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서 오가는 정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성인물. 클릭 한번이면 누구나 ‘핑크 콘텐츠’의 포로가 되고 만다. 가정, 직장, 인간관계에까지 깊숙이 파고든 인터넷 섹스 콘텐츠의 가공할 힘. 10~50대 보통 남녀 19명으로부터 듣는 ‘나와 인터넷, 포르노, 섹스’.
정보의 출처와 수용자를 명확하게 구분해내지 못하는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의 성적 경험을 둘러싼 경계선은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인터넷은 아무에게나 개방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성을 향유할 수 있게 된 현대인들은 과연 성에 관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을까. 10대부터 50대까지, 19인의 남성·여성으로부터 그들의 체험과 생각을 들어보았다.
화상채팅에 빠져든 여고생
성별과 연령 등 인터뷰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채팅 사이트에서 몇 명의 취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채팅 상대자에게 취재 의도를 설명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너 명에 한 명꼴로 취재 요청에 응해 주었다.
채팅을 통한 마지막 취재원은 19세의 여고 3학년생 영미(가명)였다. 영미와 채팅을 한 시간은 평일 새벽 1시경. 서울 강남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영미는 밤 11시쯤 과외수업을 마친 뒤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다. 두 시간쯤 게임이나 채팅을 즐기면 대입수험생이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단다. 한편으로는 고3 학생인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네트워크 게임 ‘포트리스2’와 채팅 재미에 푹 빠진 영미는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한밤의 인터넷 여행을 쉬 포기하지 못한다.
처음 채팅을 시작했을 때는 또래 학생들과 학교 얘기나 선생님 험담, 수험생의 고충을 나누는 정도이던 것이 차차 남학생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한다. 상대연령도 점차 다양해졌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정보에 연령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영미는 “상대 남자 중 90%는 ‘지금 만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직접 나가서 만나본 적은 없다. 끈질기게 만나자거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던 남자들도 확실히 안 만난다는 생각을 밝히면 더 얘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채팅방에서 나가버린다고 했다.
한 달 전쯤 자신을 대학 2학년이라고 소개한 남학생과 채팅을 하면서 화상채팅이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PC카메라가 없어도 아바타(사이버 세계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채팅을 할 수 있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학생이 알려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놀랄 만한 일을 겪었다. 평범한 제목의 채팅방을 클릭해 들어갔는데 사람 얼굴 대신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성인남자의 성기였다. 남자가 자위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전송하는 중이었다. 영미가 당황하는 동안 채팅 창에 메시지가 떴다. 입에 담기도 곤란한 음담패설이었다. 놀란 영미는 접속을 종료하고 나와버렸다.
“가끔 성인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은 있어요. 야한 글이나 사진은 많이 봤죠. 하지만 화상채팅 사이트에서 본 것은, 뭐랄까…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했어요. 충격이었죠.”
그런데도 영미는 다음날부터 화상채팅 사이트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예 제목부터 수상한(?) 채팅방을 찾아가기도 했다. 실명 확인을 거치지 않는 사이트였기 때문에 별로 거리낄 것도 없었다.
인터넷은 억압된 성의 해방구
사업하는 아버지와 사회단체 일 때문에 바쁜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란 영미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성 지식을 익혀왔다. 주로 여성지나 소설을 통해서였다. 막연히 성의 세계를 상상해오던 영미에게 인터넷은 너무도 다양한 통로로 성의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노골적인 포르노사이트는 물론이고 성인영화를 상영하는 곳, 섹스클리닉을 제공하는 곳 등 다양한 사이트를 섭렵했다.
하지만 영미는 채팅을 통해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체험해볼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사실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라고 했다. 미성년자의 신분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보다 크다. 검색사이트를 통해 피임정보도 충분히 찾아봤다. 하지만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은 성적 호기심을 누르고도 남을 만한 힘이 있었다.
영미와 채팅을 했던 남자들 중에는 성인도 많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작업’이라는 말로 영미를 유혹하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영미가 만나주지 않으면 음란한 대화로 수작을 건다. 대학생, 30대 회사원에 심지어 40대 아저씨도 있다. 한번은 마흔한 살이라는 남성에게 “딸 같은 저한테 이러셔도 돼요? 아저씨 딸한테 남자들이 추근댄다면 어쩌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남자는 “그냥 해본 소리”라고 얼버무리며 서둘러 방을 빠져 나갔다.
