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로제 ‘아파트’ 글로벌 열풍, 정확히 설계한 작업의 결과물

[특집 | 로제 ‘아파트’ 열풍] 치밀한 음악 전개·철저한 마케팅·권주가…

  • 임희윤 음악평론가

    입력2024-11-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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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화 대상이던 콩글리시가 ‘본토 발음’ 된 사건

    • ‘APT.’는 정교하게 설계한 노블티 송

    • 철저히 기획된 음악 안팎의 마케팅

    • ‘APT.’는 권주가, 권주가는 힘이 세다

    11월 12일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아파트(APT.)’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가 3억 건을 돌파했다고 로제의 한국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이 밝혔다. [더블랙레이블]

    11월 12일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아파트(APT.)’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가 3억 건을 돌파했다고 로제의 한국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이 밝혔다. [더블랙레이블]

    “아델~? 아델 아니고, 자, 따라 해봐. 에이덜리~!” 2008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어떤 술자리에서 아파트 게임 대신 발음 게임이 펼쳐졌던 것이. 영국 가수 아델이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Rolling in the Deep’이나 ‘Someone Like You’ 같은 메가 히트곡이 나오기 3년 전이었고, 아델은 그저 현지에서 주목받는 신인에 불과했다. 팝 전문가 선배 A가 ‘Adele’의 발음을 좌중에 한 수 가르쳐주는 타이밍은 그때 마련됐다. “A.D.E.L.E. 어때. 철자가 좀 헷갈리지? 발음은 보통 ‘에이덜리~’가 맞는 걸로 알고 있어. 아델이라는 설도 있는데 현지 영어 느낌으로는 에이덜리…. 따라 해봐. 에이덜리~.” 그러나 ‘맞는 발음’, 그러니까 본토 발음이 ‘아델’이라는 게 알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아보면 ‘본토 발음’에 장기간 트라우마가 있었다. 나도, 우리 민족도. ‘호(呼)오렌지’, 즉 오렌지를 감히 오렌지라고 하지 못했던 그 시절도 떠오르는 것이다. 오렌지를 ‘어린쥐’로 불러야 했던 내 어린 시절 말이다. 그 무렵에 배웠다. ‘아파트’도 콩글리시라고. 미국에서는 ‘어팔트먼트(apartment)’라고, 영국에선 아예 ‘플랫(flat)’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더 배운 분들이 가르쳐주셨다. 초등학생 때 뉴질랜드 사는 펜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내 주소를 ‘apartment’라고 또박또박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아파트라니! ‘아파트, 아파트’라니! 시절이 바야흐로 ‘하수상’하다. 한국 가수 로제가 낸 신곡 ‘APT.’가 나오자마자 영국 싱글차트 2위, 미국 빌보드 핫100의 8위까지 찍었다. 세계인이 ‘아파트, 아파트!’ 하는 콩글리시를 못 따라 불러서 안달이다. 로제가 직접 영상을 통해 아파트를 한국인처럼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apatue’라는 독음까지 달았다. 천하의 ‘그’ 브루노 마스(브루노 비너스나 브루노 주피터 같은 짝퉁도 아닌)도 뮤직비디오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apatue!’라고 외친다.

    콩글리시의 승리이자 한국적 상징의 승리

    걸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인 로제의 솔로 싱글 ‘APT.’ 신드롬은 그래서 놀랍다. 콩글리시의 승리이자 모든 한국적 상징의 (낯간지럽지만) 승리이다. ‘APT.’의 히트는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노블티 송(novelty song)’으로서의 측면이다. ‘색다르고 진기하고 어이없게 재미난 노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노블티 송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하나의 이색 장르로까지 분류되는 추세다. 이를테면 ‘다리가 넷이어라’의 반전 가사로 유명한 ‘삼국유사’ 속 8구체 향가 ‘처용가’부터 2012년 ‘강남스타일’까지 이 장르로 묶을 수 있다. 가사든 악곡이든 뭔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런 만큼 이상하게 중독적 노래들이다.

    노블티 송 가운데 상당수가 자생하고 구전된 것이라면 20세기 대중음악 시대에 들어오면 기획된 노블티 송의 춘추전국시대를 이룬다. ‘APT.’는 정확히 설계된 노블티 송이다. 음악적으로 그렇다. 더욱이 전 세계에 글로벌 붐을 일으키는 데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고려해 보면, 아무리 소셜미디어로 얽힌 초연결 시대라고 해도 대단한 사전 바이럴 마케팅 계획과 비용과 여러 채널과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모종의 ‘물량 공세’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음악부터 보자.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께임! 랜덤~ 께임!” 하는 도입부부터 쓸데없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채영이가 좋아하는~’의 한국어 구절도, ‘게임(game)’을 ‘께임!’으로 발음하는 콩글리시도 알아먹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트로만 별로여도 휙 넘겨버리는 이 쇼트폼 시대에 굳이 저 대목을 6초나 할애하며 로제는(또는 이 곡의 제작자나 프로듀서는) 과감히 집어넣었다. 이것은 의도된 소음, 또는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환경음악)의 요소다. 궁금증을 유발한다. 청신경을 거쳐 시상하부에 ‘?’가 뿅 떠오를 때쯤 다음 구절이 바로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apatue, apatue!(아파트, 아파트!)’ 축구장이나 야구장의 응원가, 또는 ‘노래 해! 노래 해!’의 독려 구호쯤으로 들리는 이것. 뭔가 익숙하다. 일단은 미국 가수 토니 배즐의 1982년 히트곡이자 치어리딩 송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Mickey’가 떠오른다. 내겐 미국 밴드 더 낵의 1979년 히트곡 ‘My Sharona’도 연상됐다. 어찌 됐든 호모사피엔스라면 반사적으로 대퇴골 언저리를 들썩이게 할 당김음 리듬과 반복 구절.

