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호

“韓·대만은 운명 공동체, 대만해협 평화는 한반도 평화와 연결”

[인터뷰] 추가오웨이 주한대만대표부 대표

  • 최창근 경제사회연구원 미래센터 위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6-04-29 0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33년 만에 한국 부임, 처음 맞은 ‘서울의 봄’

    • 韓 무역흑자 780억 달러의 20%, 대만서 발생

    • 대(對)한국 무역적자 역대 최대, 거시적으로 윈-윈

    • 상호 방문객 300만 명, ‘China(Taiwan)’ 표기 문제 일단락

    •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이어온 100년 우정

    • 국익·국민 복리 차원에서 양국 교류·협력 중요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대사). 지호영 기자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대사). 지호영 기자 

    한 외교관이 있다. 34년 전인 1992년 봄, 그는 청운의 꿈을 품고 첫 근무지 부산으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그해 여름, 한-중 수교와 동시 이뤄진 한국-대만 단교로 외교 공관은 폐쇄돼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홍안(紅顔)의 초년병 외교관은 머리에 서리가 내린 베테랑 외교관이 돼 서울에 부임했다. 추가오웨이(丘高偉·65) 주한타이베이대표부(駐韓國臺北代表部) 대표(대사) 이야기다. 

    추가오웨이 대표는 대만 국립정치대(國立政治大)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1989년 외교부에 몸담았다. 미국 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베트남 하노이 주재 공관과 외교부 북미국·인사처를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사무처장(총영사), 공식 수교국 세인트키츠 네비스(Saint Kitts and Nevis) 대사, 외교부 국회연락사무실 집행장, 총통부 제3국장, 대만미국사무위원회 비서장을 거쳐 지난해 7월 서울에 부임했다. “한국과 대만은 상호 협력을 통해 실질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추가오웨이 대표를 4월 6일 서울 세종로 주한타이베이대표부 집무실에서 마주했다. 

    단교 이전보다 긴밀해진 한·대만 관계

    첫 임지가 부산이었다. 한국-대만 단교로 6개월 만에 이임한 것으로 안다.

    “1992년 2월 주(駐)부산중화민국총영사관 부영사로 외교관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더불어 이른바 3대 중요 수교국이었다. 세 나라 중에서 외교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다 1990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가 단교했다. 부임할 무렵 “한국과의 외교관계에도 변동이 생길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대만 외교부 내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선례에 따라 단교해도 공관 인력은 잔류하고 대사관을 대표부로 현판만 바꿔서 실질 외교관계는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과의 오랜 우호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의 일방적 단교 통보로 서울의 대사관과 부산의 총영사관은 철수해야 했다. ‘마지막 국기 하기식’을 지켜보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체감하기도 했다. 부임 6개월 만에 미국 휴스턴으로 전보됐다. 떠날 때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부산 거주 화교들에게 말했는데, 33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서울에 대표로 부임했다.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셈이다.”

    30년 넘은 세월이 흘러서야 한국의 사계절을 다 경험한 셈이다.

    “아열대기후대에 자리한 대만은 여름은 상대적으로 길고 겨울은 짧다. 겨울에도 영상을 유지한다. 한국의 가을 날씨 정도다. 4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휴스턴·샌프란시스코·하노이·케이프타운·카리브해 등 주로 기후가 온화한 곳에서 근무했다. 

    서울에 와서야 제대로 된 겨울을 경험했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는 처음이다. 한국은 사계절 변화가 뚜렷한 것이 매력이다. 34년 전 봄, 부산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맞이하는 ‘서울의 봄’ 역시 아름답다. 서울은 현대화된 첨단 도시인데 녹지 보전이 잘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1992년 한국-대만 단교 이후 1993년 비(非)공식 관계 재개에 합의한 후 양국은 상주대표부(常駐代表部) 형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비공식 관계’ 틀 속에서 실질관계는 단교 이전보다 긴밀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과 대만은 비공식 외교관계 속에서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관계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추가오웨이 대표는 두 나라의 문화와 습속(習俗)을 화두로 제시했다. 

