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골프가 애인보다 좋은 이유 5가지

골프 반대론자가 골프광으로 변절한 사연

  • 고영분 tyu77@chollian.net

    입력2006-10-13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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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골프를 배웠지만 어느새 골프를 짝사랑하게 돼버린 사람이 들려주는 골프 이야기. 골프처럼 완벽한 운동은 없다는 그도 지나치게 비싼 골프채, 진정한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골프장의 ‘부킹전쟁’ 등 잘못된 우리나라의 골프문화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
    “얘, 계준네 엄마도 골프치느라 정신 없댄다. 동대문 도자기집 아줌마도 치고…. 요즘 다들 골프 배운다고 난리인데 나도 골프 좀 배워볼까?” 며칠 전 아침 식탁에서 어머니가 넌지시 물으셨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일단 골프채를 잡는 순간 고통은 시작되는 거예요. 그런 걸 왜 하려고 그래요?”

    어머니가 하고 싶다는 데 뒷받침은 못해드릴지언정, 초장부터 반대하고 나서다니 나는 못된 딸일까? 아니다. 나는 착한 딸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는 지하철 노선표 보는 것 도 무척 어렵고 두려운 일로 여기는 분이다. 그런 분이 골프에 입문해서그 복잡한 백스윙이니, 스윗 스팟이니, OB 구역, 해저드, 2벌타….늘그막에 그런 용어를 이해하셔야 하다니…. 레슨 프로 앞에 서 쩔쩔매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500원 더 싼 배추를 사기 위해 백화점 문열기 전부터 줄서 계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어떻게 한달에 수십 만원의 비용을 감수하며 골프를 시작할까? 아마 큰맘먹고 골프채를 장만했다 해도 그것을 유지하려면 기백만원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면 되레 마음에 상처만 받고 그만두실 분이다. 그리고 내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수반하게 될 자신에 대한 질책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골퍼치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끊임없이 욕심 내게 만들고,좌절하게 만들고, 원하는 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 보는 골프와 직접 치는 골프의 괴리감도 적지 않 다.온실속 화초 같은 내 어머니가 그 괴리감에 상처입으실까봐 걱정이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와 골프를 연결시키고 싶지 않은 나…. 내가 겪은 골프는 쉽지 않았고 낯설 때가 많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골프를 지금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난 어머니에게 골프를 권하지 않았다



    나는 골프와 친하지 않았다. 4년 전, 심야에 하는 TV 골프 프로그램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나였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차라리 드라마나 해주지 않고…. 그러던 내가 방송에서 골 프 프로그램의 구성을 하게 된 것이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까지 ‘파72’가 뭔지도 몰랐다. 파3홀이고, 파4홀이고 홀인원은 아무 때나 다 터지는 것인 줄 알았다.

    극과 극은 ‘순간’에 통한다고 했던가? 어쩔수 없이 골프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난 여전히 “골프는 비난받아 마땅한 운동”이라고 단언했었다.촬영장소가 꼭 골프장이어야 했던 그 여름.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면 방송국 카메라는 어디서나 쌍수 들어 환영해야 했는데…. 하지만 골프장이라는 동네는 달랐다. 취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촬영불가를 외쳤다. 청와대 촬영하기가 오히려 쉬울 듯했다. 수십통의 전화끝에 겨우겨우 S골프장에서 촬영허가를 얻었다. TV화면으로만 보다가 난생 처음 본 골프장.

    난 그 경관에 입이 딱 벌어졌고, 그 푸르름에 질식할 듯했다. “오호! 이좋은 데를 자기네끼리만 누리려고 그렇게 촬영불가를 외쳤군.잔디 백평 보기도 힘든데 순 잔디로만 몇만평. 게다가 저 넓은 잔디밭에 네댓명만이 걸어 가는군. 저건 또 뭐야. 누군 골프 치는데 누군 백 메고 따라가고….”

