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7월1일 중국 주권반환 4주년을 맞는 홍콩 주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식민지 청산 4주년이라는 기쁨보다는 중국편입이 가속화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국수가게 주인 쩌우씨는, 집권 4년 만에 지지도가 바닥세로 급락한 둥장관 일행이 가게 앞에서 악수를 청하자 팔짱을 낀 채 “나는 악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홍콩 주민 누구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둥장관을 면전에서 공박했다.
국수집 주인의 항변은 홍콩 주권이 1997년 7월1일 중국에 반환된 뒤 4년이 흐른 지금 680만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주권 반환 당시 중국정부가 확약한 ‘1국2체제’로 상징되는 ‘50년 고도자치(高度自治)’가 수년 만에 ‘1국1체제’로 변질되는 조짐을 보임에 따라 홍콩 주민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 게다가 미국경제의 침체와 중국의 수출 감소 등으로 홍콩경제가 지난해 마이너스 1.9% 성장을 기록하고, 실업률도 기록적인 6%대를 돌파하는 등 경제난이 날로 심화되며 정치·경제적 불안감 또한 고조되고 있는 형편이다.
홍콩에서는 지난해 개인 파산 신청자 수가 2000년의 두 배 수준인 1만명을 돌파해 금융기관들이 정부에 긴급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파산관리국(Official Receiver)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0월말 현재 9705명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으며 12월중 신청자를 포함하면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전년도 파산 신청 건수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파산 신청자의 약 80%는 실업자 또는 신용카드 과도 사용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파산 신청자 수가 이렇게 급증함에 따라 개인 파산 신청을 받아들인 뒤 4년 후 신용을 회복해주던 종전의 부채 청산 관행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파산관리국의 이먼 오코넬은, 금융기관들의 대책 수립 촉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단기내에 파산 신청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이를 둘러싼 당국과 금융기관간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후 급증해온 개인 파산 신청 건수는 올들어 홍콩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1998년 1362건에 불과했던 개인 파산 신청 건수는 1999년 5487건으로 폭등했다. 1990년대 초반엔 연간 사례가 수백 건에 그쳤었다. 개인 파산자 급증 요인은 지난해 8~10월 5.5%를 기록한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신용카드 사용 및 대출,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인 것으로 보인다.
홍콩 금융전문가들은 올해 실업난이 더욱 가중되고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로 홍콩의 통화 불안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 악화에 이어 ‘9·11 테러’까지 발생해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져 실업률이, 아시아 금융폭풍 영향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1998~99년의 6.4%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지구상의 유일한 ‘달러 페그제 형제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통화 대폭 절하를 통해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사실상 폐지함에 따라 홍콩달러의 불안도 점차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자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한 칼럼은 “1998년 금융위기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빴지만 모두들 ‘한 번 붙어보자’는 파이팅 정신으로 충만해 있었고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도 못쓴 채 쓰디쓴 알약을 삼켜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을 뿐”이라며 경제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해온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뒤틀린 심사를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약 270만 홍콩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자랑하는 둥 행정장관을 비롯한 홍콩정부 각료들은 이렇다할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제문제뿐 아니라 중국 중앙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한 ‘50년 고도자치 보장’도 지켜지지 않고 있고 헌법격인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명시된 1국2체제를 지키려는 의지도 부족한 정부에 주민들은 (특히 중산층이나 지식층)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서방 기자는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1997년 7월, 외국 언론인들의 입에서나 나오던 ‘홍콩 사망론(Death of Hong Kong)’이 이젠 홍콩 기업가들 사이에서도 나돌고 있다”고 위기에 직면한 홍콩의 현주소를 설명해주었다.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대부분 제도권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 사회 안정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중산층 주민 다수도 차츰 둥장관을 비롯한 정부인사들에 대해 서슴없이 비난을 퍼붓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다.
