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北의 ‘임계 미만 전쟁’에 대비하라

[한반도 지오그래픽] 인천·철원 기습 점령 후 휴전 제안할 수도

  • 복거일 소설가·문화미래포럼 대표

    입력2024-10-0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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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치 않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

    • 국제 정세 불안할수록 北 핵무기 가치 높아져

    • 화살머리고지는 6·25 때 北 주력 105땅크여단 남하 경로

    2018년 12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GP를 방문했다. [동아DB]

    2018년 12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GP를 방문했다. [동아DB]

    올해 1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느닷없이 “남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북한은 줄곧 ‘남북한이 한민족이고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민족을 앞세운 북한의 주장은 늘 남한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80년 동안 ‘재미를 본’ 주장을 북한이 갑자기 바꾼 것은 참으로 중대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내 북한에 호의적 세력이, 의회의 다수당인 야당부터 그 많은 친북 단체에 이르기까지, 이 중대한 선언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데서 그 선언이 준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선언은 중대한 함의 여럿을 품고 있다. 물론 하나같이 불길한 것들이다. 이 글은 우리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군사적 함의를 살핀다.

    더 위험해진 한반도 정세

    북한 지도자가 굳이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것은 ‘민족 통일’을 내세운 종래의 정책 효용보다 적대적 정책 효용이 크리라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 판단의 바탕이 북한이 그동안 그리도 열심히 투자해 온 ‘핵무기’라는 것도 분명하다. 지금 북한으로선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투자해 온 핵무기로부터 이득을 얻어내야 한다. 특히 인민들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핵무장을 강행해 온 김씨 왕조로선 핵무기에 투자한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지도층과 인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북한 지도자들도 다급하다.

    그렇게 이득을 얻어내는 데 종래의 정책은 방해가 된다.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내세우면서 핵무기로 위협하는 것은 어색하다. ‘이제 남남이니, 그것도 적대적인 남남이니,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공격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편이 남한으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는 데는 훨씬 낫다.

    현재 북한은 대략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70기 내지 90기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분열물질도 보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발사체도 러시아의 도움으로 빠르게 개량돼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리라 예상된다.

    마침 핵무기 사용을 금기시하던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 전황이 불리해질 때마다 러시아 지도층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자연히 핵무기 사용에 대한 심리적 금기도 상당히 느슨해졌다.

    핵무기 금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미국의 사정도 북한 지도부에 유리해졌다. 6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자와는 잘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원래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에 김정은과 친밀하게 지냈고, 이번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이 된다면 김정은과 거래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가 북한의 어지간한 도발엔 유화적 정책을 펴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이 함께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반도에서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무척 크다. 이 경우 북한의 핵무기가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북한의 핵무기는 가치가 높아지리라는 점이다. 이런 요소들은 모두 우리에게 불길한 조짐이다.

    남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대안은 없다. 충실한 동맹국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해 왔고 앞으로도 제공할 터이지만, 우리 자신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는 질적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핵무기를 갖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군수산업과 원자력산업이 발전했으므로 핵무기를 만들 기술과 자원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엔 우방인 미국과 일본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 상황은 두 우방의 동의를 어렵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선 북한에 우호적 정권이 세 차례 들어섰고 앞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아주 높다. 북한, 러시아, 중국 같은 전체주의 진영에 우호적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핵무장을 하도록 돕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으로선 비합리적 선택이다.

    문재인 정권이 반일 감정을 고취하면서 군사적으로도 적대적 태도를 보인 터라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엔 악몽이다. 실제로 핵무기를 갖춘 남북한이 연합해서 일본을 공격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전체주의 세력에 우호적 정권이 들어설 여지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방의 동의와 지원 아래 핵무기를 갖출 수 있다.

    실은 미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우리와 공유하지 않았다. 우리 군대나 정보기관에 제공된 정보가 곧바로 북한이나 중국으로 새나갔다. 좌파 정권이 집권할 때마다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첩보 및 방첩 능력이 단숨에 허물어지곤 했다. 6월 중순 알려진 국군정보사령부 기밀 유출 사건은 이런 사정을 괴롭게 일깨워줬다. 이런 상황에선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우방과 관계만 악화시킬 가능성만 있다.