인터넷은 억압된 성의 해방구나 다름없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르노사이트나 성공적인 유료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은 성인방송국·성인영화관처럼 애초부터 섹스를 주제로 만들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채팅사이트, 파일공유사이트, 무료게시판, e-메일 등 본래 의도가 성과 무관한 사이트들도 이제는 성적 욕구를 분출하는 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19명은 성인정보를 이용하는 데 있어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대부분 포르노사이트에 접속해 야한 사진이나 글, 동영상을 보는 정도. 여성의 경우 성인방송국이나 성인용품쇼핑몰을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성은 그보다 경험의 폭이 훨씬 넓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유료성인방송국을 이용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채팅으로 만난 여성응답자 중 두 명은 채팅사이트에서 음란한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었다. 남성 응답자도 채팅사이트에서 성적인 대화를 시도했거나 만나자는 제의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19명 중 4명이 인터넷의 다양한 기능을 이용해 ‘사이버 섹스’에 도전해 본 셈이다.
영미는 자신에게 음란한 대화로 추근대던 40대 아저씨를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성적인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고 영미 자신도 그저 즐길 뿐이라는 생각이다.
주부 김미선 씨(가명, 40)는 지난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중소벤처기업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인터넷 성인정보를 접했다. 일 때문에 성인사이트에 접속해야 했는데, 그 사이트에서 노골적으로 섹스를 묘사한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당시 김미선 씨는 함께 일하던 학생과 웹하드(웹상에 존재하는 하드디스크 공간)를 공유했다. 김씨가 이용하는 사이트 주소가 ww w.webhard.co.kr였는데 실수로 www. webhard.com을 입력했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에 성인 포르노사이트가 뜨는 것 아닌가. 백주 대낮에, 그것도 옆자리에 동료들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포르노사이트에 접속했으니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자의가 아닌데도 포르노사이트에 접속된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고 말했다.
김미선 씨의 경우 1998년 전화모뎀으로 PC통신을 처음 시작했다. 남편의 아이디(ID)를 함께 사용한 것. 새 아파트로 이사한 후 하나로통신 ADSL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어린 아들이 있어 성인사이트에 접속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 직장에 나가면서 어디서든 손쉽게 성인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도 언제든 쉽게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신영숙 씨(가명, 30)의 경험은 조금 더 황당하다. 결혼 3년째인 신씨는 지난해 초 딸을 출산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씨가 성인사이트에 접속한 것은 올해 초의 일이다.
비교적 한가한 낮 시간, 메일로 정보를 보내주는 메일매거진을 가끔 이용하던 신씨는 그날도 인포메일(www.infomail. co.kr)에 접속했다. 주제별로 여러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갔다. 결과물을 살펴보다가 창 왼편 아래쪽에서 반짝이는 배너가 보여 무심코 클릭했더니 성인 포르노사이트가 뜨는 것이었다.
“제 자리는 칸막이 없이 개방돼 있었어요. 누가 보지나 않을까 걱정돼 두리번거렸죠.”
신씨는 성인사이트가 어딘가에 꼭꼭 감춰져 있어서 정보검색을 잘하는 사람들이나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사이트는 너무나 쉽게, 우연히 접근해왔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전국민이 공범자”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에도 포르노는 존재했다. 오프라인에도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통로는 얼마든지 있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만화나 소설, 잡지에 실린 포르노물이 많았는데 어쩌면 지금보다 더 야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접근이 어려운 만큼 더 짜릿했다고나 할까.”
자영업자인 최인호 씨(가명, 57)의 회고다.
최씨는 인터넷 초보자다. 석 달 전 고등학생인 아들을 위해 한국통신 메가패스를 신청했고 가끔 온라인으로 바둑을 둘 뿐. 성인사이트엔 관심도 없고 접속할 줄도 모른다. 젊을 때는 호기심에 성인만화를 구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별 관심이 없다. 가끔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성인영화를 보는 게 고작이다.
같은 50대인데도 변호사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는 김달식 씨(가명, 52)는 좀더 적극적이다. 3년 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김씨는 한가할 때면 으레 성인사이트에 접속한다.
김씨는 “가정용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야한 비디오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양이 한정돼 있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성인물에 접근할 수 있고 정보량도 무궁무진해 재미있다”며 인터넷 예찬론(?)을 펼쳤다.
