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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군사기밀 제공 혐의로 수감중인 로버트김의 옥중서신

“비밀자료 수집한 게 아니라 유출했을 뿐”

  • 정리·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l@donga.com

美 군사기밀 제공 혐의로 수감중인 로버트김의 옥중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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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미국 군사기밀을 백대령에게 주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백대령을 만나기도 어려웠지만 각자의 신분 때문에 직접 만나는 것을 삼갔습니다. 저는 제 데스크톱 컴퓨터에 비밀로 분류된 채 올라오는 한반도 정세를 검색(retrieve)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이 알아야 할 정보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에 관한 정보를 동맹국인 한국에 제공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이 그것을 감춘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술적 결함 때문이었다면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판단해봐도 그 정도의 정보는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정보가 왜 한국으로 가지 않는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의 비밀 지정 프로그램(Routing Indicator Software)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저는 비밀등급(classified level)과 각 문서를 제작한 사람의 이름과 조직명(provider’s name and organization)을 삭제한 다음 프린트해서 우편으로 백대령에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대강(大綱)은 미국의 국내 신문이나 영국의 ‘제인스 리포트(Jane’s Report, 군사 관련 세계적인 전문지)’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그러한 도메인에 올라와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백대령이 회고록(‘신동아’ 2003년 5월호에 실린 백동일씨의 육성 수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제가 보낸 자료 중 한국 해군 작전에 유익한 것이 많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제공한 정보는 미국 해군 정보국의 시스템에서 비밀(classified)로 분류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군사기밀을 유출한 셈이 되었고, 검사는 저를 군사기밀 수집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기밀 수집은 스파이 행동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밀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제 책상 위에 올려진 정보를 유출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저를 과대 평가해 체포했던 것입니다(검사와 변호사는 이에 대해 설명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 안보에 전혀 손해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판 때 미국 정부가 법정에 꼭 제출해야 하는 피해 추정보고서(Damage Assessment Report)를 제출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그것이 법정에 꼭 제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정도는 변호사가 알고 있었어야 하는데, 변호사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건을 확대시켜놓은 후 그들은 체면을 살리기 위해 제 사건과 아무 관계 없는 것을 제시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기소장을 작성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기밀 분류 전문가는 ‘로버트김이 한국 해군에게 준 정보는 예민한 것(material)도, 기밀도 아니다’라고 신문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검사의 위협과 흥정

미국에서 형사사건은 법정기간 내에 기소 여부가 결정되고 기소가 이뤄지면 법원은 법원의 스케줄에 따라 판결 날짜를 잡아 선고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법정 기간을 훨씬 넘긴 5개월 만에 기소되었습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검사가 과대 홍보한 기소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사는 제게 제 생명을 위협할 만한 죄목으로 기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 기소장을 가지고 배심원 재판을 하면 저는 영락없이 무기징역을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배심원의 결정이 법이나 판사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O. J. 심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배심원이 유죄라고 하면 유죄가 되고, 무죄라고 하면 무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는 줄 아십니까. 워싱턴DC에는 공무원이 많아 ‘애국자’인 이들이 배심원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배심원이 되면 저는 무기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기소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더니 검사는 “배심원 재판을 하지 않을 테니, 좀 낮은 형을 부과하면 받겠느냐”면서 12년형을 제의했습니다. 저는 “내 나이에 12년형은 무기징역과 마찬가지”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간첩죄보다 가벼운 군사기밀 유출죄로 할 테다. 이것도 받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배심원을 배석시켜 재판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후 검사가 작성해온 기소장에는 기밀유출이 아니라 기밀수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검사는 미국이 지금까지 저를 믿고 최고 높은 비밀취급 인가를 내주었는데 그 신용을 남용했기 때문에 형량을 두 단계(30개월) 올렸다며, 이것이 인정될지 여부는 판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판사가 기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자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해서 저는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저는 한국 교포 목사로부터 변호사를 소개받았습니다. 한국 목사가 소개해준 변호사는 앨 고어 부통령의 사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께서도 모씨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며 “고어 부통령의 사촌이니 그를 변호사로 써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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