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이번에 곰이랑 세 번을 마주쳤잖아.” 햇살 작열하는 압구정동, 물질과 인공의 거리에서 툭 튀어나온 곰이란 단어는 생뚱맞기까지 하다. 티스푼으로 막 녹기 시작한 팥빙수 얼음을 뒤적이던 ‘형’은 “그으래?” 하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디서?”
“존 무어 트레일이라고, 미국에선 되게 유명한 산악종주코스거든.”
“야, 너 여전히 그런 데 뒤지고 다니냐?”
“어이, 형은. 그게 얼마나 좋은데.”
“그래, 좋다 치고.”
“그게 한 20일 걸리는 코스야, 형. 먹을 걸 다 등에 지고 가야 되거든. 난 이번이 두번짼데, 지난번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곰을 내리 세 번 본 거야. 배낭에 땅콩이랑 미숫가루 같은 게 들어있으니까 냄새를 맡고 온 거지.”
“위험하진 않았어?”
“뭐 괜찮았어. 한번은 모닥불 피워놓고 침낭에서 자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구. 슬쩍 보니까 곰이, 왜 엄청 덩치 큰 미국산 브라운 베어 있잖아, 그게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배낭을 턱 채가는 거야. 겁도 나고 해서 멀리서 지켜보다 사라진 뒤 가봤더니 먹을 건 거의 다 뒤져갔더라구. 근데 미숫가루는 싫었나봐. 덕분에 근근이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었지.”
얘기를 듣던 형은 특유의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슬슬 젓는다.
“난 도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그렇게 열심히 가면 뭐 이쁜 여자가 기다린다던가, 좋은 술이 있다던가, 그런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땀 뻘뻘 흘려가며 사서 고생을 하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형의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감돈다.
‘멋진 놈이야, 진짜 수컷이라구.’
형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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