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GB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출범시킨 토니 블레어 노동당은 이후 순항의 연속이다. 영국 노동당의 오늘을 보면, 정치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노동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정당으로 취급받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10년 전의 영국 신문을 뒤지다보면 영국의 보수-노동 양당정치는 막을 내리고, 21세기는 보수당 일당체제로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마저 눈에 띈다. 이런 성급한 분석은 1992년 노동당이 ‘대처의 꼭두각시’로 취급받았던 존 메이저의 약체 보수당에 총선에서 두번째 패배를 당했을 때 극에 달했다.
존 메이저는 허약한 총리였다. 그는 당을 장악하지 못했고, 국민에게 인기도 없었다. 당 밖에서는 대처의 손바닥에서 노는 인형으로 조롱받았지만, 막상 당 안에서는 대처파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다. 요즈음은 ‘포스트 대처리즘’으로 차별해서 부르는 존 메이저의 노선이 그를 지지했던 대처의 희망과는 달리 대처리즘의 궤도에서 이탈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의 독자 노선에 대한 대처의 분노는 메이저가 가진 거의 유일한 정치기반의 상실을 의미했다. 메이저는 대처에게도 버림받고, 대처의 오랜 라이벌 마이클 헤젤타인 전 부총리가 이끄는 반대파로부터도 끊임없는 시달림을 받았다.
국민들은 보수당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장기집권에 어김없이 따르는 것이 정치부패다. ‘슬리즈(sleaze)’라 불리는 정치뇌물 사건이 줄줄이 터져나왔지만, 메이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약체 메이저 보수당에게도 노동당은 거듭 패배했다. 노동당은 국민에게 잊혀진 존재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10년. 사정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제 거꾸로 보수당이 보이지 않는다. 2005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노동당 3기 연속 집권을 의심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1997년, 그리고 2001년 총선을 통해 보수당의 텃밭이었던 영국 동남부 지역, 전통적으로 보수당을 지지해왔던 중산층, 보수적 색채가 강한 언론매체마저 모두 노동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중산층은 노동당이 내세우는 정책이 보수당 정책보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언론들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정당으로 노동당을 꼽는다. 방송을 제외한 영국 언론들은 총선 때 지지 정당을 분명히 한다. 2001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한 권위지는 영국의 5대 일간지 가운데 데일리 텔레그래프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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