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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5|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

풍류의 멋 감도는 非山非野의 명당

  • 조용헌

풍류의 멋 감도는 非山非野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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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시디롬에서 주지번 항목을 검색하여 보면, 그는 을미년(乙未, 1595)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표옹을 만난 지 2년 후에 수석합격한 셈이다. 당시 중국사람들은 학사문장가로 초굉, 황휘, 주지번 세 사람을 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주지번이 가장 유명하였다고 한다. 주지번의 벼슬은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라고 소개되는데, 한림원은 당대에 학문의 경지가 깊은 인물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그는 또 ‘한서기평(漢書奇評)’의 서문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주지번은 보통 관료가 아니라 중국 내에서 알아주는 일급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것이다.

그런 주지번이 부사 양유년과 함께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가 선조 39년인 1606년의 일이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정사 주지번의 카운터파트로 대제학인 유근(柳根, 1549∼1627)을 내세웠다. 유근은 선조 20년 일본의 승려 겐소(玄蘇)가 들어왔을 때 탁월한 문장력을 발휘하여 겐소 일행을 탄복케 한 당대의 문사이자, 풍모가 준수하고 언행에 절도가 있던 인물이었다. 유근이 바로 표옹의 고모부였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점이다. 또 유근의 종사관으로는 허균(許均, 1569∼1618)이 발탁되었다. 조선에서도 일급 문사들을 내세워 주지번을 상대케 한 것이다.

이렇게 중국측의 주지번-양유년 조를 상대할 수 있는 조선의 복식조로 50대 후반의 유근과 30대 후반의 허균이 선발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양국 외교관의 만남이지만, 비공식적 차원에서는 한·중 문장가들이 재주를 겨루는 국가 대항 문장겨루기적 성격도 내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해서 당대 중국과 조선에서 난다긴다하는 문장가인 주지번과 허균은 서로 만나게 되었고, 허균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시가 북경의 선비들에게 소개된 것도 주지번과 허균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주지번이 허난설헌의 시에 매료되어 중국에 가지고 가서 알린 것이다.

한편 주지번이 전주 북쪽 50리 거리에 위치한 장암 마을에 있던 표옹을 찾아왔을 때, 표옹의 나이는 51세였다. 표옹은 46세 때 청풍군수를 지냈고, 52세 때에는 경상도 성주의 목사를 지냈다. 따라서 주지번이 방문한 시기는 청풍군수를 지낸 다음 성주목사로 나가기 바로 전해다. 북경의 영빈관에서 만났던 때부터 계산하면 13년 만의 만남이었다. 당시 주지번의 나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주지번이 허균과 개인적으로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감안해볼 때 허균의 당시 나이(38세)와 비슷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이었지 않나 싶다.



송씨 집안의 구전에 의하면 주지번이 한양에 도착해서 전라도 왕궁에 사는 송영구라는 사람의 행방을 물었다고 한다. 이때 주변에서는 “죽었다”고 답변하였다 한다. 그러나 주지번이 좀더 수소문한 끝에 표옹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추궁하니까 “대국인 명나라 사신이 한양에서 시골까지 찾아가면 접대 준비 때문에 가는 곳마다 민폐가 심하니 부득이 죽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주지번 왈 “그러면 말 한 필과 하인 1명만 준비해 줘라. 다른 준비는 필요없다.” 이렇게 해서 전주객사를 거쳐 장암에 도착한 것이다.

주지번은 조선에 올 때 희귀한 책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물론 일생일대의 은인이자 스승인 표옹에게 드릴 선물이었다. 그 책 분량이 80권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책들은 나중에 규장각에 보관되었다.

주지번이 왕궁면의 장암에 위치한 표옹의 집을 방문해서 남긴 흔적은 현재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망모당(望慕堂)이라는 편액이고, 다른 하나는 표옹의 신후지지(身後之地, 묘자리)를 택지해준 것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기를 도와준 은인의 양택에는 망모당이라는 글자를, 은인의 편안한 사후를 위해서는 음택 자리를 잡아줌으로써 은혜에 보답한 셈이다.



