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복장의 북한군 ‘꼬리’ 추적했더니…
AI 안면인식 기술로 밝혀낸 미사일 기술자
북 위조 신분증도 확인…정보원 설득에 ‘이념’ 개입
“세계 곳곳에 눈과 귀 역할 협조자들…국정원이 검증”
“북한군 파병 첩보는 ‘블랙’ 통해 수집한 정보”
우크라이나는 정보원‧정찰위성‧우방국 협력 ‘정보전’
투명성 잣대 들이밀면 ‘엄밀성’ 흔들
9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한군 특수전 훈련 참관 사진. [조선중앙통신]
국정원은 ①북한이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20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했다 ②1차로 1500명이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동했다 ③청진·함흥·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 상륙함 4척과 호위함 3척을 이용했다 ④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셴스크 등지의 러시아 군부대에 분산돼 적응훈련 중이다 ⑤러시아 군복과 무기를 받았고,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주민으로 위장하고 가짜 신분증을 받았다 ⑥조만간 2차 수송 작전이 진행될 것이다 ⑦북한은 지금까지 컨테이너 1만3000개 이상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했다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일각에서는 정보의 신빙성을 의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어떻게 이러한 첩보를 수집·분석하여 정보화할 수 있었을까.
8월 초 北 파병 징후 포착한 국정원
국정원은 10월 18일 “북한이 10월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신동아’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북한의 파병 징후를 포착한 것은 8월 초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당시 북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 핵심 인사인 김정식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수십 명의 북한군 장교와 함께 수차례에 걸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 인근 북한 KN-23 미사일 발사장을 방문해 현지 지도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은 북한이 2019년 첫 시험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로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사거리는 450㎞로 추정된다.
이후 국정원은 북한군 동향을 밀착 감시하던 중 북한이 10월 8~13일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특수부대를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해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 이후 국정원은 북한군 파병 규모, 이동 동향, 전력(戰力) 수준을 브리핑하며 정보기관으로서 ‘존재 의의’를 부각시켰다.
국가정보원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으로부터 입수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촬영된 사진 속의 북한군인 추정 인물이 지난해 8월 김정은을 수행한 북한 미사일 기술자로 확인됐다고 10월 18일 밝혔다. [국가정보원]
이후 국정원은 김정은 측근이자 러시아 파병 책임자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상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김영복이 러시아 전선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첩보는 현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를 통해 수집한 첩보를 기반으로 위성사진 촬영 등 검증 수단을 더하여 정보화(첩보를 가공 후 정보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신동아’의 질의에 “러시아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협조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동향 보고를 바탕으로 국정원이 검증 작업을 거친다”고 답했다.
국가정보원이 10월 18일 공개한 위성사진. 10월 16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소재 군사시설(연병장) 내 북한 인원 추정 400여 명이 운집해 있다. [국가정보원]
국정원이 북한군 특수부대 병력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북한군과 비슷한 외모의 극동 아시아계 신분증을 활용했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군은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지역 주민의 '위조 신분증'을 발급 받았고, 이들이 위장용으로 사용했다는 야쿠티야 공화국 주민, 부라티야 공화국 주민의 용모도 각각 공개했다. 야쿠티야는 러시아 북부 시베리아에 위치한 투르크계 자치공화국으로 공식 명칭은 사하 공화국이다. 부라티야는 시베리아 남부 바이칼호 동쪽에 있는데, 이들 모두 몽골계 민족 집단으로 볼 수 있어 외모가 북한군과 흡사하다. 북한이 파병 사실을 감추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
국가정보원이 10월 18일 공개한 야쿠티야(왼쪽)·부라티야 공화국 주민으로 위장한 북한군 사진. 야쿠티야 공화국 주민은 튀르크계로 북부 시베리아에 거주, 부라티야 공화국 주민은 몽골계로 동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우크라이나 전쟁 초부터 北 동태 감시 강화”
한국이 보유한 해외정보 관련 자산(asset)은 국정원 거점, 재외공관(대사관·총영사관·대표부), 국군정보사령부 산하 해외 무관부, 각 정부 부처 주재관 등으로 구분된다. 국정원은 이를 총괄해 정보공동체를 ‘리딩(leading)’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국가정보목표 우선순위( Priority of National Intelligence Objective·PNIO)’에 의한 ‘정보 요구’와 함께 역할은 시작된다. 정보요구→ 정보수집→ 처리→ 분석→ 배포 단계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환류’ 과정을 거침으로써 검증을 한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어떻게 휴민트, 즉 협조자(agent‧정보원)를 통해 첩보(정보 생산을 위해 다양한 출처로부터 획득된 처리되지 않은 자료)를 수집해 정보(가용한 첩보를 수집, 처리, 평가·해석한 결과로 획득된 지식)로 가공했을까.
