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文理를 튼 깨달음, 醫道의 경지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입력2005-05-25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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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 仁山문예창작 펠로십 중편소설자살금지법 동아 仁山문예창작 펠로십은 인산 오창흔 선생이 기탁한 재원을 바탕으로 젊은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동아일보사가 신설한 창작지원 제도다. 설립 첫해 펠로로 소설가 김운하(金雲河·본명 김창식·36), 조경란(趙京蘭·31)씨가 선발됐다. 펠로로 선발된 작가들의 작품은 매년 ‘신동아’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세상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만큼 온갖 종류의 장엄함이 줄어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미지의 것, 신비한 것에 직면했을 때 우리를 엄습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은총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 저 외경의 지극히 근본적인 요소가 공포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공포심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매력 역시 상실한 것이 아닐까? 공포감과 함께 본연의 품위와 장엄함도 사라져 세상이 우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세계와 자신에 대해 더욱 용감하게 생각하게 된 이래, 세계와 자신을 더욱 경멸하게 된 것이 아닐까?

    프리드리히 니체 (Fridrich Nizche)

    1

    크리스마스 이브, 마곡시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첫 징후가 나타났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 파티의 흥분에 들뜬 마곡시는 대낮보다 환했다. 누군가가 밤하늘에서 마곡시를 내려다보았다면, 마곡시는 마치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홀로 찬연히 빛을 발하는 큰 별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날 밤은 마곡시를 에워싸고 있는 바닷속 물고기들조차 마곡시의 불빛들과 흥청거리는 소음 때문에 단잠을 설쳐야 했으니.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이 가까운 시간, 마곡시의 저명한 원로 인사 최형기 목사는 예년처럼 성탄절 기념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로 서양 중세 고딕양식과 동양의 전통 건축양식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지은 마곡교회 안은 몇몇 고위 인사를 비롯하여 수천 명의 신도들이 최 목사의 강론을 들으며 예수 탄생을 축복하였고,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들이 그 광경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최 목사의 열정과 신앙에 찬 강론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그의 심장이 갑작스레 반란을 일으켰다. 늙은 목사는 가슴을 움켜쥐며 강론대에서 쓰러졌다. 그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들은 안타깝게도 그에게 영원한 사망을 선고했다. 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사람들은 애석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신이 아주 특별한 날을 택해 총애하는 그를 천상으로 불러들였다는 듯이 그 죽음을 신이 내린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해석했다. 그의 영원한 죽음의 선고와 더불어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은 꺼졌다. 예수 탄생의 전설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말구유 장식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다시 교회의 어둡고 습한 창고로 치워졌다.



    성탄절 이틀 뒤, 최형기 목사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마곡 시장은 죽은 자의 명예와 업적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시민장을 선포했다.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바다는 고요하고 하늘은 맑았다. 영구차를 앞세우고 마곡시 중앙로를 지나는 장례 행렬은 최대의 명절인 시 건립 기념 축제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엄하고 떠들썩했다.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추모 행렬에는 기독교 신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목탁을 두들기는 불교승들, 노자상을 앞세운 도교도들, 그리고 화려한 금박 장식을 한 코끼리들을 대동한 힌두교도들과 멋진 터번을 머리에 두른 이슬람교도들도 뒤질세라 만트라와 코란을 암송하며 행렬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곡시의 명물인 서커스단의 피에로며 닭털과 비둘기 깃털로 된 날개를 단 천사들, 아름다운 반라의 무희들, 사자, 호랑이, 원숭이, 재주 넘는 곰들까지 그 행렬에 끼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행렬에는 디오게네스라는 별명을 가진 기인, 술통의 현자마저 그 유명한 술통을 굴리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몸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방송용 헬기들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거리를 취재하고 있었고, 헬기에 놀란 비둘기들은 장례 행렬에 질금질금 똥을 싸댔다. 개들은 짖어댔고, 허리를 감싸 안은 젊은 연인들은 연신 입을 맞추었으며, 경찰관들은 자꾸만 행렬에서 벗어나려는 서커스단 동물들에게 즉석에서 거리질서를 가르치느라 진땀을 뺐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추모 행렬에 참가하는 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신문기자의 자격으로 그 행렬에 참가하고 있었다.

    마곡시 남쪽에 마련된 시립 묘지에 장례 행렬이 도착한 순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운명은 최 목사의 무덤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차에서 검은 관이 내려져 미리 준비된 무덤 속에 안치되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작별을 고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로 장미꽃을 관 위로 던져 넣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목사의 무덤자리는 붉은 장미꽃들로 뒤덮여 작은 동산을 이룰 지경이 되었다. 장미꽃들은 끝없이 던져졌고, 무덤 파는 인부들은 그 꽃들을 치우는 데만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다고 투덜댔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장미꽃 무덤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장미꽃다발들이 무너지며 그 사이로 죽은 최 목사가 불쑥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장미꽃을 던지려던 한 중년 부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 들고 있던 장미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한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환호성을 질렀고 신앙이 돈독한 한 노파는 무릎을 꿇으며 성호를 그었으며, 놀란 코끼리 한 마리가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다시 내려놓는 바람에 한 젊은 남자가 코끼리의 육중한 발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코끼리 발에 밟혀 신음하며 버둥대는 불쌍한 그 남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분……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시…”

    장미꽃다발 사이에 서서 자기를 둘러싼 군중과 동물들을 둘러보며 긴 한숨을 내쉰 뒤에, 최 목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죽은 자의 부활! 예수의 부활을 신앙으로 믿고 있던 기독교도들조차 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의 광경에 두려워하며 몸을 떨었다. 갑자기 바빠진 것은 기자들이었다. 카메라와 수십 개의 입이 한꺼번에 터졌다. 장례식은 갑자기 부활절 축제의 한마당으로 돌변했다. 최 목사는 몰려드는 기자들과 군중을 피해 자신의 시체를 싣고 왔던 검정 리무진 영구차에다 이번엔 시퍼렇게 산 육신을 숨기고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저 멀리로 서둘러 사라져갔다.

    2

    최 목사 부활하다!