대부분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들은 아파트 가격과 임대료가 정점에 달했던 1997년 3·4분기에 비해 평균 51% 및 29%씩 떨어지는 등 자산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데다 경제위기로 일자리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무기력한 정부’와 ‘무능력 및 무소신’ 행정장관에 대해 불신과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콩 신문들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필자의 눈을 의심케 했다. 제2기 행정장관 선거를 3개월 앞두고 둥젠화 행정장관 및 정부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홍콩 주민들이 “정부를 믿느니 차라리 중앙(中國)정부를 믿겠다”고 비아냥거리고 나선 것이다. 홍콩대학교 민의연구계획이 지난해 10월말 일반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문조사 결과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44%가 ‘대체로 신임’ 또는 ‘아주 신임’한다고 대답했다. 이는 8월 조사 결과에 비해 약7%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반면 ‘홍콩정부에 대한 신뢰도’에서 ‘대체로 신임’ 또는 ‘아주 신임’한다고 한 응답자는 39.7%에 그쳤다. 경제 일간 신보(信報)는 주민 여론조사 사상 처음으로 중앙정부의 지지도가 홍콩정부보다 높게 나타나 주목된다고 논평했다. 대중지 빈과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홍콩정부보다 차라리 중앙정부가 믿음직하다”는 제목으로 정부를 극도로 불신하고 있는 시중 여론을 전했다. 집권 4년 만의 최악의 지지도(15%)에도 불구, 중국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12월13일, 제2기 행정장관 선거(2002년 3월) 재출마를 선언한 둥장관과 정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반면 홍콩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둥장관이 단독 출마해 당선될 것이 분명한 만큼 ‘하나마나한 선거’라고 일축했다. 1997년 7월1일 홍콩 주권 반환시 제정한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는 800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推選人)이 행정장관을 뽑고 출마자는 100명 추천을 받도록 되어 있다.
최근 둥장관 연임 관련 여론조사 결과 16%만이 둥장관의 재출마를 지지했으며, 응답자 56%는 ‘연임불가’ 의견을 냈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연임 지지율이 24%, 연임 반대율이 45%였다. 둥장관 지지도는 1998년 46%에서 39% (1999년), 35%(2000년)로 추락해왔으며 지난해는 15%로 집권 후 최악이었다. 민주당과 전선(前線) 등 홍콩 야당들은 2002년 초 실시되는 제2기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가 강력히 밀고 있는 둥장관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융전문가들과 입법회 의원 일부 등 폐지론자들은 홍콩달러의 절하폭이 교역 경쟁국들에 비해 작은 점을 지적하면서 수출과 관광 진흥을 위해 통화제도를 자유변동 환율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1983년 이후 홍콩달러를 미 달러당 7.8홍콩달러에 묶어두고 있는 홍콩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 사태가 빚어지면서 ‘페그 폐지’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으며 최근 들어 폐지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홍콩 금융계와 학계에서는 미 달러화에 고정된 아르헨티나의 통화(페소)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난해 4월 이후 홍콩달러에 대한 파급효과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왔으며 언론들은 당시 홍콩달러화의 선물 환율이 내외 금리차 이상으로 인상되자 이를 페소화 하락에 대한 홍콩 금융시장의 불안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금융관리국(중앙은행격)의 얌치콩 총재나 앤터니 렁 재정사장, 둥젠화 행정장관 등 통화정책 결정에 간여할 수 있는 3인 모두 ‘페그제 절대 고수’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렁 재정사장은 금융가에 나도는 ‘페그제 폐지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밝히고 15조 미 달러로 추정되는 미국 기관투자 자금 등 단기자금 이동의 위험성이 상존하는데다 감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페그제 고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홍콩 언론들은 페소화에 이어 홍콩달러 역시 달러에 대한 페그제가 붕괴된다면 수개월 내 홍콩달러의 가치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페소화의 페그제 붕괴로 홍콩달러가 지구상의 유일한 달러 페그 통화가 될 경우 홍콩금융당국이 폐그제 고수 공약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통화 절하 움직임을 이유로 페그제를 깨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해왔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홍콩과 아르헨티나간의 통화 사정이 경제적 기초(펀더멘털)나 투자 환경 등에서 큰 차이가 나며 홍콩의 경우 디플레 상황도 완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홍콩달러의 동반 약세설을 일축하고 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지급불능) 상황에 이어 페그제를 폐지하더라도 홍콩달러의 페그 시스템 유지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본 엔화가 지속적으로 폭락하는 것 역시 홍콩통화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엔화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시오카와 마사주로(鹽川正十郞) 신임 재무상이 지난해 4월 임명된 직후 속락 장세의 엔화를 “달러당 140엔까지 용인하겠다”고 호언한 지 7개월 여 만에 달러당 133엔(2002년 1월10일 현재)까지 폭락, 조만간 140엔대까지 미끄러질 전망이다.