정보기관은 다양한 경로로 수집된 첩보를 다듬고 평가·해석해서 정보로 만든다. 이후 다양한 정보를 모아 종합적으로 융합·평가해 해당 사안의 진위를 가리고 사실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그 시작은 ‘공작(operation)’이다.
공작은 광의의 정보 수집 수단이다. 적이나 상대방이 감추고자 하는 정보를 획득하거나 탈취하기 위한 적극적 정보 수집 행위이다. 공작을 추진할 때 협력자에게 협력을 요구하며 제공하는 것은 △금전(Money) △이념(Ideology) △노출(Compromise)/강요(Coerction)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Ego)다. 이 4가지 요소는 통상 ‘MICE’로 불린다.
전직 국정원 공작관은 “보안상 이유, 정보원 보호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북한 핵개발, 중국·러시아 등에서 외화벌이 활동, 북한군 동향 등에 대해서 해외 북한 요원, 북한과 우호협력관계 국가 관련자 포섭 공작 추진 시 4가지 요소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협력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제공되지만, 북한군 파병의 경우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자유민주주의 이념도 작용했다. 협력자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공유하면서 자국 국익과 직결되는 북한군 관련 정보라는 가치 그 자체가 정보 제공의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전직 국정원 공작관은 “해당 활동은 재외공관에 파견된 화이트(white·공개요원) 혹은 블랙(black·비밀요원) 신분의 국정원 주재관이 총괄하며 현지 협조자 네트워크를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출신인 임성재 동국대 북한학 연구소 객원연구원은 ‘국정원 존재의 이유’(공저)라는 책에서 “해외 파견 요원 구성은 주재국 정부에 신분이 노출되는 공식 직함을 가진 일명 ‘화이트’ 못지않게 비공개 활동을 위주로 하는 일명 ‘블랙’ 요원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블랙요원은 파견 인원 제한이 없고, 일반 정부부처에서 수행할 수 없는 정보기관 고유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전개한 대북한 첩보 작전의 경우 정보원 신분 노출이 쟁점이라는 것이 전직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공개 신분으로 파견되는 공작관·정보관의 경우 주재국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접촉하는 정보원의 신변 노출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면서도 “북한군 파병 관련 첩보는 비공개 정보요원에 의해 ‘정보시장’에서 거래·수집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보기관은 ‘위기’를 먹고살고, ‘위기를 예견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역할이 본연의 ’업(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위기는 국제공조화 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우리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사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전체·권위주의 체제 간 대결 양상으로 몰고 갔다. 국정원을 비롯한 세계 정보기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체·권위주의 세력을 고무시켜 한반도를 비롯한 인접 지역으로 파급될 것을 주목하고 대비해 왔다. 한 정보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북한 동태 감시 강화를 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정쟁으로 번진 국정원 북한군 정보
국정원의 ‘북한 러시아 파병 정보 공개’는 여야 간 정쟁으로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정확한 정보 소스 공개도 없이 북한군 파병을 기정사실화할 수 없다”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북한 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이 정권이나 정파 입맛에 맞는 정보 판단을 하게 되면 정보 실패를 넘어 국가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정보에 대한 판단과 정치적 성향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며,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오로지 사실(fact)과 증거(evidence)에 기반 한 과학적인 정보 분석과 판단에 따라 북한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직 국정원 요원도 “정치적 이유를 들어 정보 가치를 훼손하고 정보 소스(source)를 밝히라는 것 자체가 정보업무의 기본을 모르는 처사”라고 말했다. 민주성 혹은 투명성 잣대를 들이대면 ‘엄밀성’을 요구하는 정보기관 자체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정보 전문가들은 민주화 이후 국정원 ‘힘 빼기’가 본격화되고, PNIO도 사실상 무력화 되면서 국가정보 역량은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정원 국장 출신인 신언 전 주파키스탄 대사는 “북한 정보 수집을 비롯한 국가정보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PNIO에 기반 한 정보공동체 활성화가 바람직하지만 민주화 이후 정부부처들이 국정원의 정보 요구에 협조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북한군 러시아 파병’ 정보를 특종 공개한 것은 국정원이 ‘존재 이유’를 제대로 밝힌 성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공개 브리핑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정원 전직 간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을 명분으로 국정원 권한 축소를 진행해왔지만 근래 북한군 동향 관련 특종은 ‘우리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다’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러나 음지에서 활동하며 존재감을 숨겨야 하는 정보기관의 공개 활동은 정보원 누설 등 제반 문제를 야기하고 추후 활동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엄밀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