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엄격한 ‘평등 분배’ 원칙 이자놀이 하면 파렴치한

  • 입력2004-11-17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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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은 경제활동의 전과정에서 극단이나 편중을 피하고 절충과 균형을 추구한다. 부의 처리에서 알라의 소유권과 인간의 사용권을 ‘하사품’과 ‘위탁품’이란 명분으로 분리하면서도 연계시키고, 생산활동을 통한 부의 증식은 권장하면서도 그 집중이나 편재는 막고 있으며, 소비는 권장하면서도 무모한 낭비와 지나친 인색의 두 편향은 경계한다.
    부의 축적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몇 푼이라도 덧붙는 것이 없으면 은행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이슬람 나라에서는 웃돈 한 푼 없이 돈을 맡기고 맡는 은행이 가끔 눈에 띈다. 이른바 무이자은행(interest-free bank)이다. 현대인에게는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이슬람경제체제의 시범(示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

    지금 이슬람세계는 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식의 시범에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다. 근세에 와서 이슬람세계는 타율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됨으로써 전통적인 경제체제의 붕괴는 물론, 숱한 경제적 수탈로 인해 민생이 피폐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으며 사회적 갈등이 격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경제 재건의 주체인 이슬람 국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경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됐다. 해결 방도는 강요된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이슬람사회의 전통에 부합하는 경제의 자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슬람 국가들은 전후에 보편화한 이슬람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전래의 이슬람 경제체제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경제체제의 수립을 시도하는 한편, 이슬람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이슬람 국가들간의 경제적 협조를 도모키로 했다.

    이슬람 경제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슬람 고유의 경제관에 입각해 현실에 알맞은 경제체제의 수립을 모색해왔다. 1976년부터 이슬람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이슬람경제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어 이슬람 경제체제 수립과정에서 제기되는 이론과 실천적 문제들에 관해 논의하고 구체적 대책과 시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슬람경제 연구를 위한 국제센터’ ‘이슬람 은행과 경제를 위한 연수원’ 등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20여 개 대학에 이슬람경제학과를 개설하여 이슬람경제에 관한 연구 및 교육을 줄곧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와 실천과정을 통해 현대의 경제 운영에 대한 이슬람적 논리, 즉 이슬람경제관이 윤곽을 드러내고 부분적으로 정립되고 있다.

    물론 다른 종교들도 고리대 금지 같은 경제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회윤리 문제로 접근할 뿐, 경제 논리나 체제로까지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현세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제반 경제 사항들을 종교적 윤리도덕과 결부시켜 규범화하는 나름의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종교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 전반을 포함하는 신앙과 실천의 복합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필칭 ‘정치의 이슬람’이니, ‘경제의 이슬람’이니, ‘문화의 이슬람’이니 하는 것이다.

    ‘경제의 이슬람’이란 경제에 대한 이슬람적 사고를 말한다. 그런데 경제는 제반 사회현상 가운데서 가장 민감하고 시류를 잘 타며 변화무쌍하다. 이를테면 가장 ‘반(反)전통적’이다. 이러한 경제를 전통적인 종교이념의 틀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여기에 오늘 이슬람경제관이 안고 있는 고민이 있으며, 바로 이로 인해 논란이 일고 가끔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근본이념에서 출발해 현실적인 경제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이슬람식 경제원리들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이 원리들은 생산과 분배, 소비와 유통 등 경제활동의 제반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각이한 형태로 작용하고 있는 경제원리들을 이슬람경제관이란 하나의 개념으로 일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경제관의 근본은 경전 ‘꾸르안’과 교조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집성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슬람사회에서의 모든 경제활동은 이러한 근본에서 출발한다. 오늘 이슬람세계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가지 경제체제도 예외 없이 이러한 근본에서 그 존립의 근거를 찾고 있다.

    이슬람경제관의 근본은 첫째로, 모든 부(富)는 알라에 속한다는 것이다. 경전에는 “하늘과 땅의 보물은 알라의 것이다”(63:7)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이슬람경제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1976)의 제안 중에는 이슬람 경제활동을 지탱하는 첫째 기반으로 “우주는 알라에게 속하며, 모든 부는 알라에게 속한다는 믿음”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주 모든 부의 소유권은 오로지 알라에게만 속하며, 그 주재자는 알라뿐이다. 이른바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부는 알라의 하사품이며 인간에게 위탁 관리된 한시적인 부일 따름이다. 속세에서 말하는 ‘소유’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임시적인 개념이며, 모든 부에 대한 알라의 소유나 소유권만이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것이다.