김씨는 “예전에는 성인비디오 한 편 구하려면 남다른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다”고 덧붙인다. 용산이나 청계천 등지의 불법비디오 판매상을 찾아가 내 돈 주고 사면서도 파는 사람 눈치, 지나가는 사람 눈치를 살펴야 했다. 비디오에 하자가 있어도 항의할 수도 없었다.
인터넷의 보급 속도는 포르노의 보급 속도와, 인터넷이 실어 나르는 정보의 양은 포르노의 양과 비교해 생각할 수 있다. 백양 비디오 사건은 인터넷의 위력을 입증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수용자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정보의 생산자인 동시에 전달자로 바꿔놓았다. 성인물을 제작하는 생산자도 늘었거니와 ‘제휴와 링크’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성인사이트가 생겨난다. 뿐만 아니다. 강력해진 파일공유 프로그램은 수백 메가바이트 용량의 동영상을 삽시간에 전달한다.
회사 내에서 성인정보 보급자로 통하는 이명수 씨(가명, 29)는 “성인정보 보급에 관한 한 전국민이 공범자”라고 말한다. 정부는 꾸준히 성인사이트 폐쇄를 시도하지만 모든 네티즌이 정보 전달자가 된 상황에서는 누가 최초의 유포자인지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 게릴라처럼 출몰하는 전달자들은 심지어 몇 시간, 몇 분 단위로 성인정보를 담은 ‘와레즈(인터넷의 다양한 프로토콜, 뉴스그룹, 월드와이드웹 등을 통해 정보를 유포하고 공유하는 행위 또는 조직)’ 사이트를 열고 감춘다.
포르노에 밝아야 출세한다?
이명수 씨가 인터넷을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 한 벤처기업에 입사하면서부터. 그때부터 친구들이 이씨에게 e-메일을 이용해 포르노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러닝타임 30초 정도의 용량이 작은 동영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전지현, 송윤아 등 유명 연예인을 닮은 일본 배우의 포르노가 대부분이었다.
뒤늦게 인터넷을 시작한 이씨는 이전 회사에서는 ‘넷맹’ 축에 속했다. 하지만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일 년 만에 포르노 공급원의 반열(?)에 올랐다. e-메일 동영상을 받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이제는 웹하드, 메신저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정보를 주고받는 고수가 된 것이다.
이씨는 웹하드를 이용해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후배 한 명이 웹하드 임차이용료를 내고 다른 사람들은 그 공간에 자신이 구한 정보를 올린다. 주로 동영상이다. 이씨는 아침에 출근해 웹하드에 올라온 내용을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여러 명이 공유하는 공간이다보니 매일 새로운 자료가 올라온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다운로드를 걸어 놓는다. 전과 달리 러닝타임이 한두 시간이나 되는 수백 메가바이트, 1기가바이트 크기의 대용량 자료도 적지 않다.
아침에 다운로드를 시작하면 보통 오후나 돼야 완료된다. 전날 저녁 퇴근하기 전에 다운로드를 걸어 놓고 다음날 출근해 확인할 때도 있다. 이렇게 저장한 자료를 회사 사람들과 공유한다. 23세의 여직원이 있는데, 그녀는 야간 대학에 다니느라 오후 네 시면 퇴근한다. 여직원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자 직원들끼리 모여 동영상을 본다. 여직원과 함께 보는 일은 없고, 그 앞에서 포르노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는 일도 없어 아마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씨는 “대부분의 회사에 나처럼 성인자료를 주로 공급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는 걸로 안다. 주로 20대의 젊은 축이 그 일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메신저를 이용해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선배나 친구들에게 자료를 보내줄 때도 있다. 이씨는 “선배들이 시시때때로 ‘좋은 자료 없냐’고 물어오는 통에 못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은 대부분 회사 동료나 후배, 친구를 통해 성인정보를 접한다고 했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연예인 몰래카메라, 미스코리아 투시사진 등 이슈가 되는 정보는 주위 사람들의 종용에 못 이겨서라도 한두 번쯤 보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건설회사 관리부장인 정명우 씨(가명, 46)는 “이 나이에 무슨 포르노를 찾아보겠느냐”면서도 “부하 직원이 ‘부장님 이것 좀 보세요’ 하며 권해올 때는 솔직히 호기심이 생겨 한 번쯤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명우 씨의 회사는 비교적 정보화가 늦은 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서에서 쓰는 PC라고는 경리업무를 위한 것 한 대가 전부였다. 직원 3명이 PC 한 대를 돌아가며 쓰다 지난해 말에야 두 대를 더 구입했다. 인터넷은 여전히 전화모뎀으로 접속하지만 각자 PC를 쓰게 된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각자 PC를 갖게 된 후 일어난 변화 중 하나가 30대 남자직원 한 명이 종종 ‘좋은 자료’를 구해온다는 것. 백양 비디오나 오양 비디오를 전혀 못 봤다고 하자 다음날 아침 정씨에게 CD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컴맹에 가까운 정씨를 위해 프로그램 설치는 물론 사용법까지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정씨는 “그렇게 싹싹하게 구는 직원이 싫지는 않더라”고 했다.
