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지구촌 지식인들의 美 대외정책 비판

“부시의 일방주의는 평화의 가면 쓴 약소국 지배정책”

  • 글: 번역 정리·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3-09-26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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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지식인들의 美 대외정책 비판
    첫 번째 소개할 저널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MIT가 공동으로 펴내는 계간지 ‘워싱턴 쿼털리’ 가을호에 실린 글 ‘한반도 위기 : 핵무장한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공동저자인 오핼런과 모치주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핵문제’ 사안에만 매달려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는 포괄적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안별로 제한된 협상을 하는 것보다 포괄적인 ‘큰 틀에서의 협상(grand bargain)’을 통해 핵문제를 비롯한 북미간 현안을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두 번째 저널은 미국의 반전운동가 라훌 마하잔이 쓴 ‘이라크의 총구(銃口) 민주주의’란 글로,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 ‘진보(The Progressive)’ 9월호에 실렸다. 마하잔의 시각에서 부시 행정부의 민주화론은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마하잔은 이 글에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친미정권을 수립하고 반영구적인 군사기지를 세움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하잔은 미국의 반전 사이트 ‘No War Collective’(www.nowarcollecitve.com)의 창설멤버로, 올해 ‘전방위 지배, 이라크에서의 미국 파워’란 책을 발간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석유 지배를 목적으로 자행됐음을 주장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십자포화’란 웹사이트(www.bitterlemons.org)에 오른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중동정치를 주제로 인터넷 토론을 벌이는 이 사이트는 최근 ‘현 위기국면에서 미국의 역할’이란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치학 교수 히샴 아흐메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 정치에 간섭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점령을 모른 체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스라엘 바라크 전 수상(노동당)의 고위 보좌관을 지냈던 요시 알퍼는 부시 행정부가 혼미한 이라크 사태와 2004년 대선에서의 유대인 표를 의식, 이·팔 분쟁에 깊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채찍보다 강력한 당근 내놓아라”》‘한반도 위기: 핵무장한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마이클 오핼런(부르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 마이크 모치주키(조지 워싱턴대 교수)

    동아시아 핵위기를 푸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평양을 상대로 포괄적인 ‘큰 틀에서의 협상(grand bargain)’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정부는 북한이 지나치게 군사비를 지출한 데다가 사회주의 경제정책에서 실패함으로써 비롯된 경제난이 바로 북핵 위기를 풀 수 있는 핵심 사안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핵위기를 푸는 방식은 압력과 동시에 압력보다 매력적인 당근을 제시함으로써 북한 경제난을 푸는 식이어야 한다.



    워싱턴 정책 당국자들은 거대하고 다면적인, 그리고 포괄적인 접근방식으로 북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이정표(road map)를 세울 수 있다. 북미협상에 따른 이정표가 만들어질 경우, 북한을 포함한 협상 당사국들은 특정 사안에 매달리는 ‘벼랑 끝 협상’이 가져올 정치적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에 맞춰 대응하는 식이었다. 1994년 맺은 제네바 기본합의는 북한의 핵 동결과 맞바꿔 다른 에너지원(두 개의 경수로)을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는 제한된 범위에선 양쪽에 유익했을지 몰라도, 북한의 경제난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를 푸는 데 실패했다.

    4년 뒤 미사일 문제가 다시 터져 나온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 때도 미 정책당국자들은 북한 문제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풀지 못했다. 1990년대 전반 클린턴 행정부는 주로 국내 문제에 모든 초점을 맞춘 까닭에 위협과 억제를 결합한 당근, 즉 유인책으로 북한을 다루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핵’이라는 특정사안을 놓고 북한의 태도를 바꾸기 위한 유인책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나중에서야 알게돼 막긴 했지만, 이스라엘조차도 북한이 이란에 미사일을 팔지 못하도록 북한에 물질적인 보상을 제공할 것을 모색했다. 이스라엘처럼 항상 안보에 민감한 국가가 북한 미사일을 물질적 보상으로 해결했다면, 미사일보다 더 위험한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과 그 우방국들이 북한에 물질적 보상을 하려는 것 또한 합리적인 정책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소련 해체 후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북한이 대외무역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돼 곧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대북한 정책을 수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1994년 제네바 기본협정이 이행돼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면, 한반도 긴장이 자연스레 완화돼 더 이상 주도면밀한 정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늘날엔 그런 판단이 잘못됐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구촌 지식인들의 美 대외정책 비판

    미국은 한반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한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 8월26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 참가한 각국 수석대표들.

