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시마당

뒤로 걷는 사람

  • 박세미

    입력2020-07-1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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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세상은 한발자국씩 넓어지는 것이었다
    한발자국씩 멀어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걸을 때
    옆에서 커다란 사과나무 한그루가 나타난다
    한발자국, 사과나무는 불타며
    두발자국, 사과나무는 검게 식으며
    세발자국, 사과나무는 썩은 사과 한 알이 되며
    네발자국, 깜박이는 눈꺼풀 사이로 사라진다

    더러 썩은 사과 한 알이 눈에 맴돌 때면
    눈을 감고 이리저리 굴려 녹여 없앴다
    그는 최소화된 것들과의 이별에 익숙했다

    눈이 오던 어느 날
    멀리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점이 있었다
    그가 한발자국씩 뒤로 갈 때마다
    점은 세발자국씩 앞으로 다가오며 커지더니 다리를 뻗고 손
    을 흔들며 마침내 웃어보였다

    달려오던 점은 그의 코앞에서 최대화가 되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을 안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깨를 툭 치고는 그의 바로 옆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굽혔다
    썩은 사과들이 눈밭에 우르르 쏟아졌다


    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 시집 ‘내가 나일 확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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