이명수 씨에 따르면 성인자료를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거래’다. 이씨가 인터넷을 잘 모를 때 친구들이 많은 자료를 보내준 것처럼 이씨도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료를 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성인자료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이씨는 남들에게 성인자료를 주는 심리를 “내가 줘야 남도 내게 준다”는 말로 설명했다.
이씨의 한 선배는 주로 ‘술’을 거래조건으로 내세운다. 바쁘다고 핑계라도 댈라치면 “좋은 술 사줄게. 너 술 먹기 싫으냐”며 달래기도 하고 반협박을 하기도 한다. 술 좋아하는 이씨가 못 이기는 척 자료를 보내면 “역시 넌 참 훌륭한 후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성인자료를 잘 구하는 직원은 선배나 상사들로부터 은근히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나이 많은 상사일수록 성인자료 검색능력과 정보력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씨는 “흔하지 않은 자료를 구해 상사나 선배에게 권하면 칭찬을 받는다. 선배들은 더 좋은 자료를 기대하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서핑을 한다”고 말했다.
성인자료는 유용한 영업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정보통신업체 영업부 차장인 최영선 씨(가명, 35)는 거래처 담당자와 친분을 돈독히 하는 데 성인자료를 활용한다. 영업은 친분, 안면이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포르노 자료는 훌륭한 연결 고리 구실을 한다.
최씨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요즘 유행하는 비디오 봤냐고 묻고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거나 CD를 갖다준다. 그러면 받는 사람은 ‘이 사람이 나한테 신경을 써주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친분을 쌓다 보면 일 얘기를 꺼내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즐기되 흔적은 안 남긴다”
전략적이지는 않더라도 여성들도 성인정보를 교환하거나 공유한다.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웹디자이너 김현철 씨(가명, 28)는 “회사에서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여자 직원들이 좋은 자료 구해달라고 요구할 때도 많다. 요즘은 L양 비디오를 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렇게 구한 자료를 다같이 모여 보기도 한다. 아무도 민망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성인자료를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김현철 씨의 경우 예전 광고대행사 근무 때도 함께 성인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모 잡지사 기자로 일하는 이철진 씨(가명, 35)는 회사 동료들과 포르노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씨가 새로운 자료를 받아 컴퓨터에 재생하면 주위로 사람이 모여들여 같이 보곤 했다. 잡지사 내에 여기자가 한 명 있는데 어느 날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며 “같이 보자”고 했다. 민망해진 이씨는 “나도 안 볼 테니 너도 보지 마라. 서로 조심하자”고 했다.
여자 직원이 퇴근한 후 동영상을 본다는 이명수 씨는 ‘성희롱’을 이유로 들었다. 직장에서 여자 직원이 있는 앞에서 남자 직원들이 모여 야한 자료를 보며 킬킬대는 것도 성희롱이라는 판례가 있다는 것. 더구나 여자 직원이 사무실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고 한다.
성인 정보는 남녀 사이는 물론 형제간에도 공유하기 어렵다는 응답자가 많았다. 벤처기업 홍보직원인 윤태희 씨(가명, 32)는 회사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나 거리낌없이 성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편이다. 하지만 한 살 위인 형에게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연예인 비디오가 한창 유행일 때도 형과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어릴 땐 형과 한방을 사용했는데 형이 있으면 야한 잡지도 보지 않았어요. 형이 밖에 나간 다음에야 몰래 꺼내 봤죠. 가끔 형이 숨겨둔 책을 꺼내 보기도 했고요. 형도 마찬가지였어요.”
