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자국씩 멀어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걸을 때
옆에서 커다란 사과나무 한그루가 나타난다
한발자국, 사과나무는 불타며
두발자국, 사과나무는 검게 식으며
세발자국, 사과나무는 썩은 사과 한 알이 되며
네발자국, 깜박이는 눈꺼풀 사이로 사라진다
더러 썩은 사과 한 알이 눈에 맴돌 때면
눈을 감고 이리저리 굴려 녹여 없앴다
그는 최소화된 것들과의 이별에 익숙했다
눈이 오던 어느 날
멀리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점이 있었다
그가 한발자국씩 뒤로 갈 때마다
점은 세발자국씩 앞으로 다가오며 커지더니 다리를 뻗고 손
을 흔들며 마침내 웃어보였다
달려오던 점은 그의 코앞에서 최대화가 되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을 안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깨를 툭 치고는 그의 바로 옆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굽혔다
썩은 사과들이 눈밭에 우르르 쏟아졌다
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 시집 ‘내가 나일 확률’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