3박자 풍수명당인 망모당

편액의 좌측 밑에 ‘주지번서(朱之蕃書)’라고 선명하게 양각돼 있는 ‘망모당’은 글자 그대로 ‘멀리서 추모한다’는 뜻이다. 표옹의 집에서 바라다보면 전방 10리 거리에 표옹 부모의 묘소가 보이는데, 표옹은 부모를 기리기 위해 망모당이라는 글귀를 주지번에게 부탁한 것이다. 망모당이라는 편액은 자나깨나 부모를 생각하는 표옹의 효심을 상징하고 있다.

장암에 있던 표옹 저택의 본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없다. 망모당은 1607년에 표옹이 선친이 묻혀 있는 선영을 망모하기 위하여 지은 별채이자 공부방이다. 현재 이 망모당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망모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망모당 터는 풍수적인 안목에서 볼 때 학업으로 치면 국·영·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명당이다. 대개 국어와 영어를 잘하면 수학이 시원찮고, 수학을 잘하면 영어를 못 하는 수가 있는데, 장암에 자리잡은 표옹 고택은 국·영·수 삼박자가 모두 탁월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국어는 집터 뒤로 연결되는 내룡(來龍)을 말하고, 영어는 집 앞의 안산(案山)이고, 수학은 물(水)의 흐름이다.

먼저 집 뒤의 내룡부터 살펴보자. 장암 일대의 산세는 산과 평야지대가 만나는 접점 지역이라는 점이 특징. 산이 달려오다가 드넓은 김제 만경의 호남평야 지대로 스며들어가는 형태인 것이다. 그 스며들어가는 접점에 표옹의 고택이 터를 잡고 있다. 산에서 들판으로 내려가는 도중이라 산세가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부드럽다는 측면에서는 충청도 산세보다 약간 덜하지만, 집터 부근에 전주에서 김제 만경에 이르는 널따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는 것이 다른 지방과 다른 점이다.

인문지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평야지대가 많다는 것은 교통이 좋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망모당은 교통이 매우 편리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망모당 전방 500m 앞에는 조선시대 파발마가 다니던 길인 호남대로(湖南大路)가 놓여 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호남대로 가운데 전주를 거쳐 여산, 논산으로 가는 구간 중간 지점에 망모당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이 길은 호남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망모당은 풍수적인 입지뿐만 아니라 동시에 교통도 편리한 요지였음이 드러난다.

영남의 400∼500년된 고택들은 대체로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 있는 반면, 충청과 호남의 고택들은 교통이 편리한 곳에 많이 자리잡고 있음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경북 영양의 조지훈 고택, 하회마을 양진당, 충재고택이 있는 안동 닭실마을, 가야산쪽의 한강 정구선생 고택 등은 첩첩 산중에 자리잡은 반면에 예산의 추사고택, 논산의 윤증고택, 망모당 등 기호지방의 고택들은 대체로 대로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조선중기 이후로 기호학파의 노론쪽이 거의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서울에 출장다닐 일이 많았다. 반대로 영남학파의 남인쪽은 정쟁에서 밀려나 외부와 두절된 산속에서 절치부심하며 공부만 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학풍 자체도 주기론(主氣論)쪽인 기호학파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면 주리론(主理論)쪽인 영남학파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기풍이 주택의 입지 선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적인 지형을 놓고 보면 영남지방이 산이 많아 험준한 지형이 많고 기호지방이 산이 적어 평탄한 지형이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표옹고택의 내룡을 추적해 올라가면 소조산(小祖山)에 해당하는 산이 대추산(大楸山)이다. 그런데 이 대추산은 색다른 묘미가 있다. 높이는 해발 300m 정도의 평범한 산이지만, 풍수적으로는 천호산(天護山)쪽에서 내려오는 맥과, 용화산(龍華山) 쪽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 맥이 합쳐진 산인 것이다. 그러니까 대추산의 근원인 천호산과 용화산이 함께 태조산(太祖山)이 되는 셈이다. 물도 양쪽에서 내려와 합수(合水)한 곳을 선호하듯이, 산 역시 양쪽에서 내려온 맥이 합쳐진 곳을 높이 평가한다.

이처럼 양쪽의 맥이 합쳐서 내려온 곳은 한쪽이 고장나더라도 다른 한쪽이 받쳐줄 수 있으므로 그 수명이 오래가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아울러 두 줄기가 합쳐졌으므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도 본다. 아무튼 대추산처럼 소조산 자체가 두 줄기의 맥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곳은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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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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