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2002년 신춘 출판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4-11-17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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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출판계. 그러나 시장은 커지고 유통 경로도 다양화됐다. 40대 독자의 등장, 인문서의 선전, 온라인 서점의 활황, 매스미디어의 적극적 지원. ‘종이책의 종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준비 중인 출판동네 사람들의 희망 찬 육성.
    토요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문고 어린이매장.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진열대 사이사이마다 무릎 붙이고 모여 앉아 동화책, 만화책 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군데군데 엄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와 똑같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발 밀어 넣을 곳을 찾지 못해 다 둘러볼 수 없을 정도다.

    인문서매장 쪽은 어떤가. 어린이매장만큼은 못하지만, 이만하면 자손 번성한 집 환갑잔치만큼은 되겠다. 서른다섯 살, 마흔두 살…? 20대 젊은이보다는 퇴근길에 나들이 삼아 들른 30~40대 ‘아저씨’ ‘아줌마’ 들이 더 많아 뵌다.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얼굴 마주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는 서른한 살에서 쉰 살. 여자보다 남자가 꼭 세 배 많은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직업이 각양각색이다. 기자, 회사원, 프리랜서, 벤처사업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쇼핑 중독이 화제에 오르자 회사원 A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책 ‘사재기’에 재미를 붙였다고. 금요일, 토요일자 신문들을 보면 북 섹션이 따로 마련돼 있다. 그걸 가이드 삼아 인터넷 서점에서 책‘들’을 사는 거다. 전에는 책 좀 읽어야겠다 싶어도 구색 맞춰놓은 서점 찾아나서는 일이 번거로워 주저앉아버리곤 했는데, 요즘은 내복 차림으로 녹차 한 잔 딱 앞에 놓고 앉아 요리조리 손가락 운동만 하면 되니 이 아니 즐거운 일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저마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정보 반, 자랑 반, 게다가 옛날 책은 어떻고, 요즘 책은 어떻고, 하여튼 그 주제로 한참들 입담을 풀어놓았다. 얘기를 종합해보니 대강 이러했다. 봐야 할 책은 많아졌는데 시간이 없다(돈이 없어 못 산다는 사람은 없었다), 갈수록 독서의 필요성이 커짐을 느낀다, 아이들 책값이 어른 책값만큼 든다…. 적게는 한 달에 두세 권, 많게는 열 권 이상씩 책을 산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럼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의 익숙한 아우성은 어떻게 된 건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것이다. 어쨌거나 먹물깨나 들었다는, 또 서른 살 넘어 쉰 살까지의 남녀 8명의 잡담 몇 마디를 기준 삼아 연 2조원 규모(정기간행물·가정학습지 제외)라는 거대 시장의 현실을 넘겨짚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게다. 그렇더라도 그날 모임에서 오간 대화는, 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게 되는 대형서점의 이런저런 풍경들은 ‘뭔가 달라지고 있음’에 대한 사례로 활용할 만큼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는 우리 출판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연말이 되면 각 신문은 한 해의 출판 동향을 정리하는 기사를 싣는다. 2001년도 어김없이 ‘불황’ ‘고전’ 등의 단어들이 대다수 기사의 전면을 장식했다. 한발 더 나아가 ‘시장 붕괴’라는 섬뜩한 용어를 사용한 곳도 있었다.

    그 근거는 이렇다. 먼저 전국 중·소형 서점들이 급감(-11.7%)했다. 한 해 동안 500개나 되는 동네서점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일부 유통업체가 부도를 맞기도 했다. 책 반품률이 증가했으며, 컴퓨터 학습물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장사’가 된다는 아동서·경영서 쪽으로만 출판사의 관심이 쏠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동(17.0%)과 어학(7.7%)을 뺀 전 분야의 신간 발행 종수가 줄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출판 통계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온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매출성장률이 3.3%에 불과하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1990년대 이후 연평균 10% 수준의 성장을 해온 데 비하면 확실히 저조한 기록이다. 단행본 판매량만 두고보면 2000년보다 아예 4.4%가 줄어들었다.

