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李 대통령이 다진 한미일 공조, 禹 국회의장이 위협

우원식이 말한 “한중 공동 역사적 경험”은 허구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09-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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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원식 “한중 양국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란

    •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일 공산 커

    • 항일투쟁 적극 나선 것은 중국공산당 아닌 자유중국 국민당

    • 미국도 재정지원하며 국민당 항일투쟁 지원

    • 전승절, 엄밀히 따지면 국민당 후예인 대만 국경일

    • 8월 15일 일제 해방 기념하던 중국공산당

    • 2014년부터 갑자기 ‘전승절’이라며 행사 시작

    • 일종의 ‘반미 연합’ 출범식, 우리가 참석할 자리 아니었다

    “한중 양국이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기초로 깊은 우호와 연대를 이어가며 지역과 세계평화 실현을 위해서도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

    9월 4일,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우 의장은 “우리 대표단이 여러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것은 한중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다가올 10월에 치러질 경주 APEC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할 수 있도록 자오 상무위원장이 협조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9월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우원식 국회의장이 9월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외교의 기본은 덕담이다.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외교적 언어는 일반적인 말보다 어렵다. ‘뼈 있는 소리’를 통해 상대방에게, 더 나아가 외교 현장을 바라보는 국민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장이 바로 외교 무대이다.

    전승절 행사에 우 의장이 참석해 했던 말들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벌어진 행사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회의장실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만 봐도 그 속에는 분명한 경향성이 담겨 있다.

    우 의장, 더 나아가 여당은 이 대통령과 외교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가려 한다. 이 대통령이 천명한 ‘안미경중 폐기’는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 개편 시도에 동참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일주의를 근간에 둔 근현대 사관도 전혀 달라진 바 없고,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추진하고 있는 ‘제국적 민족주의’ 관점에 편승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우 의장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그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일본과 싸워 이긴 건 중공 아닌 자유중국

    전승절의 공식 명칭은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이다. 중국이 중일전쟁에서 일본을 꺾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문제는 그 ‘중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을 의미하느냐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중국 현대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12년 2월 12일, 만주족이 세운 정복 왕조 청나라가 멸망했다. 동시에 군벌 중 한 사람인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임시 총통으로 취임했다. 이후 1919년에 창당한 국민당, 1920년에 설립된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전국에 수많은 군벌이 군웅할거 하는 난세가 시작됐다. 그 혼돈은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일본 제국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층 가속화됐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내전을 벌이는 와중에 일본을 상대로도 전쟁을 치렀다.

    중화민국 임시 총통이었던 위안스카이. 위키피디아

    중화민국 임시 총통이었던 위안스카이. 위키피디아

    난징대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피해를 겪었음에도 결국 중국은 일본을 이겼다.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의 중국파견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가 미주리호 선상에서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참모총장 허잉친에게 항복 문서를 전달했다.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그렇다.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중국’은 ‘국민당의 중화민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섯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한 나라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었다. 중화민국은 1946년부터 9월 2일 대신 9월 3일을 일본에 승리한 날로 기념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전승절’은 그렇게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중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심지어 중일전쟁 중에도 내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공동의 적이 사라졌으니 전쟁은 더욱 본격화했다. 중일전쟁 중의 다툼을 흔히 ‘1차 국공내전’으로, 1945년 8월부터 1949년 12월까지의 싸움을 ‘2차 국공내전’으로 부른다. 국민당은 공산당에 패배했다.

    국내에서 중일전쟁에 대해 널리 알려진 저작 중 상당수는 중국공산당의 시각에서 작성돼 있다. 국공내전의 승자인 공산당이 항일전쟁을 주도했다는 듯이 알려진 것이다.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다. 중일전쟁의 주역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이었다. 국민당의 배후에는 일본을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국민당의 은을 미국의 금과 바꿔주는 ‘피트먼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국민당이 일본과 싸울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퍼부었다. 이런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중국의 ‘항일투쟁’은 승리로 끝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9월 3일은 중화민국의 기념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대만으로 쫓아낸 공산당이 그날을 기념한다. 그 역사도 길지 않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을 표방하고 선전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국경일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전승절 행사 그 자체가 대만을 향한 ‘역사 공정’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원식 전승절 기념행사서 ‘친중 반일’ 드라이브