    이른바 부에 대한 인간의 ‘소유’는 알라로부터 위탁받은 부의 사용권에 대한 1회적인 차용(借用)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간은 부에 대해 독점적인 아집을 부려서는 안되며, 영구 점유를 꿈꾸어서도 안된다. 인간은 자연생명이 다하면 재산의 사용권마저도 포기해야 한다.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법제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부에 대한 개개인의 사용권은 반드시 합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해야 한다고 이슬람은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개개인의 사용권을 어느 범위까지 적용해야 하는가다. 종래 생산수단이나 토지, 지하자원 등 간접자본에 대한 개인의 사용권은 제한되어 왔으나 지금은 적용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간접자본 개발이 늘어남에 따라 이러한 확대는 가속화할 것이다.

    개개인이 누리고 있는 부는 알라로부터 응분의 하사품이며 그 주재자는 알라이기 때문에 분별 없이 타인의 부를 시기하거나 침범해서는 안된다(4:29). 이것은 사유재산과 그 신성불가침성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경전은 부에 대한 알라의 베풂과 그 보호를 천명하면서도 금은보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라에 대한 믿음이라고 역설한다. 그 믿음을 버린 자는 죽을 때 황금으로 가득 찬 땅덩어리를 보상으로 받친다고 한들 결코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전은 경고한다(3:91).

    이슬람경제관의 근본은 다음으로, 합법적인 부의 축적과 향유를 장려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인간의 속성이 원래부터가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다. 그래서 선한 인간은 오래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부를 늘리고 즐기라고 권유하면서 무모한 고행이나 죽음을 지양한다. 이슬람의 이러한 진취적이고 낙천적인 인생관은 기독교의 성악설(性惡說)이나 불교의 고행설(苦行說)이 결과하는 인생관과는 사뭇 다르다.

    이슬람은 인간의 물질적 복리를 권장한다. 경전에는 부녀들이나 자녀들, 좋은 말과 가축, 농작물 같은 것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니 즐기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것들은 현세의 순간적인 기쁨에 불과하고 영원한 기쁨은 알라가 있는 내세에 있으므로 현세의 향락에 유혹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있다. 무함마드는 “가난은 이슬람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내내 만족할 수 있도록 많은 부를 하사해달라고 알라께 기도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적 부는 반드시 합법적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어야 한다. 합법적 방법이란 한마디로 자기의 노력에 의한 획득이다. 자기의 짐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질 수 없듯이 보상(물질적 부)도 오로지 자기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다고 경전은 가르친다(53:38~39). 경전에는 그 구체적 방법으로 장사와 방목, 농사, 전리품 획득, 자선의 수용 등을 들고 있다. 장사인 경우, 매매는 공정하고 저울에는 편차가 있어서는 안되며 차관은 계약서를 쓰고 보증인의 입회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 지하드(성전 지하드)에 의해 얻어지는 전리품도, 지하드란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니만큼 합법적인 부의 취득방법에 속한다. 알라를 위한 길에서 부득이하게 궁핍해진 사람이나 신체적 병약자들은 자선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허용되며, 그 또한 합법적 부의 취득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부정한 방법으로 물질적 부를 얻거나 축적하는 것은 불허한다. 경전에 따르면 부정한 방법에는 공물(公物) 사취, 타인의 재물 약탈, 뇌물 수수, 이자놀이 등 일체의 불로소득성 취득방법이 속한다. 경전에는 이러한 방법들을 추구하는 자들을 ‘불의자(不義者)’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끝내는 불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끝으로, 이슬람경제관을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근본은 사회적 평등의 실현이다. 이슬람은 인간의 윤리도덕적 평등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평등도 아울러 주장한다. 특히 경제적 빈부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알라의 지상 명령으로 간주한다. 비록 인간 개개인에 대한 알라의 베풂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하고 똑같지만 개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그 베풂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므로 마침내 빈부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불변의 차이가 아니고 서로의 나눔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차이인 것이다. “가진 자의 재산 중에는 못 가진 자의 몫도 있으니”(51:19) 부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이슬람경제관이 추구하는 주요한 목표의 하나다.