    2001년 출판계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도서정가제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지금 출판사, 유통사,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등은 정가제 실시 여부를 두고 심각한 갈등에 빠져 있다. 정가제가 법적 규제 대상이 되면 신간서적에 대한 인터넷 서점의 10% 이상 할인은 불법이 되고 만다.

    아울러 2002년은 해방 후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가 가장 풍성한 해라고들 하지 않나. 지방 선거, 월드컵대회, 아시안게임, 대통령 선거…. 국민들의 눈과 귀를 앗을 일들이 이토록이나 많은데 고리타분한 책 보기에 매달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더구나 이 영상(映像)과 e-콘텐츠의 홍수 시대에 말이다.

    이게 다일까. 어둡고 부정적이고 한숨부터 새어나오는 이 우울한 진단만이 오로지 현실일까. 많은 출판인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3년 전이었으면 5000권은 팔릴 책이 지금은 1000권도 안 나간다”고 했다. “큰 출판사 몇 곳만 남고 나머지는 다 죽게 생겼다” “정가제가 안되면 덤핑 공세 때문에 유통사도, 서점도 다 망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요즘 10대, 20대들이 얼마나 책을 안 읽는지, 고전·양서들이 어떻게 외면 당하고 있는지를 알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출판인들도 없지 않았다. 어떤 이는 “올해야말로 대한민국 출판 르네상스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나서서 큰소리치지는 않지만 “이제 감이 잡힌다”며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전에 없는 자신감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종이책의 종말’을 운위하며 불안감에 흔들리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 판단 근거로 삼고 있는 ‘현실’은 비관론자들의 그것과 똑같다. 시각이 다를 뿐이다. 같은 통계자료에서도 다른 ‘사실’을 찾아낸다.

    먼저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를 보자. 지난해 신간 발행 종수는 전년대비 1.9%가 줄었지만 발행 부수는 3.7%가 늘었다. 한 권을 만들어도 심혈을 기울이고, 그 결과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는 작은 증거일 수 있다. ‘문학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그 분야 서적의 출간은 0.4%밖에 줄지 않았다. 순수과학 서적 발간이 12.8%나 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출판사 수도 늘었다. 2001년 9월말 현재 1만6801개사로 전년(1만6059개) 대비 4.6% 증가했다.

    교보문고의 매출신장률은 전에 없이 저조했지만 온라인 서점들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다. ‘인터넷 교보문고’만 해도 지난해보다 53.5% 성장했다. 그래서 교보문고 계열 온·오프라인 서점 전체의 2001년 매출신장률은 13.5%. 예년보다 오히려 나은 수준이다.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지난해 매출신장률은 343%다. 1999년 12억2000만원이던 것이 2000년 150억원, 2001년에는 515억원으로 급증했다. 월별 매출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 지난해 12월에는 78억원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3억원어치 책을 팔고 있다는 소리다. 업계 2~4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와우북’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의 1일 매출액도 8000만~1억원에 이른다. ‘예스24’ 강병국 이사는 “지난해 9월 손익분기점을 넘어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 매출목표액은 약 1000억원이다. 월평균 매출신장률이 10~25%임을 감안하면 초과달성도 가능한 일”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출판시장은 성장하고 있는가. 출판시장의 파이(pie)가 커지고 있다는 눈에 띄는 증거는 없다. 대형서점의 매출이 오르고 온라인 서점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동네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업계는 예부터 제대로 된 통계가 없기로 유명하다. 낙후하고 일그러진 유통 시스템 때문이다. 21세기에도 4~5개월짜리 문방구 어음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곳. 그럼에도 출판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시장 성장세가 몸으로 느껴진다, 잠재독자의 규모와 개발가능성이 피부에 확실히 와 닿는다”고 했다. 이들을 고무시키고 있는 요소는 어떤 것들인가.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은 또 무엇인가.