    다음날, 이런 유의 제목이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성급하게도 “부활한 현대의 예수”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은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를 포함하여 마곡시의 모든 기자들이 백방으로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그의 엄격한 지시 때문인지, 그의 가족들조차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럴수록 그에 관한 소문과 논쟁은 더 불어나기만 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최 목사가 정말로 부활한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의학적 착오에 의해서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는지, 그의 부활이 진짜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종교계에서는 물론 그의 부활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했다. 그들은 그 부활 사건에 대해 악에 물든 이 세상에 대한 신의 엄중한 경고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죄를 회개하고 주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목사의 죽음이 하필이면 성탄절에 일어났고 또 예수처럼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사실이 그런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해가 바뀌자, 다행히도 최 목사 부활 사건의 흥분은 불에 달궈진 냄비가 식어버리듯 점차 가라앉는 듯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다시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작년부터 심각한 침체와 하락의 늪에 빠진 경제 문제가 화두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돈’과 경제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기업가들의 부도로 인한 ‘자살’ 따위는 워낙 흔해빠진 일상사처럼 되어서인지, 이젠 여간해서 주요 뉴스거리로 취급되지 않았다. 자살절벽이라고 이름붙은 마곡시 북쪽 해안 절벽에서는 실패한 사업가, 실직자, 실연당한 사람과 같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예년 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차디찬 겨울바다를 향해 뛰어들었고, 고작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는 반인륜 범죄들만 그런 사건의 희귀성 때문에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얼굴을 내밀 뿐이었다. 그 밖의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그 사건을 어물쩍 넘기려 하지 않았다. 이성에 의해 축출된 신의 존재가, 최 목사의 불가사의한 부활 사건에 의해 실제로 증명되었다고 간주하는 것 같았다. 최 목사는 어느새 기독교인들에게 ‘재림 예수’로 숭배되기 시작했으며, 그의 부활 사건은 ‘최후의 심판’이 다가왔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었다. 중세 시대와 같은 권력과 권위를 꿈꾸는 기독교계가 다시 세력 탈환을 꿈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셈이었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핸드 마이크를 들고 대중을 선동하는 목사와 전도사들이 봄을 맞은 개구리들이 땅 속에서 튀어나오듯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거리를 점령했다. 마곡시의 어느 거리를 가더라도 이들 신의 사도들이 외쳐대는 핸드 마이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 목사는 그들에겐 위대한 잔다르크였다.

    “예수를 믿으시오! 믿는 자는 부활과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에겐 지옥의 유황불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최 목사님의 부활을 상기하십시오!!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살고자 하는 자는 예수를 믿으시오!!! 최후의 심판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눈 있는 자는 보시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사실 최 목사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곡시에서는 가끔씩 기이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몇 년 전엔 생김새는 잉어 같고 몸에는 새의 날개가 달려 있으며 푸른 비늘과 흰 머리에 붉은 주둥이를 한 고기떼가 마곡시의 남쪽 해안에 떼로 나타났다간 사라졌다. 또 언젠가는 집채만한 흰수염고래 한 마리가 서쪽 해변에 밀려와 죽어 있기도 했었다. 슬픈 여옥의 전설은 또 어떤가? 어느 해인가 마곡시의 남쪽 해안 절벽 꼭대기에 밤마다 소복을 입은 여자 유령이 구슬픈 목소리로 가야금을 타며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 마곡시가 한바탕 유령소동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찌나 슬픈지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대여, 강물을

    건너지 말라 했더니

    그대는 끝내

    강물을 건너고 말았구려.

    강물에 떨어져 죽으니

    그대여, 아아 어찌하리야.

    나중에 떠돈 소문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여옥이었고 그녀의 남편이 그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슬픔을 못 이긴 그녀는 가야금을 뜯으며 이 노래를 부르다 결국 남편을 따라 자살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녀가 불렀던 노래는 다시 부활했다. 마곡시의 한 유명한 여가수가 그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토록 남겨주었던 것이다. 그때 여옥의 한 맺힌 유령은 마곡시의 최고 무당이 직접 나서 원혼을 달래는 한바탕 한풀이 굿을 한 뒤에야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3

    사라져버린 재림 예수

    우리 기자들에게 최 목사를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하긴 그를 인터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특종 중의 특종이 될 터였다. 치열한 물밑 경쟁이 가열되고 있었지만, 최 목사는 마곡시를 에워싸고 있는 검푸른 바다 밑으로 숨어버렸는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시끌벅적하던 새해 1월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 사라졌던 최형기 목사가 공식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뜻을 가족을 통해 언론사에 알려왔다. 기자들은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곧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 왜 갑자기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그의 부활의 비밀을 밝히려는 것일까? 아니면 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일까?…’

    온갖 구구한 억측과 흥분 속에 마침내 기자회견 날이 다가왔다.

    최 목사는 초췌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회견장에 나타났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꼭 다문 입술은 간헐적으로 떨고 있었다.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늙은 듯했다. 나는 회견장 앞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붙여준 이야기처럼,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가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인간이 그렇듯 어느 날 죽음의 손에 이끌려 갔다가 저도 모르는 힘에 의해 다시 살아났을 뿐입니다.

    죽음은…신의 종복인 제게도 죽음은, 사실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인생의 공과를 모조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려진 것처럼 선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고백합니다만, 과거에 저는 사랑하는 여인을 제 인생의 앞날을 위해 배척하기도 했고, 결혼해서는 몇 차례나 아내가 아닌 여인들과 불륜의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며, 저의 이기적인 욕심과 명예욕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기만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솔로몬 왕처럼, 하느님에 대한 회의에 빠진 나머지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이방의 신을 흠모하기도 했습니다.

    제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으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도 동원할 태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저지른 죄악까지 생각한다면, 그리고 제가 평범한 신자가 아닌 목회자 신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의 죄는 이 세상의 어떤 죄악보다 크고 무거울 것이며, 이 세상 어떤 악인보다 더 악독한 죄인일 것입니다. 신이 예정한 구원자 명부에 제 이름 석 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죽음이, 죽음 후에 다가올 신의 심판이 두려웠습니다. 가능하다면 생을 연장시킬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신을 믿고 또 목회직에 있었다고 해서 제가 저지른 모든 죄를 사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든 숨겨진 비밀들조차 꿰뚫어 보시는 정의의 신께서 과연 저를 용서해 주실지 두려웠습니다……제 삶은 그런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제 모든 기도는 심판의 날을 대비한 영악한 대비책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가 말한 참사랑의 길인 희생과 고난의 길을 걷기보다는, 오로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영생과 복을 구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신과 그리스도를 자신의 도구로 삼고 있듯이, 저 역시 죽음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으로 신을 제 가슴속에 가두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죽음은……다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요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음, 그 죽음의 세계에서 제가 본 것은 심판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세계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사차원의 세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일종의 가상현실의 세계 혹은 환상의 세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무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계는 결국 무의 세계와 다름없으니까요. 여하튼 저는 그 세계에서 평소에 제가 꿈꾸던 모든 상황을 창조해낼 수 있었으며, 원하는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은 마치 동화에서처럼 꿈과 자유로운 환상이 펼쳐지는 세계였습니다. 한마디로, 그 세계는 죽은 자들 저마다의 천국만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불멸하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계…….”

