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원까지 장악한 트럼프, 압박 거세질 것
준 만큼 받는 ‘거래형 협의’ 본격화할 것
한미 FTA 재개정 가능성은 높지 않아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체계적 사전 준비 필요
트럼프 2.0 = 경제안보·공급망 재편 2.0
11월 5일(현지 시간)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했다. [뉴시스]
트럼프 당선인은 차기 대선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4년 뒤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교역과 투자 부분에서 막강한 권한이 있는 상원과 하원까지 모두 장악했다. 자신들의 어젠다를 최대한 밀어붙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조야에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다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 불러들여 취임 후 100일간 통상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우리로선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2.0’은 바이든 4년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는 트럼프의 재등장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미 대통령 교체에 따라 정책이 자유무역이나 보호무역으로 변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미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일방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대중(對中) 압박을 강화해 핵심 기술 공급망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핵심기술 공급망 철저 통제
우리 입장에서는 과거 트럼프 4년이나 현재 바이든 4년이 내용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당분간 미국 우선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재선을 두고 “보호무역주의의 도래”로 보는 것은 정확한 성격 규정이 아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미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펴 왔다. 문제는 ‘속도’와 ‘강도’다. 동일한 정책 기조와 전략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의 결정 속도와 압박 강도가 바이든 때와는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더 빠른 결정이 내려질 것이고 더 강하게 우리에게 반응을 요구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 나름대로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지원 조치와 규제 조치를 도입했고, 새 제도 도입 이후에도 우리나라와 여러 루트로 의견 교환을 해왔다. 여러 법령이나 규정이 사후적으로나마 보정과 조율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 이리저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서 보조를 맞춰나갈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에는 그 같은 과정이 생략되거나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트럼프는 우리 정부나 기업에 더욱 직접적, 직설적으로 요구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지난 8년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처하며 내성을 길러왔지만 새로운 속도와 강도에 어떻게 적응해 이겨낼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진짜 문제는 보호무역주의 자체가 아니라 속도전과 전방위 압박이 될 것이다.
트럼프 2.0 시대에 마주할 또 다른 큰 변화는 ‘주고받기’의 전면 등장이다. 이념이나 원칙, 기준은 사라지고 정확한 계산에 따른 주고받기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래도 그 나름의 원칙을 갖고 여러 현안을 다루는 모양을 취했다. 우리도 이런 원칙을 염두에 두고 여러 조치에 동참하거나 협조했다. 국내적으로도 이 같은 원칙을 앞세워 국민과 기업의 이해를 구하고 컨센서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거래형(transactional) 협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받은 만큼 해주고 준 만큼 요구한다’는 뜻이다. 여러 상황별 계산서가 늘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트럼프 2.0 시대에는 이 두 가지 큰 변화를 전제로 교역과 투자 분야에서 4년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4가지 대응을 제안하고자 한다.
① 핵심 분야 문제 해결에 집중하라
먼저 선택과 집중이다. 우리 이해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초래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러 다양한 현안에 휘뚜루마뚜루 접근하지 말고 타깃을 명확히 정해 그 문제 해결에 집중하자.
가령 트럼프 당선 이후 당장 나오는 이야기가 ‘고율 관세’ 부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 보편적 관세를,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모든 상품에 이 정도의 관세 부과는 심각한 일이다. 최소한 1947년 GATT 출범 이후로 전례가 없다. 그런데 이는 세계적 차원에선 큰 파장일지 몰라도 우리에 대한 영향은 복합적이고 제한적이다. 일부 기업이나 산업에서는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관세 문제로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있던가. 국내외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도 대부분 결국 미국 스스로 손해를 보는 자충수라든지, 중국도 보복에 나설 것이라든지, 전 세계적 경제적 후생이 후퇴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세계시장에서 먹고사는 우리에게 물론 이러한 파급효과는 중요하나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 관세를 트럼프 행정부의 시그니처 조치로 파악하고 서둘러 걱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지금 자주 언급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도 마찬가지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 개정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미 FTA 재개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보도도 이어진다.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미 FTA 재개정을 들고나올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지금 미국의 핵심 관심 사항은 한미 FTA와 거리가 있다. 인공지능(AI), 첨단기술, 고사양 반도체 등은 한미 FTA와 관련성이 희박하다. 그런데도 굳이 지금 한미 FTA를 다시 들여다본다는 가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신 우리 대미 흑자 폭을 줄이라고 ‘거래형’ 협의에서 요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개연성만 갖고 여러 문제를 걱정하기보다 실제 우리에게 직접적 영향을 초래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게 현명하다. 그간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고민은 관세나 한미 FTA 이행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고민은 핵심 품목에 대한 들쭉날쭉한 제한, 예측 불가한 규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방책을 찾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당장 초미의 관심사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과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미래다. 둘 다 바이든 행정부 핵심 법률이니 새 행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손을 보려 할 것이다. 당황스럽다. 그간 그 법을 믿고 우리 기업들이 돈도 많이 쓰고 이리저리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 법들이 바뀐다면 우리 처지에서는 손해가 적지 않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손해를 줄이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령 법이 바뀌더라도 일단 이미 단행된 투자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나 예상 이익은 없앤다 해도 이미 돈이 들어가 구체적 활동이 진행되는 사업장이나 공장은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 기후변화나 재생에너지, 또는 세금 정책이 아니라 순수하게 비즈니스 측면에서 접근하면 뼛속 깊이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대를 불러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이전 정부 약속이었다”든지 또는 정책-법리 논쟁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어떻게든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만든다는 미국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가 없애자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변덕스러운 규제 아니었던가.