    워싱턴과 평양이 특정 사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포괄적 접근방식을 거론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2002년 8월 워싱턴 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한반도 군축 관련 보고서에서도 핵문제와 재래식 무기감축을 포함한 어떠한 포괄적인 협상을 벌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특정 사안을 둘러싼 협상이 아닌, 포괄적인 접근은 사안의 복잡성 때문에 북미회담 자체를 교착상태로 몰고 가 끝내 실패할 것이란 논리였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으로 협박 하는 새로운 거래는 없다”고 못박았다. 지난 8월 베이징에서 열린 6자 회담이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난 현재의 상황은 일종의 교착상태다. 북한은 북미관계를 조금씩 개선하는 협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새로운 발상이 요구된다. 북한에 구체적인 반대급부를 제시하지 않고, 북한과의 2자 협상에 거부감을 보이며, 오로지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개발 중지 등 광범위한 양보를 받아내려는 현재의 정책은 교착상태를 깨뜨리는 ‘새로운 발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바라기도 어렵다. 북한을 압박 봉쇄한다고 해도 북한 붕괴를 가져오거나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더구나 그러한 압박봉쇄 정책은 미 우방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는 압박봉쇄보다는 외교적 포용정책 쪽에 기울어 있다. 최근 일본은 북한 만경봉호의 출항을 일시적이나마 묶는 등 북한에 강경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도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군사적 긴장을 바라지는 않는다.

    북한에 더 많은 것을 주고 그 반대급부로 핵무기 포기를 비롯한 더 큰 요구를 하는 것은 약간의 현금 부담말고는 위험부담이 거의 없다. 포괄적인 북미협상은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된다. 미국과 우방국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일 수 있고, 북한은 외부의 물질적 지원을 받아 중국과 같은 경제개혁을 이룰 수도 있다.

    북한의 협상태도를 연구한 보고서들에 따르면, 북한은 특정 사안을 다루는 협상보다는 포괄적인 주제를 둘러싼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왔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 체결과정이 그 한 예이다.

    이득과 규제

    북한과의 협상은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도모할 수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라도 북한이 영변의 플루토늄 재처리를 비롯한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중유 공급을 신속하게 재개하고 미 군사력이 북한에 위협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독트린과 이라크 침공 사례에 긴장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협상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협상에서 핵문제뿐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의 50% 감축, 북한경제의 점진적 개혁, 그리고 미국·한국·일본·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협상을 성사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은 완화되고, 김정일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점진적 체제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북미협상이 성공하려면, 양쪽 모두에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북한을 포함한 협상 당사국들은 한편으론 이득을 얻지만, 다른 한편으론 엄격한 규제에 묶여야 한다.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균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협상이 이뤄진다면 북한은 △테러리즘을 아예 포기하고 △일본인 납치자들을 모두 돌려보내며 △인권문제에 대한 대화통로를 열어놓고 △위조지폐와 마약 밀수행위를 그치고 △생화학무기 금지조약에 서명하는 데 동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약속’에 대한 반대급부로 워싱턴 당국은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즉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대북한 경제제재를 풀고 △테러 지원국가 명단에서 북한을 빼고 △미국의 대량살상무기(WMD)로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한 걸음 나아가 공식적인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다.

    북미협상의 이행과정에서 북한은 경제적 원조를 받는 한편 북한이 지닌 대량살상무기들을 없애거나 줄이고, 또 경제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서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기만책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은 북미협상의 결과를 제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은 북한의 경제정책은 물론 안보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와 인권 등 북한 국내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일단 북미협상이 이뤄진 뒤엔 서둘러서는 안 된다. 미국은 한반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한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미협상이 끝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 동결을 확인하는 조사작업은 몇 달 이상,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는 데에는 2년 넘게 걸릴 것이다. 북한 경제개발은 그보다 몇 년 더 걸릴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 우방국들은 북한이 이정표에 합의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길 경우에 한해서만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비핵화를 실천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한 뒤에야 북한에 대한 안보 보장을 해줄 것이다.

