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중국의 항공산업

  • 조진수 /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jscho@hanyang.ac.kr

    입력2012-08-28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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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 소련의 항공기를 복제 생산하던 중국이 소련 붕괴 덕분에 소련의 항공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프랑스를 협박해 전투기 기술을 습득하고 스텔스 전투기를 제작하는 등 중국은 항공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 아울러 광대한 내수시장을 미끼로 내걸고 선진국 항공기 제작사들의 투자를 이끌어내 민항기 부문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고 있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2011년 일본 언론이 공개한 중국의 J-20(중국명 젠-20)스텔스 전투기.

    2012년 6월 18일 중국의 네 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9호가 중국이 쏘아 올린 우주정거장인 톈궁(天宮)-1호와 도킹함으로써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유인 우주 도킹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이는 우주 기술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항공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기권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우리나라의 나로호, 북한의 은하-3호가 그랬듯이 우주발사체 사고는 대부분 대기권 내에서 일어난다. 대기권을 비행하는 것이 항공기술이므로, 우주발사는 항공기술 기반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최근 중국은 스텔스기인 J-20과 함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이 우주 개발에 성공을 거듭하는 것은 항공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우주 개발의 초석이 되고 있는 중국의 항공 개발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J-20이 공개된 지 1년이 지났다. 단일 무기 도입으로는 창군 이래 최대라는 3차 FX사업을 펼치는 우리로서는 J-20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스텔스기를 개발하고 있는 이상 우리도 스텔스기 도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J-20 개발에 앞서 중국은 4세대 전투기인 J-10을 내놓았다. J-10은 1998년에 처녀비행에 성공했지만 4세대 전투기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매우 많았다. 그 뒤 내놓은 것이 5세대인 J-20이다. 중국은 어떤 경로를 거쳐 5세대 전투기까지 개발하게 됐을까.

    스텔스 전투기 J-20이 나오기까지

    일본과 싸우던 1930년대 중국 공산당은 조종사 후보생을 소련에 보내 조종사를 양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만을 제외한 전 중국을 석권한 다음인 1949년 11월 11일 공군사령부를 설립했다. 그때는 소련과 관계가 좋았으므로, 소련으로부터 전투기와 엔진 수리설비, 조립라인 등을 원조받아 운용했다. 미그-7과 미그-19의 도면도 이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중국은 기초적인 전투기 설계 능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소 관계가 악화된 1950년대 말이 오기 전에 복제를 통한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시기 중국은 복제 전투기를 5000기까지 보유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짝퉁 전투기를 생산한 것. 이 전투기들은 숫자만 많았지 전투능력이 매우 떨어져 중국 공군을 근대화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중국 항공산업의 견인차는 1953년 랴오닝성에 세운 선양항공공사(瀋陽航空公司)다. 중국은 소련과 가까운 선양에 이 회사를 세워 소련의 기술을 적극 흡수했다. 소련과의 사이가 멀어진 1958년, 소련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성의 청두(成都)에 청두항공공사(成都航空公司)를 세웠다.

    소련과 사이가 나빠진 1960년대와 1970년대 중국의 항공산업은 암흑기에 빠졌다. 당시 중국은 주체성을 강조했기에 소련 전투기를 복제한 전투기에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중국 전투기의 이름은 J로 시작하는데, J는 섬멸하다의 ‘섬(殲)’을 중국어로 읽은 ‘젠’에서 나왔다. 이 시기 중국은 미그-17은 J-5, 미그-19는 J-6, 미그-21은 J-7로 복제해 유지 보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80년대 들어 중국 주변국들이 항공 전력 강화에 나섰다. 한국이 ‘평화의 가교(Peace Bridge)’라는 사업명으로 미국에서 F-16을 도입하고, 일본은 최강의 전투기 F-15J를 미국에서 도입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 수직이착륙기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당 가격이 1000만 달러였기에 ‘지갑이 얇아’ 포기했다.

