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정청래 택한 ‘당심’에 李 대통령 발목 잡힐 수 있다

[이동수의 투시경] “내란 척결” 여당과 “협치” 대통령의 위태한 동행

  •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입력2025-08-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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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척결’ 정청래 vs ‘신중론’ 박찬대…선명성이 갈랐다

    • 정청래, 권리당원 투표에서 박찬대 ‘더블스코어’로 눌러

    •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협치를 원하지 않는다

    • 李, ‘진영’ 뛰어넘어야 하는데…선명성 바라는 당심이 과제

    2024년 2월 27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오른쪽)와 정청래 최고위원(앞줄 왼쪽)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동아DB

    2024년 2월 27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오른쪽)와 정청래 최고위원(앞줄 왼쪽)이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동아DB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등장은 역시나 강렬했다. 8월 2일 민주당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정부 첫 여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처음부터 ‘선명한 여당’을 강조했다. 그의 당대표 수락 연설은 두 문장으로 압축된다. ①우리는 똘똘 뭉쳐야 한다, ②그렇게 모은 힘을 개혁과 ‘내란 종식’에 쏟아야 한다.

    보통 당대표로 선출되면 상대편에 의례적으로라도 손을 내밀게 마련이다. 정 대표는 그런 ‘허례허식’을 거부했다. 국민의힘과의 관계를 놓고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기 때문에 “여야 개념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악수도 하지 않을 거라고 천명했다. 검찰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 등 3대 개혁은 10월 추석 전에 완수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과반 의석을 바탕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집권 초 여당 대표들은 대체로 통합과 화합을 말해왔다. 그런 점에서 정 대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선명한 여당 대표다. 선명하고 강경한 여당 대표의 등장은 향후 정국을 어떻게 움직일까.

    정청래, 권리당원 투표에서 박찬대 ‘더블스코어’로 눌러

    정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최종 득표율 61.74%를 기록했다. 38.26%를 얻은 같은 당 박찬대 의원을 너끈히 제쳤다. 정 대표가 얻은 최종 득표율은 역대 민주당 대표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그 앞은 2024년과 2022년 전당대회에서 각각 85.40%, 77.77%를 기록한 이재명 대통령뿐이다. 처음에는 박빙의 승부가 예측됐다. 정청래, 박찬대 두 사람 모두 ‘친명 후보’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표가 한쪽으로 쏠릴 거란 예측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 대표의 60%대 득표율은, 이 대통령이 ‘일극 체제’하에서 70~80%대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 이상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초반엔 박 의원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여의도 민심’에 밝은 언론인, 평론가들이 대체로 그랬다. 원내 지지세가 높은 데다 최근까지 당내에서 이 대통령과 손발을 맞춘 인물인 까닭에서다. 실제로 의원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대의원 투표에서는 그가 이겼다. 박 의원의 대의원 투표 최종 득표율은 53.09%(정청래 46.91%)다. 하지만 당심은 전혀 달랐다. 정 대표는 7월 19일 충청에서 열린 첫 순회 경선 권리당원 투표에서 62.77%(박찬대 37.23%)를 얻었고, 전당대회 끝까지 지지세를 유지하며 최종 66.48%를 득표했다. 33.52%를 얻은 박 의원을 ‘더블스코어’로 눌렀다. 여론조사 역시 정청래 60.46%대 박찬대 39.65%로 정 대표가 크게 앞섰다. 참고로 민주당의 이번 당대표 선거는 대의원 투표 결과가 15%, 권리당원 투표가 55%,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30% 비율로 각각 반영됐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원들로 하여금 정 대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게 했을까.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됐다가 갑질 논란으로 사퇴한 강선우 민주당 의원에 대한 태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강 의원의 갑질 논란 이후 여론은 요동쳤다. 여당 내에서는 이 사건이 자칫 ‘제2의 조국 사태’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박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렵고 힘들지만 결정해야 한다”며 강 의원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정 대표의 메시지는 정반대였다. “힘내시라”며 강 의원을 응원한 것이다. 강 의원의 여가부 장관 후보직 사퇴 이후에도 “동지란? 이겨도 함께 이기고, 져도 함께 지는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정 대표의 ‘지원사격’을 두고 여의도에선 보좌진 등을 중심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강성 당원들 사이에선 강 의원을 지키지 않은 박 의원을 향한 성토가 쏟아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4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4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협치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점을 잘 살펴보면 ‘강선우 사퇴 촉구’가 판을 바꾼 변곡점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강 의원의 여가부 장관 후보직 사퇴는 7월 23일이다. ‘63대 37’ 결과가 나온 충청 전당대회(19일) 나흘 뒤다. 판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두 친명 후보에 대한 당심을 압도적으로 갈라놓았을까. 힌트는 7월 16일 TV 토론에 있다.

    당대표 선거 첫 TV 토론이었던 이날의 관전 요소 가운데 하나는 ‘협치’였다. 야당과의 관계 설정, 국민의힘 위헌정당해산심판 등이 거론됐다. 정청래, 박찬대 두 사람의 대답은 상반됐다.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 정 대표는 “국회는 원래 갈등 집합소”라며 “(야당이) 억지를 쓰면 표결 처리하고 돌파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을 위해선 숫자로 찍어 누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반면 박 의원은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민생 경제와 국민 통합을 위해선 인내심을 가지고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위헌정당해산심판 여부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통합진보당 사례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백번 천번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주장했다. 박 의원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급하게 처리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특검이 빨리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합리주의를 표방한 박 의원의 태도는 열성 지지층이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여권 지지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박찬대 의원을 두고 ‘수박(겉은 민주당인데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뜻)’이라는 비난이 등장했다.