윤씨의 말이다. 인터넷에서 성인 정보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자매간에도 숨기고 싶은 일이다. 언니와 PC를 함께 사용하는 의료사회복지사 안미경 씨(가명, 26)는 인터넷으로 성인자료를 보더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안씨는 영화사이트인 씨네웰컴(www. cinewel.com)에 가입했다. 씨네웰컴에서는 안씨의 e-메일로 업데이트된 영화 목록을 보내온다. 그중에는 에로영화도 있다. 안씨는 e-메일을 열고 e-메일에 기재된 영화명을 클릭해 에로영화를 본다. “주소를 직접 입력하지 않아도 돼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안씨가 일하는 병원 기획실에서는 여러 명의 직원이 한 대의 PC를 공유한다. 아침에 안씨가 출근해보면 PC 화면에 성인사이트가 떠 있을 때도 종종 있다. 안씨는 누가 봤든 이상할 것은 없다면서도 “전날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던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구차한 짓’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성인사이트를 이용하는 것, 남이 이용하는 것에 대해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해하지만, 별로 좋지는 않다”거나 “나이 먹어서 뭐 하는 짓인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40세의 주부 김미선 씨가 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옆자리 직원의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 컴퓨터 주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김씨는 바탕화면에서 ‘백지영’이라는 이름의 파일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열어봤다. 김씨는 “뮤직비디오인 줄 알고 클릭했는데 이상한 장면이 나왔다. 아, 이게 바로 백양 비디오인가 보다 했다”고 말했다.
“그런 비디오를 보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눈에 잘 띄도록 바탕화면에 아이콘까지 만들어 놓을 수가 있죠?”
김씨는 또 요즘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 사이에 함께 포르노비디오를 보고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나이 먹은 주부들까지 ‘동참’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김씨는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사람마다 다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드러내 놓고 할 일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성인자료 감상을 즐기는 이명수 씨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다지 떳떳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런 것은 어렸을 때 봐야 재미있지, 나이 먹어서도 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친구들과 성인 자료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 한마디씩 핀잔의 말을 던지는 걸 잊지 않는다고 한다.
김달식 씨(52)도 성인사이트에 접속할 때면 직원들 눈치를 살핀다. 김씨의 자리가 사무실에서도 구석진 곳이라 남들 눈에 띌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특히 스무 살밖에 안 되는 여직원이 뭔가 물으러 김씨 자리로 올 때는 허둥지둥 보던 사이트를 닫아버린다. 한번은 김씨가 성인사이트에 접속한 것을 눈치챈 여직원이 갑자기 “뭐 보셨냐”고 묻는 통에 무척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뉴스 검색했다”고 대답하면서 진땀을 흘렸다고.
아직 우리 사회에서 성은 은밀하다. 많이 개방된 것 같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 감춰져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때로 ‘구차한 짓’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철진 씨는 “회사에서는 가끔 성인자료를 보지만 집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아내가 알면 쫓겨난다”고 말했다. 이씨의 주위에는 실제로 성인사이트 접속이 화근이 돼 이혼할 뻔한 사례도 있었다. 여성의 경우 포르노에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남편이 포르노를 본다는 사실을 안 부인이 남편에게 실망하고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
인터넷은 익명의 공간이다.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채팅 사이트에서 ‘작업’을 시도하고 음담패설과 욕설을 늘어놓는다. 숨어서 성인사이트를 검색하기도 쉽다. 하지만 인터넷은 때로 접속자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회원가입절차나 신용카드 번호가 그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공연히 성인자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막상 인터넷에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꺼리는 수가 많다. 최영선 씨는 유료사이트나 회원가입을 요구하는 사이트는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 지난해 회사에서 성인방송국에 가입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부장이 최씨더러 가입하라고 했을 때도 무척 난감했다. 최씨는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데 가입하느냐”고 했고 부장은 “그러면 내가 해야겠냐”며 승강이를 벌였다. 마침 20대인 막내직원이 나서 가입하겠다고 해 해결을 봤다. 최씨는 “어디로 내 정보가 샐지도 모르는데 성인방송국에 가입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사용자의 IP가 추적되기도 한다. 얼마 전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반이 화상채팅사이트에서 음란행위를 한 주부와 회사원 두 명을 불구속 입건한 사건이 있었다. 채팅사이트 운영업체들은 사용자의 IP정보를 경찰에 넘기는 등 음란행위 단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터넷접속서비스 제공업체(ISP)들도 마찬가지. 이미 두루넷, 한국통신 등 주요 ISP들은 정통부의 음란행위 근절 지침에 따라 사용자의 IP를 추적해 사용자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를 감시하고 성인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할 경우 이를 차단하고 있다.