    목사는 잠깐 말을 멈추고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기자회견장이 해일의 충격을 맞은 것처럼 출렁거렸다. 그의 고백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목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눈을 감고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제가 목사였기 때문에, 천국만을 보고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겪은 일들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날 이후 지금까지 세상의 눈을 피해 은둔한 가운데서 많은 시간을 고뇌와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제 이성과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양심과, 제 신앙의 확신 속에서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이런 번거롭고 구차한 자리까지 마련할 추호의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죽음의 세계에서 소위 현세에서 살인자라고 불리던 자들과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들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저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했고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만약 죽음 이후에 그런 멋진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오히려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죄는 더 이상 범죄일 수 없고, 범죄를 저지를 만큼 곤궁하다면 스스로 현세를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그 세계에서 저는 처음으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죄악에 대한 자책도 없이 해방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감시하는 법도, 도덕도, 신도 없다는 사실, 아니, 저는 그 세계에서 신이 되어 있었고 저뿐만 아니라 죽은 모든 이들이 신과 마찬가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제 죽음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부활하고 난 후의 순간에 왜 기뻐하기보다는 불쾌하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죽음 뒤에 지옥 같은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끔찍한 영혼의 심판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자체일 뿐입니다. 아니, 죽음이야말로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시작하게 되는 출발점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짧은 시간만 있다 왔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살아 돌아와서 다시 느낀 것은 현세에 산다는 것이 오히려 지옥의 형벌 같다는 생각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듯이 이 현세는 ‘비탄의 계곡’인 것입니다. 현세의 고통에 비한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맛보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여러분은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난 한 달여 동안 제가 살아왔던 생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인간의 삶과 죽음과 신에 대해서, 그리고 현세에 살아 있는 여러분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번뇌를 거듭했습니다.

    저는 괴로웠습니다. 저는 그 동안 저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까지 기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통이 따르는 죽음의 그 순간에 대한 우리 인간의 나약하고 어리석은 두려움과 불완전하고 짧디짧은 생을 살다 가야만 하는 우리 인간의 한계, 무엇보다 불멸에 대한 인간의 불가피한 갈망 때문에 수천 년간 우리 인간이란 종족은 종교라는 올가미를 창안했고, 그리고는 그 올가미에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매달아왔다는 사실을 비참한 심정으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후 목사는 다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눈가에는 회한과 슬픔 때문인지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어느새 기자 회견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깊은 정적에 사로잡혔다. 목사는 긴 한숨을 토해낸 뒤,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마쳤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영혼의 안식과 평정, 그리고 모든 인간의 궁극적 소망인 행복을 위해, 이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제가 다녀왔던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갈 생각입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제가 드린 모든 말씀의 진실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검은 빛이 감도는 어떤 물체를 꺼냈다. 작은 권총이었다. 목사는 그 권총을 관자놀이에 갖다 댔고,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타앙! 하는 굉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의 머리가 터지면서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최 목사의 몸이 쿠당탕 소리를 내며 탁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기자 회견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비명과 아우성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수백 대의 카메라는 그 소동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있었다. 아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채 그 놀라운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운명의 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4

    “성경 말씀에 따르면 신이 내려준 생명은 인간 자신이 멋대로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전적으로 신의 몫이다. 따라서 자살은 어떤 이유에서건 신성모독이자 불경이며 실로 커다란 죄악에 속하는 것이다. 최 목사가 사후 세계를 올바로 보지 못한 것은 사탄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 찾아올 하느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행위는 인간을 죄악에 빠뜨려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최 목사의 부활은 신의 자비와 은총이 아니라 이 세상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신의 지배를 확립하려는 적 그리스도, 즉 사탄의 최후의 은밀한 계획에 의해 집행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적 그리스도라는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 사탄은 악마가 아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세상에 출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농간에 놀아나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더 강고한 믿음과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최 목사라는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옹호하는 열렬한 신앙의 십자군 대열을 굳건하게 꾸려내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성한 과업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파문과 불안에 대해 기독교계가 보인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기독교계는 최 목사를 사탄 루시퍼, 혹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였다. 기자회견 전날까지만 해도 성스러운 신의 전령, 부활한 예수로 추켜세워지던 그는 하루아침에 사탄으로 낙인찍혀 기독교계로부터 영구파문당했고, 기독교식 장례마저 거부당했다. 그러나 이미 기독교, 아니 모든 종교를 거부해 버린 그에게 그런 파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는 경건한 기독교인들이 열렬히 바랐던 것처럼 펄펄 끓는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그가 꿈꾸던 천국에서 지극히 평안한 삶을 보내고 있을 터인데.

    신문에 실린 한 목사의 칼럼을 읽던 내 옆자리의 박 기자가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적그리스도, 십자군…참으로 살벌하지 않습니까?”

    “그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선배님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내게 물었다.

    “글쎄…잘 모르겠어. 이젠.”

    “기독교인들은 편하겠어요. 자신의 삶을 의탁할 확실한 지주가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같은 무신론자들이야말로 참 모진 인간들이죠? 오로지 자기자신밖에 의탁할 데가 없으니. 최 목사 사건 후에 저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왜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일까, 하구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희망이나 삶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결국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더군요. 죽음의 순간에 찾아오는 고통이라는 것. 그런데 최 목사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모든 게 헷갈리기도 해요.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싱겁게 미소를 지었을 뿐.

    나는 사무실 창문 곁으로 가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내 시선은 바깥 풍경을 향해 있었지만 머리 속은 갖가지 상념으로 복잡하기만 했다. 박 기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여론의 심상찮은 흐름은 나도 감지하고 있는 바였다.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도덕론자들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최 목사를 격렬히 비난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 목사의 주장이 인간세상에서 선을 추방하고 악을 부추기려는 범죄적 도발이자, 악한과 범죄자들에게 무소불위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종교계와 도덕론자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한 공포, 죽음이 가져다주는 완전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법과 도덕과 종교를 떠받치는 굳건한 심리적 토대가 아닌가? 심판이건 윤회이건 신과 내세 따위가 한갓 환상에 불과하다면, 인간 사회는 이제 어떤 기초 위에 윤리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 무(無)라는 바닥 모를 늪지 위에 어떤 도덕의 탑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위기의식은 어찌 보면 그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인간 사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시민들은 벌써부터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양떼처럼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최 목사에 대한 종교계와 도덕론자들의 분노와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최 목사 사건은 마곡 시민들의 뇌리에서 새롭게 환기되었고, 그의 주장을 더욱 진실한 것으로 확신케 만들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최 목사는 마치 강력한 환각제처럼, 대중의 영혼 속에 더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어떤 의문이 내 머리를 스쳤다.

