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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學의 세계 천착한 흥미로운 학술서

聖學의 세계 천착한 흥미로운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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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이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해서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은 안으로 덕성(德性)을 갖추고 밖으로 덕행(德行)을 실천하는 유덕자(有德者)였다. 완전한 인간을 뜻하는 성인(聖人)은 곧 덕이 지극한 사람을 뜻했다. 이런 까닭에 왕도정치의 중심체인 군주는 공부를 통해서 안으로 덕성을 기르고, 통치를 통해서 밖으로 덕행을 펴는 최고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군주가 최고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군주의 학문을 성인의 학문과 동일시하여 성학(聖學)으로 불렀다. 군주가 성학에 기초하여 왕도를 실천하면, 백성들은 군주의 덕화에 힘입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유덕한 군주를 만드는 기틀인 왕세자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유덕한 군주가 되는 데 필요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출생 이전의 태교에서부터 출생 이후의 문자교육, 경전교육, 의례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왕세자는 면밀히 짜여진 교육과정을 좇아서 유덕한 군주의 길을 공부하였다. 왕세자의 일상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모든 것을 교육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실시된 왕세자 교육의 결과는 마냥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교육이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잘 가르치려는 노력 못지 않게, 배우는 사람의 공부에 대한 열의와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런데 온갖 풍요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왕세자가 자발적으로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갖기 어려웠고, 왕세자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벌어지는 조정의 권력싸움 또한 교육을 방해하는 큰 요소였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에 왕세자 교육을 받고 훌륭한 군주로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이끈 인물로 세종과 정조를 꼽는다. 그런데 세종과 정조가 훌륭하게 된 것은 왕세자 교육을 잘 받은 것도 큰 힘이 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군이 되어야 한다는 긴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종과 정조는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에 일어난 인륜의 비극을 되새기면서 성군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졌던 이들이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임금이 되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처가와 세자의 처가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맏이로서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준 일을 생각할 때마다, 성군이 되어 선대에 저질러진 인륜의 비극을 치유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조 또한 세종 못지않은 비극을 겪은 인물이었다. 할아버지인 영조가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28세의 세자(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일 때, 정조는 열 살 소년으로 할아버지의 옷소매를 붙들고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게다가 조정이 당파로 분열된 가운데 할아버지인 영조가 큰할아버지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혐의까지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정조는 성군이 되어 선대에 저질러진 인륜의 비극을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나친 관심과 정성의 역효과

오늘날 우리도 조선시대처럼 교육을 무척이나 중시한다. 특히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이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지적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나친 관심이 도리어 자녀 교육을 망칠 수도 있음이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지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조건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점은 바로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 문제였다. 지나친 관심과 노력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는 일도 많았던 것이다.

자녀를 왕자나 공주처럼 떠받든다는 점에서 오늘날 부모들의 자녀교육은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과 닮은 점이 많다. 왕자나 공주를 버릇없이 가르치면 왕자병이나 공주병에 걸려서 망나니처럼 자신밖에 모르는 초라한 인간이 되고 만다. 영조와 같은 영특한 임금 밑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이 생겨난 것도 왕세자 교육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는 달리 세자가 자신밖에 모르는 버릇없는 인간으로 키워졌기 때문이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먼저 부모와 이웃의 노고를 이해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배움에 대한 작은 뜻을 세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신동아 200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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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한국학 bychoi@mail.hangk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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