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워팔기’는 기본, 폭우에도 골프장 와서 취소하라니…

[밀착 취재] 골프장 배짱 영업에 이용객 분노 폭발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4-11-1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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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골프장 민원 3년 새 154% 증가

    • “그린피 폭리는 골프장·에이전트 담합 합작품”

    • 대량으로 골프 시간대 예약한 뒤 가격 부풀려

    • 잔디 탄 골프장도 평일 그린피 24만 원

    최근 국내 골프 인구가 급증하면서 일부 골프장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지 않고 비용 올리기에만 급급해 이용객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Gettyimage]

    최근 국내 골프 인구가 급증하면서 일부 골프장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지 않고 비용 올리기에만 급급해 이용객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Gettyimage]

    사업가 이세민(43) 씨가 골프를 치기 시작한 건 사세가 확장되던 5년 전부터다. 이 씨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일부 입주민과 골프 동호회를 꾸려가고 있다. 그는 국내 골프장을 이용한 입주민들과 대화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골프장 배짱 장사가 너무 심해요. 골프 라운드 예약할 때 숙박권과 상품권, 레스토랑 이용권을 함께 구매해야 하는 ‘끼워팔기’는 기본이죠. 이걸 어기면 내년 예약 팀에서 제외하겠다나…. 그동안 국내 골프장의 횡포에 진절머리가 난 걸 생각하면 쳐다보기도 싫다니까요.”

    국내 골프장 먹잇감으로 전락한 이용객들

    그는 2019년 골프 입문 초기부터 국내 골프장의 횡포를 경험했다. 주말 야간에 사업 파트너들과 라운드를 즐겼는데, 경기용 전등이 돌연 꺼져버렸다. 라운드는 일시에 중단됐고, 이후에도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이 씨는 골프장 측에 잔여 홀 이용료를 환급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담당자는 이를 거부했다. 이 씨가 “사용하지 않은 코스 이용 요금을 돌려주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사내 변호사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겠다”며 이 사안을 법리로 다투려고 하자 골프장 담당자는 그제야 “죄송하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꼬리를 내렸다.

    “골프장을 여러 곳 이용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경우 돈을 돌려주지 않는 골프장이 적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소비자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가 골프장에 맞서 소비자 편을 들어줬는데, 강제성이 없어서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거의 안 돼요.”

    법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이 씨의 사례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법률을 잘 알지 못하거나, 법적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는 이용객들은 눈 뜨고 코 베이기 십상이다.

    이제 골프는 엄연히 ‘국민 스포츠’ 자리 잡았다. 그러나 명성과 달리 이용객을 ‘봉’으로 보는 일부 골프장의 횡포는 오히려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 씨처럼 골프장의 영업 방침을 둘러싼 소비자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수집된 골프장 관련 민원은 총 884건(누적 기준). 2021년 131건에 달하던 골프장 관련 민원은 2022년 200건을 넘어서더니 올해 334건을 기록하며 3년 새 무려 154% 증가했다. 민원 내용도 골프장 예약 및 해지(46.5%, 411건), 대중골프장의 이용 질서 미준수 등 이용 불공정(41.9%, 370건), 음식물(3.5%, 31건), 기타 민원(8.1%, 72건) 등 다양하다.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다. 여가 활동에 제약이 생겼지만 골프는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즐기는 야외 활동이기에 예외였다. 이용객의 평균연령도 확연히 낮아졌다. 해외여행 제한 등의 이유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2030세대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다가 골프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골프 대중화의 포문이 열린 셈.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골프 이용객은 국내 골프장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2021년 연간 골프장 이용객 수는 5056만643명을 기록하며 5000만 명 고지를 돌파했다. 불과 2년 새 20.3%(4170만992명)가 증가한 것이다. 2021년 당시 6홀 이상을 구비한 전국 골프장은 505개였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골프장 한 곳당 10만 명 이상이 이용한 셈이다.

    리무진 카트 도입 후 카트비 2배 올라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니 소비자는 철저히 뒷전으로 내몰렸다. 골프장 이용요금(그린피) 인상이 대표적 예다. 골프 예약 전문 기업 엑스골프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9년 16만5814원이던 수도권 평균 그린피는 2022년 23만3276원으로 3년 새 무려 40.6%가 상승했다.

    골프 라운드를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할 수 있다. [Gettyimage]

    골프 라운드를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할 수 있다. [Gettyimage]

    ‌그렇다면 단순히 골프의 인기가 많아져 그린피가 상승한 것일까. 한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린피 폭리는 국내 골프장과 골프장 부킹 대행 에이전트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몇 년 새 회원권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제 골프장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골프장 부킹 대행 에이전트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골프장을 예약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골프장 홈페이지에서 그린피 정상 가격 표시가 어느새 사라지더니 정상 경로로 부킹 앱에 접근했음에도 예약이 어려운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 업계 관계자는 “일부 국내 골프장과 담합한 골프장 부킹 대행 에이전트가 대량으로 골프 시간대를 예약한 뒤 가격을 부풀려 판매하면서 그린피가 천정부지로 뛴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린피에 이어 카트 이용료도 급등했다. 2018년부터 주말마다 지인들과 부부 동반으로 라운드를 즐긴다는 최범석(51) 씨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직전까지 8만 원 내외이던 카트비는 2023년 10만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부터는 수도권 골프장을 중심으로 20만~30만 원에 달하는 6인승 리무진 카트를 도입하더니 카트 이용료 징수 방식을 1인당에서 팀당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최 씨는 “네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여섯 사람 식대를 내는 것과 다름없는 꼴”이라며 “카트비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리무진 카트까지 도입해 카트비 폭리를 취하는 것이 과연 국내 골프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중형 평균 리무진 카트 이용료는 18만7000원으로, 일반 5인승 전동 카트 이용료와 비교하면 2배 넘게 비싸다. [Gettyimage]

