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호

[신동아 만평 ‘안마봉’] 2026년 좋은 친구가 해로운 친구로 변할 때 생기는 비극

  •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입력2026-04-29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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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정승혜

    미국-이란 전쟁과 휴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자의 ‘익자삼우(益者三友) 손자삼우(損者三友)’를 떠올린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友直) 신실한 사람을 벗하고(友諒)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友多聞) 유익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벗하고(友便辟), 줏대가 없는 사람을 벗하고(友善柔), 말만 잘하는 사람을 벗하면(友便佞) 해롭다”고 했다.  

    세상살이가 그러하듯 이러한 유형의 친구들은 주변에 늘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해로운 유형의 친구라고 해도 서로 불편하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매번 정색하며 불편함을 드러내거나 친구의 성향을 바꾸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듯, 상대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친구와 진정한 ‘마음 맞음’이 이어지면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를 완성한다. 나라 간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미국은 적어도 한국과 유럽에서는 좋은 친구이자 혈맹이다. 경제발전을 도왔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웠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서양의 오랜 친구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한국·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에는 서운함을 드러낸다.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통행을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에 군함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오랜 친구들과는 협의 없이 불쑥 개전을 해놓고, 나라마다 의회 비준 등 사정이 있는데도 나토를 향해 “종이호랑이”라고 조롱하고, 동맹국 급소인 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는 친구는 정직하고 신실한 친구인가.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서운할 수도 있다. 오랜 친구가 급히 ‘SOS’를 치는데 단박에 거절을 했으니…. 그러나 1949년 나토 창설 이후 집단방위 체제를 구축한 77년 역사의 대서양 동맹과 북한과 중국·러시아에 공동 대응하는 아시아 동맹국들에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반응한다면 동맹국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의 이른바 ‘아부 외교’나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며 기분을 맞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처럼 행동해야 하나. 이미 2500여 년 전 줏대 없이 비위를 맞추는 친구는 해롭다고 한 공자의 식견이 놀랍다. 





    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3년
    권력이 혐오를 제도화할 때 생기는 비극

    <세계유태인대회, 독일에 경제선전 포고 결의>- ‘신동아’ 1933년 12월호

    <세계유태인대회, 독일에 경제선전 포고 결의>- ‘신동아’ 1933년 12월호

    1933년 ‘신동아’ 12월호는 한 해의 주요 사건을 되짚으며, 그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유대인 회의를 만평으로 실었다. 

    그림은 ‘경제 전쟁’이라는 화약으로 독일을 압박하는 장면이지만, 그 핵심은 유대인의 반격 자체보다는 그 반격을 불러온 히틀러 시대의 공포였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에서는 유대인 상점에 대한 전국적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이어 전문직 유대인에 대한 공무원 입직 배제, 법조·의료 분야 진출 제한, 학교 입학 제한 같은 차별 조치가 잇달아 시행됐다. 유대인 박해는 거리의 폭력에 머물지 않고 법과 제도로 굳어졌고, 친구와 이웃이던 유대인들은 하루아침에 ‘배제 대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33년 9월 제네바에서는 세계 유대인 회의가 열렸다. 당시 ‘동아일보’는 9월 2일자 기사에서 “히틀러의 압박에 항의하기 위해 북미와 유럽 등 21개국 유대인 대표들이 제네바에 모였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회의는 독일 상품에 대한 도덕적·경제적 보이콧을 계속하고, 국제연맹에 소수민족 보호 문제를 제기하며, 박해받는 유대인을 위한 구호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이는 독일을 먼저 공격하겠다는 선언이기보다는 이미 시작된 유대인 박해에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방어 성격이 강했다. ‘신동아’ 만평이 ‘경제 전쟁’이라는 표현을 내세운 것도 바로 이 국제적 대응을 압축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33년 9월 2일자 ‘동아일보’ 조간 1면에는 ‘세계 유대인 대회’ 개최 소식이 실렸다.

    1933년 9월 2일자 ‘동아일보’ 조간 1면에는 ‘세계 유대인 대회’ 개최 소식이 실렸다.

    1933년 9월 3일자 ‘동아일보’ 석간 1면에 실린 사설 ‘유태인의 비애’.

    1933년 9월 3일자 ‘동아일보’ 석간 1면에 실린 사설 ‘유태인의 비애’.

    이튿날 동아일보 사설 ‘유태인의 비애’는 이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사설은 유대인이 오랜 유랑과 박해를 겪고도 독립국가를 갖지 못한 채 살아온 민족이며, 시대가 불안해질 때마다 가장 먼저 의심과 증오의 표적이 돼왔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흔들리고 경제가 불안할수록 약한 집단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반복됐고, 히틀러 치하 독일은 그 오래된 배제를 노골적인 국가정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비애는 한 민족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권력이 혐오를 제도로 만들 때 어떤 비극이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징후였다.

    이 만평이 겨눈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먼 비극을 흥밋거리로 옮겨놓은 삽화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특정 집단을 법과 제도로 배제하기 시작할 때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어두워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 그림이었다. 

    당시 조선 독자들 역시 이를 남의 나라 일로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조선인과 유대인의 처지를 그대로 겹쳐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식민지 백성의 눈에는 권력이 약자와 소수자를 밀어내고, 사회적 자격을 빼앗고, 차별을 제도로 굳혀가는 장면이 결코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동아’의 이 한 컷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히틀러 시대의 본질과 배제의 정치가 세계를 어떻게 어둡게 만드는지를 일깨운 날카로운 경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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