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상징되는 현대사회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무수한 정보를 축적한다. 이른바 ‘빅데이터’다.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을 듯한 빅데이터가 조합과 분석을 거치면 민심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지표로 재탄생한다. 소셜미디어 컨설턴트, 빅데이터 전문가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연재하는 ‘빅데이터로 세상읽기’는 ‘소음’ 같은 빅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족집게처럼 찾아내 우리 사회의 좌표와 향배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미국 뉴욕대 교수이자 대표적 ‘긍정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의 저서 ‘바른 마음’은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대결의 원인을 심리학적으로 파헤쳤다. 하이트는 “정치 이슈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왜 그토록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자 했고, 나아가 인지과학을 통해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실험 결과를 예시하면서 결론적으로 “사람들의 판단과 정당화는 별개의 과정”임을 밝혀낸다. 직관적으로 판단이 내려지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근거를 추론해낸다는 것이다.
확증 편향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판단에 이르렀는지 그 실제적 이유들을 재구성해보기 위해 도덕적 추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론을 하는 까닭은 다른 누가 왜 마땅히 우리 편에 서서 우리처럼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가급적 최선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정치적, 종교적 이슈일수록 이러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화되는 경향을 띠는데, 오직 자신의 판단이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각자 자기 망치를 들고 상대방의 못을 찾아 강렬하게 대치한 형국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현대사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무수한 정보가 달려드는 상황을 연출한다. 우리는 정보의 가치를 판단한 겨를도 없이 ‘좋아요’나 ‘리트윗’ 버튼을 눌러댄다.
“IBM에 따르면 인류는 날마다 2.5퀸틸리언(quintillion·100경, 즉 1조의 100만 배) 바이트나 되는 자료를 생산하고 있다. 그 가운데 90%는 최근 2년 동안 생산된 자료라고 한다.”(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이런 정보들을 빅데이터라고 한다. 빅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 네이트 실버는 “정보의 양이 빠르게 늘어난다고 해도 유용한 정보의 양이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수많은 ‘소음’ 속에서 어떤 의미 있는 ‘신호’를 발견해 낼 것인지가 빅데이터 시대에 주어진 숙제다.
9월 첫 주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잘하고 있다’와 ‘잘못하고 있다’가 45대 45로 팽팽히 맞서 있다. ‘어느 쪽도 아니다’는 4%에 불과하다. 벼랑 끝에서 필사적으로 맞붙은 듯한 극강의 대치 국면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나(지지율 44%),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진영을 대표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22%).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팽팽히 맞선다는 것은 의회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이른바 ‘광장의 힘’이 작용하는 이유다. 특히 20~40대는 부정 평가가, 50대 이상은 긍정 평가가 압도적이다. 세대 대결 양상 또한 더욱 격화한 것.
45대 45
실제로 8월 마지막 주 트위터와 블로그에 나타난 인물 언급량 순위 1위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이어온 ‘유민아빠’ 김영오 씨였고, 2위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국가권력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이 정면 대치하는 가운데 의회정치는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표류한다. 이런 대치 상황과 의회정치 실종이 데이터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2013년 1월 1일부터 2014년 9월 9일까지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올라온 문서중 ‘박근혜’라는 키워드를 입력한 1336만1160건의 문서를 대상으로 전체 언급량 추이와 연관어 분석을 통해 인수위를 포함한 박근혜 정부의 약 20개월을 개괄적으로 들여다봤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문서를 생산하는 주요 계층이 20~40대라는 점을 감안해서 데이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여론조사 등과의 상관성 분석을 통해 세대 취약성을 보완하려고 노력했음을 밝혀둔다.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은 ‘소셜 메트릭스’를 활용했다.
약 20개월 동안 ‘박근혜’라는 키워드를 언급한 문서가 1336만1160건이라면 사람들이 매월 평균 65만 건 이상, 매일 2만 건 이상 ‘박근혜’를 언급하면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유통시켰다는 얘기다. 그것도 오직 ‘박근혜’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나온 수치다. ‘박 대통령’이나 대통령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들을 포함하면 문서 건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통상 특정 키워드가 하루 3만 건 정도의 언급량을 기록하면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압도적 버즈량의 명암
이렇게 압도적인 버즈량(buzz量·언급량)은 박 대통령이 여전히 정치적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만큼 과도하게 비판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3개월 단위 분기별로 쪼개어 나타내면 과 같다.