    “지금 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젊은 시절 나를 격렬하게 사로잡았다가 어느새 세월과 함께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 그 원초적인 질문. 나는 놀랍고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그 질문을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무(無) 앞에 선 인생. 내게 인생이란, 무가치하고 허무한 이 세계에 던져져 이런 저런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은 허무만을 발견한 채 죽어가는 것일 뿐이었다. 영원토록 바위를 산정으로 밀어 올려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시지푸스의 위대한 긍정이란 것도 실은 얄팍한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삶의 허무를 보상하기 위해 스토아주의적 운명애란 것으로 자기자신을 심리적으로 합리화하기. 하긴 의미를 추구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형식이든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내게 삶은 그저 버티며 사는 것, 무덤덤하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일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검은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며 그런 생각에 젖어들던 나는 불현듯 아내를 떠올렸다.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의 얼굴.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묵직해져 왔다.

    5

    사실 최 목사 사건보다 나를 더 고민에 빠뜨린 것은 아내 현빈의 문제였다. 아내의 우울증은 최 목사 사건 이후 더 심각해진 것 같았다. 아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늘진 얼굴로 마치 딴세상에 사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늦은 결혼을 한데다, 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었다. 몇 달 전에 가까스로 임신을 한 아내는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발견한 양 기쁨에 들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아내는 차라리 죽고 싶어했다.

    “당신 곁엔 내가 있잖아.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나는 이렇게 아내를 위로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와 결혼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나는 결혼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기자라는 직업은 또 얼마나 고달프고 바쁜 직업인가. 결혼을 먼저 원했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심하고 이기적인 회의주의자인 나는, 생에 대한 커다란 기대도 열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곧잘 우울에 빠지긴 했지만 사려 깊고 다정다감한 여자였다. 나는 주저하고 망설인 끝에, 친구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는 기분으로 결혼에 응했다. 그러나 결혼이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비록 내가 별로 달갑진 않더라도, 아내가 아이라도 갖길 갈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유산된 후부터는, 아내는 집에서 하던 컴퓨터 회사 일조차 그만두고 말았다. 아내는 밤마다 악몽을 꾸거나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했다. 가뜩이나 여윈 편인데다 신경이 예민한 아내. 나는 그런 아내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돌보기는커녕, 병원에나 들러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했을 뿐이었다.

    아이가 죽고 난 후부터 아내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 죽은 아기가 나타나 예언을 한다는 것이었다.

    “마곡시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예요.”

    최 목사가 죽은 크리스마스 이브 다음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밤에 아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싱거운 소리하지 마. 당신, 그러지 말고 정말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내가 시간이 나는 날, 같이 가보자구.”

    나는 아내의 말을 정신적 이상징후로 볼 따름이었고, 아내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곤 했다.

    최 목사가 자살한 사건이 있은 날 밤에도 내가 그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는 “이젠 시작일 뿐이에요” 하고 말하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 후론 내가 말을 걸어도 자기한텐 신경 쓰지 말라면서 맥없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았다. 그럴수록 아내에 대한 나의 자책감은 더 깊어졌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하는 일, 내 삶, 그 모든 것이 공허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아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날 무렵이었다.

    잠결에 아내의 비명이 들려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겁지겁 거실로 나가보았다. 아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놀란 나에게 아내는 손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쥐떼였다.

    방송 헬기에 탄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쥐들이 검은 바다를 향해 떼를 지어 뛰어들고 있는 장면. 쥐떼의 집단자살. 자정 무렵, 갑자기 쥐들이 나타나서는 남쪽 해변을 지나 파도가 치는 검은 겨울바다를 향해 집단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연인은 해변가를 거닐다 자기들 발 밑으로 수천, 수만 마리의 쥐가 몰려다니는 걸 보는 순간 여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남자는 여자를 팽개치고 도망쳐버렸으며, 한 늙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러나 쥐들은 인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찍찍찍 음산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추호의 주저도 없이 차례차례 차디찬 겨울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마곡시에 살고 있는 늙은 쥐, 어른 쥐, 새앙쥐 할 것 없이 모든 쥐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그날 밤 남쪽 해안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마곡시에 저토록 많은 쥐가 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쥐떼가 바닷속으로 일제히 뛰어드는 광경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해변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쥐떼로 새까맣게 보였다.

    “도대체 쥐들이 무슨 이유로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일까요? 쥐들이 우리 마곡시에 닥칠 어떤 재앙을 예견한 것일까요? 이러한 사건은 최근 마곡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괴한 사건들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 아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 저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변고일 뿐이야.”

    실은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꺼림칙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쥐떼는 밤새도록 무시무시한 자살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마곡시의 남쪽 바다는 온통 둥둥 떠다니는 죽은 쥐의 시체로 뒤덮였다. 자살한 쥐의 수는 적어도 수백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 사태에 대해, 불결한 쥐들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청소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이 까닭 없는 사태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술통을 굴리고 다니던 기인, 디오게네스만이 해변가에다 술통을 세워놓고는 술통 위에서 덩실덩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어허! 죽음이로구나, 죽음이여! 쥐들이 먼저 알고 달아나는구나!” 하고 외쳐댔다. 다음날 그는 술통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술통 안에 술은 가득 채우고 스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마곡 시민들은 그 기인의 죽음을 한결같이 애도했지만, 그런 사건은 아내의 말대로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쥐떼의 집단 자살 사건이 터진 나흘 후에 마곡시의 경찰서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어둡고 침침한 마곡시 경찰서의 감방들,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야간에 집단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교도관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어 달아나게 만들었고, 경찰서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한 죄수들은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모조리 사살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우리도 이제는 영원히 해방이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마는구나…….’

    현장에서 그 모습을 취재하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날 밤 편집부 기자들과 술자리를 같이했을 때, 냉소적이면서도 날카롭기로 유명한 후배 정찬우 기자가 말을 꺼냈다.

    “선배님. 오늘 사건 현장을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드디어 그들이 뇌관을 뽑아버린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부터야말로 본격적인 죽음의 축제가 벌어질 테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군.”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글쎄요. 어쩌면 제 무의식 깊은 곳에 그런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다만 제 판단이 빗나가거나, 틀리지 않을 거라는 걸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럼 앞으로 더 무시무시한 사태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인가?”

