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격스럽다”며 슬쩍 눈물을 훔쳤지만 여전히 눈시울은 붉고 목소리도 파르르 떨렸다. 그가 파리 오트 쿠튀르 초청멤버가 된 것은 2001년 1월. 도대체 오트 쿠튀르라는 게 패션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길래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감격하는 걸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김지해(37)씨.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그를 “겐조와 파코 라반의 공백을 메울 디자이너”라 평했고, 뉴스전문채널 LCI TV는 ‘오트 쿠튀르의 횃불을 들고 파리 패션에 혁명을 일으킬 예술가”로 추켜세웠다. 세계적인 패션그룹 LVMH 역시 그를 “차세대를 이끌어갈 패션 디자이너”라고 격찬했다.
그의 이름을 딴 ‘지해(JI HAYE)’ 브랜드는 프랑스에서 브랜드 디자이너인 그 자신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이처럼 남다른 주목을 받는 것은 한국인 최초,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하나에 모리에 이어 두 번째로 오트 쿠튀르 회원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 오트 쿠튀르 입성
고급 맞춤복이라는 뜻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는 정교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거장 디자이너의 무한한 상상력과 장인의 섬세한 손맛으로 완성되는 이 ‘예술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은 유럽이나 중동의 왕족, 거물급 정·재계 인사 등 전세계를 통틀어 1000명 남짓밖에 안 된다. 옷값도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오트 쿠튀르는 단순한 의상이 아닌 ‘소장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트 쿠튀르 멤버가 된다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에겐 최고의 영예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무대다. 오트 쿠튀르와 함께 파리 패션계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프레타 포르테(pret-a-porter)는 고급 기성복을 의미한다.
현재 프랑스의상연합 오트 쿠튀르 부문에는 17명의 정멤버가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샤넬, 이브 생 로랑 등이 대표적인 회원들. 해마다 초청멤버를 선발하는데,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갖춰야 함은 물론 정멤버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김씨는 2001년 초청멤버가 된 후 4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말 코끼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요. 제가 초청되기 전해에는 정멤버들이 초청멤버가 될 만한 디자이너가 없다고 판단해 아무도 뽑지 않았죠. 제가 초청멤버가 된 것은 잘나서가 아니라 제 옷에 깃들인 한국 문화의 향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최근에 남산의 단풍을 보신 적 있어요? 너무나 아름답죠. 인위적으로 그런 색감을 만들려고 해도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거예요. 또 사계절이 뚜렷해 저를 둘러싼 자연의 빛깔과 분위기가 매순간 달라지죠.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 풍족해진 제 마음이 옷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김지해씨의 의상엔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이 혼재한다. 오트 쿠튀르에 걸맞게 서양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는 한국적인 고풍스러움이 스며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색감과 소재를 모던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그는 견, 마, 모시, 노방 등 한국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하고 ‘깨끼’ 등 한국적 바느질법을 이용한다. 특히 모시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구겨지는 단점이 있긴 해도 모시의 자연스러운 구김을 통해 드러나는 실루엣은 한국인인 저만이 표현할 수 있죠. 또 모시의 촘촘한 마디마디를 살펴보면 그걸 짠 분이 속상했는지, 아니면 행복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한국 모시의 폭이 왜 어깨너비인 줄 아세요? 인간의 진실한 마음을 담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폭이기 때문이죠.”
한 고객이 모시로 만든 그의 드레스를 1억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그후 모시의 매력에 푹 빠진 고객은 그에게 모시로 소파보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지해씨는 모시를 한낱 소파보로 사용할 수는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모시 한 폭에 담겨 있는 우리 여인네의 희로애락을 설명하며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김씨는 모시를 오트 쿠튀르 소재로만 사용하지 프레타 포르테에는 쓰지 않는다. 고귀하게 만들어서 그에 걸맞은 가격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