    북미협상의 성공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보다 중요한 사안은, 북한이 경제난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경제개혁(economic reform)에 북한 당국은 물론, 미국과 아시아 우방국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약 25년 전에 시작했던 중국의 경제개혁 모델이 오늘의 북한에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를 비롯해 포괄적인 큰 틀에서의 북미협상이 타결될 경우,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인 북한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점이다.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부시 행정부 목표 아니다”》‘이라크의 총구(銃口) 민주주의’라훌 마하잔(물리학 박사)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척결’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가 늘어남에 따라 부시 행정부의 전쟁 승리 선언은 빛을 잃었다. 아울러 지난 3월 75%에 이르렀던 미국인들의 전쟁 지지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과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등 일부 미 언론인들은 “미국이 이라크 국민들을 독재로부터 해방시켰다. 현재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건설중이므로, 전쟁 명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 이후 이라크가 후세인체제의 극단적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릴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특보 로렌스 리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모습으로 상황이 나아진다는 말인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라크에 앞서 미국이 군사작전을 폈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민주적 세력들을 지원해왔다. 이를테면 헤라트 지역의 이스마일 칸, 마자르-이-샤리프 지역의 압둘 라시드 도스툼 같은 군벌들이다.

    한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갖는 가장 큰 불만이 ‘미국의 아프간 군벌 지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 라이트 워치(Human Rights Watch)의 아시아 지역 책임자 브래드 애덤스는 미국의 아프간 군벌 지원정책을 비난하면서 “이는 아프간 새 헌법 채택과 2004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미국의 지원 아래 아프간전쟁 전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게 된 군벌들은 아프간 수도 카불 바깥 지역을 사실상 강탈한 셈”이라 말했다. 많은 아프간 국민들은 ‘군벌 무장해제를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로 미국의 정책을 꼽는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민주주의의 겉모습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로야 지르가(loya jirga, 부족회의)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를 지배하는 세력은 사실상 군벌들이다. 로야 지르가의 대표 오마르 자킬왈과 아데나 니아지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대표들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로만 머물고 있다. 북부동맹 출신 몇몇 족장들이 밀실(密室)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약 800∼1500명의 대표들이 전 국왕 자히르 샤를 임시대통령으로 추대했지만, 이는 친미 인사 하미르 카르자이를 내세운 미국의 방침과 맞지 않은 탓에 무시됐다. 지금의 로야 지르가는 지난 1987년 당시 소련이 친소정권을 내세우기 위해 소집했던 옛 로야 지르가보다 훨씬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중앙아시아에 반영구적인 군사기지를 확보한다는 목적을 쉽게 이뤘다. 카르자이 정권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마음대로 실시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하는 가스 송유관을 빼면, 아프가니스탄에 이렇다 할 이해관계가 없다. 따라서 부시로서는 아프간 군벌의 횡포를 막고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는 아프간과 다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제2의 석유자원을 지닌 이라크의 국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미 행정부의 에너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이 낸 한 보고서는 “2020년이 되면 중동지역 석유가 세계 석유수요의 3분의 2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 적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미국은 이라크 망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라크 석유를 지배할 궁리를 해왔다. 파드힐 찰라비(미국이 차기 이라크 지도자로 점찍고 있는 친미 인물 아흐메드 찰라비의 사촌)는 “이라크 석유가 민영화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석유뿐 아니라 이라크 경제가 외국기업들에 지배될 운명이다. 미국이 파견한 ‘이라크 총독’ 폴 브레머 3세는 지난 6월 세계경제포럼의 한 회의에서 이라크 국영 석유기업들을 포함, 40개에 이르는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라크는 또한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이상적 무대다. 미국은 이라크에 4개의 군사기지를 세우고 미군을 장기간 주둔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유엔대사 다니엘 아얄론은 “이란과 시리아의 체제 변화는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라크 주둔 미군을 축으로 한 심리적 압박과 외교적 고립 전략, 그리고 경제제재로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이라크에 이런 미국의 정책 목표들을 이루는 데 앞장 설 친미정권을 세울 것이다. 이라크 친미정권이 이라크를 내부적으로 확실하게 장악하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부시는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친미정권 수립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라크 민중의 저항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민주화’의 제 1라운드는 미군이 이라크 군과 전투를 벌이던 무렵인 지난 4월, 이라크 남동부 나시리야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선 미국이 검토를 거듭한 끝에 고른 ‘이라크 정치인들’이 모여 미국이 짠 각본에 따라 후세인 정권을 이을 친미 임시정부 구성을 논의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목적이 이라크 석유지배와 미 패권 확장임을 꿰뚫어본 이슬람혁명 최고평의회 등 일부 세력은 미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며 나시리야 회의 참가를 거부했다. 회의 참가자들도 회의가 미국이 짠 각본에 따라 진행되자 강한 불만을 품었다. 바그다드, 모술, 그리고 나시리야 등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미 시위는 이라크 민중의 반미 정서를 반영한 사건이다.

