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소화불량 걸린 복지부를 확대개편하라

<복지정책>

  •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정책)

    입력2005-04-14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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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축소가 결코 능사가 아니다. 늘릴 곳과 줄일 곳을 합리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모든 부처와 공무원을 기준도 없이 일괄적으로 줄이는 식의 행정개편으로는 21세기 사회복지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3년간의 사회복지제도의 개혁은 그 강도와 속도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변화와 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이다. 20여 년을 끌어온 의료보험조합 통합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과감하게 통합방식의 의료보험으로 전환했으며, 의사·약사 등 이익집단의 목소리 때문에 수십년간 시행이 어려웠던 의약분업을 우여곡절 끝에 시행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복지제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를 시행했다.

    지난 3년간 추진된 사회복지 개혁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개혁의 내용이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강도와 속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대표적인 사회복지개혁정책으로 꼽을 수 있는 의료보험 통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의약분업 등은 사안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들이며 동시에 제도 하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인력과 행정체계의 준비가 엄청나게 필요한 것들이다. 이 정책들이 모두 집권 3년을 전후하여 시행되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급속한 개혁으로 인해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다.

    둘째는, 사회복지 분야의 개혁정책들이 경제정책들과 노선의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은 김영삼 정부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적 노선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유독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복지책임을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의료보험 통합, 소득비례방식의 국민연금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복지의 책임을 개인과 시장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이념이 강하게 내포된 정책들이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여러 나라가 대부분 신자유주의적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한 것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셋째로, 우리나라의 복지모형에 거의 결정적 영향을 준 일본복지모형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나 정치인, 관료 등 정책 결정자와 집행가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수십년간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역사는 일본 제도를 모방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생활보호제도 등 거의 모든 복지제도는 일본 제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 통합, 도시 자영자에 대한 소득비례연금제도 도입, 의약분업 전면 시행은 일본제도와 과감히 결별을 선언한 ‘한국형 복지제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선발주자의 경험을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우리의 능력으로 앞길을 개척해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사회복지정책, 뿌리째 흔들려

    그러나 최근 야심차게 추진되던 사회복지 개혁정책이 의료보험 재정파탄과 의약분업의 효과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다른 정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초생활보장법도 정착이 안 된 상태이고, 국민연금은 수백만 명이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는 있으나 개혁이 물거품이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상당기간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마디로 사회복지분야의 정책들이 어떻게 하면 좌초를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첫째로, 정권교체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사회복지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행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면 집권당이 국회에서 이를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일어나면서 적어도 복지정책 분야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집권당이 정책을 형성하고 행정부에 정책 수행을 지시하는 정반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료보험 통합, 기초생활보장제도, 그리고 의약분업은 시민·노동사회의 요구를 집권당이 수용하여 정책 결정을 하고 이를 행정부에 요구한 정책이다. 정책입안과 형성의 주도권을 빼앗긴 이러한 상황은 관료들에게는 극히 낯선 것이었다.

    수십년간 익숙해진 정책과 논리들을 하루아침에 뒤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관료들은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일부 관료들은 노골적인 저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집권당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적어도 집권당 내부에서 ‘개혁정책의 사령탑’을 구축하거나 아니면 개혁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행정부 관료를 교체해야 하는 데도 집권당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정책위원회 의장 등 여당의 고위 인사들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개혁정책의 추진 강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정책형성의 주도권을 상실한 관료, 개혁정책을 챙기지 않는 집권정당 이 두 가지 상황이 결합되면서 개혁정책의 위기가 가시화한 것이다. 한마디로 당과 행정부의 정책결정, 관리감독 시스템의 공백상태가 가져온 결과이다.