    이어서 랩에 가깝도록 멜로디가 절제된 1절(‘Kissy face, kissy face, sent to your phone~’)이 드럼 패턴과 언뜻언뜻 비치는 몇 개의 반주음만을 동반해 펼쳐져 듣는 이를 감질나게 만든다. 이러다 마는 노래인가 싶을 때, ‘Don’t you want me like I want you, baby~’ 하는 후렴구가 다짜고짜 투두둑 쏟아져 내린다. 멜로디와 기승전결이 배제된 응원가 비슷한 것이 절벽 끝처럼 툭 끝나며 매우 멜로디컬한 노래의 드라마가 문득 열대 소나기인 스콜처럼 들이치는 것이다. 무려 세 가지의 매우 다른 부분을 단 32초 만에 주파해 하이라이트에 도달한다. 요즘 말로 하면 ‘제로백’(승용차에서 시속 0㎞/h에서 100㎞/h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속되게 이르는 말) 수치가 대단히 짧은 급발진 성격의 노래인 셈이다.

    자, 이제 조성(調性)을 보자. 이 곡은 C단조다. 우리말로는 다단조. 그러니까 도가 으뜸음인데 애절한 단조라는 얘기다. 후렴구의 화성 진행은 ‘A♭- B♭-Cm(마이너)-E♭’이다. 쉽게 말해 대중음악에서 너무너무 자주 쓰이는 코드 진행 패턴이다. 반복되는 멜로디에 단 네 개의 코드로 최단기간에 드라마틱한 느낌을 박아 넣기 좋은 포맷이다. 이어 브루노 마스의 2절이 마중 나온다. 빠르게 지나는 영어 가사 사이로 ‘아파트’와 ‘건배’를 거의 정확한 한국말로 투하한다. 다음 두 번째 후렴구. 첫 번째 후렴이 로제의 독창이라면 여기서부터는 브루노 마스가 주선율, 즉 메인 멜로디를 부르고 로제가 받쳐주는 부선율, 즉 화음 멜로디를 부르며 듀엣을 한다.

    ‘아파트’ 세 음절에 숨은 치밀한 음악 전개

    얼핏 보면 매우 단조로워 보이는 노래의 건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4층, 아니 제4의 파트다. 1분 37초부터 반주가 문득 ‘솔, 솔, 솔, 솔, 솔, 솔, 솔…’을 편집증적으로 깔아주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빌드업’ 파트가 끌고 나오는 제4부이자 노래의 제2하이라이트다. 화성 진행이 갑자기 ‘Cm-B♭-E♭-C’로 바뀐다. 소절이 넘어갈 때 ‘C’ 코드가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바뀌면서 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 포인트. 이 구간이 있기에 이 곡은 좀 더 다이내믹해지고 자꾸만 듣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곱절로 증가한다.

    마지막 40초는 전력 질주이자 총공격이다. 지금껏 나왔던 거의 모든 등장인물, 즉 ‘아파트, 아파트!’와 멜로디컬한 후렴구에 새로운 코러스까지 물밀 듯 터져 나오면서 ‘부디 이 곡을 기억해 줘!(그리고 또 들어줘!)’의 호소로 막판 질주한다. 여기까지가 ‘아파트’라는 단 세 음절의 단어 뒤에 숨은 상당히 치밀한 이 곡의 음악적 전개다.

    그렇다면 그냥 음악 좋고 재미나서 뜬 걸까. 아니다. 아까 살짝 얘기했듯 철저히 기획된, 음악 안팎의 마케팅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기반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로제와 브루노 마스다. 일단은 로제가 속한 블랙핑크의 파워가 뒷배다. 블랙핑크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폴로어를 거느린 K-팝 스타다. 2021년 9월, 블랙핑크는 유튜브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전 세계 가수 중 공식 채널 구독자 수 1위에 올라섰다. 미국이나 영국 현지의 오프라인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팝스타라는 얘기다.

    블랙핑크는 데뷔 초반부터 가수 그 이상의 인플루언서를 추구했고, 그것을 달성했다. 샤넬(제니), 생로랑(로제), 셀린(리사), 디올(지수)의 뮤즈로 활약하며 한 그룹의 전 멤버가 각자 유명 브랜드 앰배서더로 세계 10, 20대의 선망을 받았다. 공개하는 뮤직비디오마다 수억 뷰, 수십 억 뷰를 단기간에 달성했다.