대통령직인수위를 포함한 1분기(2013년 1월 1일~3월 31일)의 ‘박근혜’ 언급량은 155만9924건이다. 1분기 언급량을 끌어올린 주요 이슈는 인사 문제였다. 1분기 인물 연관어를 보면 1위부터 이명박, 문재인, 박정희, 노무현, 조웅(목사)의 순이었고, 이동흡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용준 총리 후보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김병관 전 국방장관 내정자 등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1분기 ‘박근혜’ 속성 연관어를 봐도 8만269건을 기록한 ‘인사’가 10위에, 7만1856건을 기록한 ‘장관’이 13위에 언급됐다. 1분기에 ‘경제’ ‘공약’ ‘정책’ 같은 키워드가 20위권 안에 언급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즉 기대심리와 인사파동이 공존하며 대통령 지지율이 용암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2분기(2013년 4월 1일~6월 30일)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3분기(2013년 7월 1일~9월 30일)에도 해소되지 않고 ‘채동욱 검찰총장 파동’ 등을 거치며 오히려 강화됐고, 급기야 4분기(2013년 10월 1일~12월 30일)에는 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신부 등에 의해 대통령 사퇴론까지 제기되면서 강력한 대치국면을 불러왔다.
언급량을 보면 2분기에 122만3371건으로 주춤했다가 3분기에 170만548건으로 늘어났고 4분기엔 무려 248만5169건을 기록했다. 2분기 인물 연관어 특징으로는 7만4695건으로 2위에 오른 윤창중 전 대변인과 5만7925건으로 4위에 오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들 수 있다. 3분기에는 6만859건을 기록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4위에 올랐고, 8월 5일 새롭게 비서실장에 취임한 ‘김기춘’ 키워드가 3만4716건을 기록하며 9위에 올랐다. 뒤이어 남재준, 원세훈, 이석기, 김용판, 이정희 등이 이름을 올려 ‘국정원’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고, 여야 정당은 국정원의 그늘에 가려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4분기에는 국정원과 기무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쟁점이 정치적 대결로 점화했다. 10월 28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및 민생입법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더욱 확산됐다.
여기에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후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세했고 급기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공방은 철도노조 파업으로 이어졌고 이런 극한의 대립 상태에서 일부 야당 의원과 재야를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사퇴론에 불을 지피면서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4분기 인물 연관어를 살펴보면 11만4292건을 기록한 문재인 의원이 2위에 올라 정치 대결이 진영 대결로 확장됐음을 보여줬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한길 의원도 5위에 올랐다. 그 밖에 20위 안에 오른 인물은 이정희, 채동욱, 김기춘, 윤석열, 장하나, 박창신, 조국, 표창원, 이석기 등으로 국정원 선거개입과 민영화, 복지공약 후퇴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의회의 울타리를 넘어 광범위하게 확산됐음을 보여줬다.
4분기 속성 연관어를 보면 ‘사퇴’ 키워드가 15만8886건을 기록하며 6위에 올랐고 8만2338건을 기록한 ‘민영화’ 이슈도 15위에 랭크됐다. ‘경제’ 키워드는 1분기 11위에서 2분기 10위로 강세를 이어갔지만 3분기엔 18위, 4분기에는 20위로 밀려나 정치적 대결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준다.
초대형 참사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새해 구상을 밝혔다. 이날 나온 ‘통일 대박론’은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본격적인 통일시대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꽤 신선하게 들렸다. 정치적 대결 속에서도 국가의 미래전략을 고민하고 있다는 박근혜식 리더십을 보여주는 듯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비정상의 정상화, 내수확대 등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원칙과 소신을 기반으로 진보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끌고 온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빛났다. ‘보수 혁신’을 기치로 내건 당시 새누리당은 당명을 비롯해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정하는 파격을 통해 변화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어젠다를 선제적이며 선택적으로 가져오면서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고, 계파 간의 이해관계에 얽혀 정체 상태에 있는 야당의 어젠다를 선취하는 효과도 동시에 거뒀다. 특히 김종인, 이준석 카드는 효과 만점이었다.
박 대통령의 강점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어젠다를 선점할 때 잘 실현된다. 진보, 보수를 넘나드는 어젠다 크로스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지 기반과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보수의 틀 안에 갇히는 경향을 보였다. 박 대통령처럼 강력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 틀에 갇히면 리더십의 강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통 이미지’가 대신 차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신년 기자회견은 적어도 정치적 중도층에게 일정하게 어필했다. 2분기부터 살아난 대통령 지지율은 12월의 대격돌에도 불구하고 5분기(2014년 1월 1일~3월 31일)에도 일정하게 유지됐다. 언급량도 151만3736건으로 4분기에 비해 39.1%나 감소했다. 국정원 이슈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비판의 강도나 양이 상당히 줄어든 것이다.