    둘째로, 새로운 혁신 정책을 담보하기에는 너무 고착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국가 전반의 행정시스템 문제를 들 수 있다. 사회복지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복지부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 국세청 등 범행정부적 대처가 필요한 사안들이었다. 사회복지분야의 개혁정책들이 집권 초기에 정책구상 차원에 있을 때 아무도 개혁정책을 집행할 국가의 전반적 행정체계의 정비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정부 개념에 집착하면서 확대할 곳과 줄일 곳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인 공무원 감축이 진행되었으며, 고질적인 부처이기주의를 협력체제로 바꾸어줄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한마디로 행정적으로 정교한 개혁의 마스터플랜이 없는 상태에서 개혁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 파동과 의료보험 재정 파탄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신규 가입자 1000만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세청,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등 국가의 행정기구와 공무원들 그리고 행정자료가 총동원되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고작 3000여 명에 불과한 연금관리공단 직원들이 도시자영자 1000만명을 가입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료보험의 경우 의료계의 파업에 밀려 의료보험 재정에 끼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수가인상을 감행함으로써 재정파탄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집권당이나 행정부 모두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이 이러한 사태로 전개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행정적으로 정밀하게 준비되지 못한 개혁정책이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셋째로는 이익집단을 설득하고 통제하는 행정부의 무능력이다. 90년대 들어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하고 시민·노동사회의 영향력이 급성장하면서 국가는 관련 이익집단의 저항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직면했다. 이익집단의 활성화는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국가가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서 이익집단을 효과적으로 설득, 통제하는 소위 ‘조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며 이 점이 최근에 사회복지분야의 개혁정책을 휘청거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의보통합에 대한 한국노총, 직장의보 등 일부 노동계,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일부 의료인 집단은 공개적으로 개혁정책에 저항했다. 이익집단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 것을 구분하여 합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퇴로를 열어주어야 하며 비합리적이며 개혁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요구는 공익 차원에서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집권당과 행정부는 힘있는 이익집단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새로운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결정시스템, 그리고 새로운 행정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존 사회복지개혁 정책들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은 격이 되어버렸다. 특히 정권 초창기 중앙부처 개혁이 이루어질 때 복지부와 노동부의 혁신적 재편 그리고 이와 관련된 지방정부의 사회복지, 노동행정의 정비가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첫째, 당과 행정부의 관계를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역대 정권 그리고 현정권도 마찬가지지만 지금과 같은 당정협의는 사실상 사후약방문격의 행정 협의체에 지나지 않는다. 당 인사가 큰소리 몇 번 치고 끝내는 당정협의는 문제만 꼬이게 할 뿐이다. 당정협의를 실무적인 차원으로 확대하고 정례화하는 구조, 정책위의장 개인의 특성에 따라 정책이 좌지우지되지 않은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는 사회복지정책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집행,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사실 사회복지정책은 거의 대부분의 사안이 복지부 외에도 행정자치부, 국세청 등 정부 부처 전반의 업무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얼마 전 구성된 사회장관협의체 같은 시도는 평가할 만하나 그 기능과 내용이 실질적으로 채워져야 한다. 형식적으로 몇 가지 사안을 놓고 복지부가 준비한 안을 추인해 주는 협의체, 혹은 있으나 마나 한 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으로는 복지정책을 성공적으로 연착륙시킬 수 없다.

    셋째로 복지부의 조직을 획기적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 지금의 복지부 골격은 복지예산이 1조~2조원에 불과할 때 짜인 구시대의 조직이다. 복지부는 연금, 의료보험만 해도 70조원을 다루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을 다룰 수밖에 없다. 일이 하나 터지만 인력이 모자라 여기 저기 직원을 ‘대부’해주고 인력을 빌려준 과는 몇 달 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는 결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없다. 21세기의 복지수요를 예측하여 늘릴 곳와 줄일 곳을 엄격히 구분하는 방향으로 복지부를 개편해야 한다. 좀더 근원적으로 복지부와 노동부의 행정기능을 재정비하는 방안, 그리고 복지부 산하의 공단의 기능도 재편하는 방안을 차제에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복지행정과 노동행정에 있어서 지방조직 개편해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지방단위로 내려가면 정책이 먹히지 않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보건, 노동행정 능력을 제고시키는 혁신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해질 복지, 보건, 노동행정을 통합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행정조직개편이 시급하며 인력도 충원되어야 한다. 공무원 축소가 결코 능사가 아니다. 늘릴 곳과 줄일 곳을 합리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모든 부처와 공무원을 기준도 없이 일괄적으로 줄이는 식의 행정개편으로는 21세기 사회복지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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