    “속단할 순 없지만……왠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분위기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해방이다!’라고,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이 외친 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많은 인간들이 창살은 없지만 어떤 감옥 같은 것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지금 마곡시의 실업자만 해도 수만명을 넘고 있고,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몰라 불안에 떠는 직장인도 태반이지요. 죽고 싶은 이유를 들기 시작하면 과연 그런 이유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지금 어디 있겠습니까? 선배님은 그런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까, 지금? 꼭 수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극적인 이유로, 예를 들면 증오심 같은 걸로 타인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선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회 조직이란 것은 각 개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적인 욕망들을 제한하게끔 강요하지 않습니까? 공공 도덕질서나 공공의 목적 따위의 이념으로 말입니다. 무엇보다 생사를 건 생존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재와 같은 사회체제에선 개개인의 무의식 속에 깊은 증오심과 적개심을 키우게 만들지요. 더구나 요즘같이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는 그런 증오심과 분노, 적개심은 더욱 뚜렷하고 깊이 개인의 의식 속에 각인되어 나타나고, 그렇기 때문에 계기만 주어진다면 쉽사리 폭발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전쟁이나 종교적인 희생 제의 같은 것도 일종의 그런 억압된 집단 욕망의 표출 현상이라는 건 상식적인 얘기지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의 말대로, 교도소 사건은 불어난 홍수를 억지로 버티던 댐의 한쪽 구석에 마침내 금이 가면서 자그마한 구멍이 터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론 더 심각한 사태들이 속속 질서 잡힌 이 사회에 구멍을 뚫기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사태가 지속되다가는……나는 자신이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흔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이번 사태는 그런 합리적인 이유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어쨌건 만일…네 말대로 사태가 악화되어갈 것이라면, 시 당국의 능력으로 그런 사태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내 말에 그는 “글쎄요”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시도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실은 어젯밤에 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에 사는 남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16층에서 뛰어내렸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은행의 고위간부였는데, 요즘 명예퇴직이다 뭐다 해서 시끄럽잖아요? 아마 그 일과 관계가 있다고는 하는데…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뭐, 우리 시에 자살자들이 많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진 않았지만, 제가 듣기론 그 쥐떼의 집단자살 사건 때문에 요 며칠 사이에 북쪽 자살 절벽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는건 선배님도 잘 아시잖아요. 여하튼 심상치 않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 기자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사실 정기자의 말 그대로였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 이후부터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경찰서마다 자살사건 끊이지 않고 접수되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자살에 대한 얘기가 폭주하고 있었고, 최 목사의 자살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또 수백 개에 이르는 자살 사이트가 새로 개설되었는데, 그곳에서는 공공연하게 자살을 선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최근의 자살자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은 공식적인 언론보다 훨씬 빠르고 자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최 목사는 위대한 ‘자살영웅’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 죽은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밝히진 않았지만 나 역시 내심으로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광기가 마음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은 내게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짐승들도 어떤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집단 자살한 그 쥐떼들처럼.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마곡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장은 먼저 최 목사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최 목사의 부활 사건은 면밀한 의학적 재검토 결과, 일시적인 심장마비로 인한 가사(假死)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최 목사가 가진 기자회견 내용은 가사 상태의 무의식적인 꿈의 소산인 몽상을 무책임하게 발표한 것뿐이라고 축소시켰다. 또 최 목사의 인격적·도덕적 결함과 사회에 대한 증오심 등을 거론하며, 최 목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행위는 사회와 개인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며, 시당국으로서는 사회 질서와 도덕을 수호하기 위해 어떤 단호한 조치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이와 더불어 급증하는 강력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강력범죄특별단속반을 설치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에게는 대항하는 강력 범죄자들에 대한 사살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공표했다. 또 인터넷의 모든 자살 사이트를 폐쇄할 것이며, 최 목사의 자살을 담은 영상물은 즉시 삭제될 뿐 아니라 그것을 올리는 사람들은 무조건 구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당국에서조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암울한 기운이 마곡시를 서서히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6

    신문사의 거대한 모니터실로 들어오는 거의 모든 사건 기사들은 자살, 자살 사건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그것들은 회사에 소속된 정식 기자들이 보낸 것이 아니라 통신원이라는 제도로 확보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보낸 화면 기사들이었다.

    사실 우리 마곡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괴상한 사회다. 공영 방송 외에 인터넷TV만 하더라도 수백, 수천 개나 되고, 그 채널들은 마곡시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생하게 화면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언론들은 마곡시의 첨단 기술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휴대폰이나 안경에 부착된 초고성능 카메라는 언제 어디서든지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즉각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게끔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상 마곡시의 거의 모든 시민이 기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시스템을 증오한다. 인터넷 방송 채널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포르노 채널이나 다름없고, 그중 많은 수의 채널은 인간의 음험한 관음증과 노출증을 볼모로 한 것들이었다. 사생활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집 안에 있을지도 모를 몰래 카메라를 적발하는 장치를 따로 설치해두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런 것들마저 무용하게 만드는 또 다른 기술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겼다. 집요하고 끈질긴 인간의 관음 욕구는 마곡 시민 전체를 벌거벗기고 있는 것이다. 마곡시는 하나의 거대한 매스컴 체제가 되었고, 자그마한 빈 틈도 허용하지 않는 폭력적인 시선들의 꽉 짜인 그물망을 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곡시의 유명인사는, 언제든 침실에서의 은밀한 광경을 인터넷에 공개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여성일 경우엔 더더욱.

    시 당국은 이들 ‘인터넷 게릴라’들과 이미 오래 전부터 전면전에 들어간 상태이지만 이들을 당해내기엔 늘 역부족이었고, 이젠 거의 자포자기 상태나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출현했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는 게릴라 방송국들과 사이트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공영 언론기관들은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이들 게릴라들과 협잡을 일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지경이니. 마곡시에서는 모든 시민이 기자이고 취재 대상이며, 사건인 것이다. 나 같은 공식 기자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기사의 선별과 기사 작성, 그리고 보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커버할 수 있는 사건들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시민들이 보내온 기사들에 약간의 지식을 덧붙이고 과대 포장하여 내보내는 것뿐이다.

    나는 지치고 맥 빠지는, 그러나 잠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사건들 속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마곡시의 전반적인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시장의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부터 치안 당국의 대처는 더더욱 강경해졌다. 그런데도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대되기만 했다. 시당국의 강경대처가 역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시당국을 비웃고 조롱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은 공공연한 대낮에 은행을 털거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공기관을 공격하였다. 고급 주택가나 빌라 단지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에 대한 방화와 파괴사건이 줄을 이었고, 교회나 성당 건물이라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저항이 가장 격렬했다.