류밍캉 중국은행장 등 중국의 금융계 인사들은 중앙은행격인 인민은행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달러당 130엔을 인민폐 안정의 ‘마지노선’이라며 엔화 속락 가능성에 수차례 경고한 바 있어 홍콩 통화당국은 엔화의 향후 속락 지속 여부에 따라 인민폐 환율 변동 가능성까지 염려해야 할 처지다. 달러당 8.28위안을 유지하면서 상하 3%만의 변동만을 허용, 사실상 고정 환율제로 운용되는 위안화가 대폭 절하되면 홍콩의 페그 시스템에 대한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한 금융전문가는 페그제가 중국이 위안화를 변동환율제로 전환할 준비를 갖출 때까지 약 10년간은 유지돼야 한다며 ‘필요악’ 주장을 펼치고 있다. 컨퍼런스 보드의 게일 포슬러(Gail Fosler) 수석 경제연구원은 중국이 위안화 변동폭 확대 전략 추진을 결심하기 이전에는 홍콩의 페그제가 ‘필요악’이라고 규정한 뒤 “여전히 유아기 단계인 중국의 채권시장이 크게 발전하기 전엔 위안화를 시장 기능에 맡기기 어렵다”고 페그제 폐지 불가론을 제기했다.
포슬러 연구원은 “아직 위안화의 완전 태환 여건도 조성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 채권시장 발전이 요원하다고 내다본 뒤 “그러나 중국이 채권시장의 기능 활성화 없이 위안화 변동폭을 확대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로 자칫 전세계적인 통화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경제는 올해도 회생의 돌파구로 삼을 만한 이렇다 할 호재가 없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9·11 테러 응징 전쟁’을 일단락 지은 데 이어 경기 회복 조짐도 보여 중국의 대미 수출도 점차 호조를 띠게 돼 홍콩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던져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대외 경제환경이 홍콩에 유리하게 변모하더라도 지난해 적색 경고등으로 얼룩졌던 각종 경제지표의 색깔을 금방 푸른색으로 바꿔놓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00억 홍콩달러에 달한 재정적자 규모를 어떻게 적정 수준으로 줄이고 디플레 압력을 물리치며 지난해 크게 감소한 외국인 투자 유입을 늘릴 것인지 등이 홍콩정부 경제팀의 2002년 경제 운용 핵심 목표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엔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12월14일 현재 홍콩 증시 투자액이 577억 홍콩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4673 홍콩달러)에 비해 8배 정도 줄어든 것이다.
아울러 아르헨티나 금융위기 장기화 및 엔화 속락 장세에 따른 페그제 고수 여부, 또 지난해 약 90% 폭락한 증시 회생 방안 등도 정부 경제팀의 주요 당면 과제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수집 주인의 항변과 함께 홍콩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홍콩인들이 고물가 도시 홍콩을 외면하고 광둥성 선전(深玔)과 광저우(廣州) 등지로 올라가 소비나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는 이른바 ‘북상(北上) 경제활동’이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1997년 중반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나 여전히 ‘살인적인 수준’이어서 홍콩 주민들이나 투자 진출을 노리는 외국 기업가들에게 ‘고비용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경기가 크게 악화되고 실업자가 급증하는 등 경제위기가 가중될 조짐을 보이자 홍콩 주민들은 1~2시간 거리의 대륙으로 건너가 공산품 및 농산품 등을 구매, 홍콩 내의 수요는 한층 악화되고 있으며 홍콩 언론들은 이를 디플레이션 악화 주범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선전과 광저우 등지에서 홍콩제품을 구매하던 이들은 이제 소비품목을 다양화해 현지에서 부동산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웬만한 재력으론 홍콩에선 꿈꾸기 어려운 ‘내 집 마련’ 및 부동산 경기 호조 등의 기대에 부풀어 홍콩 주민들의 ‘북상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홍콩 부동산업체인 랜드 파워 인터내셔널 홀딩스(LPIH)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주민들이 선전과 둥관(東莞) 등 광둥성 일대에 약 2만 채의 집을 구입, 주택구입비로 총 103억9000만 홍콩달러(한화 약1조7000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홍콩의 한 조사기관이 지난 연말 조사한 결과 4만1300명이 이미 대륙에서 거주하고 있고, 21만2100명은 주택을 매입했으며 18만9000명은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응답자의 62%는 대륙 주택 구입 이유로 ‘저렴한 가격’을 꼽았다.