    정리해 보자. 중·일전쟁의 승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국공내전의 승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이었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8월 15일에 기념해 왔던 중화인민공화국은 2014년부터 중화민국의 전승절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독재 체제를 갖추고 대만을 향한 야욕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한 무렵의 일이었다. 중화민국의 항일투쟁도, 그것을 뒷받침해 준 미국의 지원도, 모두 이렇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우 의장이 중국에서 한 발언은 이런 맥락을 두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문장을 되짚어 보자. “한중 양국이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기초로 깊은 우호와 연대를 이어가며 지역과 세계평화 실현을 위해서도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

    이제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대체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 뭘까.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나온 발언임을 생각하면 한중 양국이 함께 경험한 전쟁을 말할 공산이 크다. 중국이 가장 최근 벌인 대규모 전쟁이라면 1979년의 중국·베트남 전쟁일 테지만, 설마 ‘우리는 월남을 상대로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 터. 그렇다고 설마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들어 한국군과 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한국전쟁을 양국 간 좋은 추억으로 되짚은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가능한 결론은 단 하나다. 우 의장은 공산당이 자랑스레 내걸고 있는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를 대한민국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런 맥락이 아니면 나올 이유가 없는 표현이다. 중국과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는 화법이다. 우 의장의 저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친중 반일’ 드라이브를 거는 내용인 셈이다. 국회의장실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그러한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진다. 한 문단을 인용해 보자.

    우 의장은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 사업은 양국 국민의 연대와 우호를 강화하는 좋은 방안이다. 한중 모두 역사적으로 뜻깊은 시기를 맞이하여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진전이 있다면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우 의장은 8월, 자오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 충칭에 위치한 이동녕 선생 고거 보존·복원 사업, 충칭 내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보전·연구 협의체 발족, 시안 독립운동 기념 공간 조성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임시정부 주석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 동아DB

    임시정부 주석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 동아DB

    물론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사적을 보존, 복원, 발굴, 연구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기 전부터 추진됐던 사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행보는 사실에 근거한 역사관 위에서 전개해야 마땅하다. 우 의장의 중국행과 그가 내놓은 발언들은 모두 그런 면에서 의구심을 자아낼 만하다. 여당 출신 국회의장은 우리의 해방과 독립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안미경중’ 없다는 대통령 vs 정반대 행보 보이는 여당

    중국의 항일투쟁이 국민당에 의해 전개됐고 그 국민당은 미국의 도움 없이 싸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해방과 건국 또한 미국 및 연합국의 승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 정치 세력은 그러한 사실을 최대한 미뤄둔 채, ‘독립군’이 만주나 중원에서 치열한 항일 투쟁을 벌인 결과 우리가 해방됐다는 일종의 대안 서사를 선호한다.

    중국의 전승절과 군사 퍼레이드도 대안 서사로 만든 행사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표현을 빌자면 일본과의 무장투쟁이라는 ‘만들어진 전통’을 창출하는 이벤트이다. 그곳에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 참석했고, ‘우리도 일본과 싸웠던 경험이 있다’며 동질감을 드러내려 했다. 이 사안에 대해 국내에서 그리 큰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두려운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남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더 이상의 반일 선동은 없다, 위안부 문제도 기존의 위안부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CSIS의 행사에서는 “안미경중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하지만 이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 특히 여당의 생각은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 잘 지내겠다고 하는데, 우 의장은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행사에 참석해 ‘우리도 일본과 싸웠던 경험을 공유한다’는 식으로 말하며, 그 내용을 국내 언론용 보도자료로 배포한다.

    이번 전승절은 여러모로 문제적인 사건이었다. 중국은 ‘미국 외 국가’의 구심점 노릇을 하겠노라며 힘을 과시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번 전승절 행사를 일종의 ‘반미 연합’이 출범하기 위한 정초 격인 자리로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건 우리가 참석할 자리가 아니었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을뿐더러, 미국 스스로도 왕도(王道)보다 패도(覇道)를 걷고 있다는 불만이 일렁이며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이 점점 더 절실해지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다고 그토록 자랑하는 대한민국, 소위 ‘민주화 세력’의 일원이자 입법부를 대표하는 인물이, 전승절에 참석한 수많은 독재국가의 독재자들과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승절 행사는 끝났지만 이 사건에 대해 더 많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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