    “문화와 가치관 면에서 유사하다. 대만도 충효, 신의, 우애를 강조하는 유교문화가 짙게 배어 있다. 특히 예절을 중시한다.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기시감을 느끼기도 한다. 대만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본다. 한국과 대만은 서로에게 자연스레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다. 한국을 방문하는 대만인은 낯선 외국이 아닌,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친구집을 방문하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양국 관계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도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 식민지라는 공통 역사 경험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후기 개발도상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념 차이로 인한 내전을 겪고 분단됐다. 이후 빈곤을 극복하고 각각 ‘한강의 기적’ ‘대만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빈국에서 부국이 된 대표적 사례다. 두 나라는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상부상조 관계다.”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권위주의체제를 거쳐 산업화-민주화-선진화 여정을 이행한 한국과 대만은 후기 개발도상국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권위주의체제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경제 부문에서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저개발 상태에서 국가 주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시행해 성과를 냈다. 국가의 자원과 인력을 특정 분야에 집중투자했다.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경제건설계획’, 고속도로, 항만, 조선소, 제철소 등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계획인 ‘10대 건설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를 토대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고,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로 이행했다. 

    선진화도 달성했다고 평가받는 오늘날은 민주주의도 성숙했다. 서울 광화문 일대나 대만 외교부 청사가 있는 타이베이 보아이특구(博愛特區)에서는 각종 시위나 집회가 자주 열리지만, 대중은 온건한 방식으로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그 속에서 질서가 지켜지고 있다. 30여 년 전 부산역 광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강경 대치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는데 달라진 양상이다.”

    한국과 대만은 북한, 중국이라는 권위주의체제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동주공제(同舟共濟) 처지라 할 수 있는데.

    “6·25전쟁 이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두 나라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대만은 평균 폭 180㎞의 대만해협이라는 자연 방벽이 있지만, 서울에서 불과 40㎞ 거리에 휴전선이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난다. 주지할 점은 ‘중국 변수’는 한국에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배후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에서 상기할 점은 한국과 대만 모두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우방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변수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 할 때 북한을 부추겨 한국을 공격해 미국이 동시에 두 군데 전쟁에 개입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만들 것이라 예상한다. 역내(域內) 안보 측면에서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대만해협 분쟁은 남의 일이다.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닮은꼴’인 한국과 대만은 경제·무역을 중심으로 경쟁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 대만의 3대 무역 대상국이고 대만은 한국의 5대 무역 대상국이다. 대만 경제부 통계 기준 2025년 양국 무역 총액은 902억 달러다. 그중 대만은 370억 달러의 대(對)한국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또 산업통상부 발표에 따르면 같은 해 한국 무역흑자 780억 달러의 20%가 대만에서 발생했다. 

    대만의 대한국 무역적자가 기록적이다. 대만 입장에선 불만일 수도 있는 듯하다.

    “2025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대 무역적자국이 됐다. 대한국·일본 무역적자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장비를 수입한 후 기술과 인력을 투입해 가공한 후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원천기술 문제로 인해 무역적자가 지속된다. 대한국 무역적자 폭 확대의 주요 원인은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이라는 시대 변화다.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 기업은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고대역 메모리(HBM) 반도체를 수입해 파운드리(foundry) 공정 후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으로 수출한다.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대만은 가공 공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미시적으로 보면 대한국 무역적자는 문제가 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상호 윈-윈 구조다.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만은 AI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25년 1501억 달러의 대미국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과 대만의 협력과 상생은 모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대만의 ‘경쟁’ 관계가 부각되기도 한다. 

    “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과 대만의 주력 분야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부문, 대만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고 해당 분야 세계 1위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각자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갈등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상호 협력 영역을 넓혀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협력 공간은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방탄소년단(BTS) 완전체 컴백 공연을 하루 앞둔 3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공연장 앞에 대만에서 온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방탄소년단(BTS) 완전체 컴백 공연을 하루 앞둔 3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공연장 앞에 대만에서 온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상호 방문객 300만 명 육박, ‘China(Taiwan)’ 표기 문제는 일단락

    한국과 대만은 인적 교류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국적은 중국, 일본, 대만 순서다. 대만을 찾은 한국인도 일본인, 홍콩인에 이어 3번째로 많다. 2025년 한 해 동안 180만 명의 대만인이 한국을, 100만 명의 한국인이 대만을 찾았다.