자영업자인 이홍만 씨(가명, 46)는 24시간 개방하는 만화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밤 시간에는 주로 아르바이트생을 쓰지만 이씨가 직접 밤을 새울 때도 있다. 밤에 만화가게를 지키면서 이씨는 종종 성인사이트에 접속한다. 최근 이씨는 자주 찾던 사이트 몇 곳이 영 접속이 안 돼 의아해했다. 다른 사이트들을 찾아다니다가 ISP들이 성인사이트 접속을 차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IP추적을 피하는 네티즌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다. 막는 쪽과 들어가려는 쪽의 싸움은 치열하다. 몇몇 사이트에서는 아예 ISP의 추적을 피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그와 관련한 게시판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이들이 주로 쓰는 방법은 프록시 서버(네트워크 사용자가 인터넷에 간접 접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네트워크 컴퓨터)를 사용해 IP를 숨기는 것. 이씨는 “프록시를 사용하면 접속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데 그래도 원하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고 내 정보도 숨길 수 있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포르노를 즐기는 것은 호기심이나 재미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19명 중 15명이 “호기심 때문에 성인사이트에 접속하고 성인자료를 본다”고 답변했다. 밤새 만화가게를 지키며 성인사이트를 서핑한다는 이홍만 씨도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본다”고 했다.
이철진 씨는 “한동안 호기심 때문에 동영상을 봤다. 특히 우리말이 나오는 국산 동영상이 신기해 자주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2주쯤 지나니까 시들해져서 요즘은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수 씨는 여전히 포르노 동영상을 즐긴다. 지겹지 않으냐는 물음에 “늘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계속 봐도 재미있다”고 답변했다.
최영선 씨나 김현철 씨는 이슈로 떠오르는 자료를 보는 수준이다. 빨간마후라, 오양 비디오, 백양 비디오 등 이슈가 되는 작품(?)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다. 최씨는 “요즘 영화 ‘친구’를 안 보면 대화가 안 된다. 포르노도 마찬가지여서 화제가 되는 것은 반드시 봐둬야 대화에 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씨는 이슈가 된 자료를 CD에 모아놓는다. 흔하지 않은 자료이기 때문에 소장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다시 꺼내 보는 일은 별로 없어도 모아놓은 CD를 보면 뿌듯하단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CD까지 만들어 놓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번 봤으면 됐지 소장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여성들은 우연히 성인물을 접하고 호기심에 한번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고 난 뒤 계속해서 찾는 경우는 드물다.
포르노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호기심 때문에 보기는 하지만 역겨워서 금방 꺼버린다는 경우가 많았다. 한지우 씨(가명, 25)가 포르노를 본 것은 대학 2학년 때. 한씨는 “역겨워서 그 다음날까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당시의 충격을 떠올렸다. 안미경 씨는 조금 일찍 포르노 비디오를 접했다. 중2 때 친구 생일에 친구집에 모여서 비디오를 봤는데 너무 놀라 울음이 터질 정도였다.
권태를 이기는 충격요법
남성의 경우에도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다. 김현철 씨도 처음 포르노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포르노를 보기 전까지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포르노물에서 여성은 성적 쾌락을 위한 대상일 뿐, 인격이고 뭐고 없어요. 지금은 그게 왜곡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어릴 때는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최영선 씨는 포르노 중에서도 강간이나 수간, 가학적 행위를 담은 내용들은 더욱 보기 역겹다고 했다. “남자도 더러운 것은 더럽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최씨는 또 성기의 크기나 유방 크기, 체위, 행위시간 등 비현실적인 것들이 정상처럼 왜곡해 보여주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요즘이야 인터넷 때문에 포르노가 많이 보급되면서 포르노가 성을 왜곡한다는 인식도 널리 퍼졌지만, 전에는 잘 되지도 않는 체위를 따라하느라 죽어나는 남자가 많았다”고 했다.
