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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18

빅토리아 여왕의 술 와인과 스카치위스키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빅토리아 여왕의 술 와인과 스카치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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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술 와인과 스카치위스키

윈저 다이아몬드 주빌리 위스키.

그런데 그해 11월 앨버트는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있던 장남 에드워드가 더블린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 그곳의 한 여배우와 동침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장남의 무절제한 행실에 화가 난 앨버트는 즉시 케임브리지로 달려가 아들을 훈계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 다녀온 후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당시 유명한 의사 저너(William Jenner·1815~1898)는 장티푸스 진단을 내렸고, 결국 앨버트는 1861년 12월 14일 빅토리아 여왕과의 21년간 결혼생활을 뒤로하고 숨을 거둔다.

남편이 허무하게 갑자기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의 상심은 매우 컸다. 그는 앨버트가 죽게 된 데는 장남 에드워드(훗날 에드워드 7세, 1841~1910, 재위 기간 1901~1910)의 애정 행각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원망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은 왕위계승권자인 에드워드에게 오랫 동안 국정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는 5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내각의 회의록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앨버트의 사망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스스로 미망인을 자처하며 평생 검은 옷을 입고 지내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런던에도 거의 들르지 않고 윈저 궁(宮)에 칩거하며 실질적으로 정무에서 손을 뗀 채 생활했다. 앨버트는 이렇게 빅토리아 여왕의 애도 속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영국 왕실은 오늘날의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새로운 남자 존 브라운

빅토리아 여왕은 정치적으로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영국의 국내외 정세에는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유능하고 충성심 싶은 각료들이 그의 치세를 영광스럽게 만들어나갔다. 이 중 특히 후세에 명총리로 평가받는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와 글래드스톤(William Gladstone·1809~ 1898)은 각각 보수당과 자유당(노동당)의 대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양당 체제의 의회 민주주의를 확립해 영국을 정치적으로 안정시켰다. 디즈레일리는 영국의 식민지 확대 정책에 중점을 두고 1876년 5월 1일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의 여황제’라는 공식 직함을 헌정하면서 당시 대영제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재임 기간 내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정치 원칙을 따랐다. 특히 앨버트의 사망 이후에는 정무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국가 사안의 결정권만은 끝까지 손에 쥐고 국정을 조율해나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속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일반 대중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앨버트의 사망 이후 빅토리아 여왕을 이야기할 때 존 브라운(John Brown· 1826~1883)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존 브라운은 투박하면서 강건한 스타일의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고지대(하이랜드) 출신 남자였다. 그가 빅토리아 여왕이 스코틀랜드에 들렀을 때 그의 야외 활동을 보좌하는 개인 시종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존 브라운은 빅토리아 여왕의 우아한 품격에 매료되었고, 빅토리아 여왕도 지금까지의 궁중 남자들과는 다른 매력과 성실성을 지닌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861년 앨버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빅토리아 여왕이 존 브라운과 가까워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빅토리아 여왕은 허전한 마음을 그를 통해 달랬다. 이후 그들의 관계는 존 브라운이 1883년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빅토리아 여왕은 공개적으로도 수차에 걸쳐 주위 사람들에게 그를 크게 칭찬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갖가지 소문이 횡행했다. 심지어 두 사람 간의 비밀 결혼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을 ‘미세스 브라운(Mrs Brown)’으로 격하해 부르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러나 증거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튼 빅토리아 여왕과 존 브라운 간의 일화는 두고두고 세간의 흥미를 끄는 소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97년에는 ‘미세스 브라운(Mrs Brown)’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존 매든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주디 덴치가 빅토리아 여왕 역을, 그리고 빌리 코놀리가 존 브라운 역을 맡았다. 존 브라운은 당시 그들 간의 관계를 이상하게 해석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여왕을 보호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어쨌든 빅토리아 여왕의 만년은 행복했다. 1887년 즉위 50주년 행사(Golden Jubilee)를, 1897년에는 영국 역사상 최초인 즉위 60주년 행사(Diamond Jubilee)를 성대하게 치른다. 보어전쟁이 한창이던 1901년 1월 22일 빅토리아 여왕은 64년(정확하게는 63년 7개월 2일)간의 치세를 마치고 세상을 떠난다. 그의 곁에는 60세라는 늦은 나이로 왕위를 계승한 장남 에드워드 7세(Edward VII)와 장손으로 독일 황제인 빌헬름 2세(Wilhelm II)가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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