    대신 주력인 J-7 개량에 도전했다. 이 사업은 청두항공공사가 맡았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전투기는 레이더를 탑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두항공공사는 J-7에 레이더를 싣고 엔진을 개량해 최고 속도를 마하 2까지 높였다. 청두항공공사는 2000년대까지 J-7Ⅳ를 내놓았는데 J-7Ⅳ는 4세대 전투기로 분류된다.

    구 소련 아닌 서방 전투기 수입

    이러한 발전은 뜻밖의 사태로 접하게 된 서방국가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 1980년대는 냉전이 첨예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1980년에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1984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이때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성능이 낮은 F-16을 판매하겠다는 소식을 흘렸다. 중국에 대한 F-16 판매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다른 선물을 주었다. 보잉과 노스롭 그루먼 등이 항공 전자장비와 엔진 부문 등에 도움을 준 것이다. 덕분에 청두항공공사는 J-7 개량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중국은 프랑스의 전투기 제작업체인 닷소(Daussault)와도 결과적으로 유리한 거래를 하게 됐다.

    중국이 항공력을 강화하자 대만도 대응에 나섰다. 당시는 미중 관계가 매우 좋았던 때라 대만은 미국제 무기를 도입할 수 없었다. 대안으로 프랑스를 두드려 닷소로부터 공대공·공대지 능력을 보유한 미라지 2000-5를 도입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닷소는 공대지 공격 능력이 없는 미라지-2000을 인도했다.

    대만은 강력히 항의했고 계약을 위반한 닷소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려면 상륙전을 벌여야 하고, 상륙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공대지(공대함) 전투기가 있어야 한다. 공대지 전투기 확보가 시급한 대만은 3년간 미국의 록히드마틴을 두드려 야간 저고도 항법과 야간에 적외선으로 표적을 찾아내는‘랜턴(LANTIRN·Low Altitude Navigation and Targeting Infrared for Night)’을 탑재한 F-16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대만이 항공력을 강화해가자 중국은 닷소에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은 프랑스로부터 항공 전자장비와 물방울형 캐노피 등 많은 부품을 수입하고 있었다. 중국은 프랑스가 대만에 공대공 능력을 갖춘 미라지-2000을 공급한 것을 핑계로 프랑스와 맺은 모든 계약 중단을 선언하고, 주중 프랑스영사관을 폐쇄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대만보다는 중국이 훨씬 큰 시장이기에 미라지-2000 완제품을 중국에 넘기고 정밀분석을 해도 좋다는 데 동의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항공기 개발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중국의 항공산업은 비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봄은 길지 않았다. 1989년 톈안먼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프랑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인권탄압과 비민주적인 행동을 비난하며 중국에 대한 군사 프로젝트 지원을 끊었다. 중국은 다시 자력으로 항공산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기 전 중국은 소련과 군사적 대결을 지양하고 군사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협의에서 소련은 미그-29를 팔려고 했으나, 중국은 수호이-27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수호이-27SK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톈안먼 사태와 함께 이 일이 미국을 자극해 잘 나가던 미중 관계는 삐걱거리게 됐다.

    최초의 독자 설계 전투기 J-10

    1991년 동유럽 공산국가에 이어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중국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소련이 무너진 후 러시아와 CIS 국가들이 독립하고 러시아가 소련의 지위를 이었다. 이 시기 러시아의 경제는 최악이었다. 중국은 수호이-27SK의 도입을 서둘렀다. 이것이 재정난에 빠진 러시아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1992년부터 러시아는 단좌형인 수호이-27SK 20대와 복좌형인 수호이-27UBK 6대를 중국에 인도했다. 러시아는 경제위기가 심해지자 생산라인의 수출도 허락했다. 완제기 70여 대를 비롯해 항공기 생산라인 설비, 100여 기의 조립 키트를 중국에 수출한 것.