홍콩 주민들은 지난해 대륙에서 1만6800~1만7900채를 구입, 주택 비용이 전년 대비 15% 증가한 87억 홍콩달러에 달한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주민들의 대륙 주택 구입 열기가 날로 확산되는 것은 선전, 광저우 등지 주택의 저렴한 가격 외에 홍콩의 금리 대폭 인하, 홍콩과 중국의 주요 관문인 뤄후(羅湖) 국경 통관업무의 24시간 연장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LPIH의 마이클 최회장은 주택 구입자 중 다수가 중국의 부동산 투자 수익을 기대, 선전 등지의 주택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국경 부근의 신지에(新界) 지역 등 홍콩의 부동산시장은 단기적으로 큰 타격이 불가피해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부동산시장 회복이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부동산시장의 한파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홍콩경제 회복이 그만큼 어려워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 7월1일 중국에 주권이 반환된 지 4주년을 맞은 홍콩 주민들의 마음 속엔 ‘식민지 청산 4주년’ 기쁨보다는 중국사회로의 편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우려감이 날로 커지는 모습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2000년만 해도 주권반환 기념일에 대대적인 행사를 치렀으나, 지난해는 베이징 정부의 고위 사절단이 불참하고 둥젠화 홍콩특구 행정장관을 비롯한 500여 특구 귀빈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행사로 막을 내렸다.
반면 해마다 기념식장 주변에서 ‘고도자치’ 보장 및 둥장관 퇴진, 직접·보통선거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온 야당과 대학가 시위대의 목소리는 둥장관 인기가 하락한 만큼 높아져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주권반환 4주년을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홍콩이 중국에 이양된 후 주민들의 만족도가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이양 후 홍콩의 진로를 연구하는 각 대학 합동연구 모임인 ‘홍콩 이양 프로젝트’가 지난해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주민들 가운데 24%는 ‘홍콩의 장래를 비관’했으며, 32%만이 ‘낙관한다’고 대답했다. 주권 이양 4개월 전인 1997년 2월의 조사 때는 홍콩의 장래를 낙관하는 사람의 비율이 62%였고, 이양 후 1년 만인 1998년 7월 조사 때도 61%가 홍콩의 장래를 낙관했었다.
또 둥장관에 대한 만족도가 중국 이양 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침례대학의 마이클 드골리에 교수는 “홍콩과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둥 행정장관의 방침에 대해 주민들이 얼마나 큰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통들은 둥장관 퇴진 시위가 빈발하는 이유로 “중국의 비위를 맞추려 ‘고도자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주권반환 1주년을 한 달 앞두고 1998년 6월 실시한 ‘1국2체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가 ‘신뢰한다’고 대답하는 등 한때 순탄한 조짐을 보였던 1국2체제는 1999년의 ‘거주권 파동’ 이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1999년 6월 홍콩 대법원격인 종심(終審)법원의 ‘거주권 관련’ 판결이 잘못됐다면서 이를 뒤집었다.
종심법원은 앞서 본토에서 출생한 홍콩주민의 자녀들은 부모 중 한쪽이 영주권이 있으면 홍콩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으나 정부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항의가 빗발친데다 160만 명으로 예상되는 대륙인구의 급속한 유입을 막기 위해 전인대에 종심법원 판결 재해석을 요청, 최고법원의 권위를 훼손시켰다. 홍콩 언론들은 이를 “홍콩의 사법권에 조종을 울리고 1국2체제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 사건”으로 논평했다.
