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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이야기꾼들의 글쓰기 맘보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한·미·일 이야기꾼들의 글쓰기 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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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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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가는 미국의 빌 브라이슨이다. 그는 이미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을 통해 국내에서도 여행작가로서 인지도가 높다. 여기서는 산문집 ‘발칙한 미국학’(21세기북스, 2009)에 나타난 빌 브라이슨의 글맛을 보기로 하자. 빌은 미국인이지만 젊은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타임스’와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하다 2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2년간 영국 잡지에 기고한 미국 생활 체험기가 ‘발칙한 미국학’이다.

빌 브라이슨의 첫 번째 글쓰기 전략은 낯설게 보기다. 그는 20년 만에 다시 미국인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새롭다. 집집마다 채워도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 광대한 지하실, 공짜 얼음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해설 방송, 엄청나게 큰 눈송이, 추수감사절, 독립기념일,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까지 미국인에게는 당연한 것이 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빌 가족이 뉴햄프셔 주의 하노버 시에 정착하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사 온 첫날밤 외식을 해서야 되겠냐며 빌의 여섯 식구를 기꺼이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이웃 등 미국인들의 친절함은 끝을 모른다. 빌은 미국에서 살 집을 구하러 다니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동차 문도 잠그지 않는 것에 감탄한다.

반면 그의 글에는 엄청나게 불합리한 미국인의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미국인은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은 하루에 328m도 채 걷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집 밖에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의 93%에 자가용을 이용한다. 걸어서 6분밖에 안 걸리는 체육관까지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데가 없다고 불평을 한다. 체육관까지 걸어가고 운동을 6분 덜하지 그러냐고 물으면 “러닝머신에는 나한테 알맞게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어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게 미국식 합리성이다. 사람들이 걷지 않으니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다. 횡단보도만 있으면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곳도 자동차로 빙 돌아서 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미국인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화단 대신 자동차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만든다.

빌 브라이슨의 두 번째 전략은 ‘일상’이다. 외국인 배우자(빌의 영국인 아내)의 미국 체류를 허가받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며 ‘관료주의’를 꼬집고, 대형마트에서 파는 아침식사용 시리얼의 종류가 200개도 넘는 ‘정크푸드의 천국’을 한탄하기도 한다. 또 버몬트 주의 독특한 방언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덜거림에는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발라져 있다. 그의 세 번째 전략은 ‘유머’다. 각종 통계자료를 들이대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표현은 위트가 넘친다. 그가 구미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말을 잘 부리는 사람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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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가는 이윤기다. 그의 산문집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동아일보사, 2009)가 9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 10여 년 전 ‘신동아’에 연재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이제 글에서 묵은내가 좀 날 거라 예상했는데 여전히 그의 글맛은 김칫독에서 금방 꺼낸 김장김치처럼 톡 쏜다.

‘말(言)을 잘 부리는 사람’ 이윤기의 글쓰기 전략은 무엇일까? 산문집에 실린 ‘물소리가 아름다운 까닭’은 개인적으로 첫손으로 꼽는 작품이다. 어딜 가도 마이크 잡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노래처럼 친숙한 소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민요 아리랑 2절의 노랫말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에는 희망도 많다’는 대목에서 저자는 골을 낸다. 원래 ‘수심도 많다’였던 것을 군사정부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노랫말을 손봤다는 것이다. 무수한 잔별만큼이나 애잔한 수심이 따라 나와야지, 희망은 당치도 않다. 마땅히 수심이어야 한다. 그는 예를 하나 든다. 한 어리석은 사람이, 시냇물 소리가 하도 좋게 들려서 더 좋게 하려고 바위를 몇 개 들어 치워주었더란다. 그랬더니 시냇물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더란다. “‘수심’은 바위와 같은 것이다. 그걸 치우고 ‘희망’을 박아 넣은 노래, 나 같으면 안 부르겠다.” 이것이 이윤기식 ‘입말’이다.

“눈물을 뜻하는 한자에는 루(淚)와 루(?),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흐르거나 떨어지는 눈물, 후자는 괴어 있는 눈물이다. 노래방에는 전자가 있을 뿐, 후자는 없다. 괴는 족족 흘려보내는 시대, 물소리 지어낼 바위 하나 없는 이 시대가 나는 싫다.” 그는 이렇게 현란하지 않으면서, 빈정거리지 않으면서 그러나 할 말을 다 한다.

요즘 서점에는 ‘예쁜 에세이’가 넘쳐난다. 표지며 본문 편집이며 디자이너의 역량은 빛나는데 정작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책이 너무 많다. 이윤기 선생의 말대로 ‘괴는 족족 흘려보내는 시대’가 만들어낸 책들이다.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가 그 책을 다시 읽을까?

신동아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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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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