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이준석, ‘딥페이크 과잉규제’ 걱정 전에 피해자부터 위로해야

[노정태의 뷰파인더] 피해자 위로‧가해자 자수 촉구 동시에 하는 게 정치인의 자세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4-09-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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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에 ‘과잉규제’ 우려

    • 역사상 성폭력이 범죄 아닌 적 없었다

    • 성범죄자 726명이라 한들 그게 적은 수인가

    • IT 강국 대한민국, AI규제가 독인 것 맞지만…

    • 세력 대변보단 피해자부터 위로하는 게 ‘어른’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께서 조기에 대책을 세우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건 좋지만 한편으론 과잉 규제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8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제1차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근래 ‘딥페이크(deep fake‧딥러닝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를 이용한 성착취 영상 등 불법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이가 충격에 빠졌다. 이 의원은 딥페이크 합성물로 인한 범죄 및 사회적 공포를 해결하려면 기관별 협력이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과기부에 기술적 방안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였다. 그는 이어진 발언에서 “과잉규제로 결론이 날까봐 그렇다”고 운을 뗀 후 자신의 속내를 정직하게 드러냈다. 현실적·기술적으로 막을 수 없는 걸 막으려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특히 여성이 ‘과도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진심을 함부로 예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의 발언 및 언론 보도를 인용해 텔레그램 이용자 가운데 한국인 비율은 0.00333333%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 논란의 영상들이 유포된 텔레그램방에 들어있는 22만 명 가운데 한국인은 726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오기까지 했다.

    이 의원의 발언은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을 두고 현재 남초 커뮤니티 일각에선 ‘딥페이크가 문제인 건 맞지만 한국 남자 22만 명이 그걸 만들고 즐긴다는 비난은 과도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소위 ‘이대남(20대 남자) 정서’의 대변인인 이 의원은 이러한 여론을 국회에 전달한 것이다. 그는 회의에서 이런 말도 보탰다.

    “어떻게라도 방법을 만들기 위해서, ‘학교폭력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를 없애는 것이다’ 식의 대책이 나오면 안 되거든요? 기술적으로 말이 되는 대안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신유형 성범죄 출현… 굳이, 왜 “막기 어렵다”하는가

    이 의원의 논지를 정리해 보자. 첫째,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에 연루된 한국 남성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그러한 범죄적 행위가 사실이라 한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그것을 완전 박멸하긴 어렵다. 셋째, 소수가 저지르는 막기 힘든 범죄인만큼 그것을 규탄하려 한국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사실관계의 문제다. 가령 텔레그램 딥페이크 유통 채널에 접속한 사람 가운데 실제로 한국인이 몇 명인지, 그들을 처벌한다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등이 그렇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텔레그램 사용을 막는 것이 기술적‧행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의 발언은 퍽 의아하다. 살인, 강도, 성폭력, 방화, 폭행‧상해를 이른바 ‘5대 강력범죄’라 부른다. 이러한 범죄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근절된 적이 없다. 5대 강력범죄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사회도 5대 강력범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저러한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함으로써 통제하는 것은 인간의 집단 공동체 생활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 본인과 그가 대변하고 있는 특정 여론을 보며 우려되는 까닭이다. 딥페이크를 이용해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 합성하는 것, 합성 제작물을 유포하는 행동은 성폭력으로 봐야 마땅하다. 미리 법으로 만들어진 행위만을 처벌할 수 있는 대륙법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형법상 그것이 어떤 범죄인지 정확히 지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지구상 그 어떤 나라도 저런 행동을 처벌하지 않을 국가는 없다.