민주당과 새정추가 통합하면서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의 언급량이 치솟았다. 3월 첫 주 박 대통령은 전체 인물 언급량 순위에서 처음으로 안철수 대표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박 대통령이 주간 인물 언급량에서 1위를 내준 경우는 이후 3차례 더 있는데 문창극 인사파동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김영오 씨 단식 때였다).
하지만 4월 16일, 즉 6분기(2014년 4월1일~6월 30일) 중반에 터진 세월호 참사는 쓰나미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세월호 참사 한 달 동안 ‘세월호’ 관련 언급량은 무려 611만5546건에 달한다. 하루 20만 건이 넘는 것으로 빅데이터 관측사상 최대 규모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3배가 넘는다. 하루 언급량 기준으로 ‘박근혜’의 10배가 넘는다. 세월호 사고 이튿날인 4월 17일 하루에만 37만2675건의 문서가 검색됐다( 참조).
세월호 참사의 중심에 박 대통령이 있었다. 참사 후 90일 동안 세월호와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를 보면 박 대통령이 137만5200건으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이준석 선장은 35만2414건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참조).
6분기의 박 대통령 언급량도 338만7317건을 기록해 5분기에 비해 124%나 증가하며 분기 언급량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존에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대거 가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수학여행 가던 고2 ‘아이들’의 죽음에 감정을 깊이 이입했으며 이는 국민적 슬픔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에 있었던 지방선거도 월드컵도 세월호 이슈를 넘어서지 못했다.
6분기에는 박근혜 정부 최대의 인사파동이라 할 수 있는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13만3648건으로 인물 연관어 2위에 올랐고, 청와대 컨트롤타워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기춘 비서실장이 9만5062건을 기록하며 5위에 올랐다. 이밖에 세월호 사고의 1차 책임자인 이준석 선장과 유병언 씨,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으로 지방선거에서 패한 정몽준 전 의원, 정홍원 국무총리, 길환영 전 KBS사장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6분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언급된 속성 연관어에도 유가족, 언론, 책임, 아이, 사건, 구조, 기자 등이 20위 안에 랭크되면서 세월호 참사 영향을 입증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담화와 관련해 ‘눈물’ 키워드가 9만5746건을 기록하며 18위에 랭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메시지는 이후 지방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소통과 공감
7분기(2014년 7월 1일~9월 9일)는 아직 미완성이다. 언급량 추세를 보면 6분기보다는 빈도가 다소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7분기의 핵심 이슈는 ‘세월호 특별법’이다. 7분기 인물 연관어 1위에 10만93건을 기록한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오른 것만 봐도 특별법 이슈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 등으로 많이 언급됐고 유병언 씨, 김기춘 비서실장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1,2차 협상 이후 유가족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서 뭇매를 맞았고 10위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단식 중인 가수 김장훈 씨와 조류인플루엔자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도 20위 안에 올랐다. 속성 연관어에서도 세월호의 흔적은 뚜렷했다. 유가족, 정권, 단식, 아빠, 교황, 특별법, 책임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SNS 언급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긍정적인 일일까. 선거 시기엔 그럴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선거 시기 후보자들의 언급량은 지지율 상승의 선행지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 당시 후보는 월간 언급량에서 문재인, 안철수 두 야권 후보에 뒤진 적이 거의 없다. 언급량은 관심도를 반영하며, 관심도는 SNS가 갖는 세대집중 현상도 일정하게 커버하는 패턴을 갖고 있다. 물론 여기에 긍·부정 언어 분포도를 결합하고 여론조사를 추세적으로 결합해 분석하면 더 의미 있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선거 시기가 아닌 때에 대통령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모두 청와대만 바라본다면 대통령의 부담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에 올라온 박 대통령 관련 언급량과 한국갤럽의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 추이를 비교해보면 언급량이 많아질수록 부정평가 비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추이는 보다 많은 데이터를 갖고 상관성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는 한국갤럽의 정례조사를 바탕으로 분기별 평균 근사치를 표현한 것이고, 는 앞에서 언급한 ‘박근혜’ 키워드 분기별 SNS 언급량 추이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SNS 언급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4분기와 6분기에 부정 평가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관심 집중을 해소하려면 청와대 비서진과 각료들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그들이 대통령 뒤에 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으면 국민의 모든 관심도 대통령에게만 쏠리게 돼 있다. 참모들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하려면 일상적 소통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여러 언론매체가 지적했듯이 청와대 안에서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불합리한 공간 구조부터 혁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일상적인 소통을 통해 참모들의 자율성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지적처럼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대통령 자신의 공간은 가장 비정상적인 상태로 놓아두면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공간의 민주성을 최대한 살린 백악관에서조차 닉슨처럼 내부 소통에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는가.