이후에도 홍콩에 있는 당중앙연락판공실 관계자들은 대만문제를 일반 뉴스로 취급하지 말라고 언론에 ‘보도 지침’을 하달하는가 하면, 독립을 지지하는 대만 기업들과의 거래 자제 등 ‘경제 간섭’ 등이 이어지면서 “1국1체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에 부딪쳐왔다. 아울러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및 첸치천(錢其琛) 부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오는 3월에 실시되는 제2기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둥장관의 연임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점도 홍콩 언론 및 주민들의 대정부 불만으로 이어졌다.
둥장관은 또 중국 당국의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 중국이나 홍콩 등지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5월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규정하는 등 중앙정부의 시책에 충실히 좇는 모습을 보여옴에 따라 지지도는 취임 4년 만에 최하 수준인 10~20%대를 오르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홍콩정부가 ‘거주권 파동’에 이어 파룬궁을 불법 조직으로 규정함으로써 홍콩 자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고 비난했다.
중국과 미국이 난항 끝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에 타결, 홍콩 경제계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던 1999년 11월 크레디 스위스 포스트 보스턴(CSF B)은행의 아시아담당 회장은 사무실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부동산 값이 절정기인 1997년에 비해 약 50% 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고물가, 공해, 시장개입 가능성, 중국 내정간섭 등이 ‘홍콩탈출’의 이유였다.
홍콩정부가 14.3%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한 1·4분기 실적을 발표,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2000년 5월, 런던의 경제정보사(EIU)는 홍콩의 정치 상황 악화로 향후 5년내 사업환경이 한층 나빠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놔 김을 뺐다. 같은 시기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관리개발협회(IIMD)도 1999년 홍콩의 시장 경쟁력이 1997년(3위)과 1998년도(7위)보다 크게 떨어진 14위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홍콩의 장래는 중국이 지난해 12월11일자로 WTO에 가입하는 등 대외 환경의 변화로 지속 성장이 전망되면서도 ▲산업공동화(空洞化)에 따른 실업난 가중 ▲중계무역 기능 축소 등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은 등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홍콩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는 사람들은 ▲실물경기 회복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어부지리 ▲중국관련 은행업무 증가 ▲벤처자금 급증 등을 들어 홍콩경제가 중국의 WTO 가입 원년인 2002년을 기점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 관계자들은 세계9대 무역국인 중국의 WTO 가입으로 홍콩이 중·장기적으로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수출 대행업무 등 중계무역 기능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진 경영기법이나 금융, 회계, 법률 서비스 등 여러 방면에서 홍콩의 역할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실물 쪽에서도 중국의 수출 증가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인프라나 서비스 등 중국이 취약한 부문의 틈새이익도 누릴 수 있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도소매, 항공운송, 물류, 광고, 통신, 인터넷, 금융 등 무역 관련 전문 서비스 업종에서 홍콩기업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홍콩의 중계 기능 축소나 금융센터 지위 상실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과 대만의 WTO 가입에다 지난해 1월2일 소3통(小三通)을 개시한 중국 대만간 양안(兩岸) 직교역의 증가로 홍콩의 ‘중계무역지’ 기능이 축소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또 홍콩이 부동산 가격 등 고비용에다 중국정부가 라이벌 도시인 상하이(上海)를 중점적으로 육성, 상하이에 아시아 금융센터의 지위마저 내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홍콩의 금융인이나 정부 관리들 사이에는 벌써부터 아시아 금융센터 자리를 라이벌 싱가포르와 후발 주자 상하이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강박감이 감돌고 있다.