② 선제적으로 협의하라
둘째, 선제적 접근과 협의다. 불길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먼저 나서자. 사안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대략 지난 8년은 끊임없는 ‘뒤쫓기’ 게임이었다. 미국발 현안이 발생하면 그다음 사태 파악과 후속 대응에 나서곤 했다. 이때 미국의 반응은 주로 “이미 입법 작업이 끝나 바꾸기 어렵다”거나 “규정이 도입돼 지금은 손대기 곤란하다”는 식이다. 그러면 우리로서는 한미 관계 특수성을 감안한 선처와 선의를 여러 루트로 부탁하는 길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타이밍을 놓치니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것도 그만큼 어렵게 된다. 이런 사이클이 계속 반복됐다. 품목별, 영역별로 현안이 돌출하는 대로 ‘뒤쫓아’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를 들어 여전히 진행형인 반도체 분야 지원-규제 조치를 한번 보자. 미국 투자 확대와 중국 투자 제한을 골자로 한 반도체과학법이 시행된 건 2022년 8월이다. 한미 간 본격적으로 협의가 시작된 건 그 이후다. 이 단계에 가서야 우리 정부와 기업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작업이 마무리된 건 대략 1년여가 지난 2023년 9월이다. 다행히 우리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입법 과정에서 최소한 입법 직후에 이런 작업을 전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는 엑셀 차트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하다. 2020년 9월 처음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6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규제가 나왔다. 9월에도 새로운 조치가 나왔다. 대상과 방식이 계속 바뀌고, 어떤 건 미 상무부, 어떤 건 재무부, 또 어떤 건 국무부 소관이다. 규제 대상이 누구인지도 때로는 분명하지 않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수출 규제에서도 새 규제가 나온 다음 내용을 확인하고 뒤늦게 대응하기 바빴다.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다시 새로운 규제가 나왔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주로 사후에 진행되는 양국 논의 시점을 어떻게든 앞으로 당겨야 한다. 입법이 완료되고 규정이 완비돼 규제 체제가 갖춰지면 뭘 어찌해 보기가 너무 어렵다. 그전에 협의를 진행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우리가 적극 노력하면 미국도 충분히 수용할 것이다. 미국 정책을 바꾸라거나 보호무역 기조를 되돌리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원하는 새로운 규제나 요구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도입되도록 미리 한미 당국이 머리를 맞대 보자는 것이다. 그간 한미 논의를 보면 큰 그림에선 같은 입장인데 세부 항목에서 조율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조율 작업이 주로 일이 벌어진 다음 사후적으로 진행돼 힘들었다. 앞으로는 논의 시점을 앞당겨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사전 협의는 ‘비즈니스 친화형’ 환경을 만드는 데 핵심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해야 한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지금까지 한국 기업, 미국 기업의 어려움은 미국발 규제 조치보다 거기에 포함된 정리되지 않은 애매함,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규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무서웠다. 이 부분이 조금이라도 해소된다면 양국 기업 모두 환영할 것이다.
모든 영역과 품목을 포괄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8년을 돌아보면 양국이 첨예한 관심을 갖는 대상은 몇 가지로 좁혀진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이다. 이 분야만이라도 앞으로 체계적 협의가 사전에 이뤄진다면 우리는 물론 미국에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이 속도전으로 나올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도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규제가 공식화되기 전에 먼저 우리 의견을 전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의견을 모두 반영할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후속적 교정 작업의 폐해를 줄일 수는 있다. 설득을 한다면 이 단계에서 해야 한다. 뒤로 미루지 말자. ‘사후 대처형’ 8년을 접고 이제는 ‘선제 대응형’ 접근으로 나서자.