    이상과 같은 이슬람경제관의 근본 요구에 따라 이슬람사회에서는 생산과 분배, 소비와 유통 등 구체적인 경제활동이 진행된다. 물론 이러한 경전적인 근본 요구나 원리가 오늘의 경제활동이나 시책에 그대로 구현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슬람세계의 경제체제나 정책의 수립에서 사고나 입안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슬람세계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근본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에서는 생산을, 인간의 물질적 부를 증식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 도덕적 가치까지도 향상시키는 아주 능동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적극 권장한다. 경전에는 인간이 생산활동을 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즉 만일 알라께서 인간에게 충분한 양식을 마련해 주었더라면 인간은 그만 그에 만족하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탈선을 저지를 것이다. 다행히도 알라께서는 적당한 양을 하사했기 때문에 인간은 부족을 느끼고 분발해서 일함으로써 심신이 건전해진다는 것이다(42:27). 말하자면 생산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노력으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정도(正道)를 걸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생산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으면서 결국 생산 열의를 고취시킨다. 그리하여 이슬람에서는 물질적 부만 추구하고 도덕적 가치를 무시하는 생산행위는 금기가 되며, 반면에 도덕적 가치만을 외치면서 부의 축적을 게을리하는 폐단도 배격한다. 무함마드는 매춘을 소득원으로 삼는 것과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는 엄금했다고 한다.

    생산이 갖는 이와 같은 중요성을 감안해 경전은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구체적 조처들을 제시하고 있다. ①토지 이용률을 제고한다. 휴경지(休耕地)는 국가가 무상으로 몰수하고, 임자 없는 땅을 자력으로 개간할 경우 소유권을 부여하며, 비생산적인 토지매매행위를 금한다. ②이용하지 않는 천연자원에 대한 소유권은 무시된다. ③이자는 생산활동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자들의 소득원이 될 수 있으므로 금지한다. ④도박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은 엄금한다. ⑤생산에 투입되지 않고 사장된 자산에 대해서는 연 2.5%의 세금을 부과한다. ⑥주류나 마약같이 정신적 불구를 초래해 생산활동을 저해하는 일체 행위는 금한다. ⑦상거래나 금융시장에서의 투기를 금한다. ⑧상속법을 관철시켜 부의 집중과 편재를 막음으로써 생산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 ⑨사치와 낭비를 막고 생산성 투자를 장려한다. ⑩이슬람공동체(국가)의 구성원들은 지식과 기능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한다. ⑪국가는 생산을 계획하고 공공사업을 관장하며, 재원을 확보하고 재분배하며, 모든 경제활동을 지휘 감독한다.

    이와 함께 이슬람에서는 노동과 근면만이 사회의 부를 창조하고 증식시킬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적극 권장한다. 경전에는 노력하는 자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53:39~41). 무함마드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자는 알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는 ‘최상의 예배는 노동’이라고 노동의 가치를 찬양하면서 굶어 죽지 않는 한 구걸하는 것을 나무랐으며, 일하지 않는 수행이나 금욕은 무의미한 짓으로 금하도록 했다. 선지자는 노동을 신성시해 흙 묻은 손에 입맞추는 것을 즐겼다고 전한다. 요컨대 이슬람에서 근면은 미덕이고 나태는 악으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은 생산에 의한 부의 축적과 도덕의 함양을 지향한 내용들이다.

    생산에 대한 독려와 더불어 부의 분배에서도 이슬람경제관 특유의 시책들이 강구되고 있다. 부의 분배에 대한 이슬람적 사고의 핵심은 부의 집중과 편재(偏在)를 막고 경제적 평등과 공평을 이루는 것이다.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공적인 실현을 보지 못한 이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슬람 경제가 추구하는 목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슬람 경제학자들은 이 목표에 이르는 첫 통로로 이례적으로 다수의 상속자들에게 유산을 분배하는 이슬람의 상속제도를 들고 있다. 이슬람 상속제도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분상속제(예: 우리나라의 호주상속제)가 아니라 재산상속제다. 그러나 자타가 다 인정하다시피 이슬람 상속제도는 직계와 혈족을 포함해 상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상속분(相續分)도 대단히 합리적이고도 공평하게 배분하고 있다. 이것은 부의 집중을 막고 그 평분(平分)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슬람 법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의 일치된 해석이다.

    경전 ‘꾸르안’은 상속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남자에게는 부모나 가까운 친척이 남긴 재산의 몫이 있으며, 여자에게도 부모나 가까운 친척이 남긴 재산의 몫이 있나니, 각자에게는 적건 많건 간에 규정된 몫이 차려지리라.”(4:7) 그러면서 경전에는 마치 상속법 조항처럼 상당히 구체적으로 상속분을 일일이 명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①사망자에게 아들이 없고 딸만 둘 이상이 있을 경우 딸들에게는 유산의 3분의 2가, 배우자에게는 나머지 3분의 1이 차려지며, 딸이 하나일 때는 그녀와 배우자에게 각각 절반씩 상속한다. ②자식이나 배우자가 없을 경우 유산의 3분의 1은 어머니가, 3분의 2는 아버지가 이어받는다. ③남편이 사망할 때 자식은 없고 부모가 있을 경우 미망인에게는 유산의 4분의 1이, 나머지는 부모에게 돌아간다. ④남편이 사망할 때 자식만 있고 부모가 없으면 미망인에게 유산의 8분의 1이, 나머지는 자식들의 몫이다. ⑤사망자에게 자식이나 부모는 없으나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는 형제자매가 유산의 3분의 1을, 나머지는 배우자가 상속한다.