    골프는 역시 생각하던 대로 불평등한 운동이었고, 나와는 좀처럼 친해질수 없는 운동으로 치부되었다. 골프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골프깨나 안다는 MC는 머리 쥐어짜며 밤새 쓴 대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었다. “골프치기 좋은 날씨입니다”라고 지극히 정상적인 멘트를 써놓으면 “날씨와 스코어가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바꿔버린다. 그러나 그런 미운털에도 불구, 얼마후 엔 내가 골프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골프를 쳐야 대본을 제대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반대론자의 변절

    난 중고채를 얻어 머뭇머뭇 연습장에 등록했다. 6개월 후 난 골퍼로서 골프장을 찾았고 그리고 즉시 변절했다. 그렇게 안쓰럽게만 생각하던 캐디들도 골프에 대해서는 나에게 한수 조언할 수 있는 엄연한 전문직업인이었다. 직접 겪어본 필드는 불평등의 세계라기보다 지친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또하나의 자연’일 뿐이었다.

    그후 몇년동안 나는 골프에 빠져들었다. 골프라는 운동은 사람을 끄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곤 했다. 골프가 연인보다 매력있는 몇가지 이유를 들겠 다.

    1)앞에 없으면 눈에 선하다 -사랑에 빠지면 눈에만 선하지만 골프는 몸까지 근질거린다. 거울 앞을 그냥 못 지나쳐 빈스윙이라도 해봐야 하고 연필만 잡아도 저절로 그립이 쥐어진다. 필드라도 다녀온 날에는 천장 구비구비 파 잡은 홀이 그려지고 굿샷을 내던 그 임팩트 소리도 귓가를 맴돈다.

    2)함께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데이트처럼 골프도 그렇다. 첫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 18홀을 마칠 때까지 네댓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고 집에 돌아가기가 못내 아쉽 다.

    3) 우울할 때 위로받고 싶은 상대로 떠오른다 -그렇다. 난 우울하면 드라이버를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태에서 휘두르는 스윙은 대부분 미스샷으로 연결되지만 기쁜 순간이 아닌 우울한 순 간에도 떠오를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건 그만큼 강력하다는 얘기다.

    4)수시로 질투심이 생긴다 -좋아하지 않으면 질투도 없는 법! 채 잡은지 얼마되지도 않은 사람이 내 샷을 압도할 때, 내 채가 다른 사람 손에 들려 거리를 더 내고 있을 때 나는 질투심에 속이 쓰려온 다.

    5)바쁘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바빠서 못 만난다는 말은 마음이 식었다는 말. 잠잘 시간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신기하게도 연인 만날 시간은 낸다. 내 골프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첩첩산중 쌓여있는 약속이라도 갑자기 밀고 들어온 골프 앞에선 모두 뒤로 밀려난다.

    골프에 배타적이던 사람일수록 골프를 접하고 나면 깊이 빠져든다고들 한다. 내가 아는 분 중에 환경운동가 한 분이 있다. 골프장 설립을 반대하며 골프장측과 싸우느라 팔을 물어뜯기도 하던 분이다. 하 지만 골프를 접한 그 분은 지금 한강 시민공원에 파3홀 코스를 만들자고주장하고 다닌다. 나 역시 그런 사례다. 극과 극이 통하게 할수 있는 운동, 골프의 힘은 대단하다.

    내가 만난 골퍼들

    나는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 많은 골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골프장이 지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가 될 수도, 황폐한 뒷골목보다 못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준 두 팀이 있다. 퍼블릭 코스에서 한팀이 된 세명의 사나이. 나와 한팀이 된 세명의 사나이. 머리에는 그렉 노먼 모자가 빛나고 있었고 옷에는 펭귄, 클럽도 모두 신제품으로 반듯하게 무장한 사람들이 윗사람의 머리를 올려주기 위해 나온 것 이다. 처음 필드를 찾은 사람이면 당연히 주눅들게 마련인데 업무상 관계가 필드까지 연장된 듯 이 팀은 달랐다. 볼이 뜻대로 가지 않자 상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수 더 뜨는 것은 중간단계의 사나이. 윗분을 제대로 가르쳐드리지 못한다며 마지막 사나이를 윽박지르는 것이다. 급기야 욕설을 퍼붓고 참다못한 그 마지막 사나이는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골프장을 떠나 고 말았다. 험악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에서 바라본 그 코스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뒷골목보다 못한 지상 최악의 골프장이었다.