    중앙일보 조우석 출판팀장은 종합일간지 북 섹션 담당자 중 유일하게 2001년 출판계에 A학점을 준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출판계는 ‘장사’를 잘했다. 매출액이 특별히 신장해서가 아니고 그 내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판 르네상스를 예감하는 일부 업계 인사들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현실인식이다. 희망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른바 386세대, 그러니까 30~40대가 도서시장의 핵심고객으로 떠오르고 있음이다.

    단행본 출판사 민음사에는 세 개 자회사가 있다. 아동물을 생산하는 비룡소, 실용서·판타지서적 중심의 황금가지, 과학서 전문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 3개 자회사를 합친 민음사의 지난해 매출 총액은 약 200억원이다. 2000년에 비해 평균 20% 이상 성장했다. 이중 문학서와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펴내는 민음사가 10%, 3개 자회사가 30% 가량의 성장세를 보였다. 민음사 박상순 주간은 “우리 매출액의 80%는 30~ 40대 독자가 올려준 것”이라고 했다.

    민음사에 이어 단행본 매출 2위를 자랑하는 김영사. 지난해 매출총액은 156억원이다. 1998년에 22억원, 1999년이 55억원, 2000년에 97억원에서 2001년 드디어 15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매년 30~50%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사의 고세규 편집팀장 역시 박상순 주간과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해 김영사가 펴낸 책 중 반응이 특히 좋았던 것으로는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등이 있다. ‘부유한 노예’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에 대한 반응도 좋다. 물론 ‘토익 답이 보인다’ 같은 영어학습서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역시 대다수 책의 주요 독자는 30대 전후 사람들이다.”

    예스24의 회원 구성은 어떨까. 1위는 20대 후반(23.7%)이지만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각각 30대 전반(22,94%)과 30대 후반(15.5%)이다. 30대 전후반을 합치면 37.99%로 20대 전후반을 합친 수치(36.12%)보다 오히려 1.87% 앞선다. 40대 전반의 비중은 8.56%로 아직 20대 전반(13.05%)보다는 적은 수치이나 성장세가 돋보인다.

    3045세대(30~45세)의 급부상은 지난해 인문·사회과학 도서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부문 책의 예상 밖 선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가장 화제가 된 책은 ‘교양’(들녘)이다. 768페이지에 정가 3만5000원. 들녘출판사 편집진은 이 책을 만들면서 분책(分冊)할 것인가를 두고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이렇게 두꺼운 책을 과연 읽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어느 중간을 끊을 수 없어 결국 벽돌 두께의 책이 되고 말았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몇몇 신문이 호평 일색의 소개글을 대문짝만하게 실어주었다. 이어 주문이 밀려들었다. 지난해 말까지 이 책의 판매량은 2만부. 어쩌면 10만부 판매도 가능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예측이다. 인터넷에서 ‘교양’을 산 독자들의 60%는 35세 이상이었다.