    유산에 대한 이러한 상속과 더불어 정부에 의한 사회보장도 분배의 주요한 조처로 간주되고 있다. 정교합일의 이슬람공동체(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이슬람의 신앙적 교리와 이슬람법(샤리아)에 기초한 제반 행정업무를 집행 관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행정업무의 수행은 일정한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슬람 정부에는 경제업무를 전담하는 ‘히쓰바(al-Hisbah, 현대의 재정경제부서)’라는 전문기구가 설치 운영되어왔다. 이 기구가 수행하는 주임무의 하나가 바로 사회보장 시책을 펴는 것인데, 이것은 이슬람이 시종일관 추구하는 사회 구제책인 동시에 부의 경제적 배분책의 하나라고 이슬람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경전과 ‘하디스’에는 사회보장책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구차하여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의 부채를 국가가 일부 혹은 전부를 부담한다. ②유산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사망한 자의 부채는 국가가 부담한다. ③국가는 유공자나 그 후예들의 생활보장을 책임진다. ④근로자들은 주택이나 결혼비용 등에서 국가적 혜택을 받는다. ⑤종교기금은 무슬림들의 사회복지사업에 유용한다 등등. 오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종교기금이나 정부 출자의 사회복지기금으로 사회보장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며 수준도 서로 다르다.

    끝으로, 전통 이슬람사회에서는 국가가 징수하는 각종 세금도 일종의 부의 분배로 간주하고 구체적인 세제(稅制)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당초 이러한 세제의 제정에는 징수 대상자와의 정치적 관계나 그들의 신앙관계가 고려되었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초기 이슬람 정복시대에는 무력으로 정복한 땅에 대해서는 일정한 양의 화폐나 실물로 지세(地稅, 하라즈)를 부과했는데, 그 액수는 지방에 따라 좀 다르지만 최저가 용지수입의 20%였다.

    그리고 같은 지세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마왈리)의 땅이나, 혹은 정부로부터 봉토(封土)로 상여받은 땅에 대해서는 ‘오슈르(10分制)’라는 특별세제가 적용되었는데, 그 징수액은 용지수입의 10%에 불과하다. 이 ‘오슈르’제는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유도하는 종교시책이기도 했다. 그밖에 건전하고 지불능력이 있는 비무슬림들에게는 인두세(人頭稅, 지즈야)라는 대인세(對人稅)를 부과했다. 인두세의 액수를 보면 중산층은 빈곤층의 한 배이고, 부유층은 또 중산층의 한 배로서, 결국 부유층은 빈곤층의 두 배를 부담하는 셈이다.

    생산물에 대한 이와 같은 주도면밀한 분배책은 소수인에 의한 부의 집중과 편재를 해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평등과 공정을 실현하려는 전통적 이슬람경제관의 소산인 것이다. 오늘도 부의 공정한 분배로 사회경제적 평등의 실현은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주장하는 국가적 시책인 동시에 지향하는 이상적 목표다.

    생산물의 분배는 필연적으로 소비와 직결된다. 흔히들 소비라고 하면 소모나 낭비를 연상하는데, 이슬람에는 이러한 상식을 불식케 하는 특유의 소비윤리가 있다. 이슬람에서는 소비를 알라의 하사품에 대한 생산적인 효용(效用)으로 간주하고 소비나 소비재에도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 즉 소비나 소비재에는 항상 물질적 및 윤리도덕적 유용성(有用性)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용성이 결여된 재화는 소비재로 인정될 수 없다. 음주는 이슬람교에서 금기사항(하람)이기 때문에 술은 도덕적 가치나 유용성이 결여된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술은 재화나 소비재로 인정될 수 없다.