    꾸준히 기습 공격 시도한 북한

    불행 중 다행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쓰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북한은 미국의 응징을 받아 지도층이 파멸될 터이다. 실은 북한이 핵무기를 쓰지 않더라도, 남한과 전면전이 벌어지는 순간 미군의 대응으로 북한 정권은 무너진다. 따라서 북한으로선 미군의 대응을 부르지 않는 ‘임계 미만(under threshold) 전쟁’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전략가들이 걱정한 것은 북한군이 우리 영토 일부를 기습적으로 점령하고 이내 휴전 협상을 제안하는 전략이었다.

    2018년 9월 19일 북한의 평양 백화원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9월 19일 북한의 평양 백화원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뉴스1]

    ‌2018년에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에선 북한의 그런 의도가 읽힌다. 이 합의는 북한 정권이 초안을 만들고 문재인 정권이 별다른 수정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비무장지대 경계초소(GP)를 11개소씩 없애기로 합의했는데, 북한의 초소는 160개소가량 되고 남한의 초소는 60개소가량 되므로 눈에 들어올 만큼 비대칭적이다. 양측이 미리 협의했다면 국내 여론을 고려해서 남한 대표단이 그런 비대칭을 완화했을 것이다.

    이 군사합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정찰 행위의 중지”다. 원래 긴장된 전선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관건은 기습의 방지다. 따라서 초소들의 유지와 부단한 정찰은 평화의 요건이다. GP는 가장 높은 고지에 촘촘히 설치돼 있어 비무장지대의 우리 구역엔 사각(死角) 지역이 없다. GP 하나가 철거되면 갑자기 사각 지역이 많이 생긴다. 당연히 북한군의 침투와 기습을 막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그러나 군사합의는 초소들을 ‘화약고’로 간주해서 그것들을 없애고 정찰을 중단하는 것을 평화의 바탕으로 삼았다. 특히 항공정찰의 중단을 강조했다. 북한은 공군력이 미약하므로 이런 조건은 아군의 정찰을 일방적으로 막은 셈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일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지뢰는 위험하니 비무장지대에 묻힌 지뢰들을 없애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뢰는 가장 방어적 무기다. 자기 땅을 지키는 군인들은 지뢰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오직 남의 땅을 공격하려는 군인들에게 지뢰는 작동한다. 비무장지대 지뢰들은 거기 묻혀야 할 이유를 지녔다. 애초에 고지를 보호하기 위해 묻혔고, 그런 사정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북한 땅을 침공할 생각이 없는 우리에게 비무장지대 지뢰들은 우리의 안전을 가장 값싸고 충실하게 보장하는 무기다.



    ‘화살머리고지’ 뚫리면 서울 함락된다

    이처럼 남한의 정찰 능력을 제약하는 것에 주력한 군사합의 내용은 북한이 남한에 대한 기습 공격을 계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바뀌지 않았다. 1945년에 북한 정권이 자리 잡은 뒤부터 북한은 남한에 대한 기습 공격을 늘 추구했고, 6·25전쟁을 통해 그런 목표를 이룰 뻔했다. 그 뒤로 북한은 늘 기습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면 북한이 기습적 점령을 시도할 만한 지역은 어디인가. 북한이 임계 미만 전쟁을 추구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군사전문가들은 거의 다 북한이 인천 지역을 노릴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군이 침공하기 쉬운 데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 지역엔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 및 인천항이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 중요성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크다.

    이런 사정이 반영돼 문재인 정권은 군사합의에 들어간 조건 가운데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특히 열성적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한강 하구 공동 수로 조사에 나서 해도를 작성해 2019년 1월 북한에 넘겼다. 그리고 “66년 만에 한강 하구 뱃길이 열렸다”고 선전했다. 이 해도는 비공개 문건인 비밀(3급)로 등재돼 현재까지 유지돼 있어 최근 논란이 됐다.