    역시 589쪽, 2만3000원의 두께와 가격을 자랑하는 정치철학서 ‘제국’(이학사). 이 책은 내용마저 난해한데도 매일 100권 이상의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 질 들뢰즈의 대표작 ‘천의 고원’(새물결) 또한 어려운 내용, 4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점가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깐수’로 더 잘 알려진 이슬람학자 정수일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1, 2’ ‘씰크로드학’(이상 창작과비평사), ‘고대문명교류사’(사계절)도 권당 3만~4만3000원에 이르는 가격에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상의 책들은 모두 반짝 팔리고 말 것들이 아닌, 해가 갈수록 쇄를 거듭하며 출판사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 분명한 양서들이다. 이학사, 새물결, 동녘, 들녘, 궁리, 돌베게, 삼인, 당대, 이산 등 여러 인문서 출판사들은, 지난해 이렇듯 뚜렷한 색깔을 지닌 양서 생산으로 매출이나 자신감 면에서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예스24의 2001년 분야별 매출 비율을 살펴보자. 1위는 문학(14.46%)이다. 가장 큰 힘을 발휘한 책은 ‘상도’(여백미디어)와 ‘해리포터’시리즈(문학수첩)이다. 2위는 유아/어린이책(13.87%)이 차지했다. 3위는 경제·경영서(10.36%)다. 4위를 차지한 분야는 ‘컴퓨터와 인터넷’(8.22%). 하지만 예스24 강병국 이사는 “사실상의 3위는 인문·사회 분야”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2.68%), 종교(2.46%), 사회(2.25%), 인문(2.22%), 예술(1.71), 인물(1.14%), 대중문화(0.09%) 등으로 세분돼 있어 그렇지,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볼 수 있는 분야의 매출 비율이 13.36%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사실 오랜 기간 책 소비의 주력부대는 ‘20대 초중반 미혼 직장여성’으로 여겨져왔다. 이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만 ‘대박’이 터진다는 것은 우리 출판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변화가 일고 있다. 가벼운 문예물 등 베스트셀러로 소문난 책에 무비판적으로 몰려드는 이들 대신, 자신의 욕구와 기호를 분명히 알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으며, 단지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만으로도 기꺼이 독서에 많은 시간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비싼 책 값, 무거운 내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독특할 것을, 깊이가 있을 것을, 만듦새가 고급스럽고, 문장이 매끄러우며, 감동을 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들을 두고 한 출판인은 “좋은 책이라면 분야와 상관 없이 언제고 살 준비가 되어 있는 1만 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신문 북 섹션이 상대적으로 인문·사회서 소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30, 40대가 새삼 서점가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1970~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은 진지한 책읽기에 익숙한 첫 세대다. 운동을 위한 이론 학습 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독서 훈련을 쌓았으며, 계간지와 사회과학 서적의 홍수 속에서 ‘삶의 길은 책에 있음’을 몸으로 실감했다. 이들은 학창시절 ‘도서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다 읽어내고 말리라’고 다짐하거나, 바로 그렇게 사는 선배와 친구들을 존경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한동안 독서의 방향을 잃고 지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어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광풍, 인터넷·디지털·각종 영상매체와 관련한 오락성의 추구는 이들을 독서와 더욱 멀어지게 했다. 생존의 문제는 너무도 절박한 것이어서 이들은 모든 시간과 정력을 생활의 안정을 찾는 데 바쳐야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환기가 왔다. 지식인만이 새 경제체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지식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엇보다 책을 읽어야 한다. 바야흐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실용 정보만으로는 이 복잡다기한 세상을 나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주도적으로 헤쳐갈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가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자가 앞서간다. 그것이 21세기의 생존법칙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얼마 전 벤처기업인들과 중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는데 무섭다 싶을 만큼 책을 많이 읽더라.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이 인문서만을 읽는 것은 아니다. 자기 계발과 관련한 경영·경제서의 가장 큰 구매층이기도 하다. 또한 생활 수준 향상, 주5일 근무제의 도래와 더불어 ‘삶의 질’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하게 된 첫 세대이며, 그래서 여행서와 예술서, 삶의 지혜를 담은 영혼의 책들에 절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퇴직 후에도 20~30년 계속될 이들의 노후에는 모르긴 몰라도 좋은 책과 멋진 영화가 가장 친근하고 믿음직한 벗이 돼줄 것이다.

    요즘 출판업계는 이들 3045세대를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서출판 푸른숲 재직 시절 명(名)기획자로 이름을 날린 김학원씨. 지난해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를 차린 그는 창업을 위한 시장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을 격주간 출판전문지 ‘송인소식’ 70호에 실린 대담에서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자꾸 40대 얘기를 하는데, 교보문고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인문서 신간 매대에 와서 신간을 체크하는 사람들이 300명 정도 돼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인문서 신간을 베스트셀러로 움직여주는 사람은 정확히 40대예요. 예를 들어 10명 정도가 서 있으면 그 중에 대학생은 1명이나 될까. 그 사람들 구매 스타일이 (신문) 서평을 다 보고, 괜찮은 것 있으면 오려놓고, 그 중에 60, 70%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정보를 읽어보죠. 그렇기 때문에 책이 어제 나왔는데 서점에는 왜 없느냐고 물어보는 독자도 있어요. 그만큼 마니아적인 정보력을 지닌 층들입니다. 교보에 300명 정도 면 전국에는 1000명 정도가 그렇게 일상적으로 서점에 들른다고 보면 돼요.