    소유권자이고 주재자인 알라는 자신이 인간에게 하사한 재화를 인간의 삶을 위해 쓰도록 했기 때문에 그 소비를 적극 권장한다. 알라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더러 “천국에 거하면서 원하는 양식을 먹으라”고 권하고(2:35), 인간에게는 “지상에 있는 허용된 좋은 것을 먹으라”라고 타이르며(2:168), 이 허용된 양식을 외면하고 있는 무지한 인간들(노예들)에게 “알라가 노예들을 위해 창조하신 그 아름다운 양식을 누가 감히 금기시하느냐”(7:32)라고 엄한 질책까지 한다. 요컨대 알라는 인간들을 위해 하사한 재화를 마음껏 즐기고 소비하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소비한다고 하여 방탕하게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아울러 가르치고 있다. 경전은, 불허하는 방탕한 낭비현상의 한 예로 불법적인 뇌물을 들면서 “낭비하는 자는 사탄의 형제”(17:27)이므로 알라는 “낭비하는 자를 사랑하지 아니한다”(6:141)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낭비를 조심한답시고 과도한 절제나, 그로 인해 인색해져서는 안된다고도 경전은 가르치고 있다.

    “너희 손이 너희 목에 걸릴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그렇다고 또한 너무 펼쳐도 아니 되나니, 이는 너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고 빈곤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함이다”(17:29)는 잠언(箴言)이 경전에 나온다. 여기에서 “목에 걸릴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인색한 구두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리고 “너무 펼쳐도 아니된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인색하지도 말고 낭비하지도 말라는 균형 잡힌 간곡한 충고다.

    이슬람에서 권장하는 가장 아름답고 효용 있는 소비는 ‘자카트’, 즉 종교부금(宗敎賦金)이다. 자카트는 이슬람 특유의 재물관(財物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슬람에서 모든 재물의 소유권자와 주재자는 알라이며, 인간이 향유하는 재물은 알라가 위탁한 일시적인 하사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 재물의 일부는 갹출해서 알라가 원하는 일에 써야 한다. 그것이 시은자(施恩者)인 알라에 대한 응당한 보답이고 회사(回謝)이며, 또 알라도 그러기를 내심 원한다. 그래서 이 자카트를 모든 무슬림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종교적 실천임무의 하나로 규정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자카트로 쓰인 재화는 가장 신성하고 값진 소비재인 것이다.

    자카트에는 종교적 의무로서의 의무적 자카트와 희사성을 띤 자발적 자카트(쏴다까)가 있다. 자카트는 어려운 순례자나 결식자, 빈민, 채무 환급이 불가능한 자, 성전자, 어려운 여행자, 새 입교자, 자카트의 관리자 등의 구제에만 쓰인다. 그밖의 용도에 쓰이면 소비재로서의 도덕적 가치를 상실함으로써 결코 쓸모가 없게 되고 만다. 무슬림들이 통화나 가축, 과실, 곡물, 상품, 매장자산(광산 등) 같은 동산이나 부동산을 1년 이상 소유하고 있으면 반드시 일정한 비율의 자카트를 지불해야 한다. 그 납부율은 구체적 대상에 따라 다르다.

    이슬람 초기에는 화폐나 실물로 자카트를 지불했는데, 낙타나 양 등 가축에 한해서는 40~100마리까지는 1마리를, 그 다음은 100마리당 1마리를 물었다. 상인의 경우는 상품가치의 2.5%를, 금은광 등 지하자원은 전쟁으로 정복했을 때는 가치의 25%를, 평화적으로 정복했을 때는 2.5%를 각각 지불했다. 농산물과 과실은 천수답이면 소출의 10%를, 관개지면 5%를 물게 되어 있다. 오늘날도 자카트는 여전한데, 그 형태는 주로 연간 수입의 2.5%를 화폐로 계산해서 금식월(라마단, 이슬람력 9월)이 끝나는 개재절(開齋節)날 한꺼번에 납부한다.

    자카트와 함께 전리품도 유용한 소비재로 간주되어 엄격한 규정에 따라 배분되고 소비된다. 전리품은 크게 전투를 거치지 않고 얻은 전리품(파이으)과 전투를 거쳐서 노획한 전리품(가니마)의 두 가지로 대별하며, 그 처리방법도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일부를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나, 후자의 경우는 전부 몰수한다. 획득한 전리품은 국고에 바치는 것이 원칙이나, 정복전에서의 유공자나 행정관리들에게 분여하기도 한다. 전리품도 역시 알라로부터의 하사품이고 위탁품이기 때문에 무모하게 낭비해서는 안된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사회에서도 생산물은 유통과정을 거쳐 분배되고 소비되는데, 유통에는 크게 실물유통과 화폐유통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실물유통은 주로 실물에 대한 상거래를 통해, 화폐유통은 금융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 종래 이슬람사회에는 유통, 특히 금융거래에서 이자 금지나 무이자은행 같은 특이한 체제가 있어 경제계의 주목을 끌어왔다.