상하이가 홍콩의 경쟁 상대가 못된다고 공언해온 둥장관마저 “상하이의 중학생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데 비해 홍콩 중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30%에 불과하다”면서 “의료, 공무원 제도 등 전반적인 개혁이 없을 경우 상하이에 추월당하는 것은 물론 따라잡지도 못할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중국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위안(元)화 환율 변동폭을 확대, 점차 인민폐 자유태환 쪽으로 금융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인민폐 자유태환이 실시되면 홍콩달러의 경쟁력이 약해져 금융도시로서의 홍콩 지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세계 1, 2위의 부동산 가격 등 물가고에 심각한 공해 역시 홍콩 주재 금융기관들을 점차 싱가포르, 상하이 등지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홍콩은 단기적으로 WTO 충격을 받게 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한층 강화돼 당분간 상하이나 싱가포르에 대해 경쟁적 우위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22일자 홍콩의 경제 일간 ‘신보(信報)’는 ‘홍콩·상하이 경쟁 서막’ 제목의 기사에서 ‘포천’지의 조사를 인용, 다국적기업 중 92%가 WTO 가입을 앞둔 중국에 지역본부를 설치할 계획이며 그중 25%가 상하이를 제1지역으로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WTO 가입 후 금융과 보험, 대외무역, 상업, 관광, 회계, 법률, 자산평가 등 서비스업의 개방을 가속화할 것이므로 중국에 공장을 둔 홍콩기업가 등 전문 고급 인력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현재 홍콩에 지역본부나 사무소를 둔 다국적기업의 수가 3237개로 2000년에 비해 오히려 8%나 증가한 사실을 들어 ‘홍콩 쇠락론’을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다국적기업들이 홍콩에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것은 홍콩이 높은 지가와 고임금 등에도 불구, 낮은 세율의 조세제도나 자유로운 자본이동, 정보 유통, 준법 행정, 통신, 교통 등의 인프라 등에서 상하이는 물론 싱가포르에도 크게 앞서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설명한다.
이들은 또 홍콩이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서의 기능 외에 다양한 분야에 숙련된 전문가를 보유한데다 국제금융 중심지의 전제조건인 통화의 태환성, 언론 자유, 언어(영어) 구사 능력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무역항이자 아시아 최고의 금융센터, 하이테크 도시를 표방해온 홍콩을 위협하는 주변의 움직임들이 적지 않다.
홍콩은 과학·기술 부문에서 인근의 광둥성 선전의 도전을 받는 동시에 금융 부문에서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온 상하이의 도전을 받는 등 향후 입지가 한층 위축될 것이라는 점이다.
홍콩 정론지인 일간 명보(明報)는 상하이시 정부가 2000년 중반 중앙정부에 제출한 ‘10·5계획(10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 2001~2005년) 건의’ 보고서에 국제금융센터 건립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한 뒤 “전국금융개혁의 시험 지구인 상하이에 국제금융센터를 세우는 것은 국가전략 차원의 의의를 지닌 것”으로 논평했다.
보고서는 당시 WTO 가입을 앞두고 상하이의 금융업을 크게 발전시켜야 할 당위성을 제기, 향후 5년간 금융 인프라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금융시장 개방 등 소프트웨어 부문의 강화에도 주력함으로써 역내(域內) 국제금융센터 자리를 놓고 상하이와 홍콩간 치열한 경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아울러 은행과 증권사, 외환시장 등 금융 시스템의 발전 외에 사상 처음으로 역외(域外)금융센터 건립을 통한 국제금융 기관과의 연계 필요성 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이에 대해 상하이 정부가 이미 역외금융센터 건립 시기와 조건 등에 대한 연구를 마친 것으로 보이며 향후 5년간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외국 금융기관 및 자본을 대거 유치, 명실상부한 국제금융도시로 키워나갈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 뒤 홍콩정부에 대해 상하이의 움직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촉구했다.