    이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교수도 일부 있지만 그보다 오히려 일반 직장인이나 기업인, 전문 직업인이 많아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지요. 이 세대는 쉽고 재미있는 코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책을 만들어주면 호평을 합니다. 직장에서는 30대, 가정에서는 다시 주부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화적 생산을 하는 소비자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문서만 만들면 최소한 3000~4000권은 빠진다, 그리고 일정하게 대중성을 가지게 되면 5000~1만부 이상은 팔린다고 봐요.”

    그래서 신생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상정한 주 독자층은 40대다. 이들을 주인공 삼아 펴낸 첫 책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는 언론과 시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아동서적 분야의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도 30, 40대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 아동서 시장의 호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몇몇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 6위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가나)이다. 8위는 그림책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북뱅크), 11위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사계절), 13위는 ‘두드려 보아요! - 보아요 시리즈1’(사계절), 15위는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 16위는 ‘기차 ㄱ ㄴ ㄷ’(비룡소), 17위는 ‘달님 안녕’(한림)이다. 이중 현재 8권까지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는 신화 바람까지 겹쳐 총 100만권 정도가 팔려나간 지난해 최대 히트상품 중 하나다. 아동물 시장은 이제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는 평범한 원칙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가 됐다. 양서 고르는 안목을 지닌 부모 세대의 등장, 어린이도서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20년 가까이 꾸준히 진행돼온 독서운동의 결과다.

    방송, 신문 등 매스미디어가 책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책을 홍보하고 싶어도 길이 없었다. 신문 문화면은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성격을 띤데다 지면도 협소했다. 방송이야 언감생심,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모든 종합일간지에는 북 섹션이 따로 있고, KBS·MBC·SBS 할 것 없이 책 소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특히 MBC ‘!느낌표’ 같은 오락프로그램이 독서운동에 주목한 것은 놀라운 변화다.” 황금가지 장은수 편집장의 말이다.

    실제로 ‘!느낌표’에 소개된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창작과비평사)과 ‘봉순언니’(푸른숲)는 신간이 아님에도 온·오프라인 서점들에서 무서운 기세로 팔려나가고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경우 30만권 가까이 팔렸으며 ‘봉순언니’도 하루 1만~2만부씩 주문이 밀려들어오는 형국이다.

    TV와 책의 만남은 유럽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일. 매주 금요일 밤 프랑스2TV는 ‘부이용 드 퀼튀르(Bouillon de culture)’라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저자들을 여러 명 초청해 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토론도 하며 주요 부분을 발췌해 읽어준다. 이 프로그램의 생명은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의 탁월한 진행이다. 그저 말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치밀하고 방대한 독서로서 다져진 지적 안목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피보 같은 일급 에듀테이너, 혹은 BJ(북 자키)가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TV가 아무리 책을 말하고 신문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해도 좋은 책이 없다면 사람들은 책을 외면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독자들은 행복하다. 때깔 곱고 정교하고 아이디어가 살아 숨쉬는 좋은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작자가 유명인이니까’ ‘워낙 잘 알려진 책이니까’ 혹은 ‘읽지 않으면 저만 손해니까’ 하는 배짱으로 성의 없이 만들어진 책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수준미달인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깨나 알려진 출판사 것치고 모양새 때문에 사고 싶은 맘이 없어져버리는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출판대국인 일본 전문가들도 한국 사람들 책 만드는 솜씨며 속도에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알맹이’의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글 쓰고 만드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음사 박맹호 사장은 “문화적 소양이 높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우수 인력들이 출판계로 밀려들고 있다. 박사 실업자 수가 1만3000명이나 되는 나라다. 할 말이 넘쳐나고 글 쓸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저술·번역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가는 시점에서 출판시장 또한 영화시장처럼 활성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민음사의 경우 편집진 전체가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갖춘 이들이다.