    우선, 이슬람에서는 상거래를 통한 부의 증식을 일종의 생산행위로 보기 때문에 적극 장려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슬람의 출현과 확산을 계기로 ‘사막의 아들’이던 아랍-무슬림들이 일약 ‘바다의 아들’로 변신하여 대양을 누비면서 중세의 해상무역을 수세기 동안이나 주도했다. 우리의 문헌기록에 따르면 고려 초기에 무슬림 상인들이 백여 명씩 무리를 지어 수도 개경(開京)에 드나들었다고 하니, 그들의 교역망이 얼마나 멀리까지 뻗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랍-무슬림들의 뛰어난 상술을 누구나 부러워했다고 한다.

    중세 이슬람문명의 번영은 무슬림들의 활발한 교역활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대외교역은 대내상업의 연장으로서 이슬람제국 무슬림들간의 상거래는 상당히 번성했으며, 이슬람의 경제이념에 기초하여 이에 상응한 상거래법이나 관행이 마련되었다.

    경전에는 여러 곳에서 상거래의 공정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교환거래를 하면서 수량과 무게를 약속대로 정당하게 보장해야 하는 바(11:85), 수량을 되로 잴 때는 되를 가득 채우도록 하고, 무게를 저울로 달 때는 저울을 균형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이고 내세에 더 나은 재화가 기약된 일이라고(17:35) 거래에서의 공정성을 설교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거래에서의 불법행위를 퇴치하라고 거듭 경고한다. 그래서 거래를 독점하는 자는 ‘죄인’으로 낙인찍고, 이기적인 매점매석을 하는 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큰 상거래는 단연 석유거래다. 이슬람국가가 주축이 된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유정에서 나온 상태 그대로의 석유)가 부존(賦存)되어 있는 지역으로서 그 매장량(약 6770억 배럴)은 세계 총 매장량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석유를 채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채연수(可採年數, R/P)에서도 중동산유국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단연 우세를 점한다. 평균 가채연수가 전세계 산유국은 42년에 불과하지만, 중동산유국은 93년으로 두 배에 가깝다. “지구는 석유를 축으로 자전한다”고 하리만치 석유는 세계경제 운영에서 사활이 걸린 중요한 재원이다. 그리하여 채굴 초기부터 석유는 중동이나 이슬람세계라는 지역성을 초월한 범세계적 유통체제에 편입되어 그 지배를 받아옴으로써 중동산유국은 수혜(受惠)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오늘 이들 산유국들이 ‘자원민족주의’를 부르짖지만 아직 구각(舊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석유의 부존 혜택을 받지 못한 일부 이슬람 나라들은 중동 이슬람 땅에서 솟아나는 석유는 알라가 이곳 무슬림들 모두에게 내린 하사품이므로 골고루 향유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불공정함을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국경’이란 또다른 하사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어찌보면 그러한 ‘불공정함’이 알라의 또다른 하사품일지도 모를 일이다. ‘알라 아알람(알라만이 알 일이다)!’

    다음으로, 이슬람에서는 금융거래를 통한 유통도 상당히 중시하면서 나름대로 유통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거래를 포함한 모든 유통은 재산 취득과 증식의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은 재산의 취득과 증식방법에서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을 엄격히 구분하고 정의와 합법은 장려하면서 불의와 불법을 단속한다. 불법적인 방법 중에서 대표적인 예로 유통 중의 이자(利子)를 꼽고, 그 금지를 교리로 명문화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다른 종교에서는 없을 것이다.

    아랍어에서 이자를 ‘리바’(rib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증가’ ‘추가’ ‘확장’ ‘성장’이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그 의미가 전화되어 ‘화폐나 상품에서 기준보다 초과된 것’이라는 경제용어로 쓰인다. 보통 경제학에서 이자(interest)는 화폐유통과정에서 생기는 이익금을 말하나, 이슬람경제학에서는 화폐유통뿐만 아니라 상품유통에도 적용되는 2중 개념으로 쓰인다.

    즉 화폐유통과정에서 원금에 덧붙여 부과되는 모든 종류의 추가지급금(리발 나시아)과 상품유통과정에서 특정 상품의 교환과 거래에서 생기는 초과분(리발 파들)을 통틀어 리바(이자)라고 한다. 이렇게 이슬람은 이자의 금지를 대출금 이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상품의 교환이나 거래에까지 확대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불공정거래와 불법유통을 차단하려고 한다.