성을 왜곡한다는 부정적 평가에도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성적 행위들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노규진 씨(가명, 41)는 자신의 서재에서 밤 시간을 이용해 채팅을 즐긴다. ‘야설’(야한소설) 코너에서 채팅으로 나눈 음란대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글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해 음란한 내용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때로는 다짜고짜 음담부터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노씨는 절대 상대 여성을 만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정말 얘기가 잘 통하는 30대 중반의 여성과 만날 약속까지 하고서는 나가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이 알려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노씨는 자신의 인터넷상에서의 일탈에 대해 “교사라는 직업이 나를 많이 억압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아내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여전히 가끔 섹스도 한다. 하지만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젊은 선생들 틈에 끼어 술집에 가기도 어렵고 어쩌다 장년의 교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여자와 어울릴 틈은 없다. 인터넷이 그의 유일한 도피처인 셈이다.
노규진 씨가 주로 채팅을 하는 상대는 20∼30대 여성. 물론 나이는 31세로 속인다. 비록 사이버 공간이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성이라는 생각에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 여고생과도 채팅을 했지만 자꾸 제자들 얼굴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웬만하면 고등학생은 피한다.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은 포르노사이트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역겹다’는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성인사이트에는 정상적인 성행위보다는 변태적이고 가학적이며 뒤틀린 관계에 대한 묘사가 훨씬 많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의 정사,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근친상간, 화장실 몰래카메라 등이 주류다. 표현에 제약이 없는 글의 형태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성인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성인물을 자주 이용하는 이명수 씨는 “똑같은 패턴, 뻔한 내용에는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이제 시작하자마자 옷부터 벗는 동영상은 재미가 없다. 고급 사용자는 외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섹스를 묘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구성과 스토리 등 다양한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이씨에 따르면 동영상 수준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최근에는 ‘매트릭스’, ‘로빈훗’ 등 유명 극영화를 패러디한 동영상이 인기다. 러닝타임도 길거니와 구성이 탄탄하고 스토리도 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기교도 부린다. 이씨는 일본어로 된 동영상을 감상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울 생각까지 해봤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자극이 반복되면 감각은 무뎌진다. 자크 라캉도 ‘욕망은 충족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현철 씨는 9600bps(초당 9600비트 전송) 전화 모뎀을 사용하던 PC통신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대부분 텍스트 자료였는데 야한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10메가바이트짜리 사진압축파일을 다운로드 받기 위해 밤을 새는 친구들도 있었죠. 전화비도 엄청나게 나왔을 거예요. 그래도 텍스트만으론 만족하지 못하니까 밤새 고생을 한 거지요.”
지금의 사진이나 동영상에 비하면 그때 자료들은 그야말로 ‘우스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주부 강희진 씨(가명, 36)는 포르노사이트를 찾다 자신을 더욱 흥분시키는 섹스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졌다. 침대 위에서 남녀 단 둘이 벌이는 정상적인 섹스는 이제 별 감흥을 주지 않는다. 그룹섹스나 야외 섹스가 더 야하게 느껴진다. 또 무조건 벗는 동영상보다는 정황이 묘사돼 있는 장면이 강씨의 상상력을 훨씬 더 자극한다.
강희진 씨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지난해 인터넷을 배웠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배우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성인물을 상습적으로 찾는 수준이 됐다.
처음에는 우연히 들어간 포르노사이트에서 링크를 따라 이 사이트 저 사이트로 옮겨 다니는 정도였다. 사이트 내용물을 살필 필요도 없이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첫 페이지에 나온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노골적인 사진에 거부감도 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포르노사이트를 거듭 방문할수록 이용에도 노하우가 생겼다.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면 동영상이 많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어디고, 어떻게 하면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사이트는 어디인지 상세히 알게 됐다. PC를 남편과 함께 쓰기 때문에 서핑을 끝낸 후 흔적을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간 뒤 강씨 혼자 집에 남아 있는 낮 시간대에 주로 접속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들이 잠든 밤에도 컴퓨터를 켜는 지경이 돼 버렸다.
포르노 사이트를 찾은 지 일 년이 돼가는 최근에는 색다른 재미를 추구한다. 밤에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음란 대화를 나누거나 네트워크 고스톱을 치는 것도 포르노 동영상 못지않게 짜릿하다고 한다.
“자위를 하고 나면 성인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요. 왜 이걸 봤을까 싶죠. 집착이 무섭다고 해야 되나. 꼭 성적인 것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자제력이 약한 편이라 게임(네트워크 고스톱)도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때가 있어요. 피곤해도 계속 앉아서 해요. 포르노물을 보는 것도 똑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잘 멈춰지지 않아요.”