의회와의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 전체 순위를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도 늘 소통의 문제를 야기해왔으며 이른바 ‘CEO적 마인드’로 효율을 중시하면서 여의도 정치를 멀리했다.
최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인상이고, 언론은 추석 민심을 근거로 국회를 맹비난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한국의 대통령들에게 미국의 상하 양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안병진 교수는 “미국 의회는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등 수많은 방식을 통해 의회를 일부러 느리고 성가신 기관으로 만들어 잘못된 실용과 효율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예방하려 했다”고 썼다. 의회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의회를 적대시하거나 멀리하는 것은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가장 위험한 모순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와 함께 언급된 전체 인물 연관어 순위를 살펴보면 앞서 말한 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95만2456건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참조). 이는 박근혜 정부를 말할 때 이명박 정부의 연속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명시한 대통령 직무에 대한 부정평가 원인 1위는 소통 부족이다. 소통 부족과 의회정치 불신이 이명박 정부와 연관돼 자주 언급되는 것.
박근혜와 이명박
2위 노무현, 4위 박정희, 10위 김대중, 11위 전두환 등 10만 건 이상을 기록한 인물 연관어 16명 가운데 5명이 전임 대통령이다. 이것을 두고 이른바 ‘박정희 체제’의 종합판이라고 비약할 생각은 없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과거의 이념적 대립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은 가능해 보인다. 과거 정부의 프레임으로 현 정부를 바라보는 경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의원이 48만3055건으로 3위에 오른 것도 의회정치의 복원이라기보다 대결적 정치구도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지난 대선의 라이벌이 이른바 부정선거 논란과 결부돼 계속 부각되는 셈이다.
지난 8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 자갈치시장을 방문했다. 이른바 민생 행보다. 추석 물가를 점검하고 동북아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 추진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이 모든 정치를 얼어붙게 하는 마당에 굳이 이런 행보에 나서야 했는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반복적인 행보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 전 대통령도 논란이 많은 이슈를 국회에 툭 던져놓고 이른바 민생 행보를 한 경우가 많았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개별 의원들과의 밀착외교로 야당인 민주당과의 관계에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클린턴이 적당한 거래로 의회를 관리했다면 레이건은 진심으로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레이건 스타일을 집대성한 것이 오바마 대통령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는 소토마이어 대법관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법사위의 모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의원들은 ‘놀랐다’고 했다. 또한 320명의 하원의원과 80명의 상원의원이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을 배석자 없이 일대일로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조 바이든 부통령과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은 일부러 의회 건물에서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즐기면서 의원들과의 일상적 스킨십을 도모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정치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갈치시장에 갈 시간과 노력만큼이라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청와대에 불러 토론하는 문화를 기대하는 것도 과한 일일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원내대표 협상을 파기한 새정치연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다. 그런데 세월호 특별법의 표류 책임이 전적으로 새정치연합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지지율도 바닥인 데다 당내 리더십도 형성되지 않았고 유가족을 설득할 힘도 갖지 못한 안쓰러운 정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여당인 새누리당보다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이런 교착 국면이 형성됐을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화하고 풀어가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비효율의 효율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할 때 소통이 시작된다. 의회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상대방의 처지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고 여당은 물론 야당도 이에 호응할 때 정치가 복원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얘기다.
효율만을 강조한 독재 정권도, 사회주의 정권도 결국 그 질서정연한 효율 추구로 인해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의회민주주의의 핵심 철학 가운데 하나는 이런 ‘비효율의 효율’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는 철의 법칙이 하나 있다. 안병진 교수는 이에 대해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는 것은 민주공화국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곧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법칙”이라고 정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힘이 세다. 그리고 많은 국민은 박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갖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의 지지율 45%는 새누리당 지지율 44%와 거의 일치한다. 세대별로도 50대 이상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온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50%의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 박 대통령의 2년차 2분기 지지율은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때보다는 낮고, 이명박 노무현 대통령 때보다는 높다.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클라크는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인류는 지금 디지털 혁명의 정중앙에 서 있다. 세상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와 소음 속에서 우리가 잡아야 할 신호와 미래를 쟁취하지 않으면 국가 간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소통과 공감이야말로 정치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유일한 길이다. 박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는 의외로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