    경전 ‘꾸르안’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계시가 12번이나 등장하여 이자행위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이자를 받은 사람을 36번 간통하거나 자기 어머니를 겁탈한 파렴치한과 동등하게 여겼으며, 이자를 주고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자수수의 증인까지도 불법인으로 취급했다. 이렇게 이슬람이 유통과정에서의 이자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첫째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얻은 이자 같은 이득은 정당화될 수 없고, 둘째로 이자는 성실한 근로를 저해하는 불로소득이므로 인정될 수 없으며, 셋째로 공평한 소득분배를 실현하고 소수에 의한 부의 집중과 편재를 막기 위해서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상거래를 비롯한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얻는 이익(이윤)과 불로소득의 이자와는 엄연히 구별하고 있다. 생산자들은 노동력과 자본을 투자하여 소비자들에게 필수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상인들의 상거래행위도 노고를 들인 상술을 요하고 노력을 지출하며 위험도 부담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익은 성실과 근로의 대가로서 윤리도덕적으로 지당한 일이다. 그리하여 이슬람사회에서 상거래는 장려되고 상인은 존경을 받는다. 반면에 성실과 근로가 결핍된 이자놀이는 비난을 받고 고리대금업자들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의 교환경제에서 이슬람식 이자개념이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1970년대에 이슬람식 무이자은행이 출범하면서부터 이자문제에 관한 이러저러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논의의 주제는 현대의 교환경제 운영에서 이자의 긍정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이슬람의 이자금지는 소비성 대출과 사업성 대출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예외적인 적용은 있을 수 없는가 하는 문제다.

    많은 이슬람경제학자들은 이자 지급은 소비성 대출에 한해서만 금지돼야 하고, 사업성 대출에는 이자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소비성 대출에 이자를 부과하는 것은 구차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이슬람의 도덕정신에 위배되는 반면에, 사업성 대출은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의 재산 증식을 위한 일종의 협력행위로서 쌍방에 골고루 이득을 줄 수 있는 생산적인 금융유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자의 예외적인 적용문제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예외적인 적용이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현대의 교환경제에서 이자의 긍정적 역할과 이슬람세계에서 사실상 적용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이자금지를 교리로 규정한 당시와 오늘의 시대환경이 다르다는 등 상황논리를 근거로 하여 일부 학자들은 이자의 예외적인 적용을 주장한다.

    심지어 일부 법학자들은 부분적이기는 하나 오늘날 이슬람세계의 금융시장에서 이자가 적용되고 있는 사실은 현실의 불가피한 필요성 때문일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그렇다면 ‘필요는 금지에 우선한다’는 이슬람의 법리에 비추어봐서 이자는 허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다.

    ‘필요는 금지에 우선한다’는 이슬람의 법리란, 예컨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교리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돼지고기밖에 없어서 그것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경우(즉 필요조건)에는 먹어도 된다는 이슬람의 가변법리(可變法理)를 말한다. 이것은 이슬람의 관용성과 융통성에서 오는 법리다. 일리가 있는 추론이나 문제는, 교리의 불변성과 상황논리 사이에서 이자의 필요성을 인정하냐 안하냐에 있다.

    아무튼 이러한 논의와 문제 속에서도 아직은 이자금지라는 이슬람의 종교적 이념에 따라 무이자은행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식 무이자금융제도가 여러 이슬람 나라들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한편, 이러한 제도에서 이론, 실천적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완전한 이자금지보다는 변용적(變容的)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방안들이 건전한 이슬람식 유통구조를 구축하는 데 희망의 불빛으로 앞길을 비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체방안들의 모태가 바로 손익분배제도(損益分配制度, system of profit and loss sharing)다. 이 제도는 대출 전에 정률(定率)의 이자를 결정하지 않고 유통 후에 정해지는 이익 또는 손실을 공동분담하는 금융운영제도다. 대출 전에는 다만 이익이나 손실을 어떻게 배분하는가 하는 비율문제만 결정한다. 사실상 이 제도가 오늘 이슬람세계에서 무이자금융시장을 주도해가고 있다.

    이슬람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 손익분배제도는 전통적인 이슬람식 금융제도를 변형 대체한 제도인 만큼 전통적인 요소들을 일거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전통과 현대를 결합시킨 몇 가지 새로운 무이자금융형태가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는 특정 사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와 노동이나 경영기법을 제공하는 사업가들 사이의 조합계약 형태인 ‘무다라바’가 있는데, 수익이 발생할 경우 사업가는 사전에 약속한 이익배분율에 따라 이익분을 투자자에게 지급하고, 손실이 발생한 경우는 손실을 공제한 금액을 투자자에게 상환한다.