    청두항공공사는 러시아의 미코얀(Mikoyan) 사도 노크했다. 미코얀 사는 미그-29 판매 실패 이후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공기 설계 기술 전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두는 미코얀 사를 접촉해 기술을 전수받았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추진한 자유화는 공기업의 사유화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직장을 잃었다. 이들을 미국과 영국 등이 먼저 챙겨가고 중국이 다음으로 확보했다. 러시아의 기술인력 유출은 푸틴 대통령이 취임해 첨단 군사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대 중국의 가장 큰 적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수호이-27과 미그-29 등 막강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은 구식 전투기가 아무리 많아도 최신식 전투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목적 전투기 J-10의 개발을 결정했다. 이때 세계 항공업계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FBW)라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 기술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 시기 이스라엘의 IAI 사가 라비(Lavi)라는 전투기를 개발했다. 그러자 미국이 압력을 넣어 생산을 못하게 했다. 중국은 라비 개발에 참여한 이스라엘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J-10 개발에 참여시켰다. 이런 이유로 J-10 원형은 라비와 비슷한 외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개발이 거듭되면서 미라지-2000을 닮은 쪽으로 변해갔다.

    J-10은 카나드-델타익(翼) 구조를 한 다목적 중형 전투기로 개발됐는데, 중국이 카나드-델타익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부분에서 가장 앞선 프랑스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설명했듯 중국은 델타익을 적용한 미라지-2000을 프랑스로부터 제공받아 정밀 분석해 J-10에 적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J-10을 본격 개발하려는 순간 톈안먼 사태로 서방 세계로부터 고립돼 엔진 기술을 도입할 수 없었다. J-10 개발은 소련이 무너진 후 러시아로부터 AL-31F 엔진을 받을 때까지 답보 상태로 있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J-10은 1998년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2004년부터 J-6를 대체해 실전 배치되었다. 현재 중국은 J-10 전투기 210대를 운용 중이다. J-10의 해외 수출도 진행하고 있는데, 파키스탄 공군에 36대를 납품할 예정이다. J-10은 우리나라가 운용하는 KF-16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중국이 이스라엘의 라비 전투기와 프랑스의 미라지-2000 기술을 도입해 독자 개발한 J-10.

    다목적 전투기 Su-30MKK의 도입

    소련에서 도입한 수호이-27에 만족한 중국은 수호이 사와 수호이-27 22대를 추가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어 선양항공공사가 수호이-27 200여 대를 25억 달러에 면허생산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으로 중국은 대형 전투기 제작 기술과 설계도면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은 면허생산한 수호이-27을 J-11로 명명했다. J-11은 공대지 정밀타격 능력이 없어 공대공 전투기로 분류된다. 다목적 전투기의 필요성을 확인한 중국은 1996년 러시아와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30MKK의 구매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2000년부터 수호이-30MKK를 실전 배치했다. 공군이 수호이-30MKK를 도입하자 중국 해군도 관심을 보여 수호이-30MKK 24대를 인수해 실전 배치했다. 수호이-30은 우리나라의 1차 FX사업 때 F-15K에 패한 바 있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미완성 항공모함 바랴그(Varyag)를 구매한 후 개조해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함재기가 필요해진 중국은 수호이 사를 상대로 함재기 도입 협상을 벌였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J-15 함재기 개발을 결정했다. J-15는 J-11의 함재기 버전으로, 수호이-27의 함재기 버전인 수호이-33을 참고해 개발하는 것이다. 중국은 2001년경 비공식 경로로 수호이-33의 원형기인 우크라이나의 T-10K-3를 확보해 J-15 개발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함재기 J-15 개발

    1999년 중국 정부는 중국항공산업공사(中國航空産業公司)를 상하이에 있는 중국항공산업공사(AVIC-Ⅰ)와 하얼빈에 있는 중국항공산업공사(AVIC-Ⅱ)로 분리했다. AVIC-I 은 Xian H-6, JH-7 폭격기와 같은 대형기, ARJ-21 같은 중형 민항기, J-8, J-10, J-11, JF-17 같은 전투기를 생산하고, AVIC-II 는 소형기와 헬기를 생산했다. 2008년 둘은 다시 AVIC 으로 합쳐졌다.

    2011년 1월, 미중 군사 관계 개선을 위해 게이츠 미 국방부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기습적으로 J-20시험비행을 실시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예측보다 한참 앞서 발표한 J-20의 시험비행에 당황한 미국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워싱턴에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 능력을 과소평가했으며 게이츠 장관의 중국 방문 도중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J-20을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 개발을 위한 실증기로 판단했다.