대만 역시 아시아 금융센터 및 세계적인 무역항 자리를 놓고 싱가포르, 상하이 등과 힘겨운 일전을 벌이고 있는 홍콩에 위협적인 존재다. 대만 총통 자문기구인 경제발전위원회는 지난해 8월 중국과의 WTO 동반 가입과 양안간 전면적인 3통(三通:通航, 通商, 通郵) 실시에 대비해 남부 가오슝(高雄) 시정부가 70억 대만달러(한화 약 2800억원)를 들여 가오슝항의 항만(40억 대만달러) 및 공항시설(30억 대만달러) 정비에 나서는 투자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는 ‘중국 관문’ 자리를 놓고 홍콩과 경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투자안은 가오슝 샤오캉 국제공항의 활주로 연장과 샤오캉 공항 및 가오슝항의 화물운송 연계 시스템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만 정부는 가오슝항이 홍콩과 로테르담에 이어 세계 세번째 컨테이너 운용 능력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 WTO 가입 및 3통 실시 후 가오슝을 세계 기업들이 중국진출 관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허브항만’ 건설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대만은 가오슝항이 비용 및 효율성 등에서 홍콩에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샤오캉 공항의 활주로 시설 등 인프라 측면에서 홍콩에 뒤지는 점을 인식, 가오슝에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한 것이다. 가오슝을 역내 허브항만 및 공항으로 만들어 DHL 등을 포함해 중국으로 연결되는 전세계 화물기들을 유치한다는 이 구상이 실행될 경우 홍콩에 커다란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홍콩에서 중국투자 등의 자문을 하고 있는 훠바오톈(寶田) 변호사는 몇가지 변수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아시아 금융센터 역할에는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중국의 WTO 가입이 홍콩에 끼치는 영향을 ‘단기적 비관, 장기적 낙관’으로 설명하는 훠변호사는, 단기적으로 홍콩의 전통적인 중계무역 역할이 축소되겠지만 중국의 교역규모가 점차 증가함에 따른 기업경영, 회계, 금융 등 전문서비스 분야는 오히려 역할이 늘어나 홍콩에 무한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민간기업들의 수출입 권한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지만 해외 경험의 부족으로 홍콩의 중계기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을 막론하고 대부분 국제규범이나 무역 관행 등을 모르는데다 국제 표준의 금융시스템도 보유하지 못했으며 조세제도가 복잡해 홍콩의 역할이 금방 축소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은 당분간 교역비용 절감을 위해 직접 교역에 나서겠지만 곧 20여 년의 무역 노하우가 축적된 홍콩의 중계무역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그는 낙관했다. 그는 최근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교역회에서 중국 기업이 인도 기업과 직접 교역을 시도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는 등 낭패를 본 경험을 사례로 들었다.
최근 홍콩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한 국 금융계 인사도 중국의 WTO 가입으로 홍콩이 중·장기적으로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으로는 수출대행 업무나 금융·서비스 등에서 손해볼 수 있지만 실물 쪽에서는 중국처럼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인프라나 서비스 등 중국이 취약한 부문의 틈새혜택도 누릴 수 있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중국 및 홍콩경제를 지켜본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도 중국 반환 이후 양국이 통화정책 등에서 협력하는 한편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점을 긍정적인 요인으로 들었다.
중국의 제2이동통신인 차이나 유니콤 사례처럼 중국 기업의 홍콩 진출 속도가 빨라진 점도 한 사례다. 홍콩은 역내 최고의 금융도시답게 수년간 벤처자금이 크게 몰려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 벤처자금 유입규모는 1996년 80억 달러에 이어 1997년, 1998년에 각각 96억달러와 144억달러로 급증했으며 이중 9%가 홍콩에 투자됐다.
그러나 홍콩의 장래에 비관적인 관측통들은 ▲중국의 WTO가입으로 중계기능 약화 ▲산업공동화에 따른 실업난 심화 ▲위안화 변동에 따른 페그제 붕괴 가능성 등을 들어 불황의 터널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한동안 존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홍콩 한국상공회의소의 이호철 회장은 1차산업이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돼 실업률이 높아지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경제손실도 많다고 지적했다. 홍콩 제조업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995년에 8.3%에 달했으나 1996년 7.3%, 1997년 6.5%, 1998년 6.2%로 하향세를 보여왔다.
