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예단 공연으로) 한 50억 손해 봤어. 대북사업 10년에 거덜난 것밖에 없어. 아유 징그러워. 10년 동안 나를 빨갱이 취급하며 누가 상대나 해줬어. 나보고 빨갛다고만 하고. 혼자 걸어온 길이 만 10년이야. 90년부터니까. 그 얘기 다 하자면 징그러워요.”
NS21엔터프라이즈 회장 김보애씨(61)는 말을 재는 성격이 아니었다. 속에서 솟구치는 대로 쏟아내는 편이었다. 말하면서 흥분도 잘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감정 표현이 뚜렷하고, 또 이를 남 앞에서 감추지 않는 편인데 김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얘기는 원망과 한탄, 비난, 절망 그리고 희망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자신만 아는 일들을 ‘차·포 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 그녀는 “바빠서 시간 내기 힘들다”며 약속 잡는 것 자체를 며칠 후로 미뤘다. 그때야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나타날 때부터 알아볼 일이었다.
취재진과 마주 앉아서도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허겁지겁 사무실에 도착한 그녀에게는 먼저 어떤 남자와 싸워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평양교예단 공연 때 무대 설치 등을 맡았던 모 이벤트사의 직원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교예단 공연으로 손해를 본 이벤트사가 김씨에게 ‘돈 문제’로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의가 산만한 편이었다. 얘기하다가 물 마시러 가고 담배 찾고 불 찾고 서류 결재하고 손님 맞고 수시로 전화하고, 또 휴대폰은 얼마나 자주 울려대는지….
NS21의 NS는 north(북)와 south(남)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남북문화교류사업에 대한 김씨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1960년대 최고의 미모를 뽐내던 여배우로,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고 김진규의 첫 번째 부인으로, 정치인 사랑방으로 불리던 요정 ‘세보’의 주인으로 이름을 떨치던 그녀가 대북사업가로 변신할 것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회와 지난 6월의 평양교예단 초청공연은 모두 김씨 작품이다. 그녀는 또 최초의 남북합작영화 ‘아리랑’ 제작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변이 산만한 탓에 인터뷰 진행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증언을 통해 남북문화교류사업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려는 기자의 의도는 그다지 빗나가지 않았다.
55억원 적자
먼저 평양교예단 공연 뒷얘기가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공연 대가로 북쪽에 건너간 돈은 550만달러(약 66억원). 그중 300만달러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컬러TV로 지불됐다. 김씨에 따르면 이 돈을 포함해 교예단 공연에 들어간 비용은 1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공연 수익은 45억원(약 13만명 입장)에 그쳤다는 것. 55억원 적자라는 얘기는 이런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큰 투자자는 현대와 KTV네트워크로 각각 30억원씩 투자했다. 거기에 MBC가 기업체로부터 협찬 받은 10억원을 제공하고, 통일부는 교예단 일행의 서울 체제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6억여원의 통일기금을 내놓았다. 김씨와 다투고 있는 모 이벤트사는 공연 홍보, 무대 설치, 경비 등의 일을 맡았는데 그 비용으로 22억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와 KTV 두 회사 다 20억원씩 손해를 봤어요. 손해를 보니 이리저리 시끄러워진 거야. 그런데 10억에 할 수 있는 일을 갖고 20억씩 나한테 청구하니 손해 본 내가 어떻게 그걸 다 줘요. 복잡하다구. 너무너무 사람이 무섭고 징글징글해. 10년 해온 일을 이제와 내다버릴 수도 없고. 대화가 막혔던 시절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했어요. 저쪽에 실수할까봐. 그런데 이제 대화 문이 열리고 긴장이 풀리니 지친다구.”
―550만달러는 어떤 명목으로 주는 겁니까.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해요. 그 돈은 출연료가 아니야. 그때 두 정상이 만나고 저쪽에서도 마음 문을 팍 열고 내려온 것 아니야. 그 보답이에요. 북쪽이 어렵기도 하고. 누가 뭐래도 아직까진 도와줘야 해. 앞으로도. 나는 그걸 늘 얘기한다구.”
―처음부터 수익은 기대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아니지. 원래 계약한 내용은 9월 한달 동안 400만달러에 공연하는 것이었어요. 한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면 550만달러 준다 해도 손해는 안 봤지. 그런데 정상회담 분위기에 맞추느라 시기를 당겨 회담 직전 일주일 동안만 하는 바람에…. 어떻게 550만달러로 올라갔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김씨 말대로라면 남북정상회담이 평양교예단의 공연일정을 바꾼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 북한에 건너간 것은 6월13일. 평양교예단 공연은 그보다 열흘 전인 6월3일 시작됐다.