    25인 과도통치위는 꼭두각시

    영국 정부가 파견한, 이라크 점령군의 한 축인 ‘이라크 부총독’ 존 소어스는 “이라크 정치문화가 민주주의를 해내기엔 너무 약하다”고 주장했다. 소어스의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이라크 지방선거를 치르는 일을 검토하는 척하던 ‘이라크 총독’ 폴 브레머 3세는 지방선거 검토안 자체를 책상 서랍 안에 내팽개쳤다. 그러면서 브레머는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불만을 품은 언론사들에 재갈을 물렸다. 그는 “사담 후세인 시절에 비하면 이라크는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점령당국은 “사회불안을 조성할 가능성을 막는다”는 구실로 언론검열을 노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난 6월 브레머는 ‘적대적인 언론 행위’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는 언론사를 폐쇄할 수 있는 9개의 조항을 마련하고, 이에 저촉될 경우 무조건 폐쇄명령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를테면 미 점령정책에 대해 ‘공공연하게 반대여론을 조장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보도할 경우’ 또는 ‘무질서와 폭동을 선동할 경우’엔 언론사 문을 잠그고 관련자는 1년 동안 감옥에 가두겠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두 개의 신문사와 한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폐쇄명령을 받았다. ‘무질서와 폭동을 조장하는 위협적인 언론활동’이 폐쇄 사유였다. 국제 언론인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이라크 언론을 말살하려는 조치라며 미 점령당국을 비난했다.

    폴 브레머는 민주주의 정착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이라크 지배’가 브레머의 관심사다. 그가 조직한 25인 과도통치위원회나 각료들 또한 미국의 이익이 관철될 수 있도록 움직일 뿐이다. 이 25인 위원회 안에는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해, 펜타곤 매파들의 비호를 받아온 아흐메드 찰라비, 올해 미 국무부가 선호하는 인물로 떠오른 아드난 파차치가 포함되어 있다. 위원회 위원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명했다는 점에서 대표성과 합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이 위원회가 처음 한 일을 보면 정치적 노예성을 짐작할 수 있다. 위원회는 바그다드가 미군에 점령당한 4월9일을 새로운 국경일로 정하는 대신, 지난 1958년 부패하고 외세 의존적이었던 이라크 왕정을 무너뜨린 기념일인 7월14일을 국경일에서 빼버렸다.

    이라크 민주주의는 부시 행정부의 목표가 아니다.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라크를 지배하는 것이 진짜 목표다.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군사정책은 결국 약소국 지배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거리에 반미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게릴라식 투쟁이 확산되는 현재의 상황은 이라크 국민들이 미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부시는 팔레스타인 내부분열 바란다”》히샴 아흐메드(비르 제이트대 교수)

    지구촌 지식인들의 美 대외정책 비판

    8월21일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지도자의 차량에 불이 붙자 팔레스타인인들이 불을 끄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날 피점령지로서 팔레스타인이 겪고 있는 고달픈 처지는 이스라엘이 지닌 파시즘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가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체계적인 암살 행위가 가장 적절한 보기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이 고용한 학살자들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이같은 일이 주변 아랍세계의 침묵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날마다 일어난다.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 감옥은 팔레스타인 죄수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새로운 ‘베를린 장벽’인 ‘이스라엘의 보안’이란 장벽이 팔레스타인 땅을 마치 뱀처럼 휘감으며 세워지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친(親)이스라엘 지지 일변도의 정책을 펴온 것으로 비판받아온 부시 대통령이 개입해 지난 6월 이른바 중동평화 이정표(road map)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이정표는 고통에 가득 찬 길로 바뀌어가고 있다.