③ 주고받기식 접근에 대비하라
셋째, 주고받기식 접근에 대비하자.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효과적인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다사다난했던 바이든 행정부 4년을 거치며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 한미 양국이 서로를 한결 잘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근본적 문제는 무엇이고,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서히 정리가 됐다. 두 나라 여러 현안이 모두 해결됐다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 서로 같고 어디서 서로 다른지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일단 큰 그림을 맞추어둔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적지 않은 노력과 자원이 들어갔다. 이 큰 그림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를 토대로 미국이 새롭게 채택할 주고받기식 접근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분야에서는 양국이 서로 보완할 영역이 많이 있다. 방위산업은 양국 협력의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이 우리 조선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 해군 함정 보수와 건조에서 우리 조선업의 가치를 깨달은 까닭이다. AI 규범 형성에도 미국이 최근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우리 역시 이 분야 국제적 논의에 적극 참여해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양국 협력이 빛을 발할 가능성이 있다.
창의적 발상으로 한미 양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계속 발굴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거래형’ 논의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우리 현안을 관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추상적인 ‘한미 협력’이라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서로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찾아야 한다.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가 있었지만 양국 협력에서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건 아직 미미하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게 우리 레버리지가 될 수 있는지 대략의 판단이 설 수 있다.
④ 민관, 관관 새로운 차원에서 협력하라
마지막으로 새로운 차원의 민관(民官)협력이다. 이제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맞서려면 차원이 다른 ‘팀 코리아’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민관협력의 심화, 체계화 문제다.
민관협력에 있어 우리나라는 모범 국가다. 여러 영역에서 정부와 관련 기업이 오랜 기간 잘 협력해 왔다. 지난 8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데는 민관협력이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를 업그레이드할 시점이다. 앞으로의 교역-투자 환경은 한층 더 밀접하고 철저한 민관협력을 요구한다.
복합위기 시대에는 민관협력을 어떻게 이끌어갈지가 중요하다. 정부 기관이 가진 최신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기업들의 그것과 융합해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 다양한 대안을 신속히 검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민관이 함께 전방위적으로 나섰던 것처럼 민관이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분업 체제를 구성해 입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사안이 발생한 후 대책 회의나 의견 수렴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미국 측의 속도와 강도에 대응하려면 우리가 먼저 통합된 역량을 구축해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민관협력뿐 아니다. 관관(官官) 협력도 더 중요해졌다. 지금 국제사회의 화두인 ‘경제안보’에 대응하려면 정부 부처의 업무 영역과 칸막이 구별을 넘어서야 한다. 외교, 국방, 과학, 기술, 환경, 인권, 노동, 교역, 투자가 모두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여야 한다. 트럼프발 거래형 접근 공식이 본격화하면 이러한 영역을 넘나드는 고려와 평가는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줄지, 무엇을 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줄지, 어떻게 받을지 여러 영역에 대한 입체적 평가와 이를 통한 종합적 결정이 필요하다.
‘트럼프 2.0’은 ‘경제안보 2.0’ ‘공급망 재편 2.0’을 의미한다. [Gettyimage]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려면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세계는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어떻게 대응할 지를 두고 세계 각국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새로운 법률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하고 있다. ‘AI 기본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감감 무소식이다. 최근 ‘적국’ 조항에서 논의된 형법 개정안 문제도 우리가 세상 변화를 잘 쫓아가지 못한 결과다. 그 외에도 우리 법령 여러 곳에 산재한 국가안보 관련 내용은 대부분 과거 규범 체제와 생각을 담고 있다. 복합위기, 경제안보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 전반적인 점검과 조정이 필요하다.
작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분명 위협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4년의 집권 경험을 토대로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우리 역시 트럼프 4년, 바이든 4년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악전고투하며 선방했다. 어려웠던 미·중 갈등 국면에서 그 나름의 포지셔닝을 마치고 미흡하나마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대략의 그림을 갖게 되었다. 어렴풋하나마 우리의 행동반경이 정해진 것이다. 과거보다는 일보 진전한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국제환경이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랜 기간 우리 발목을 잡아왔다. 그런데 그 부산물인 방위산업이 이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전력 공급이 중요해지면서 우리 원자력 분야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도 탄탄한 제조업과 글로벌 수준의 콘텐츠 산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국가는 드물다. 우리가 그 가운데 하나다. AI 시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중요한데, 우리는 그 기초 토양을 갖고 있다. 수출이 우리 GDP의 70% 가까이 이르면서도 정작 내수시장은 작아 늘 다른 나라의 일방적 조치에 마음 졸여왔는데, 디지털 시대로 내수시장의 영토적 한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 역시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변화다. 이런 우리만의 장점을 이제 적극 살려야 할 때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 2.0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언제 쉬웠던 적이 있던가. 새로운 난관이 있겠지만 트럼프 2.0 4년도 전력투구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뒤쫓아 가려는 수동적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 새로운 환경을 이용할 것인지 능동적 사고와 적극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