    대중형 평균 리무진 카트 이용료는 18만7000원으로, 일반 5인승 전동 카트 이용료와 비교하면 2배 넘게 비싸다. [Gettyimage]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5월 16일 발간한 ‘레저백저 2024’에 따르면 회원제 기준 평균 리무진 카트비만 21만8000원에 달했다. 대중형 평균 리무진 카트비는 18만7000원으로, 일반 5인승 전동 카트 이용료와 비교하면 2배 넘게 비싸다. 그 결과 국내 소비자들은 20만 원을 웃도는 그린피와 20만~30만 원에 달하는 카트비를 내지 않고는 국내 골프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골프가 고가의 오락 활동에서 대중 스포츠로 발돋움한 상황이지만 일부 골프장의 폐쇄적 운영 구조로 인해 ‘돈만 밝히는 골프장’이라는 오명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상 악화로 라운드 취소하려면 직접 방문해야

    기상 악화로 골프를 즐길 수 없는 여건임에도 이용객의 예약 취소를 거부하거나 방문 취소를 고수하는 골프장도 있다.[ Gettyimage]

    기상 악화로 골프를 즐길 수 없는 여건임에도 이용객의 예약 취소를 거부하거나 방문 취소를 고수하는 골프장도 있다.[ Gettyimage]

    더 큰 문제는 골프장이 그린피와 카트비를 천정부지로 올렸음에도 서비스 질은 부실하다는 점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부설 잔디연구소에 따르면 잔디 품종 교체를 진행하거나 검토하는 국내 골프장이 올해만 10곳을 넘었다. 올해는 유난히 길고 더웠던 불볕더위로 인해 골프장 잔디가 타 죽었기 때문이다. 10월 중순 인천의 한 골프장을 방문한 이상원(52) 씨는 “티잉그라운드(골프의 홀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지대)에 맨땅이 듬성듬성 드러나 있는 데도 평일 그린피가 24만 원에 달했다”며 “그린 상태가 좋지 않으면 영업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려 기가 찼다”고 토로했다.

    우천 등 기상 악화로 골프를 즐길 수 없는 여건임에도 이용객의 예약 취소를 거부하거나 방문 취소를 고수하는 골프장도 있다. 심지어 예약 당일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이용객은 최소 1~2시간을 들여 골프장에 내방해 위약금을 물고 골프 라운드를 취소해야 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골프장까지 가는 데 들인 시간과 위약금이 아까워 쏟아지는 폭우를 맞아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골프를 치는 이도 있다.

    일부 골프장은 예약일로부터 24시간 이내 취소 시 자체적으로 만든 약관을 빌미로 위약금을 부과하는데, 이용객이 위약금이 과도하다며 반발해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골프장 이용 및 예약을 제한한다. 이용객이 예약 시 이용료를 선입금했다가 라운드를 취소하면 골프장이 이용료 환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골프 마니아는 “예약일로부터 24시간 이내 예약을 취소할 경우 위약금을 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내방 취소를 운운하는 골프장 행태를 볼 때면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이용객 해외로 발길 돌려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골프장 예약을 선점하는 문제도 여전하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골프장 티타임을 불법으로 대량 선점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에 급증한 수요로 인해 골프장 부킹 예약 창이 열리자마자 3초 내로 티타임이 마감되는 일이 잦았다. 최범석 씨는 “인간의 손동작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티타임 예약이 만연하다”며 “누군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불공정하게 예약하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골프장의 비합리적 예약 및 취소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행히 국민권익위원회가 뒤늦게나마 골프장 예약 및 이용 관련 불만 민원 사안을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한국소비자원 등 관계 기관에 보내 소비자 권익 업무에 참고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2023년 1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예약한 골프장 이용권에 추가 금액을 붙인 판매를 제한하는 법안을 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 개정안은 올해 발효됐다.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국내 골프장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난 일부 골프 이용객은 일본 등 해외로 발길을 옮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전국 522개 골프장의 2023년 연간 골프장 이용객 수는 4772만 여 명으로 조사됐다. 전년 대비 5.7%(286만 명) 감소한 수치다. 이상원 씨는 “슈퍼 엔저 현상이 지속하면서 일본 골프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일본 골프장은 주중 그린피와 카트비를 포함해도 국내 수도권 골프장 그린피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성비가 높고 합리적으로 운영한다”며 만족해했다.

    골프장 이용 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주의할 점이 뭘까. 한국소비자원은 네 가지를 당부하고 있다. △대중형(비회원제) 골프장 예약 전 이용 가격과 표준 약관 확인 △예약 취소 시 페널티 부과, 취소 가능한 기상 조건 등 확인 △소비자 과실이 아닌 이용 중단 시 분쟁을 대비해 증거 자료 확보 △분쟁 발생 시 전문 기관에 도움 요청이 그것이다.

    골프장 이용료가 과도하게 책정된 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체육 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대중형 골프장은 문체부에서 고시한 금액보다 낮은 이용료를 책정해야 한다. 올해 기준 봄(4~6월)·가을(9~11월) 평균 코스 이용료는 주중 18만 원, 주말 24만7000원보다 낮게 책정해야 한다. 다만 매년 고시 금액이 바뀌기 때문에 해당 지방자치단체 체육시설 담당 부서에 확인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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