    모든 범죄는 완벽하게 예방될 수도, 처벌될 수도 없다. 마치 99.9%의 신뢰도를 지닌 부품을 만든 엔지니어라 해도 100%를 장담할 수는 없으며 그저 99.99%를 지향하며 끝에 9를 하나씩 추가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첨단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의원은 굳이, 왜 “그것을 막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 걸까.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은 명백한 ‘성범죄’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은 상식적 시민이라면 모두 그러한 행위자를 어떻게든 처벌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성범죄’다. 이 의원도 그 점엔 충분히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표출되는 일부 여론 가운데엔 “성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성범죄란 누군가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길 때 발생하는 것인데, 사진이나 영상으로 합성 당하는 것은 합성 당한 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으므로 저열한 짓이긴 해도 성범죄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크게 어긋난 것이다. 스마트폰과 동영상은 고사하고 인쇄술조차 발명되지 않았던 삼국시대에서조차 그랬다. 신라 진평왕 시대의 일이다. 다음과 같이 이상한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夜矣 夗[卯]乙抱遣去如).”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그 제목을 알고 있는 ‘서동요’다. 선화공주는 억울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서동과 밤에 얼싸안는다니. 모함도 이런 저열한 모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억울함만큼이나 노래는 계속 퍼져나갔고 결국 선화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러자 공주의 앞에 노래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그것을 퍼뜨린 장본인인 서동이 나타났다. 선화공주는 울며 겨자먹기로 서동과 혼인했으며, 서동은 훗날 백제 무왕이 됐다. 이는 물론 설화일 뿐이다. 많은 학자들은 서동요를 시대 변화와 정치적 징후를 예언‧암시하는 요참(謠讖)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여기선 그보단 이것이 오늘날의 ‘인권 감수성’ 관점에서 어떻게 여겨지는지 주목해야 한다.

    9월 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9월 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나쁜 소문을 퍼뜨려 공주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결혼해 관계를 맺는 이야기 속에서 서동은 선화공주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통해 ‘약탈혼’에 성공했다. 서동요를 짓고 퍼뜨리는 행위는 그러한 약탈혼의 수행 과정 가운데 일부다. 요컨대 그것은 단순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성폭력이다.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 후 착취하는 행위다. 강간범은 강간 피해자가 어떤 인격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피해자가 협박‧강요‧폭행‧기절 등으로 인해 가해자의 성적 행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뿐이다.

    서동이 서동요를 지어 부른 행위를 성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서동과 밤에 몰래 얼싸안는다는 노래가 퍼지면서 신라인들은 선화공주를 높은 신분을 지닌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게 됐다. 선화공주는 밤마다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남자와 정분을 나누는, ‘음란한 여자’로 격하되고 말았다. 진평왕은 그 점을 부끄럽게 여겨 선화공주를 궐 밖으로 내쫓았다.

    AI(인공지능)를 통해 주변인의 사진을 음란한 모습으로 합성하고 다른 이들과 주고받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껏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소 수백~수천 명의 사용자가 접속해 학교‧학년‧이름 등을 특정한 AI 합성 사진을 유통하는 채널이 확인된 바 있다. 채널 참가자들은 ‘OOO 능욕방’ 등을 만들며 자신들이 가진 피해자의 일상 사진을 원재료 삼아 AI로 합성한 음란물을 유통‧유포했다.

    서동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선화공주를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노래를 지어 불렀듯, 텔레그램을 통해 AI 합성물을 생산‧유포한 이들은 그들의 지인을 ‘인격체’가 아닌 한낱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켰다. 이들을 법률적으로 성범죄가 아닌 다른 죄목으로 처벌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본질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성폭력이다.

    이 사건을 두고 “22만 명이 아니라 726명에 불과하다”는 이 의원의 발언을 보며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이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인구는 5000만 명이며,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성범죄 사건은 9706건이다.

    이 의원의 계산법을 전제로 1명의 텔레그램 사용자가 1건의 AI 합성 범죄만을 저질렀다고 가정하고, 2022년과 올해 성범죄 사건 발생 수를 동일하다고 설정해보자. 이렇게만 해도 2022년과 달리 올해엔 1만432건의 성범죄가 발생하게 된다. 2년 만에 성범죄가 무려 7.47% 증가한 셈이다. 이 숫자를 두고 ‘일부 여성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 의원은 성범죄자가 22만 명이라는 것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현재 대한민국엔 726명의 성범죄자가 수사‧체포를 당하지 않은 채 여성, 특히 주변인들의 사진을 이용해 사이버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726명이 적은 숫자인가. 이를 사소한 일처럼 취급하는 것은 너무도 비상식적이다.

