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건 추적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보험금 노린 살인인가, 부실수사 희생양인가

  •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2/8
이상은 경찰이 작성한 진술조서를 토대로 김서희의 범행을 재구성한 것이다. 어머니가 다른 자신의 두 딸을 강간하고 성추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그리고 이로 인해 자살까지 기도하는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김서희가 아버지를 살해 후 유기한 사건.

1990년대 들어 심심찮게 발생한 이런 종류의 사건들은 대부분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의 도움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관대한 처분을 받아왔다. 따라서 김서희도 범행을 하게 된 특별한 사정을 재판부에 호소하고 선처를 바랐다면 형량이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서희는 달랐다.

1심 재판 때부터 그녀는 수사기관의 주장과 달리 아버지에 의한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따라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이유도 없었다며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딸들을 성추행한 파렴치범이 돼버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며 무기수로 확정된 오늘까지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2000년 8월30일.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에서의 피의자 자백,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인의 진술, 그리고 사건 시간대에 알리바이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그녀가 아버지를 살해한 후 도로 위에 사체를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애초 공소 사실과 조금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사인의 직접 원인이 된 수면제를 어떤 방법으로 먹였느냐는 점이었다.



경찰은 김서희가 미리 집에서 갈아온 수면제를 양주에 혼합시켜 아버지에게 두 잔 마시게 해 사망케 했다고 했으나 1심 재판부는 김진만씨가 가루가 아닌 알약 30개를 양주 두 잔과 함께 먹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김서희의 2심 변호사는 국가에서 배정해준 국선 변호인이었다. 이 변호사는 복사비가 아까워 재판 기록을 따로 복사하지 않을 정도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피의자의 무죄 주장이 재판부에 설득력 있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그녀의 남동생이 이메일로 억울함을 호소해온 것은 항소심 재판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김서희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서울을 출발해 고향에 들어선 이후 약 4시간 동안의 행적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서희는 나름대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있다. 그중엔 확인된 사실도 있다. 예를 들어 고향 도착 후 만나기로 약속했던 여자친구 2명과의 전화 통화 사실과 여동생과의 전화 통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고향에 도착한 00시57분 이후부터 새벽 5시 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약 4시간 중 3시간 동안의 알리바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서희는 혼자 등대 밑에 차를 주차시킨 후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등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혼자 있었던 것이 죄가 될 줄은 몰랐다며 절규한다.

김서희의 알리바이가 확인되는 시간대는 할머니 집에 들어선 새벽 5시 이후다. 할머니와 가족들에 따르면 서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들어서며 할머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서희가 세수를 하고 강아지와 장난을 치다가 할머니 옆에서 잠든 것은 새벽 5시30분경. 마을 주민에 의해 아버지의 사체가 발견되기 20여분 전이었다.

3월7일(월) 아침 7시30분경. 서희는 할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깨어나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알게 됐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8개의 사망 보험금

서희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오후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서희에게 사건 당일 고향에 내려온 경위와 알리바이를 추궁했다. 경찰이 자신을 아버지 살해범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서희는 당황했다.

경찰이 서희를 의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의혹이었다. 바로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이 가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경찰은 그 보험의 계약자가 사망자의 큰딸인 김서희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경찰이 보기엔 이 사건은 ‘딱 떨어지는’ 전형적인 보험살인 사건이었다. 거액의 교통사고 사망 보험금을 노려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딸. 사망시간대와 관련된 4시간여 동안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는 김서희는 분명 존속살해범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건을 갖춘 용의자였던 것이다.

2/8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목록 닫기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