    부시와 샤론이 아라파트를 밀어내고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세우려 했지만 최근 총리직을 사퇴한 마무드 아바스와 그의 몇몇 측근 각료들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늘의 팔레스타인이 부딪친 암울한 정치현실을 잘못 인식했다. 아바스의 잘못된 현실인식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아바스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정책을 끝장낼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거꾸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들과의 대화를 단절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이스라엘 샤론 수상에게 억압과 폭력을 걷어치우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투쟁 에너지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겨냥한 아바스와 몇몇 팔레스타인 각료들의 비난 발언은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의 알력과 긴장을 높이는 데도 한몫 했다. 그런 내부적 긴장 상황은 지난 8월 하마스의 정치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스마일 아부 샤나브가 이스라엘 군 헬기 미사일에 맞아 암살되자 잠시 주춤했을 뿐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독립국가 창설과 영토 보전 등 팔레스타인 민족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바스와 측근 각료들은 정의를 내릴 자격이 없다. 이를 정의 내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억압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어온 팔레스타인 민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미국의 친이스라엘 중동정책을 뒷받침해줄 정치적 도구 아바스를 찾아낸 것에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미국은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거세(去勢)되길 바란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대(對)이스라엘 투쟁이 흔들리는 것, 그것이 미국의 목표라면 목표다.

    한 가지 예를 들자. 지난 8월19일 예루살렘 버스 안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공격사건 뒤 부시 행정부는 아바스로 하여금 하마스의 예금계좌를 동결하도록 압력을 넣은 바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미국은 날마다 하마스의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낼 대안을 먼저 찾지 않았는지? 예금계좌를 동결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굶기는 것은 결국 이슬람 운동을 강화시킬 뿐이다.

    아바스와 그의 측근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사죄해야 한다.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벌어진 뒤 팔레스타인에선 수천 명의 순교자들과 부상자가 나왔다. 아바스 스스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사죄하고 용기 있게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저 사표를 던지는 시늉만 해선 안 된다. 팔레스타인 사회가 아바스 총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팔레스타인 투쟁의 전선조직인 파타(Fatah,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안의 최대 정치조직)가 그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바스 같은 인물이 나서서 팔레스타인을 또 다른 재앙으로 몰아넣어선 안 된다. 팔레스타인 내부를 권력투쟁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지금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 민중의 목숨과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시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황이다.

    《“이라크 사태와 2004년 美 대선이 중동평화 걸림돌”》요시 알퍼(바라크 前 수상 보좌관)

    미국은 중동평화 이정표를 이행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이스라엘 옆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하는 미국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는 여러 각도에서 풀이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미국의 개입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2004년 미 대선이 다가오면서,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팔 유혈충돌에 우선순위를 둘 수 없는 처지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중동을 여러 차례 왕복하면서 양쪽 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담을 거듭했을 경우 이·팔 유혈투쟁 개입은 성공적이었다. 1974∼75년의 헨리 키신저, 1990∼91년의 제임스 베이커 등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던 국무장관들의 협상중재 노력, 1978∼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을 성사시켰던 카터 대통령의 중재노력이 그러한 성공 사례들이다.

    그러나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지난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 깊이 개입했음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클린턴의 실패는 후임자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한동안 이·팔 유혈사태에 그저 팔짱을 끼고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단 부시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과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총리 사이의 회담에 개입하기로 결심했다면, 부시는 전 대통령인 닉슨과 포드, 그리고 아버지 부시의 선례를 따라 미 고위 관리에게 전권을 부여해 예루살렘과 라말라(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치 중심도시)에 진을 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부시는 그러길 거부했다.

    유대인 기부금 바라는 부시

    그 이유는 2004년 11월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다. 부시는 유대인들과 우익 기독교인들의 지지와 기부금을 바란다. 이 유대인-우익 기독교 로비 집단들은 부시에게 유대인 정착촌 같은 핵심 이슈를 놓고 샤론 수상을 압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나 부시는 중동 유혈사태가 장기화하고 유대인 정착촌이 늘어나는 것이 아랍권의 반미감정을 자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해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 이라크를 민주화시켜 아랍과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실패다. 하루 한 명 꼴로 미군 병사가 죽어나가고 폭력을 멈출 묘안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부시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부담을 국제사회가 나누어 갖는 방법을 절실하게 찾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는 이·팔 유혈충돌에 깊이 개입할 여유가 없다. 샤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판(版)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대(對)팔레스타인 강공책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대인들과 우익 기독교인들이 부시에게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

    모세 야알론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이 “(이·팔 분쟁에 관련된) 모든 것은 부시에 달렸다”고 한 발언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외교적 압력이란 전술적 차원의 개입이야 있겠지만, 중동의 위기를 해소하고 지역 안정을 위한 보다 광범한 전략을 부시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2004년 대선을 앞두고 유대인 지지표를 의식하고 있는 부시는 중동에서 모험을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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