    다음으로, 자금 제공자와 사업가가 공동출자하고 사업경영에도 공동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익의 배분이나 손실의 부담도 사전에 합의한 비율에 따라 양자간에 배분하는 ‘무샤라카’가 있다.

    그 다음으로, ‘무라바하’라는 형태가 있는데, 이 경우 상품이나 기계의 구입을 원하는 고객을 대신하여 자금소지자(은행)가 그 상품을 우선 구입한 다음 일정기간 후에 고객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상품의 구매가격에 정률의 이윤을 가산한 금액을 지불하고 해당 상품을 매입한다.

    구매원가에 약정이윤을 덧붙여 재판매하는 방식인 무라바하는 앞의 두 가지 형태에 비해 위험이 적고 이익의 회수가 신속하기 때문에 이슬람 금융제도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현재 이슬람은행 금융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끝으로, 은행이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비나 건물 등을 구입하여 고객에게 임대료를 받고 일정기간 대여하는 ‘이자라(ij rah)’가 있는데, 이 경우 만기가 되면 고객은 이 자산을 은행에 반환하거나 또는 취득할 수도 있다.

    오늘날 전세계 이슬람 금융기관들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은 1000억달러를 능가하고 있으며, 이슬람금융의 국제화도 급진전되고 있다. 이 이슬람 금융기관들의 총 자산액 중에서 이슬람 무이자금융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은 20% 미만이지만, 전술한 여러가지 개선책으로 인해 그 규모가 커질 전망이어서 세계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날로 확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이자를 기반으로 하는 비자본주의적인 금융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하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사실 이슬람 무이자금융제도는 서구의 금융제도가 간과하고 있는 사회정의문제에 착안해 그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 고유의 경제관에 입각해 경제활동의 몇 가지 영역을 살펴봤다. 물론 이슬람세계도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 경제의 전근대적 후진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나름의 지혜를 짜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이슬람경제 운영의 저변에는 종교적 이념을 비롯한 전통적인 가치관과 사회경제관이 짙게 깔려 있어 그 향방에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영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비록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서 경제운영의 구체적 측면에서는 이러저러한 변용을 보여왔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이슬람경제는 시종일관 고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슬람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것은 이슬람경제관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그 특징은 우선, 종교적 윤리도덕에 기반한 경제관이라는 것이다. 1976년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경제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의 결의문에는 “이슬람의 규범과 가치가 이슬람경제체제의 기초를 이루며” “이 체제(이슬람경제체제)의 기본원리는 타우히드(알라의 유일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꾸르안과 쑨나(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록)에서 파생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사회에서 종교는 기껏해야 사회의 윤리도덕 일반에 간여할 뿐, 정치나 경제의 기반이 될 수는 없으며, 정치나 경제가 종교이념에 묶이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정교합일의 이슬람사회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슬람교의 근본교리인 타우히드, 즉 알라는 유일무이한 우주만물의 창조주이고 주재자라는 알라의 유일성 교리로 인해 지상의 모든 부의 소유권은 알라에 속하며, 인간의 재화는 알라로부터의 하사품이고 위탁품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자문제에 이르기까지 경제운영의 기본이념과 원칙이 경전과 하디스에 세세히 규정되어 있다. 평등과 공정, 형제애란 윤리도덕이 부의 분배와 소비에서의 집중과 편재를 막는 합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이슬람경제관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중용적(中庸的) 경제관이다. 이슬람은 경제활동의 전과정에서 극단이나 편중(偏重)을 피하고 절충과 균형을 추구한다. 부의 처리에서 알라의 소유권과 인간의 사용권을 ‘하사품’과 ‘위탁품’이란 명분으로 분리하면서도 연계시키고, 생산활동을 통한 부의 증식은 권장하면서도 그 집중이나 편재는 막고 있으며, 소비는 권장하면서도 무모한 낭비와 지나친 인색의 두 편향은 경계한다.

    유통에서 이자개념을 금융유통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유통에까지 확대하고 있으며, 투자자와 사용자 쌍방이 이득과 손실을 공동분담하는 손익분배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어느 일방의 손익 편중을 피하고 있다. 이 모든 중용적인 경제관과 그 실행책은 이슬람 본연의 중용이념과 연관되어 있다.

    이슬람의 경제관은 이슬람의 정치관과 더불어 이슬람의 정교합일성을 입증하는 주요한 징표의 하나다. 따라서 이슬람이 정교합일이란 근본속성을 상실하지 않는 한, 이슬람의 경제관은 계속 능동적인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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