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세계에서 유일한 手製비단 생산지

신장자치구 최변방의 오아시스 호탄

  • 만화가 조주청

    입력2005-05-06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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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유일한 手製비단 생산지

    세월과 함께 물레는 돌아간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를 완전히 합병한 로마가 지중해를 석권하며 그 국력이 하늘을 찌를 때 이상한 옷감이 출현하여 로마의 귀부인들을 몽환의 세계로 빠뜨린다. 그때까지 투박한 아마포와 면 그리고 양모만이 옷감의 전부라고 생각한 귀부인들에게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은 황홀한 촉감, 안개처럼 흐느적거리는 유연한 질감, 천상의 빛처럼 은은한 광채를 뽐내는 천이 나타난 것이다. 로마인들은 깃털처럼 가볍지만 질긴 이 천을 ‘세리카’라 불렀다.

    그것은 바로 비단이었다. 비단은 옷감의 특질도 황홀하거니와 미지의 원산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신비감을 더했다.

    비단은 머나먼 중국에서 불타는 사막을 건너고 만년설이 덮인 산을 넘어 로마까지 왔지만, 중국과 로마는 서로 실체를 몰랐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동서통상로(근세에 실크로드라 이름지었다) 중간을 강력한 파르티아왕국(페르시아)이 길을 막아 중계무역을 하면서 중국과 로마의 직접교역을 차단했던 것이다.

    불의 사막에서 열풍에 휩쓸려 죽은 목숨값, 톈산과 파미르 만년설을 넘으며 얼어죽은 목숨값, 도적에게 빼앗긴 물건값, 거기에 파르티아 중간상의 폭리가 누적돼 로마에 도착한 비단은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았다.

    한때 로마 황제의 명으로 비단 수입을 금지했지만, 다음 황제인 칼리굴라가 비단 속옷을 입으면서 금수령은 무너지고 남자들까지 비단옷에 빠지게 되었다.



    비단의 또 다른 특장은 한없이 다양한 색깔의 염색이 가능하다는 점. 비단 중 가장 고귀하고 비싼 색깔이 자주색이라는 사실은 로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고 불변이다. 그래서 로마의 비단 수입상은 제품화된 비단보다 견사를 수입해서 로마인들의 기호에 맞게 직조 염색을 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手製비단 생산지
    자주색 염료의 원료는, 지중해에서 잡히는 뿔고둥의 호흡관 내벽에 있는 선에서 추출한 노란색 액체다. 소라의 일종인 뿔고둥은 죽자마자 금방 추출해야 하므로 바닷가에서만 작업할 수 있고 껍데기를 벗기기에는 너무 작아 깨뜨려야 한다.

    더구나 뿔고둥 하나에서 나오는 노란 액체의 양은 너무나 미미해 많은 뿔고둥을 잡아야 했다. 또 추출한 노란 액을 햇빛에 노출시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자주색, 적자색, 암자색으로 변하는데 이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그 다음, 3일 동안 소금물에 담갔다가 10일 정도 비단과 함께 약한 불에 끓여야 한다.

    이 뿔고둥의 주산지는 로마의 속주였던 페니키아의 시돈으로, ‘페니키아의 자주색’은 곧 꿈의 색깔이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시돈항(레바논 남부)에서는 최고급 자주색 천연 염료를 채취하느라 뿔고둥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세계에서 유일한 手製비단 생산지
    그런데 금값과 맞먹는 비단은 어째서 중국에서만 생산되었을까? 뽕나무와 누에의 생육 조건이 중국에만 적합한가? 아니다.

    나무는 제각기 특수한 토양과 기후가 필요하다. 그러나 뽕나무만은 극한극서만 피하면 어느 곳에서나 자랄 수 있어 누에를 칠 수 있는 유일한 왕국이란 따로 없는 법이다. 중국도 그걸 알고 있었던지, 뽕나무와 누에 그리고 비단의 제조비법이 해외로 유출되는 걸 철저히 막았다.

    기원전부터 중국의 서역 경영은 창과 칼이 맡았다. 그러나 수많은 오아시스 소왕국을 무력으로 다스리는 데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중국의 왕들은 수많은 후궁들로부터 얻은 공주들을 오아시스왕국의 왕에게 시집 보내 혈연을 맺는 유화책을 병행했다.

    5세기, 중국의 공주는 두 번 다시 못 볼 왕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머나먼 호탄왕국으로 떠났다. 떠난 지 한 달 만에 간쑤성 변방 둔황에 도착, 며칠 동안 여독을 풀고 낙타 가마에 갈아타고 사신들과 함께 곤륜산맥을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이어진 서역남도를 따라가며 공주는 펑펑 눈물을 뿌렸다.

    둔황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중국에서는 우전국이라 불리는 서역남도 최대의 오아시스왕국 호탄에 닿았다. 중국 공주는 왕궁으로 들어가 호탄왕이 마련해둔 호화로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고 눈물자국도 마르기 전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높이 말아올린 머리를 풀었다. 머리 속에서 뽕나무씨와 누에고치가 나왔던 것이다. 중국의 비단 독점 생산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단은 여전히 옷감의 왕이지만 금값은 아니다. 기계화·자동화되어 대량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호탄에서는 중국공주가 가르쳐준 방식 그대로 고치를 가마솥에 삶아 물레로 실을 뽑고 덜그덕 덜그덕 나무베틀로 비단을 짠다. 그들의 말마따나 ‘지구상에서 유일한 수제(手製) 비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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