    네티즌들은 사이트 폐쇄와 고소, 구속 사태에 반발하여 시당국과 관련된 모든 사이트에 침투하여 시스템을 다운시키는가 하면, 말 그대로 게릴라식으로 자살과 죽음을 찬양하고 집단 자살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살 혁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 사이트에서는 경찰에 구속되자마자 자살로 항거해 버린 자살 투사들에 대한 보고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흥분한 젊은 세대들은 공공연하게 마곡시의 전복을 외치고 있었다.

    사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원한과 증오심에 가득 찬 인간들에게 총구를 앞장세운 권력 따위야 종이호랑이밖에 더 되겠는가? 치안당국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이 이런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경찰들이 폭도들과 대치하여 전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잡은 범인들에게 바로 그 현장에서 무차별로 경찰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 닭장차라고 부르는 경찰 호송차량에 실리는 범죄자들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는 모습들은 조금도 가감 없이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한 떼의 폭주족들에 대해 경찰들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총격과 무지막지한 테러를 행사하는 것을 나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겨우 10대에 이른 어린 청소년들이 오토바이 위에서 경찰이 쏘아대는 총에 맞아 오토바이와 함께 도로에 팽개쳐져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 여러 명의 경찰이 도로에 넘어져 있는 아이에게 몰려가 미친개를 두들겨 패듯이 진압봉을 휘둘러대는 모습들. 보다 못한 시민들이 경찰을 말리려 들자, 그 시민들조차 한패로 몰아 짓밟고, 진압봉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모습은 그들을 도저히 시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경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단지 경찰복을 걸친 폭력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행태였다. 경찰들은 그런 현장을 방송으로 내보는 걸 원치 않겠지만, 피해자들의 안경과 군중들의 휴대폰·카메라는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그런만큼 시민들의 증오심 또한 커지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사건도 일어났다.

    마곡시에서 가장 유명한 서커스단에 소속된 줄타기 곡예단원이 그물망도 없이 공중 곡예를 하다가 고의로 그물망 바깥으로 뛰어내려 자살해버린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국은 경고조치로 서커스 공연을 무기한 중단시켰다. 이에 격분한 서커스단원들은 서커스단에 데리고 있던 동물들을 모두 세상에다 풀어놓았다. 서커스단이 자리하고 있던 서쪽 해변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자, 호랑이, 표범, 곰 같은 맹수는 물론이고 코끼리와 기린, 타조, 거위, 원숭이, 돼지, 말하는 앵무새 등 1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쪽 해변을 점령해버렸고, 벌써 애꿎은 몇 사람이 사자나 호랑이에게 물려 부상을 당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들은 해변의 포장마차며 야외 식당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그것들을 박살내고 있었고, 원숭이들은 아무 집으로나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고, 돼지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물들의 습격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에 바빴다.

    무질서, 혼란, 광기가 마곡시를 예측불능의 상황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제멋대로군. 모두들 미쳐가고 있어. 모두들.”

    사무실에서 뉴스 모니터를 지켜보던 편집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이른 아침 회의에 소집된 기자들은 지치고 피곤한 나머지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듯한 멍청한 눈을 하고 있었다. 편집장은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당국의 결정이라며 몇 가지 사항을 통보했다.

    “시 당국에서 협조 요청이 왔어. 이제부터 언론 통제가 시작될 거야. 검열관이 여기 신문사에 상주하며 기사를 검열하게 되었어.”

    기자들은 그 말에 웅성거렸다.

    기사 검열이라니!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흥분한 목소리들이 와글거렸다.

    “아, 아, 흥분하지 마. 시로서도 곤혹스런 입장이란 걸 우리가 이해해야 해. 여러분은 그런 생각 안 해 보았나? 언론이 지금의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말이야. 마치 이 세상에서 자살만이 유일한 사건인 양 신문을 도배질하는 게 과연 이 사태를 중단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돼? 질서를 되찾아야 해. 우리 신문도 자제하고, 시민들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

    편집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매스컴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의 자유를 빙자한 판매 부수 경쟁, 특종 경쟁. 여기에 언론 스스로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이지만, 우리 기자들은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기자로서의 출세욕에 눈이 멀어 그런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태를 전체의 관점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성찰하며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기는커녕, 늘 상황에 휩쓸려 상황을 따라잡기에 바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언론의 사명은 진실 보도이긴 하지만, 우리는 자칫 그 진실로 인해 파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최 목사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그가 말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진실로 인해 모든 신비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 삶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 삶보다 죽음이 더 고상하고 행복하다면, 과연 그 누가 힘겹게 생을 끌고 나가려 할 것인가. 진리의 빛이라는 것은, 그것에 한계를 짓지 않는다면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순간,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 버리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최 목사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 선의의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선의로 인해 이 세계가 자살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최 목사는 이 세계의 자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가. 다만 진리를 말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몇몇 기자들은 바로 그 진실보도의 사명을 들어 편집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편집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때 정 기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봐요들, 흥분하지 말자구요. 우리가 어떻게 하든 수레바퀴가 방향을 바꾸진 않을 텐데요, 뭘.”

    그 말은 섬뜩하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과연 수레바퀴는 이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밤, 취재를 나가 있는 사이에 아내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아내는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어서 와 달라고만 했다. 나는 서둘러 차를 몰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입구로 뚫린 골목으로 들어서자, 경찰 차량과 출동한 경찰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뒤섞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무전기로 계속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무장한 경찰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 앞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몇 대는 방화로 인해 불타버렸고, 아파트의 유리창들이 박살 나 그 유리 파편들이 땅바닥에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나는 혼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계단을 통해 3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내 목소리를 확인하곤 아내는 문을 열었다. 아내는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와장창, 하면서 거실 창문이 박살 났고, 커다란 돌멩이가 제가 앉아 있는 바로 앞에 떨어졌어요. 유리창 깨지는 소리는 그 후에도 몇 차례나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계속 들려왔고. 무서워요……너무…”

    나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 이제 내가 왔잖아, 하고 위로를 하며 거실 안을 둘러보았다. 거실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고, 주먹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돌멩이 두 개가 거실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거실을 청소하고 샤워를 마친 후에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는 침대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이제 됐어. 걱정하지 마. 많이 놀랐지? 유리는 내일 수리공을 불러서 고치면 되고…이젠 안심해.”