    정 대표는 박 의원의 발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7월 26일 자신의 SNS에 총을 든 계엄군을 보내 이재명·김민석·박찬대·정청래를 수거하려고 했던 내란 세력과 협치가 가능할까” “협치보다 내란 척결이 먼저다. 이런 자들과 함부로 협치 운운하지 말라”라고 적는가 하면, 이어진 TV 토론에서도 협치 여부를 따져 물었다. 박 의원으로선 당 지지층의 요구와 반대되는, 협치 이미지가 씌워지는 게 썩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박 의원은 입법 관련 발언에서 선명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나 당심은 이미 기운 뒤였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협치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내란 세력이기 때문에” 협치를 할 수 없단 입장이지만, 비상계엄 이전에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친일파, 독재 잔당, 정치 검찰 등 상대를 호명하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열성 지지층의 가슴속엔 늘 이들과 싸워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그 열정과 분노의 씨앗이 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다. 이들에게 보수정당과 검찰은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들이다.

    사실 여기에는 일종의 속죄 심리도 작용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그에게 돌을 던진 건 보수진영뿐만이 아니었다. 진보진영과 그 지지층 또한 부동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측근 비리 등의 문제로 노 전 대통령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여론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뒤바뀌었다. 지지층 사이에선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후회가 끊이지 않았다. 부채 의식을 털기 위함이든 복수를 위함이든, 이때부터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요구는 분명해졌다. 우리 편은 무조건 지켜야 하고, 상대방과는 제대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있었던 ‘비판적 지지’ 논쟁이다. 당시 여당 지지층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것이냐, 맹목적으로 지지할 것이냐를 두고 뜨거운 갑론을박이 오갔다. 얼핏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게 상식적인 결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지층의 의견은 달랐다. 자신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했다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으로 지지율 부침을 겪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머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지지하겠다”라는, 이른바 ‘대깨문’의 등장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李, 진영 뛰어넘어야 하는데…선명성 바라는 당심이 과제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이 열성 당원을 중심으로 전투력을 증강해 나가는 흐름의 정점에 놓였던 인물이다. 그는 민주당의 주류였던 적이 없다. 동교동계도, 친노무현계도, 친문재인계도 아니었다. 혈혈단신인 그가 단숨에 대권 주자로 부상한 건 선명함 덕분이었다. 성남시장 시절 지역에서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는 있었으나, 전국적 지지도를 갖춘 인물이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던 가운데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그는 발 빠르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다. 덕분에 일약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201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대세론이 일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노무현의 남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엇비슷한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당대표가 된 뒤에도 선명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윤석열 정부에 맞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수사를 앞두고 당내 장악력을 극대화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이견은 용납되지 않았다. 2024년 총선 당시 ‘비명횡사 공천’이 대표적이다. 지지층은 열광했다. 그를 ‘전투형 노무현’이라고 칭송했다. 노 전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에 전투적 성향은 더 강화되었다는 의미다.

    대통령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이재명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 포용·화합·협치와 같은 단어를 거듭 강조한다. 더는 올라갈 곳이 없는 이 대통령으로선 외연을 넓혀 통치 기반을 견고히 하는 과제만이 남은 이유에서다. 그 의지는 인사에서도, 정책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유임),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 등 비명계·보수 출신 인사들을 두루 요직에 앉히는가 하면, 진보진영이 죄악시해 오던 원전에 대해서도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전향적 입장을 견지한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대화와 타협, 포용과 화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 송금 의혹, 대장동·백현동·성남FC 관련 의혹 등 그와 관계있는 굵직한 재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대통령이 돼 잠시 중단됐을 뿐이다. 만일 그가 국민적 지지를 잃고 임기를 마친다면 언제든 “재판을 다시 시작하자”는 여론이 부상할 수 있다. 거대 여당이 그때도 자신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다. 친문이 친명이 됐다가 또 다른 주자로 넘어갈 수도 있는 게 권력의 생리다. 전임자의 오판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그는, 누구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이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퇴임 후에도 안온한 일상을 누리려면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만 한다. 성공한 정부란 국민 다수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정부다. 이를 위해선 진영을 뛰어넘어야 한다. 야당과의 협치는 일종의 보험이다. 지금부터 유대 관계를 쌓아야 훗날 자신이 무언가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정권의 입지는 당장 내년에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2021년 4·7재·보궐 선거와 2022년 대선 패배를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청래 대표는 선거기간 “궂은일, 험한 일, 싸울 일은 제가 하고, 협치·통합·안정의 꽃과 열매는 대통령의 공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 나름 합리적 역할 분담이다. 그런데 강성 당원들도 그걸 원할까. 개혁 과제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상대를 확실하게 끝장내길 바라는 이들에게 협치나 통합은 배신의 다른 말이다.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선명함을 바라는 당원의 요구는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심과 당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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