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갯벌로 돈대로 마니산으로 발길마다 스미는 역사의 薰氣

  • 글·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사진·김성남 차장 photo7@donga.com

    입력2004-09-30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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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에 발길이 닿는 순간 4000여년의 세월을 유람하는 타임머신에 오른다. 차마 눈 감지 못하고 떠도는 숱한 사연과 조우할 차례다. 시조(始祖)의 탄생 신화부터 외세 침탈의 상흔까지.
    • 선연한 역사의 풍모와 원시의 생태를 간직한 강화도·석모도와의 만남엔 가슴 아린 감동이 있다.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오후 4시, 강화도 동막리를 찾은 가족 여행객들이 해안선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갯벌을 걷고 있다. 강화도의 갯벌은 물떼새, 도요새, 저어새 등이 찾아오는 철새도래지다.

    초가을 햇살이 아찔하게 비춰온다. 강화섬의 초입에 들어선 나그네를 반기는 건 유난히 청명한 하늘과 짭조름한 바다내음. 서울에서 김포를 지나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대교를 넘으면 살아 숨쉬는 ‘과거’가 눈앞에 펼쳐진다.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거리지만 어느새 수만 년 세월의 간극을 넘었다.

    강화여행의 출발지는 갑곶이다. 한 구석이 부서져나간 돈대(墩臺)의 물결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적을 관찰할 목적으로 쌓은 방어시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경술국치까지 질곡의 역사를 감내해온 이 땅은 내딛는 발걸음마다 왠지 서럽다.

    갑곶 돈대는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과 싸움에서 강화해협을 지켜낸 수문장이다. 갑곶을 지나 남쪽으로 뻗은 해안순환도로를 달리면 해안선을 따라 돈대와 철조망의 행렬이 이어진다.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조선 말기, 미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치러낸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는 고요한 산책길로 변했다.

    죽음의 흔적과 태동하는 생명은 기이하게 맞닿아 있다. 돈대에 올라 눈을 돌리면 초지리에서 동막리까지 끝도 없이 펼쳐진 싱싱한 날것의 갯벌과 마주하게 된다. 갯벌 속엔 꿈틀대는 생명이 신선한 숨을 몰아쉰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갯벌에 한 걸음 내디뎌본다. 발가락을 간질이는 갯지렁이와 농게. 아스라이 검은 뻘에 반사된 은빛 햇살. 발이 쑥쑥 빠지는 갯벌을 손 꼭 잡고 걷는 연인들.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강화도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향하는 카페리를 따라 날아오른 갈매기떼.

    희귀종인 저어새의 번식지로 2000년 천연기념물 419호로 지정된 강화 갯벌은 세계 5대 갯벌로 꼽힌다. 한강 임진강 한탄강 예성강의 하구에서 유입된 토사가 쌓여 한낮 썰물 때 갯벌은 300㎢의 거대한 면적을 이룬다. 수십 종의 생명체를 품에 안고 키워낸 갯벌은 따스하고 깊은 어머니의 자궁 같다.

    강화 여행의 백미는 역시 ‘역사 기행.’ 한반도 서편의 오묘한 지점에 위치한 강화섬은 발길 닿는 곳마다 전설이 스며 있다. 그중에서도 강화도 서남편에 우뚝 솟은 마니산은 건국시조 단군이 임금이 되었다는 이름난 성지. 강화읍성으로 발길을 돌리면 청동기시대 조상들의 흔적과 만난다. ‘강화 지석묘’로 불리는 북방식 고인돌은 강화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상징물. 땅에서 2.6m 높이에 얹은 7.1m 길이의 개석(蓋石)은 영겁의 풍상에도 끄떡없이 위풍당당하다.

    강화의 오랜 역사만큼 전통 있는 음식은 장어 요리다. 더리미 장어마을 앞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여울목은 예로부터 자연산 장어가 많이 잡히는 곳. 이 마을 어귀에 있는 ‘일미산장’(032-933-8585)은 유독 손님들로 붐빈다. 일본 손님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단다.

    “우리집 양념맛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거든요.”

    강화도 토박이 처녀라는 종업원의 말투에 자부심이 묻어난다. 장어 1kg과 밑반찬을 한상 가득 내오는데, 한과까지 곁들인 정갈한 상차림이다.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양념이 고루 스며든 장어구이를 한입 베어물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장어 꼬리는 숯불에 날로 구워 소금에 찍어먹는데 담백한 맛이 일품.

    순무김치도 빼놓을 수 없다. 간기능 강화에 효과가 있다는 순무는 강화에서만 재배되는 특산품. 강화도의 해양성 기후와 적절한 온도가 순무 재배에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보랏빛 감도는 뭉툭한 모양의 순무는 매콤하고 시원한 것이 겨자맛과 인삼맛이다.

    외포리에서 고요한 아침을 맞는다. 이곳에선 석모도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다. 석모도로 건너가려면 카페리를 타야 한다. 10분간의 뱃길 여행이지만, 과자 한 봉지쯤 준비하는 것이 예의다. 높이 던져 올린 과자를 곡예하듯 받아먹는 갈매기의 날렵함엔 탄성이 절로 나온다.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① 강화도는 돈대(墩臺)의 보고로 초지진은 조선 말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부터 이 땅을 지켜냈다. ②고구려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천년고찰 전등사.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① 닭을 우려낸 시원한 국물의 황해도식 냉국수와 김치 속을 넣은 풍성한 왕만두.② 새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숯불로 구워낸 강화도의 별미, 장어 숯불구이.

    석모도에 오르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보문사다. 낙가산(해발 327m) 중턱에 들어선 절 뜨락에서는 섬을 함초롬히 감싼 해안의 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3대 관음성지 중 하나인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금강산에서 내려온 회정대사가 창건했다. 강화도의 전등사가 웅장한 남성미를 보여준다면, 석모도의 보문사는 아기자기한 여성미를 드러낸다.

    대웅전 뒤편으로 난 계단을 400여개 오르면 온화하며 귀여운 미소를 띤 마애불과 만날 수 있다. 대웅전 왼편은 천연동굴. 그곳엔 20여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차가운 돌 위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불자의 간절한 기도가 가슴을 울린다.

    강화도에 돌아와 북으로 뚫린 해안도로를 달린다. 강화도 북쪽을 넘어 바다를 건너면 황해도가 지척. 북에 다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황해도식 요리로 달래본다. 갑곶리의 ‘황해도 사리원 냉국수·만두방’(032-933-5211)의 원화재 사장은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의 요리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며 푸짐하게 만 냉국수와 속이 꽉 찬 왕만두를 내놓는다. 닭을 우려낸 육수로 맛을 낸 냉국수는 입맛을 되돌리는 별미. 김치와 고기로 속을 채운 왕만두는 손님들이 빠뜨리지 않는 단골 메뉴다.

    저녁 무렵, 강화도 산삼리의 낙조 조망봉에 올라 강화도와의 짧은 만남에 작별을 고한다. 거대한 일몰이 섬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해는 뽀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 뒤로 뉘엿뉘엿 자취를 감춘다. 어둠이 깔린 강화를 뒤로한 채 돌아가는 마음은 짠한 그리움, 그것이었다.

    4000년을 유람하는 섬  강화도·석모도

    ① 강화군 내가면 저수지.<br>②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 한 촌로가 땀을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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