    우수한 품질은 또한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아동서 중 양질의 책이 많은 것도 시장 확대와 더불어 너도나도 어린이책 출판에 뛰어들면서 그만큼 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 원리는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산’의 강인황 사장은 한 신문에서 주최한 송년 방담에서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정성들여 만들면 독자들이 알아봐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말을 했다.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좋은 책에는 반응이 있게 마련”이라거나 “목숨 걸고 만들면 독자들이 본다” “시대를 읽어내는 책을 만들면 독자들이 선택한다”는 등의 대화가 오갔다. ‘사람들이 책을 외면한다면 그건 독자 탓이 아니라 출판인의 실력 부족 탓’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영상시대에도 좋은 책은 꼭 팔린다’는 믿음의 확산이야말로 어쩌면 지난해 출판계가 거둔 최대의 성과인지도 모른다.

    출판시장의 변화를 야기한 업계 내부의 최대 이슈는 인터넷 서점의 고속성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온라인 서점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책값이 오프라인 서점보다 10~30% 싸다. 원하는 곳까지 무료로 배달해준다. 방대하고 유용한 정보를 빠른 시간에 섭렵할 수 있다. 자연히 독서 인구의 상당수가 인터넷 서점으로 옮겨갔고, 이는 4~5년전부터 시작된 동네 서점의 몰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요즘 한국서점조합연합회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서점들은 인터넷 서점의 최대 강점인 높은 할인율을 ‘다운’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맞선 온라인 서점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높은 할인율의 포기는 곧바로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심재권 의원(민주당) 등 여야 국회의원 32명이 ‘발행한 지 1년 이내의 신간은 10%까지만 할인을 허용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고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공동발의해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서점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인터넷 서점의 지나친 할인 경쟁으로 수익이 극도로 악화돼 문 닫는 서점이 속출하고 있다. 동네서점의 몰락은 출판 및 출판판매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또 출혈 경쟁이 계속될 경우 출판사들은 할인율을 맞추기 위해 정가를 인상하게 돼,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은 “동네서점 퇴조의 근본 원인은 고객들의 중·대형서점 선호에 있다. 또 동네서점과 인터넷서점은 시장이 별로 겹치지 않는다. 인터넷서점은 어음이 아닌 현금 결제로 출판사 재무상태 개선에 기여했고, 결정적으로 우리 출판산업의 총량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반대 논리를 폈다.

    양측 주장에 대한 출판사들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한 중견 출판인은 “겉으로는 ‘공동 생존’ 혹은 ‘오랜 동료(서점상)와의 의리’라는 명분에 따라 정가제 도입을 찬성하는 반면, 속으로는 시장 위축과 가격 자율권 축소, 현금 결제 중단 등을 우려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만큼 정가제 도입과는 별 이해관계가 없다면서도 “인터넷 서점이 유통 질서 확립에 기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마트, 까르푸 등 대형 할인점의 비중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출판계가 살아남으려면 어차피 유통은 과학화, 다각화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가제 도입 유무가 아니다. 유통 현대화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유통 외에도 출판계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뒤집어보면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과제들이요 ‘발전 가능성’이다.