강씨보다 한 살 많은 남편은 사업을 한다.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해 인터넷 쇼핑몰이나 TV홈쇼핑에 공급하는 일이다. 당연히 외국 출장도 잦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집을 비운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강씨의 생활패턴은 엉망이 되곤 했다. 집에 남편이 없는 틈을 타 밤새 인터넷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침나절 PC방에서는…
아들 내외가 PC방을 운영하는 주부 박정숙 씨(53)는 아침 7시경에 아르바이트생과 교대하기 위해 PC방에 나간다. PC방에 도착해보면 간밤에 찾아와 밤을 샌 것 같은 손님이 서너 명 남아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테이블들을 청소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보면 이상한 화면이 떠 있는 자리가 곧잘 눈에 띈다. 박씨가 말하는 이상한 화면이란 물론 여자의 나체사진이 나와 있는 사이트다.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박씨는 손님 자리에서 그런 화면을 몇 번 봤다고 했다. 그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앉아 성인사이트를 쳐다보는 손님도 있다. 서른 살이 채 안 돼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박씨는 “나는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옆에 가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아, 그게 뭐 좋은 거라고 밤까지 새워 가며 그러는지 몰라.”
하지만 포르노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 주부 강씨도 온통 인터넷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터넷을 시작하고 몇 달 동안은 거의 매일 포르노사이트에 접속하다시피 했지만 넉 달 정도 지난 후에는 차차 빈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사나흘 접속하고 남편이 집을 비우는 기간 중에도 밤을 새우는 날이 많이 줄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강현재 군(17)은 올 2월에 부모님을 졸라 PC를 구입했다. 초고속인터넷 하나로통신도 깔았다. 밤낮 PC방에 가서 살다 이제는 집에서 마음껏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친구들이 메신저로 보내온 게임도 잔뜩 설치했다.
강군이 실업계 고등학생인데다 부모님도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아 마음껏 인터넷 서핑을 즐길 수 있단다. 처음에는 강군 스스로 ‘인터넷은 적당히 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제력을 잃게 됐다. 친구들이 강군에게 보내온 것은 메신저뿐이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포르노 동영상도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 포르노 동영상도 보고 음란 사이트 서핑도 했다.
석 달쯤은 거의 매일 성인물을 들여다 봤고 한번 볼 때마다 다음날 일어날 일이 걱정되는 시간까지 밀어붙였다. 하지만 성인물을 찾는 빈도는 차차 줄었다. 지금은 이틀에 한 번꼴로 접속하고 한 시간 정도 보다 멈춘다. 이제 강군은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게임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인터넷을 알았다면
인터넷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경우든 호기심과 재미로 이용하는 경우든, 성인물에 완전히 집착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성적 쾌락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늘 거기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터넷에서의 성적 경험은 생활의 일부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박진수 씨(가명, 31)는 올 3월까지 무역회사 재무팀에 근무하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퇴사했다.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다. 실직 상태라 연애는 엄두도 못 내고 어떻게든 빨리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내근이 많았던 박씨는 주로 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성인물을 이용했다. 근무가 끝나고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 남아 있을 때, 같이 퇴근하기 위해 동료를 기다릴 때,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냥 앉아 있기도 뭣한 시간에 주로 들어가 봤다고 한다. 박씨는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성인물을 봤다”고 이야기했다.
실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집에서도 인터넷 접속은 가능하지만 성인사이트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먹고 살 걱정에 바쁜데 그런 거 신경 쓸 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간혹 성 충동에 휩싸일 때도 있다. “남자는 자위를 하려면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하니까 그 때 잠깐 보는 정도”라고 했다.
이철진 씨는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만큼 (남자가) 성에 자유로운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감춰지고 억눌린 듯 보여도 성적 욕구를 해소할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발소나 목욕탕에서도 성행위가 행해지는 나라는 드물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이씨는 성적 해방구로서 인터넷이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밖에 나가면 더 다양하고 자극적인 일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인터넷에 집착하겠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의 보급은 성인물의 보급을 가속화했고 정보 생산자와 수용자 층을 기하급수적으로 넓혀 놓았다. 은밀하게 유통되던 포르노는 인터넷을 타고 우리 생활 전면에, 깊숙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터넷 성인물의 범람은 섹스의 이미지를 대단치 않은 것,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성적 동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인간은 외친다. “난 물론 섹스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내 관심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를 잘못 이해한 걸까, 아니면 인터넷의 출현과 그 영향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