    로제는 ‘APT.’로 한국 여성 가수 사상 빌보드 싱글차트 최고 순위 기록(8위)을 달성했는데 종전 1위가 바로 블랙핑크였다.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를 참여시켜 함께 부른 ‘Ice Cream’(13위)이었다. 2023년 4월에는 북아메리카 최대의 야외 대중음악 축제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에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도 섰다. 이 자리는 비욘세, 빌리 아일리시, 해리 스타일스 같은 영미권 최고의 팝스타가 독차지하던 곳이다. 2018년 비욘세의 ‘비(베이)첼라’가 팝 팬들의 레전드 무대라면 K-팝 팬들에겐 지난해의 ‘핑첼라’가 전설로 꼽힌다.

    이 아파트 게임을 완성한 마지막 마스터키는 브루노 마스다. 1985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출생. 본명은 피터 진 에르난데스. 부친은 푸에르토리코와 유대계 혈통, 모친은 스페인과 필리핀계 혈통. 훌라 댄서이던 모친과 타악 연주자이던 부친 사이에 태어난 이 다문화 아이돌은 21세기 마이클 잭슨으로도 불린다. 작사, 작곡, 편곡, 악기 연주, 노래, 춤과 끼까지 다 되는, 한판 질펀하게 놀 듯이 음악하는 친구다. 2010년 솔로 1집 ‘Doo-Wops & Hooligans’에서부터 ‘Just the Way You Are’ ‘Grenade’를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면서 ‘황금 떡잎’을 보여줬다. 데뷔와 동시에 바로 팝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2012년 2집 ‘Unorthodox Jukebox’, 2016년 3집 ‘24k Magic’을 차례로 모두 히트시키면서 최고의 팝스타가 된다. 3집은 2018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6관왕을 마스에게 안긴다. 한국계 다재다능 팝스타 앤더슨 팩과 함께 듀오 실크소닉(이 팀도 그래미를 휩쓴다…)으로도 활약한 브루노 마스에게 다문화는, 한국 문화는 꽤 가깝고 친밀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계 미국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 앤더슨 팩(왼쪽)과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실크 소닉’은 2022년 4월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2관왕을 안았다. [AP/뉴시스]

    한국계 미국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 앤더슨 팩(왼쪽)과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실크 소닉’은 2022년 4월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2관왕을 안았다. [AP/뉴시스]

    게임으로나마 맘껏 짓고 허무는 ‘허황의 성채’

    이 노래가 일종의 권주가라는 데도 주목해야 한다. 권주가는 힘이 세다. ‘오늘밤 마시고 취해서 너랑 나랑 생의 고뇌를 잊고 하나가 돼보자’는 식의 노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서사시였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남녀가 술 게임으로 하나가 된다는 ‘APT.’의 메시지는 그래서 꽤 힘이 있다.

    싸이도 ‘강남스타일’ 이후 이 스타일을 제대로 기획해 실행한 바 있다. 바로 미국 인기 래퍼 스눕독을 참여시켜 함께한 곡 ‘Hangover’(2014)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이 잘되자 해외를 돌며 현지 음악계 VIP나 스타들과 술자리를 펼치면서 한국식 폭탄주 문화를 전파하며 그 자체로 또 한번 화제가 된다. 여기 착안해 기획한 곡이 바로 ‘Hangover’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3억 회를 넘었다. 한미 대표 악동 가수인 싸이와 스눕독이 먹고 마시고 러브샷하고 당구장 가고 노래방 가고 변기에 토하고 하는 시답잖은 영상의 연쇄가 당시 꽤 큰 화제를 모았었다. ‘APT.’를 보면서 조금 점잖고 안전하며 귀여운 버전의 ‘Hangover’를 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공중파 TV에서 주류 광고는 오후 10시 이후에야 송출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아파트, 아파트!” 하며 권주가를 부르는 소년 소녀를 말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아마 문화 부국, 국위선양에 관한 환상 또는 재미난 노래, 춤의 힘에 흠뻑 취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아파트의 환상에 취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APT.’에는 “오늘밤 이 아파트를 클럽으로 만들어버려”라는 가사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브루노 마스는 대성공을 거둔 실크소닉의 히트곡 ‘Leave the Door Open’에서 저택 환상을 자극한다. ‘문 열어놨으니’라는 제목처럼 이 노래에서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은 가상의 누군가를 향해 좋은 와인, 부드러운 드레스, 물 덥힌 수영장이 완비된 나의 집 문을 열어놨으니 ‘동관에서, 서관에서(in the east wing and the west wing)’ 사랑을 나누자고 권한다.

    해가 지고 밤이 오면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불빛을 뿜는 아파트. 그 무수한 빛의 환기구를 바라보면서도 온전한 자가 마련의 꿈은 멀었다며 한숨 짓는 청춘에게 아파트는 손등을 포개 짓는 ‘아파트 게임’으로나마 맘껏 짓고 허물 수 있는 허황의 성채일지도 모를 일이다. 반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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