    북한이 노리는 또 하나의 지역은 강원도 철원이다. 북쪽의 평강, 서쪽의 철원, 그리고 동쪽의 김화가 삼각형을 이룬 이 지역은 6·25전쟁에서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라 불렸을 만큼 싸움이 치열했다. 이 지역의 ‘화살머리 고지(Arrowhead Hill)’에서 군사합의에 따라 북한군 유해 발굴 사업이 추진됐다. 그리고 그 사업을 위해 비무장지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12m 폭의 도로를 냈다.

    이 사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먼저 유해 발굴이 목적이라면 화살머리 고지가 아니라 백마고지를 발굴해야 한다. 표고가 395m인 백마고지는 그 산악 지역의 남동쪽 모서리인 데다가 역곡천이 감돌아서 전술적으로 중요했다. 백마고지 서쪽에 있는 281m 화살머리고지는 전술적 중요성이 상당히 떨어져서 큰 싸움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곳은 중공군 작전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모두 중공군이었다. 실은 북한군은 유해 발굴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해괴한 행태를 설명하는 단서는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12m 폭의 도로다. 도로는 지형이 결정한다. 그래서 북한이 원하는 비무장지대 관통 도로의 위치가 결정된 뒤에 가장 가까운 격전지를 찾다 보니 화살머리고지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 추론이다. 게다가 유해 발굴을 위해선 따로 도로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 GP엔 이미 보급로가 나 있으니 그저 지뢰를 제거하고 북사면에서 유해만 발굴하면 됐다. 더욱 해괴한 것은 그렇게 낸 도로가 아예 유해 발굴 지역을 우회해서 발굴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도로 하나 가지고 무얼 그러나?” 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 도로는 북한이 탐낼 만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먼저 폭이 12m인 도로면 전차 종대가 빠르게 기동할 수 있다. 그렇게 비무장지대를 관통한 도로는 옛 철원읍으로 연결되는데 거기서 북한군 전차부대는 곧바로 서울로 진격할 수 있다. 바로 6·25전쟁 초기 북한군 주력 105땅크여단이 남하한 경로다. 이 전차 부대에 중부 전선을 지키던 국군 7사단이 무너지고 서울이 함락됐다.

    게다가 이곳엔 ‘제2땅굴’이 있고, 이 지역 우리 초소는 군사합의에 따라 헐렸다. 이런 점들은 북한군이 오래전부터 이곳을 노려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의 틀림없이 북한군이 일으킨 임계 미만 전쟁에서 북한군의 조공(助攻)은 철원을 향할 것이다.

    인천과 철원, 이 두 요지를 기습적으로 점령하면, 북한은 곧바로 휴전을 제의할 것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북한에 호의적 인물에게 중재를 요청할 것이다. 국내에선 종북 세력이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맞장구를 치고. 그런 상황에서 핵무기를 가진 북한군과 싸워서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과연 우리 사회가 모을 수 있을까.

    올바른 시민 인식 위에 ‘굳은 안보’ 선다

    이처럼 위중한 상항에 대처하려면 우리 정부가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긴요하다. 걱정스럽게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런 ‘임계 미만 전쟁’ 전략에 대해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의(定義)에 따라 임계 미만 전쟁은 미군의 관심 사항이 아니고 한미연합군의 전쟁 경기(war game)의 대상도 아니다. 자연히 국군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기구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정부의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임계 미만 전쟁’ 전략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일어 시민들이 그런 위협을 알고 자연스럽게 심적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험을 으레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이 제기해 왔다는 사실을 음미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이 ‘9·19 군사합의’가 무슨 뜻을 지녔으며 어떻게 우리의 안보를 해쳤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화살머리고지 북한군 유해 발굴 사업에서 보듯, 전 정권은 줄곧 시민들에게 평화를 위한 조치라고 선전하면서,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침공할 기회와 수단을 늘렸다.

    전 정권의 그런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인식 위에서만 굳은 안보가 세워질 수 있다. 한강 하구의 해도를 서둘러 제작해서 북한에 넘기고 북한 전차 부대가 침공할 전술 도로를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도록 하는 것은 국방의 강화만이 아니라 정국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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