    J-20이 공개된 지 1년이 넘은 지금 J-20의 성능에 대해 논란이 많다. 4세대 전투기인 J-10의 개발 능력을 가진 중국이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어찌됐든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스텔스기는 기계식 레이더가 아니라 AESA(Active Electron -ically Scanned Array)로 약칭되는 능동 전자 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 탑재를 기본으로 한다. 중국은 AESA 레이더의 개발을 추진해 J-10과 조기경보기 KJ-2000에 장착 운용하고 있다. 중국의 AESA 레이더 성능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J-20은 러시아의 AL-31F나 중국의 WS-10 계열의 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중국의 항공기 엔진 개발 실력은?

    레이더와 엔진의 성능 추정만으로도 5세대 스텔스 기체 개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맞는 장비 개발이 저조하다. 따라서 미국의 스텔스기인 F-22에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수준임을 알 수 있다. 2006년에 실전 배치한 J-10이 1970년대 개발된 미국의 F-16 초기형 수준이란 사실도 중국의 항공기 개발 기술이 미국에 비해 뒤처진 예로 들 수 있다.

    중국 공군 장군들이 수년 전 5세대 스텔스 전투기 프로그램에 대해 언급했다. 그때는 중국이 4세대 전투기인 J-10조차 완벽하게 만들지 못했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J-20을 공개하자 중국 주변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긴장했다. 최근 J-20은 시험비행을 더 자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문제 분석가들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지켜온 힘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염려한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전문가인 류장핑(劉江平)은 J-20이 여전히 시험 단계이기에 단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 지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J-20을 실전 배치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이기 때문에 J-20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은 항공기에 자체 개발한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WS-10인데 WS-10은 중국 항공기 엔진 중 성능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는 선양항공공사 산하 항공엔진개발국인 606연구소가 1987년부터 항공기 엔진 연구를 시작했다. 606연구소 설립 전인 1982년부터는 미국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항공기 엔진 기술을 빼내는 노력을 펼쳤다. 606연구소는 구 소련의 새턴 설계국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바이패스비(By Pass Ratio) 터보팬 엔진과 FADEC (Full Authority Digital Electronics Control)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한다.

    WS-10 엔진은 2008년 주하이(珠海) 에어쇼에서 J-10에 장착된 형태로 실체를 드러냈다. WS-10 엔진은 J-11, J-15 그리고 J-20에도 장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WS-10 엔진을 스텔스기인 J-20에 장착해 운용하기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엔진 열 감소 설계 기술 등을 적용해야 한다.

    2011년 초, 중국은 엔진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았다.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GE(General Electronic)와 9억 달러 상당의 항공기 엔진 개발 합작회사를 상하이에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GE와 AVIC은 보잉787 드림라이너에 사용한 엔진 기술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 회사가 설립되면 중국은 미국의 최신 엔진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949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산하 민용 항공국으로 시작한 중국의 민항 개발사는 올해로 63년을 맞았다. 중국은 민항기 개발을 위해 많은 항공 기술자를 해외로 파견해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선진 민항기 제작사와 합작을 통해 항공 기술을 배워나갔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민항 강국 건설 전략을 수립했다.

    민항 강국 건설도 꿈꾸다

    이를 위해 AVIC II사가 2003년 브라질의 항공기 제작사인 엠브라에르(Embraer) 사와 50인승 단거리 여객기 ERJ-145 생산을 위한 합작기업을 설립했다. 2005년 2월 AVIC II가 중국에서 생산한 ERJ-145를 공개하자, 남방항공을 비롯한 중국 항공사들이 11대를 구매했다.

    2005년 7월, 세계 최대의 상업용 항공기 생산업체인 에어버스 사는 중국 베이징에 기술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이듬해 8월부터 여객기의 설계와 개발을 시작했다. 톈진(天津)에는 에어버스사가 51%, 중국이 49%를 출자한 FALC (Final Assembly Line China)라는 조립 라인을 설치해 A320을 매달 3대 정도 생산하고 있다. FALC에서 생산되는 항공기의 품질이 프랑스 툴루즈와 독일 함부르크의 조립라인에서 생산되는 항공기와 대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ALC에서 생산되는 항공기는 유럽 밖에서 생산되는 최초의 에어버스 민항기다.