    나는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내가 말을 꺼냈다.

    “제 친구…해정이가…자살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해정 씨라면, 그나마 아내와 가장 절친하게 지내는 아내의 대학동창이었다. 남편이 유수한 기술개발업체의 이사라,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는 중산층 부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무슨 이유로 자살을?

    “아니, 도대체 그녀가 왜 자살을…? 당신은 뭐 짚이는 데가 없어?”

    “몰라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두려워요. 앞으론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런 말 하지 마. 곧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조금만 참아.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 내가 당신을 지켜줄거야…나, 지금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당신을 사랑해. 내 곁에 있어줘.”

    그러자, 아내가 쿡쿡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내를 가만히 품에 안았다. 가슴 한쪽이 시려왔다. 검은 죽음이 서서히 우리를 옥죄어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세상이 갑자기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사방에서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최 목사의 영향 때문일까. 최 목사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 자살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어 보였다. 나는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력감과 까닭 없는 분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바깥에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7

    그날의 방화사건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아파트 동네에서도 끊임없이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이웃집에서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투신 자살을 해버렸고, 죽음은 성과 나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포식하고 있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 검은 영구차, 주검을 실을 관이 쉴 새 없이 아파트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행여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집에 들어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송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폭동과 범죄, 자살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경제 위기 상황에 치명적인 곤란을 겪고 있던 금치산자, 길거리 부랑자들, 부도 위기에 몰린 사업가, 더 이상 갚을 능력이 없는 빚에 쪼들리던 채무자들, 취업난에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던 잠재실업자들의 자살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던 절름발이, 장님, 귀머거리, 혹은 교통사고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자가 된 사람들과 병원에서 헛되이 세월만 축내던 병자들, 평소에 남편과 시부모에게 시달리던 평범한 가정 주부들, 사랑에 절망한 연인들이 잇달아 자살 행렬에 가담하고 있었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자각할 나이도 안 된 중고등 학생들의 자살도 급속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기가 막힌 사실은 이들 학생층에서는 ‘멋있는’, 혹은 ‘예술적인’ 방식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영웅시되는 풍조마저 생겼다는 것이다. 학생들간에는 경쟁적으로 색다르고, 참신하고, 경이로운 방식으로 자살하기 위한 적극적인 모색이 경주되기도 했다. 때문에 모든 학교들은 잠정 휴교에 들어간다는 시 당국의 발표가 나왔다. 학생들은 학교와 시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런데 중고등 학생이나 대학생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 자살 유행사태가 특이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성적 욕망을 억압당하고 있던 이들 사이에 그야말로 자유 섹스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모든 도덕적 금기가 깨져 버려 더 이상 죄의식 따위를 가질 필요가 없어진 젊은 세대들은 미친 듯이 섹스에 탐닉하고 있는 듯했다. 자살한 젊은이들의 시체 중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풍조 때문이었다. 연인과 함께 자살해버리는 그러한 자살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바람직하고 멋진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당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그야말로 자살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인터넷 사건을 담당한 기자의 말로는, 인터넷을 파괴하지 않는 한, 사이버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자살 신드롬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자살하기 전에 올라온 유서 성격의 글들로 도배되고 있었다. 이 세상에 대한 저주, 죽음에 대한 찬양 등등.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살 장면을 담은 비디오 영상물들이 가감 없이 그대로 올라오고 있었고, 그런 죽음들은 모방과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가히 무한한 것 같습니다. 자살하는 방법에서도 인간의 지성과 상상력은 고도로 발휘되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마곡시에서는 매일 자살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자살자들은 남다른 방법으로 자살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몸을 던지거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달기, 혹은 손목 혈관 끊기 등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 외에 가스중독 자살, 부탄 가스나 본드, 신경안정제나 거담제 같은 약물을 주입하여 죽기, 할복 자살, 자동차를 몰고 벼랑에서 추락하기, 달려오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뛰어들기,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고공 낙하식으로 자살하기,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다 대지에 곤두박질치기, 러시안 룰렛 게임을 벌여 순서대로 자살하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분신 자살하기, 집에 불을 질러서 가족들과 함께 자살하기, 고압전류에 감전사하기 등등 자살하는 데도 인간의 예술적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한 경찰관이 동료 경찰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후에 자신도 그 총기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또 한 연인은 식음을 전폐한 사흘에 걸친 과도한 섹스로 탈진해 죽은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살자들은 자살의 독특한 형식 자체가 꺼져 가는 생의 최후의 현란한 불꽃인 양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무가치한 생에서 유일하게 격렬하고 전율스런 생의 증거로 자살이 권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울한 소식들을 들으며, 나는 술자리에서 동료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신문사 편집부 내에서도 자살한 기자가 벌써 10여 명에 가까웠다. 그중에는 나와 절친했던 입사동기도 있었다. 그는 쾌활한 성격에다 야심적인 인물로, 정치부 차장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린 것이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평소에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둥 얘기가 많았지만, 그걸로만 자살 이유를 삼기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까닭 모를 죽음들. 그날 술자리도 동료 기자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마련된 자리였다. 모두들 침울했고, 말없이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과거에도 자살 유행병이 돌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 19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만, 드 비니라는 작가가 쓴 ‘채터튼’이란 책 한 권이 당시 프랑스의 연간 자살률을 두 배로 뛰어 오르게 했다더군요. 겨우 열여덟 살에 자살해 버린 채터튼이란 이름의 한 천재 시인에 관한 그 책이 자살을 부추긴 것이었죠. 장장 10여 년간이나 말이죠. 당시로선 정말, 광적인 유행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도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자살 광풍을 불러일으켰죠. 베르테르처럼 푸른 연미복과 노란색 조끼를 입고는 베르테르 식으로 자살하는 것 말입니다. 아무튼 낭만주의의 열풍이 불었던 19세기 유럽에도 자살 유행병이 돌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예이긴 합니다만,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들의 예도 있습니다. 그들은 백인들에게 캥거루처럼 사냥당하는,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일이 일어나는 세상을 견딜 수가 없어 종족 번식을 거부해버렸지요.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종족 전체의 자살을 기도한 셈이었습니다. 일종의 집단 자살이지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라는 책을 보면 히브리스(Hybris)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요. 우리말로 옮길 적당한 말은 없지만 대충 무례함, 오만함 정도가 되는 말일 텐데, ‘남의 권리나 명예 그리고 예절에 맞는 느낌과 관련해서 상대에게 치욕이나 모욕의 느낌을 갖게 하는 행위’를 가리키지요. 고대 희랍인들은 이 단어로서 타자에 대해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지칭했습니다. 한마디로 무반성적인 욕망에 의해 저질러지는 타자 침해라고 할까.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들은 자기들에 가해진 그런 히브리스를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명예와 인격을 지키기 위해 집단자살을 감행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플라톤은 그 책에서 고귀했던 아틀란티스 문명이 멸망하게 된 원인도 아틀란티스인들이 절제를 잃고 히브리스, 즉 무절제한 탐욕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라고 암시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 마곡시의 문명도 사실 절제나 자제력을 상실해버리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우리의 문명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일종의 히브리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에 대한 분노가 시민들의 무의식 속에서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다가 하나의 계기가 주어지자 집단적으로 폭발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역시 사회학적 설명이긴 하지만, 자살이란 인격체인 인간 실존이 자신에게 가해진 히브리스에 대항하는 숭고한 형태의 저항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살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만, 숭고한 형태의 인격적 자살이란 것은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 과학 문명이 인간에게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문명이 가져다 준 것은 소외와 권태, 비인간적인 경쟁에 대한 강박관념뿐이지요. 자살 신드롬이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이 현대 문명이 낳은 소외가 넓고 깊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어쩌면……언젠가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이렇게 진행되다 나중엔 죽을 자들은 다 죽고, 살아 남은 자들끼리 새로운 문명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파괴는 새로운 건설을 촉발하기도 하니까요.”