    30, 40대 독자가 늘었다지만 젊은 세대가 책을 멀리한다면 출판 르네상스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주 논의되는 것이 청소년 시장의 개발이다.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준비하고 기다리면 3년 후쯤에는 반드시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금 왕성한 독서욕을 보이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때쯤에는 중·고등학생으로 자라 있을 것이다. 부모 세대의 책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고, 독서 양이 대학 입학에 끼치는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도깨비 같은 10대의 욕구와 의식구조를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획력만 뒷받침된다면 승산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출판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편집자의 기획력은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런만큼 상상력과 인문학적 소양, 상업적 감각까지를 두루 갖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출판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현실화, 노동 조건 개선 등 출판동네로 엘리트를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및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판이 영화나 음반산업에 못지않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창조적 작업임을 과시할 필요도 있다. 직원 1인당 매출액이 5억원에 달하는 김영사의 고세규 편집팀장은 “언제까지 출판사가 드라마 속 별 볼일 없는 직업의 대명사가 돼야 하느냐”며 “부모가 자녀에게 ‘너 그렇게 공부 안해서 어떻게 출판사 들어갈래’하고 타박하는 그날까지 한번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는 말을 농 삼아 덧붙이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판 형태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공사는 올해 파트워크북 출판을 시작한다. 시공사 조병철 편집부장은 “이탈리아 디 아고스티니사와 계약을 맺었다. 타이틀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마켓 테스트는 가정용 의료백과사전으로 했다. 시장 반응에 따라 자체 제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과사전을 주 단위로 쪼개 출판한다 해서 분책백과라고도 불리는 파트워크북의 ‘종주국’은 이탈리아다. 유럽 등지에서는 벌써 10년 전부터 전체 출판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출판 형태다. 일본도 다르지 않아 각 주제 당 창간 부수가 50만~80만권에 이를 정도다. ‘재현 일본사’ ‘주간 세계의 박물관’ ‘일록 20세기’ ‘고우! 피아노’ 등 주제에 따라 CD, 모형, 화집, 연습용 건반 등이 자유자재로 첨가되는 파트워크북은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 형태이자 ‘단일자료 다품종 생산(One Source Multi Product)’의 한 전범이다.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출판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5대 거대출판사가 시장의 8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상위 20대 기업까지로 확대하면 점유율은 90%를 넘어선다. 우리라고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중소형 출판사로서는 자기만의 색깔과 전문분야, 장인정신을 지닌 강소형(强小型) 전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다시 문제는 기획력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출판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성장형 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 최대의 저작권 대행사인 에릭 양 에이전시의 양원석 사장은 “출판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 시장이 죽었다지만 올해는 다시 회복세를 탈 것으로 보이고, 논픽션, 사진집·여행서·요리책 등 여가형 도서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행본 출판계의 뉴프런티어’ 김영사 박은주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21세기는 지식사회다. 그러므로 출판계의 앞날은 ‘정말!’ 밝다. 영상산업이 출판산업의 발전을 억누르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영상은 영상대로, 출판은 출판대로 서서히 제 영역을 확대해갈 것이다. 문제는 잠재 독자층을 구매층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뛰어난 기획·편집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냐다. 필자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죽은 글을 쓰는 이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책을 낼 때는 유익한가, 차별이 되는가, 특·장점이 분명한가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 책은 반드시 팔리게 되어 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이란 넋두리는 20년 전부터 해온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엄살은 통하지 않는다, 아니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출판사는 시대의 변화, 국민의 의식 및 생활구조 변화에 맞는 책을 펴냄으로써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출판계에서 경쟁이란 없다. ‘자기가 만든 자기 책이 자기 독자를 만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학습서 시장에서나 통하는 일이다.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소비가 소비를 창출할 가능성이 매우 큰 독특한 산업인 것이다. 출판은 또한 유일하게 과소비가 칭찬받는 분야다. 그러므로 출판사는 많을수록 좋다. 몇몇 출판사가 시장을 다 틀어쥐는 것은 옳지 않고 실익도 적다.

    나는 정가제 시행을 적극 찬성하지만 작은 서점들도 나름의 장점을 키워나가야 한다. 동네 문화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규모가 작다 해서 무조건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사장은 독서운동의 중요성과 신문·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회가 좋은 사회고 앞선 사회다. 책을 사자. 그리고 읽자.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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