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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기행

둔황(敦煌) 동굴벽화 화가 서용

“이역 땅에서 모래바람 맞으며 그려낸 건 내 민족의 뿌리였어요”

  • 글: 조희숙 자유기고가 gina05@hanmail.net

둔황(敦煌) 동굴벽화 화가 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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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곳이라 고생이 많았을 거라고들 하지만 제겐 서울보다 더 편한 곳이 둔황이에요. 겉치레나 모양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편했죠. 먹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말고는 신경 쓸 일이 없었고요. 게다가 사람들이 하나같이 순박하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고요. 서울에 나온 지 몇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걱정이에요.”

7년 공부한 유일한 외국인

중국은 이미 1945년 둔황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벽화를 모사하며 색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연구소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소속 연구원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다. 바꿔 말하면 둔황연구소에는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적어도 서용씨가 둔황연구소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둔황에 머물면서 벽화를 연구할 방법을 모색했어요. 생각 끝에 중앙미술학원 학과장의 추천서 등 몇 군데 추천서류를 둔황연구소에 제출했죠. 그제야 ‘외국인 명예연구원’ 신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둔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 공안에서 그를 찾아왔다. 허름한 숙소로 데리고 가더니 둔황에 온 경위와 목적 등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한마디로 취조를 당한 것이다. 공안에서는 외국인으로서 학생비자의 유효기간도 끝난 상태에서 둔황에 머무는 것은 위법이라고 통고하고 거액의 벌금(우리돈 150만원 정도)을 부과했다. 억울했지만 수업료 낸 셈쳤다. 그 후로는 공안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고 한다.



“불법적인 체류였던 셈이죠. 계속 이런 상태로 있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벽화를 연구하는 데 문제가 많아질 것 같아 마땅한 학교를 알아보았어요. 때마침 둔황연구소와 난주대학교가 연계해 둔황학 박사코스가 신설됐죠.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학생 신분을 얻은 후 둔황연구소에 합법적으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둔황에 자주 연수를 오는 일본인들도 대개 3개월정도 체류하고 돌아가요. 아마 7년이라는 긴 시간 이곳에서 공부한 외국인은 제가 유일할 겁니다.”

둔황벽화 연구에는 또다른 어려움이 따랐다. 중국인은 동굴 전체가 벽화로 둘러싸인 막고굴 안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외국인은 굴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벽화 모사를 토대로 벽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는 그로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벽화를 찍은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고,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직접 들어가서 일일이 스케치해 옮겨왔다.

가장 힘든 것은 벽화 고유의 색상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사진 속 색상이 실제 색상과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색을 찾아서 일일이 벽화의 색과 대조하는 작업을 반복했는데 손공이 엄청나게 많이드는 일이었다.

외국인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는 중국의 문화관리 정책이 야속했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도굴 방지를 위해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둔 막고굴의 야경을 바라보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불 켜진 벽화 아래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중국 친구들을 부러워할 때마다 그들은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더라고요. 공무원 신분인 그들은 각자 해결해야 할 할당량이 있거든요.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저와 달리 그들에겐 벽화 모사 작업이 ‘일’이라 스트레스가 심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40~50점의 동굴 벽화를 꼼꼼하게 모사했다. 그는 지난 8월 서울옥션센터에서 ‘영원한 사막의 꽃-돈황벽화’라는 테마로 국내 첫 개인전을 가졌다. 둔황 벽화를 흙판 위에 옮긴 그의 작품은 많은 이의 시선을 끌었다. 막고굴 벽화를 그대로 재현한 작품과 단순한 모사를 넘어 새로운 벽화로 재해석한 작품 40점이 전시됐다. 특히 그의 작품은 20년 이상 모사에만 얽매여온 중국 연구원들에게도 새로운 창작의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뚝심으로 밀어붙인 인생

중국 유학 1세대인 그는 미술학도로서는 두 번째 중국 유학생이다. 첫 번째 유학생은 그의 부인으로 현재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서양벽화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유학을 떠나던 1992년은 한·중수교가 이뤄진 해로 유학을 위한 절차가 꽤나 복잡했다고 한다. 중국이 적성국가로 분류된 탓에 외무부, 교육부는 물론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까지 찾아가 허가를 받아야 합법적인 유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건립시 벽화 작업에 보조로 참여했던 숨은 공적까지 총동원해 중앙미술학원 유학 허가서를 받아냈다.

맨손으로 중국 유학을 떠난 일이나,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둔황연구소에서 연구한 것만 봐도 뚝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보인다. 중국에서 가진 두 번째 전시회만 봐도 그렇다. 그는 단돈 10만원으로 전시회를 밀어붙인 용감한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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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희숙 자유기고가 gina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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