엇보다 영남권의 반DJ정서가 곧바로 영남후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남권 민심이 영남후보보다는 집권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둘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DJ 진영의 선두주자로서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총재 쪽으로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구지역의 한 의원은 “솔직히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 ‘이총재에게 정이 안 간다. 우리 사람 아니다’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그러나 한나라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여전하기 때문에 ‘결국 이총재밖에 없다’는 대세론이 퍼지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인제 학습효과’가 영남권 민심을 관통하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인제 후보를 밀어 결국 DJ가 당선됐다는 논리는 여전히 강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내 비주류 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일리는 있지만 시기상조”라는 반론이 거센 것도 따지고 보면 ‘이인제 학습효과’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남후보론은 지난해 총선 당시 영남권을 중심으로 거사했던 민주국민당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에서 일차 검증을 거쳤다. 민국당 실험의 핵심논리는 “영남권 출신이 아닌 이총재에게 더 이상 영남을 맡길 수 없다”며 대안세력으로 민국당을 출범시킨 것. 그러나 민국당은 영남지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단 1석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참패했다. 민국당을 통해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던 YS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다.

    셋째, 신(新) 3김 포위전략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도 이회창 진영의 당면과제다.

    YS-JP연대의 출범은 이총재 진영에 고난도 정치게임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정치 9단인 양김이 내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의사를 밝힌 상태에서 이총재와 빚어낼 복잡한 정치방정식의 해법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나름대로 영남권과 충청권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YS와 JP의 지역연합론 등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공산이 큰 신당 창당보다는 후보자 지지라는 ‘캐스팅 보트’ 행사로 그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양김에 대해 자연스런 고사(枯死)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이부영 부총재 등 일부에서는 양김과 정치적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펴지만 양김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 가급적 이들을 중립지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현실론이 만만찮다.

    당의 한 부총재는 “YS-JP와 무리하게 전선을 형성해 무엇을 얻을 수 있나”며 “그들은 김대통령이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퇴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명예로운 퇴진을 유도하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의견이 상당히 엇갈린다. 앞으로 YS-JP연대가 펼칠 다양한 카드에 맞설 한나라당의 결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장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도와주는 문제를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의 보수파 중진인 최병렬(崔秉烈) 부총재 등은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도와 JP를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당 지도부는 “자민련과의 정책공조와 교섭단체 구성지원 문제는 별개”라며 자민련의 퇴출 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넷째, 이회창 총재의 개인적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 또다른 과제다.

    오르지 않는 이회창 개인지지도

    이총재는 최근 가까운 당내 중진들에게 “왜 이렇게 나의 개인 지지도가 오르지 않을까” 하고 속내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총재의 개인 지지도는 큰 폭의 상승곡선 대신 일정한 평행선을 계속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총재와 한나라당 지지도는 10% 안팎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보통인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DJ의 총재직 사퇴로 그동안 반DJ의 반사적 이익을 누려온 이총재가 진정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며 “이제부터 과반수에 육박한 원내 1당의 선장으로서 이총재의 면모가 직접 국민들에게 평가받는 중요한 시기다”고 말했다.

    이총재 진영은 그동안 이총재가 여권의 야당파괴 전략에 맞서는 대여 공세의 전면에 나서면서 이미지 변신에 나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1차적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앞으로는 가급적 투쟁의 전면에서 한 발 비켜서서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민생현장으로 파고드는 세심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당 일각에서는 현재 이총재의 지지도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15대 대선 1년전 DJ의 지지도도 한자리수에 머물렀다”며 “중요한 것은 단순 지지도보다 ‘누가 될 것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순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선정국이 달아오를수록 집권가능성이 높아지면 입장표명을 유보하는 계층의 선택이 이총재 쪽으로 급격히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 당면과제를 극복할 이총재 진영의 플랜은 무엇일까. 이총재 진영은 최근 내년 대선정국의 예상 변수에 대비, 사전 시뮬레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일차 과제는 집권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수권세력임을 적극 알리는 것이다. DJ정부가 어찌됐든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는 만큼, 이를 대체할 만한 수권세력의 안정감 있는 면모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

    이에 따라 이총재가 심혈을 기울여온 국가혁신위원회의 각 분과별 활동결과를 발표하면서 집권비전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는 것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이총재, 한반도 4강 방문

    이와 함께 경제와 외교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를 중심으로 ‘이회창노믹스’의 골격을 세우는 작업이 진행중인 것도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다. 연구소측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이회창식 경제’가 고스란히 담길 저서 출판에 심혈을 쏟고 있다.

    또 이총재는 11월21∼28일 러시아와 핀란드를 방문, 한반도를 둘러싼 4강 방문의 시동을 걸었다. 내년중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을 방문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정국이 달아오르면서 정치판에 펼쳐질 무수한 변수에 대한 점검은 현시점에서는 그저 도상(圖上)훈련일 뿐이다. 이총재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어떻게 시련의 고비를 하나씩 넘어갈 수 있을는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