    박학하고 냉소적인 정찬우 기자가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과거에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의 사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때야 단지 일시적인, 그리고 소수에 국한된 유행일 뿐이었지만, 지금의 사태는 전면적이고, 게다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이 물론 촉발요인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최 목사 사건만으로 이 광기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이건 마치……일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균이 있어서, 그것이 아무에게나 옮겨붙어 자기도 모르게 자살 욕망을 부추기는 것 같으니까요. 정 기자님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논리적으로만 이 사태를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기자인 박서윤 기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되받았다.

    “내 생각도 그래. 이건 말야, 일종의 전염병이라고. 의학적으로 치유되어야 할.”

    누군가가 옆에서 그렇게 거들었다.

    하긴 그런 논의는 이미 있어 왔다. 지금의 자살 신드롬은 사회심리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의사도, 자살 유행병의 병인을 발견해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시각도 있었다. 자살 유행병의 병인을 매스컴에 돌리는 것. 그날 술자리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다.

    “우리 언론의 책임도 큰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이미 그런 얘기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몇 년 전 그 사건 있잖습니까?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이 동시에 발작을 일으켰던 사건. 공상과학 만화영화…그 제목이 뭐더라…하여튼 그때 아이들이 일으킨 발작의 원인이 그 텔레비전 프로의 충격이라고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최 목사의 기자회견과 자살, 그 순간도 생방송되었고, 그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으로 유포되었으니, 아마 그 영향이 작지는 않았겠지요. 사실 저도 며칠 동안 내내 최 목사의 환영에 시달렸으니까요. 그러니까, 최 목사의 자살 자체라기보다는, 그 장면이 그대로 매스컴을 통해 시민들에게 노출된 사태가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입사한 지 얼마 안되는 젊은 기자가 눈울 굴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다 자살하게 된다는 말인가?”

    정 기자가 되물었다.

    “아니죠. 개인차가 있겠지요. 기질이나 성격, 그리고 주위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서…”

    “호러소설 같은 얘기군.”

    “뭐, 그냥 가설일 뿐입니다. 세상 일이 모두 논리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엔 논리를 뛰어넘는, 초합리적인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초합리적인 사태는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가? 역시 초합리적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건 저도 모르죠…”

    하긴 그 누가 알겠는가. 원인을 모르는데, 어떻게 치료가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이젠 원인을 밝혀낸다 하더라도, 사태를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렸을 수도 있을 텐데. 갑자기 떠오른 이런 생각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

    나는 처음에 얘기를 꺼냈던 정 기자의 말을 되씹어 보았다.

    히브리스(Hybris)…….

    그의 견해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복제인간이 출현하여 자연인과 함께 살고 있는 세상, 모든 것에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어져버린 세상,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한 끝에 모든 인간을 관음증에 빠뜨리는 세상, 인간의 가치가 물질적 부의 유무로 평가되는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세상에 과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최 목사의 발언도 궁극적으로 보면 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삶과 죽음, 생명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말 그대로 신비와 경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도구적 이성의 힘에 의탁하여 끝까지 그것을 파헤쳐 보고야 말겠다는 무절제한 욕망. 그런 절제를 상실한 인간의 욕망이 복제인간을 만들었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입체 가상현실의 세계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요즘 마곡시에서 유행하고 있는 홀로그램 광고나 영화들처럼 말이다. 절제를 잃은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악마적 힘, 이 도시의 이름 자체처럼 사탄적 힘, 바로 마고그(Magog)가 아니던가. 최 목사는 생명의 궁극적인 신비를 없애버림으로써 삶 자체를 결정적으로 무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열망하는 궁극적 행복이 죽음 이후에 존재한다면, 인간이 굳이 이 힘겨운 삶을 버티고 살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인간의 오만, 히브리스…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느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세계가 자살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지 않은가.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는 것, 이 살아 있는 세계가 부재한 곳에는 죽음 자체도 무로 돌변해버리지 않는가. 혼란스러웠다.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두렵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여느 때처럼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초인종을 다시 몇 번이나 눌렀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황급히 열쇠로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실에는 아내가 틀어놓은 노래가 구슬프게 흐르고 있었다.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재 녀러신고요?

    어기야

    진 데를 디디올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기야 내 가는데 점그랄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내가 좋아하던 곡이었다. 아주 오래된 시에다 현대의 어느 여가수가 다시 불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곡. 멍청히 서서 그 노래를 듣고 있던 나는 아내에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안방 문을 와락 열고 들어갔을 때, 안방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곳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화장대 위로 시선을 던졌을 때, 작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나는 낚아채듯 메모지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나는 유서가 적힌 그 메모지를 불끈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아내를 찾기 시작했다. 목욕탕 문을 열었을 때,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아내는 욕조의 붉은 핏물 속에 조용히 몸을 반쯤 누인 채 죽어 있었다.

    “여보! 안돼, 여보!”

    나는 아내를 욕조에서 꺼내 가슴에다 귀를 대보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내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내의 양쪽 손목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축 늘어진 아내의 몸을 두 팔로 힘껏 부둥켜안았다.

    나는 아내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쿡쿡, 흐느끼다간 결국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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