또 잘 정비된 인프라를 갖춘 상하이등 중국 연안도시로의 사업체 이전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WTO 회원국이 된 중국으로의 직접 접근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중국과 여타 세계를 잇는 홍콩의 중계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홍콩내 중소기업 1만 개가 도산하고 수많은 기업들이 외국기업에 합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영자지 선데이 모닝 포스트(2001.11.18)는 공상국 중소기업 정보 센터가 공개한 자료를 인용, 장기 침체로 체질이 크게 약화된 중소기업들이, WTO 가입에 따라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면 대거 문을 닫거나 합병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콩은 제조업 부문의 근로자 100인이나 비제조업 부문의 근로자 50인 이하 작업장을 중소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중소기업 숫자는 전체 기업의 96%를 웃도는 30만54개, 근로자수는 140만6301명으로 집계됐다.
홍콩 중소기업협회의 스 카이뷰 주석은 “제조업 및 식당 관련 산업들을 필두로 홍콩내 중소기업 약 1만개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뒤 현재 외국기업과의 합병 수순을 밟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홍콩 입법회 의원도 겸직한 스 주석은 “빠르면 2개월내 기업들의 도산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 상공회의소의 에덴 운 소장도 “경기 침체 및 중국의 WTO 가입으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거나 경쟁력 강화 차원의 ‘줄줄이 합병’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운 소장은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노리는 외국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나갈 경우 중국의 WTO 가입이 홍콩기업들에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특구 선전 등 중국 광둥성의 주장(珠江) 3각주에 진출하는 홍콩기업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현지에서의 경쟁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선전 배후 도시인 둥관(東莞)시 황장(黃江) 진(鎭)정부의 첸웨이중(錢偉忠) 부서기는 “홍콩 제조업체들은 일본이나 대만기업들과 더 이상 경쟁이 되지 않으며 정부도 더 이상 홍콩업체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첸 부서기는 현지에 진출한 홍콩 제조업체들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으로 영세 규모인데다 부동산개발이나 호텔운영, 금융서비스 등을 제외하곤 외국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 억달러씩의 투자도 마다않는 대만이나 다국적기업들에 밀려 머잖아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내다봤다.
현지의 홍콩 기업가들은 지난해 둥젠화 행정장관의 광저우 방문시 “융자 주선 및 정부 차원의 경쟁력 제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으나 홍콩정부는 아직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안화 환율 변동으로 인한 홍콩 통화의 불안 문제 역시 중국의 WTO 가입이 가져다줄 역기능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 위안화 절상 압력이 거세지거나 엔화의 지속적인 약세 영향으로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위안화 절하 모색 또는 변동폭 확대를 추진할 경우 홍콩달러화에 대한 충격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홍콩 금융계는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가 지난해 6월 ‘인민폐 자유변동환율제 검토설’을 밝힌 뒤 경악했다. 그동안 중국정부가 위안화 절하 압력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환율 안정책을 공약해왔기 때문이다. 주총리의 발언이 홍콩 언론들에 보도된 다음날 홍콩시장에 격랑이 일어난 것은 향후 홍콩경제가 불안에 빠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도널드 창(曾蔭權) 전 재정사장(財政司長·재무장관)은 자유변동 환율제가 채택돼도 홍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전문가 다수는 이를 ‘불안의 씨앗’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홍콩달러와 함께 미 달러에 연계된 위안화가 절하 또는 절상되면 홍콩달러가 실물 측면에서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홍콩달러를 매각하고 미 달러를 사려는 열풍이 불게 될 경우 홍콩달러화도 절하되는 등 페그 시스템이 붕괴돼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홍콩의 세계적인 재벌 리쟈청(李嘉誠) 창장(長江)그룹회장은 지난해 6월 주총리가 “위안화 변동폭 확대시 홍콩에 대한 영향”을 묻자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대답, 홍콩 기업계의 우려를 한마디로 함축했다.
전문가들은 홍콩이 아시아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아시아의 작은 거인’으로 세계 4대 금융도시 지위를 유지해온 배경으로 통화 안정을 들고 있다. 홍콩달러에 1:7.8로 고정(pegged system)된 그린백(달러화)이 홍콩경제 안정의 보호막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가 최근 침체 상태에 접어들면서 이런 주장들은 ‘페그 시스템’ 회의론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이후 아르헨티나가 통화위기를 겪은 데 이어 9월 정부의 성장률 하향 조정 발표로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면서 ‘페그제 효용’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