    에어버스는 2016년까지 중국에서 여객기 286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에어버스와 엠브라에르뿐만 아니라 보잉, 유로콥터, 엔진 제작사인 롤스로이스와 GE, P·W(Pratt · Whitney), 하니웰(Honeywell) 등도 중국에 투자했다. 중국은 선진 항공기술사들과 협력해 독자적인 민항기를 개발 생산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중국이 독자 개발한 민항기 ARJ-21.

    AVIC의 직원 수는 약 40만 명, 총자산은 500억 위안이다. 산하 계열사는 200여 개에 달한다. 2009년 AVIC은 217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포춘지 선정 세계 426위 기업에 올랐다. AVIC은 향후 20년 동안 자국 중형항공기 시장의 60% 점유를 목표로 한다. 이 전략의 중심에 AVIC이 독자 개발하려는 민항기 ARJ-21이 있다.

    ARJ-21은 78~90석의 민항기로 2008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 AVIC은 이 항공기 개발을 위해 60억 위안을 투자했다. 전 세계 항공사를 상대로 수주전에 나서 2010년 현재 340여 대를 수주했다. ARJ-21은 엔진과 주요 전자장비를 GE와 로크웰 콜린스(Rockwell Collins), 하니웰 등 미국 회사 장비로 채웠다. 이는 중국 민항기의 서브시스템과 부품 기술이 미국과 유럽 기술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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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민항기, 듀오폴리 시대 끝낼까

    보잉의 상용기 부문 책임자인 짐 알바는 여객기 분야에서 듀오폴리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했다. 듀오폴리란 보잉과 에어버스가 민항기 시장을 양분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짐 알바는 중국이 COMAC(Commercial Aircraft Corporation of China·중국 상용항공기 유한공사)의 C-919를 가지고 민항기 시장에 본격 가세했음을 알린 것이다. 2011년 파리 에어쇼에서 COMAC은 유럽 최대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 Air)로부터 C-919 200대 구매의향서(MOU)를 받았다. 라이언 에어가 COMAC을 선택하는 이유는 가격이었다. 2011년 초 COMAC이 GE와 C-919에 탑재할 통신 및 항법 장치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도 라이언에어가 COMAC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C-919는 최장 항속거리가 5555 km인 150인승 중형항공기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보잉의 B-737과 에어버스의 A-320의 경쟁 기종인 COMAC의 C-919.

    COMAC은 세계 3위 민항기 제조업체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COMAC은 290인승 C-929와 390인승 C-939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C-919는 경쟁기종인 A-320과 B-737에 비해 기술적으로는 앞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했을 때에 손익분기점을 300대 판매로 본다. 한국의 KT-1과 T-50, 헬기인 수리온 등은 우리 군 수요로 300대 안팎의 물량이 확보되므로 개발할 이유가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큰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엔진은 2000~3000기를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중국이 이런 시장이 될 수 있다. 유무인 우주선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업도 펼치는 등 전후방 사업이 많아 중국의 항공기 제작 실력을 빨리 성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他山之石

    짝퉁 생산국에서 명품 제조국으로
    조진수

    1967년 마산 출생. 동의대학교 졸업. 한국우주정보소년단 과학팀장, 천문우주기획 우주팀장 역임. 국내 최초로 우주비행사캠프 운영. 저서 ‘우주개발 숨은 이야기’ 등


    2018년 중국의 항공전력이 미국을 7 대 1로 앞설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한 미국 군사전문가의 경고를 과장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당장은 북한이 우리의 주력 방어 대상이지만 우리는 중국의 군사적 패권정책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1차적으로 ‘이에는 이로’ 대항해야 한다. 우리 항공력과 공군력을 극대화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첨단 항공기술을 외국에서 이전받는다는 방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체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국가적인 의지와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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