    이준석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 두 가지

    이 사안에서 다룰만한 기술적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AI를 통한 이미지 합성 기술의 대중화이며 둘째가 텔레그램으로 대표되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메신저와 SNS다. 이 의원은 텔레그램을 통한 AI 합성 성폭력 이미지 유통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이 ‘과잉규제로 결론이 날까봐’ 우려하고 있다. 그가 우려하는 부분이 둘 가운데 무엇일지 알 수 없기에 두 논점 모두 살피겠다.

    AI 학습에 필수적인 칩‧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난 2년 사이 큰 폭으로 오른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 AI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다. 한국은 반도체가 GDP(국내 총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고, 최근 빛이 바랬다고는 하나 여전히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IT 산업의 발전을 막는 과도한 규제가 도입되는 것을 마땅히 경계하는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8월 24일 파리에서 체포된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 [동아DB]

    8월 24일 파리에서 체포된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 [동아DB]

    ‌후자의 경우는 어떨까. 텔레그램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지금 논란이 된 AI 합성 성폭력 외에도 마약 유통 등 범죄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최근 파리에서 파벨 두로프 CEO가 체포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정책적으로 아동성범죄 수사마저 협조하지 않았는데, 이를 벼르던 프랑스 사법 당국이 철퇴를 내리친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텔레그램에 대한 과잉규제를 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뜻대로 고분고분 따르며 수사에 협력하지 않는 메신저라는 것은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몇 년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전개 과정을 떠올려 보자. 조슈아 웡, 아그네스 차우로 대표되는 홍콩 민주화 세력은 텔레그램 방 수백여 개를 통해 시위자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시위를 진행해 나갔다. 중국 당국의 눈으로 볼 때 엄연히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익명성을 보장하는 텔레그램을 주요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주화 시위가 진압된 2022년 홍콩 당국은 텔레그램 사용을 원천 봉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 홍콩에서 기승을 부리던 사이버 범죄인 ‘신상 털기’가 텔레그램을 통해 벌어지고 있으므로 범죄 대응 차원에서 텔레그램 사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물론 중국의 일부가 돼버린 홍콩이 그런 이유로 텔레그램을 차단하려 하는 것이 아님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그러므로 과잉 규제를 우려하는 이 의원의 발언은 원론적 관점에서 옳다고 할 수 있다. IT‧반도체 산업을 과도하게 규제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범죄 예방을 이유로 텔레그램 및 익명성을 보장하는 메신저 및 SNS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중국의 일개 도시가 돼버린 홍콩과 같은 수준으로 주저앉힐 수 있다.

    피해자 먼저 위로하는 것이 ‘어른’의 화법

    이 모든 것을 참작한다 해도 이 의원의 발언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신종 온라인 성범죄를 사실상 묵인‧방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과잉규제를 걱정한다면, 그것도 청년 세대에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라면 정말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근래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착취 영상 등 불법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gettyimage]

    근래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착취 영상 등 불법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gettyimage]

    ‌주변 사람의 사진을 합성하고 판매‧유포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만 하는 범죄, 그것도 범죄 가운데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다. 우리 사회는 텔레그램으로 유포되는 AI 성폭력 합성물 유통을 ‘철없는 일부의 일탈’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그러한 행위에 참여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훗날 더 큰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책임감 있는 여론 주도층이라면 더 빠른 수사와 전면적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

    이 의원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본인의 편을 들어주는 남초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여론을 추종하며, AI 성폭력 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를 폄하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이 의원은 자타공인 ‘이대남’의 사랑‧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다. 그 역시 스스로가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가 일부 남초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관점을, 국회라는 공적 자리에서 반복하는 모습이 과연 이대남에게 도움이 될까.

    그럴 리가 없다. 이대남과 이대녀, 한국 남자와 한국 여자는 결국 모두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이며 운명 공동체다. 수많은 여성이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공포를 무시‧조롱하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건 이대남의 집단 착각을 부추기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 의원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과도한 규제가 IT산업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라면 성범죄 피해를 입었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성을 위로하며, 성범죄의 유혹에 휩쓸린 이들에게 자수 및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의 화법 아닐까.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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