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물러나라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엔 정몽준 회장과의 불화설을 꺼내더라구. 그래서 하나하나 설명했지. 불화가 아니고 오해라구. 그러자 조직위원회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거야. 경기장 사후관리 방안이 문제라나 뭐 그래. 그것도 지방자치단체가 잘 할 것이라고 설명해주니까 나보고 리더십이 부족하대. 이북에 월드컵 게임을 나눠준다는 발언을 정부와 상의도 없이 정몽준 회장이 했다는 거야. 정몽준이가 조직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니까 위원장인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이잖아. 그래서 따졌지. 남북분산개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인 만큼 문광부가 직접 챙길 일 아니냐구. 박장관도 말문이 막혔던지 그 다음엔 할 일 많이 했으니까 정부의 방침에 협조해달라는 거야. 그래서 생각했지. ‘야, 이 사람들이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구나’ 하고….”
6월7일. 박위원장은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를 만났다. 일종의 SOS였다. 박위원장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명예총재는 “화가 치민다. 내가 대통령 만나서 얘기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명예총재의 의견도 문화관광부에 전했습니까.
“그날 바로 박장관 만나서 JP의 말을 그대로 얘기했어요. 자민련도 받아들일 수 없고, 나도 납득할 수 없다.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다.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6월 말부터는 박위원장의 해외출장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먼저 박위원장이 유로2000을 관전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문광부의 제지를 받은 일이 있다.
“치사해. 유로2000은 모범적으로 치러진 대회야. 그런 곳에 가서 조직위원장이 놀다 오겠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쉴새없이 비즈니스를 해야 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일이 될 것 같아? 우리가 일본처럼 돈이 있어, 유럽처럼 축구붐이 조성돼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올림픽조직위원장이라도 해본 나니까 일이 되는 거 아냐.”
7월3일. 박위원장은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출국길에 올랐다. 박위원장에 따르면 출국 직전 이홍석 차관보가 찾아와 다시 자진사퇴를 촉구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차관보가 처음으로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장’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박위원장이 ‘이번 출장만 다녀오면 본인의 거취문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문화관광부와 관련된 다른 직책을 문의했다는데.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아. 자꾸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지금이라도 명예를 걸고 법적 투쟁을 벌일 거야. 월드컵을 홍보하려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나한테 먼저 이영덕 전총리가 회장으로 있다는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자리를 거론하기에 나름대로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갔다와서 얘기하겠다’는 말을 했던 거야. 그걸 그렇게 바꿔놓다니. 정말 치졸한 짓이야.”
“신앙만 아니면 할복할 생각이었다”
―그럼, 미국에 다녀온 뒤에는 정확한 입장을 전달했습니까.
“7월12일로 기억합니다. 집행위원회가 끝나고 점심시간에 이홍석 차관보를 내 방으로 불러서 얘기했어요.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물러나는 것은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다음날인가 이차관보가 우리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거야. 총회를 소집해서 불신임을 의결하겠다고. 어찌나 분통이 터지는지, 신앙만 아니었다면 할복이라도 할 생각이었어. 마음 같아서는 조직위원장 집무실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든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 생각까지 있었다구.”
―총회에서 부결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몇몇 조직위원들이 전화를 해왔는데, 문광부 직원들이 직접 찾아와 서명하라면서 ‘박세직이는 정몽준과 사이가 나빠서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적었다는 사람도 있었어. 조직위원들을 보면 체육인, 국영기업체 관계자, 종교인, 자치단체장 등이 많아. 그 사람들이 문광부의 의견을 거스를 수 있을 것 같아. 어림없는 일이야. 그랬다가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하려구. 작정을 하고 몰아붙이는데 내가 무슨 힘으로 그걸 막아내.”
이 무렵부터 언론에 박세직 위원장의 사임 가능성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역시 정몽준 회장과의 불화설이 단골로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원로자문위원들이 김대통령에게 건의문을 올렸다. 건의문에 서명한 사람은 모두 7명. 여기에는 민주당 국회의원인 김운용 IOC위원도 포함돼 있었다.
―국내 언론이 박위원장의 개인적인 문제를 부각시킨 반면, 외신들은 정치적 압력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거요. 장관이 뿌린 보도자료는 그대로 받아쓰면서, 왜 내 얘기는 실어주지 않는 거야. 정말 저돌적인 사람들이야. 후임자를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고 나를 내보내려고 온갖 구실을 갖다붙인 거잖아. 이게 정권에 도움이 되나, 월드컵에 도움이 되나, 민심에 도움이 되나. 모두가 마이너스야”
―7월26일까지 박장관이 직접 배포한 보도자료에 강력히 반발하다가 바로 다음날 사퇴의사를 밝혔습니다.