―정상회담 때문에 한 달 할 것을 일주일로 줄였다면 정부에서 그에 따른 손해를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구한다고 누가 들어주나. 또 정부가 도와주려 해도 방침이 없는데. 대책이 없지요. 외로운 길이라니까. 통일부나 문화부 국정원 직원들도 이번에 고생 많이 했어요. 밤 꼬박 새우고.”
돈 벌 생각 말아야
―현대나 KTV는 손해를 감수하는 겁니까.
“그럼요. 20억씩. 이렇게 손해를 많이 볼 줄은 몰랐지. 한 10억 손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배가 돼버렸어. 일주일만 하는 바람에.”
―이벤트 회사도 수익을 기대하고 참여했을 텐데요.
“다들 될 줄 알고 뛰어들었지요. 하지만 일주일 해서 어떻게 수익이 나와요. 대신 남북정상회담 성과가 좋았잖아요.”
―공연수익금 45억원은 어떻게 나눴습니까.
“현대와 KTV에서 각각 10억원씩 가져가고, 이벤트사에서 비용으로 22억을 요구하는데 과다한 것 같아 액수를 줄이기 위해 협의중이에요, 지금.”
김씨는 이벤트사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인터뷰 도중 ‘짬을 내’ 이벤트사 직원과 승강이를 벌이는가 하면 그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전화를 걸고 받았다.
―기획자 몫은 없어요?
“없어요. 남으면 몰라도.”
―손해만 봤다는 얘긴데, 북쪽에서 주는 건 없습니까.
“뭐 얘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수익이) 개인 것이 아니잖아. 리베이트 준다고? 그런 얘기 말아요. 그쪽은 우리와 달라.”
김씨는 대북사업의 순수성을 애써 강조했다. “북한 일을 가지고, 더구나 문화사업으로 돈을 벌려는 건 정신이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자존심과 자부심과 회한이 뒤섞여 있는 그녀의 푸념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 말도 못하지. 자살 직전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주변에서 대접 못 받지. 저 여자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니냐고. 마지막엔 자식들한테까지 대접 받지 못했어요. 반공법 보안법이 판치던 그 시절엔 대북 관계 일한다면 정신병자로 취급받았지, 그렇잖아요. 당시만 해도 대화가 안 됐지. 그러니 빨간 물 들었다는 소리 듣지. 그런데 그 소리 듣지 않고서야 일을 못하잖아.
나 같은 개인사업가는 10년 동안 고생한 것이 아무에게도 인정 못 받는 거야. 현대 같은 큰 기업이야 보상이 되고 있지. 개성 관광사업이다 뭐다 해서. KTV도 입지가 섰지. 하지만 우리는 어디서도 보상을 못 받지. 누가 나한테 돈 뺏어간 건 아니지만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이 일에만 10년을 보내지 않았냐고. 모두들 나를 ‘또라이’ ‘인민배우’라고 해요. 그렇지만 북쪽에선 사랑을 많이 받는다구, 내가.
하나님에게 내 인생 만회해달라구 기도했어요. 그런데 만회했잖아, 이번에 교예단 하며. 남북 양쪽에서 김보애가 인정받은 거지. 공연이 끝난 후 모 장관이 이제는 ‘또라이 인민배우’가 아니라 똑똑한 인민배우가 돼야지, 하더라구요. 진짜 멋있는 인민배우로 잘하길 바란다고. 충고지. 9월에 한다면 돈은 벌지 모르지만 두 정상이 만나는 데 이바지하지는 못 하는 것 아니야.”
―교예단 공연은 어떻게 기획하게 된 겁니까.
“오래 전부터 방송사에서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 100여명이 한꺼번에 내려갈 수는 없다, 시기상조라며 꺼렸지. 그러다 4월30일 그쪽과 약속이 됐어요. 9월에 (공연을) 갖기로.”
―공연 시기와 기간이 바뀌었다면 계약조건을 수정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한 거야. 손해 감수하고. 함부로 남한테 못 줄 거에요, 지방공연은. 다 얘기해놓았느니까. 한 달만 해도 스폰서가 많이 붙었을 텐데. 현대와 KTV가 도와준 거야. 하나님은 두 가지를 안 줘요. 내 인생과 명예가 만회됐으니 뭘 더 바라. 그간 불신임받다가 신용을 얻게 됐잖아, 이제.”
―북쪽만 수지 맞는 일이네요.
“그렇죠 뭐.”
―그런데 기획자에게 최소한의 몫도 없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또라이 소리 듣지. 그렇지만 앞으론 그렇게 손해나는 일 안 해요. 북쪽에서도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안 할 거예요. ‘꽃파는 처녀’를 영화화하자니까 전국 극장이 몇 개며 (관객이) 몇 명 드는지 조사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조사자료를 갖다줬어요. 북쪽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산을 하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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