    30년 된 노부부. 결혼 33주년을 기념해 플레이하고 있다는 그들. 노부부의 채와 신발은 33년이라는 세월만큼이나 낡아보였으며 세련과는거리가 먼 의상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이 쓰는 감탄사는 나를 당 황케했다. 노부인의 티샷이 130야드를 조금 넘기라도 하면 노교수는 뛸듯이 기뻐하며 예외없이 “러브리샷”을 외치는 것이었다. 젊은 나도 쑥스러운 “러브리샷”을 한없이 주고받는 그들. 정말 사랑스 러운것은 샷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한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천국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혜리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내가 다니던 연습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아이다. 혜리네 집안은 골프를 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박세리 붐 때문이었을까? 늦둥이 막내딸 혜리가 어느날부터 골프를 시 켜주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혜리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오래된 중고채를 쥐어주었다.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골프 연습장을 이 용하는 대신 혜리는 항상 구석 타석만 써야 했다. 레슨비 역시 댈 형편은 안되었지만 마음씨 좋은 레슨프로의 배려로 간간이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레슨프로가 오며가며 한수 가르쳐주는 게 전부였는데도 학교 파한 후 연습장 문을 닫는 시간까지 쉬지않고 열심이었다. 몇 개월 안돼 혜리는 그 연습장 누구보다도 빛나는 샷을 갖게되었다. 나 역시 그 샷을 구경하러 가서 혜리를 알게 된 것이 다. 어떻게 치느냐고 물어도 씽긋 웃고 말뿐 혜리가 말하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골프 연습장의 많은 사람들도 혜리의 스윙을 부러워하며 뒤에 와서 구경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혜리를 위해 구체 적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혜리의 골프화는 낡아서 앞이 덜렁거렸다.

    혜리의 늙은 부모님은 늦둥이 딸을 한번도 필드에 데려가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그 연습장에서 가장 빛나는 스윙을 가졌으면서도 일년이 넘도록 한번도 필드 구경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린피 때문이다. 그런 혜리에게 어느날 헤드커버를 선물했다. 무지개 털이 복슬복슬하게 달린 앵무새 모양의 커버인데 똑같은 것이 하나 더 생겨 혜리에게 내밀었다. 혜리는 얼굴이 빨개지며 받으려 하지 않았 다. 쑥스러운지 손을 뒤로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고쳐야 할 골프문화

    겨우 손을 내밀어 앵무새 커버를 받아 들고 모기 같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게 몇 개월동안 내가 혜리에게서 들은 유일한 목소리였다. 어느날 밤, 나는 라커룸에서 나오다가 그 아이의 두 번째 목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타석에서 앵무새 커버를 보며 하는소리였다. “더운데 힘들었지? 자, 오늘은 그만 집에 가고 내일은 더 잘 치자.”

    후에 혜리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지만 혼자 있으면 늘 앵무새 커버와 친구처럼 재잘거린다고 한다.

    자기가 졸라서 시작한 골프지만, 현실에 맞닥뜨린 골프는 혜리를 많이 주눅들게 했던 것이다.

    얼마 전 한 캐디 아가씨로부터 ‘웃기는 아줌마 손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밍크로 헤드커버를 해씌웠다 했더니 시계, 반지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합하면 2억원이 넘으니까 잘 간 수해달라고. 그 얘기를 들으며 혜리 생각이 났다. 그 아줌마의 밍크커버 하나값이면 혜리가 필드를 몇 번이나 돌 수 있을 텐데…. 밍크커버로 거들먹거리는 골퍼들이 있는 한, 혜리에게 골프는 부담스러 운 운동일 수밖에 없다. 박세리언니처럼 되겠다는 희망으로 시작한 골프가 되레 절망으로 돌변해 그 아이를 상처주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골프 예찬론자가 아니다. 골프 자체는 더 없이 이상적인 운동이지만, 우리의 ‘골프문화’는 내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고급승용차들이 즐비한 골프장 주차장이 부담스럽고, 정장 한두벌 값인 골 프티셔츠가 부담스럽다. 승용차 한 대 값과 맞먹는 골프채도 부담스럽다.

    셔틀 버스를 타고 골프장에 가고, 브랜드 없는 면티셔츠 바람으로라도 클럽하우스를 누비고 , 용돈을 조금만 절약하면 원하는 채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 어머니와 혜리가 필드를 자연스 럽게 거닐 수 있는 날은 가까이 와 있다고 믿는다. 새벽잠을 설치며 퍼블릭코스에서 두세시간을 기다리는 골퍼, 몇 달 동안의 궁리 끝에 드라이버 하나를 장만하는 골퍼…. 지금 내 주위에는 이런 소박 한 골퍼들이 밍크털 헤드커버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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