“싸움이 안될 것 같아서 그랬던 거야. 나한테 정보가 들어오는데 모두가 청와대의 뜻이라는 거야. 그래서 박장관이 무리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거야. 대통령이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면 싸움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대통령의 뜻이라는 판단을 내리고도 8월8일까지 사퇴 시기를 늦춘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로자문위원들이 대통령의 공식적인 답변을 기다려보라고 해서 그런 겁니다. 지도자는 최후의 순간에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박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민주당과 청와대의 음모설을 흘렸다. 하지만 기자가 “물증이 있느냐”고 묻자 답변을 피했다. “신문에 나왔으면 세상이 다 아는 얘기 아니냐”는 게 박위원장의 대답이었다.
8월4일 오후. 기자는 다시 박위원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불과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후임자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집무실 한쪽에는 박위원장의 책을 빼곡히 담은 박스가 놓여 있었다. 짐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장이 퇴임해도 이보다 낫겠다”
―그동안 청와대나 문광부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까.
“직접 들은 것은 없습니다. 원로자문위원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박세직이가 물러나야겠다는 겁니다. 내가 사퇴해야 한다는 건의문이 청와대로 세 번이나 올라갔다는 겁니다. 두 번까지는 그냥 넘어갔는데, 세 번째는 어쩔 수가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게 김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1주일 전에 비해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분통이 터져서 극한적인 투쟁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다 보면 감정싸움만 커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음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내가 참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치를 그만두실 생각도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가 환멸스럽지만, 세상사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박위원장은 정권이 민심을 잃고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특히 영남권의 민심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박위원장은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을 잘 고려해서 순리적으로 풀었어야지”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8월8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박세직 위원장의 이임식이 열렸다. 박지원 장관과 정몽준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원로자문위원들의 얼굴은 보였다. 박위원장은 “다 지나간 일을 놓고 원망할 마음이 없다”는 말로 이임사를 시작했다.
“저에 관한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역사의 순리가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믿습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급급하면 큰 것을 잃게 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정의는 반드시 성취되는 날이 있고, 정의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습니다.”
이임식이 끝난 직후 행사장 뒤편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파월전우회 회원들이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 내쫓고 월드컵이 잘 될 것 같으냐” “동장이 퇴임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박수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박위원장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세직 월드컵조직워원장의 사회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박세직 위원장은 두 차례에 걸쳐 김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편지를 쓴 시점은 6월2일. 박위원장이 문화관광부로부터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이다. 이때 박위원장은 A4용지 넉장에 붓펜으로 편지를 쓴 뒤 자신이 사퇴할 수 없는 이유를 기술한 문서를 첨부했다. 박위원장은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직후 두 번째 편지를 띄웠다.
존경하는 대통령님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국사에 얼마나 골몰하시겠습니까. 이처럼 매우 바쁜 시절에 불행한 소생의 신상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어디까지나 소생의 부덕한 소치로 생각하며 대통령님의 용서를 먼저 구합니다. 연이나 김대통령님 내외분을 오래 전부터 존경하고 제가 받은 현직 분을 통하여 대통령님과 국가에 충성하려는 자세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습니다. 이 점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현안의 문제로 제가 불명예스럽게 현직에서 물러나는 불상사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이는 한평생 명예 하나만을 지키며 살아온 소생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는 가혹한 시련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단히 불경스런 말씀이 될지 모르나 저는 육신적 생명의 연장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며 조직위원장 직무실이 곧 저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비장한 각오로 쓰는 소생의 충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진언하는 바입니다. 만약 항간의 말대로 정몽준 회장간의 불화설에 기인한다면 그 불화가 무엇인지 지적해주시고 저에게 잘못이 있으면 저를 질책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계시는데 저희 두사람간의 불화 때문에 위원장을 세 번째로 바꾼다면 국가의 체면과 신뢰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개인의 인격과 명예와 인권을 누구보다도 존중해주시며 민주주의를 실천해오신 김대통령이시기에 결코 죄없는 저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통령 내외의 만수무강하심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2000년 6월2일
불초 박세직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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