    활발한 인적 교류도 관계 발전의 원인 중 하나인 듯하다.

    “지난해 양국 상호 방문객이 300만 명에 육박한다. 부산과 울산, 경상도와 전라도 등 한국 남부지방을 찾은 관광객 1위가 대만인이었다.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곳곳을 방문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또한 ‘좋아서’ 서로가 서로를 찾는다. 국가가 연간 관광객 쿼터를 지정하고 시행하는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 증진도 활발하다. 지난해 7월 부임 후 타오위안(桃園)시, 타이중(臺中)시, 화롄(花蓮)현, 타이둥(臺東)현이 한국에서 관광 교류 행사를 주최했다. 대만 관광객은 한국을 방문해 K-컬처를 즐기고 K-뷰티를 소비한다. 한국 관광객은 대만을 찾아 한국과 너무나 유사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힘을 체험한다. 이 속에서 상호 이해가 증진되는데,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 가지 아쉽고 우려되는 점은 대만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INTERPOL)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적 교류가 증대되면 그에 비례해 범죄 발생률도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다. 두 나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대만의 인터폴 가입은 필요하다.”

    ‘친밀한 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 양국 관계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만 국적 표기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한국 정부는 전자입국신고서(e-Arrival card)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대만’ 표기에서 발생했다. 여객 기본정보의 국가/지역 분류는 ‘Taiwan’으로 표기됐지만 출발지/목적지는 ‘China(Taiwan)’로 표기됐다. 대만 정부는 이에 유감을 표명하고 변경을 요구했다. 한국과 대만 외교 당국의 협상 끝에 한국 정부가 ‘China(Taiwan)’로 분류된 출발지/목적지 항목을 삭제해 갈등은 일단락 됐다. 

    지난 달 한국 전자입국신고서 국적 표기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같다. 갈등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국 정부는 선린우호(善隣友好) 원칙에 기반해 문제 해결점을 찾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수용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가 그러하듯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호 표기 문제 갈등의 원인을 대만 정부의 탈중국화 혹은 정명(正名) 운동에서 찾기도 한다.

    “1971년 10월 ‘제2758호 결의’에 의해 유엔의 중화민국 의석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체됐다. 문제는 중국이 결의 내용을 오도한다는 것이다. 결의는 유엔의 ‘중국 대표권’ 문제만 다뤘지 대만의 지위를 규정하지 않았다. 베이징 정부가 대만을 대표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중화민국은 실존하는 정치 실체다. 실질 통치 영역이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국민당 정부 대만 파천) 이후 바뀌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베이징 정부는 대만의 중화민국(中華民國在臺灣)의 실체를 부정하며 ‘하나의 중국’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만이 전 중국 유일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만 강조한다. 이 속에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자 했고, ‘중국(대만)’으로 표기된 국적 분류 시정 요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과 대만은 ‘형제의 나라’, 가치 공유하는 우방

    한국-대만 관계를 애증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은 대만의 ‘형제의 나라(兄弟之邦)’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은 튀르키예를 두고서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대만에 한국은 유일무이한 형제다. 미국도 일본도 동남아시아 제국도 아니다. 인적 교류를 통해 서로가 좋은 친구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가고 있다고 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 의거를 계기로 중화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후 굴곡은 있었지만 100년 가까운 우정을 지속해 오고 있다. 양국 국민이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또한 한국과 대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다. 무엇보다 양국은 ‘운명 공동체’다. 국익과 국민 복리 차원에서도 한국과 대만의 교류·협력은 중요하다.”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오는 5월 18~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례 세계보건기구총회(WHA)가 개최된다.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이 아닌 대만은 2017년부터 중국의 반대로 WHA에도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 옵서버 자격으로라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지를 부탁한다. 대만 국민의, 나아가 한국 국민을 비롯한 세계시민 전체의 복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