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 많이 밀리네요.”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로 은희경이 들어선다.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목소리가 나긋하다. 때론 사근사근 애교가 넘친다. 견고한 마음의 방어벽이 스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진한 오렌지빛 니트 상의에 회색 미니스커트, 컬러풀한 스타킹…. 그의 옷차림은 30대 초반인 기자보다 발랄하다. 마치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그의 글처럼. “문학동네 시상식에서 축사를 맡아 특별히 예쁘게 입었답니다.” 그는 생기발랄한 소녀처럼 말했다.
은희경을 만난 건 성탄절을 앞둔 지난해 12월23일. e메일과 트위터로 인터뷰를 요청한 지 약 한 달 만에 성사된 만남이다. 지난해 11월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펴낸 그는 신작 출간 후 빠듯한 해외 일정을 소화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과 일본에서 열린 ‘2010 한중일 동아시아 문학포럼’에 잇달아 참가한 것이다.
▼ 멕시코와 일본 방문은 재미있으셨나요? 한 일간지에 기고한 멕시코 방문기를 재밌게 봤습니다.
“멕시코에서 고등학생들과의 만남이 가장 좋았죠. 100명 넘는 소년, 소녀들과 포옹도 하고! 200명 넘는 학생들이 강당에서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얘기가 시작되면 각자 ‘쉿!’ 하며 자기들끼리 분위기를 자정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그걸 보면서 ‘그대로 놓아두면, 아이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데 어른들이 사회통념으로 아이들을 너무 경직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일본에서도 중학교에 갔는데, 멕시코와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일본 학생들이 줄 맞춰 딱 앉아 있는 걸 보면서 동양권의 학교 교육에 강박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하지만, 그들과 얘기해보니 역시 아이다움이 나오더라고요.(웃음)”
▼ ‘새의 선물’은 스페인어로 번역돼 멕시코에서 소개됐죠? 현지 독자 반응은 어땠나요?
“멕시코 학생들이 질문하는 게 (한국 독자들과) 거의 비슷해요. ‘소설 속 주인공이 선생님 자신인가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할 때 어떻게 하세요?’ 등의 질문들…. 결국 개별을 통해 보편에 이르는 거구나 생각했죠. 사실 제 소설이 외국에서 잘 읽힐 거라는 기대는 별로 안 해요. 번역의 문제도 있고, 출판의 문제도 있고. 개인의 능력으로 프런티어처럼 나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성공하면 한국 작가들의 위상이 더 높아지겠죠. 저는 아직 그렇게 사회 활동을 할 역량이 안 돼요. 외국 독자가 제 책을 많이 읽길 바라는 건 다음 문제죠. 일단 알리면, 언젠가 열매를 딸 시기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은 어떠셨나요?
“이 포럼은 세 나라에서 돌아가며 개최돼요. 2009년 1회가 한국에서, 이번 2회가 일본에서 열렸죠. 작가들에게 공부도 많이 시키고, 다른 나라 작가들과 만나 얘기할 수 있어 좋아요. 사담도 많이 나눴는데, ‘일식’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부인이 굉장히 유명한 모델이잖아요. ‘부인이 모델이라서 좋겠다’고 하니까 ‘화장 지우면 못 알아본다’고 농담을 하더군요. 시마다 마사히코는 10년 전 일본 행사 때 처음 알게 됐는데, 자주 마주치니까 친근감이 생겨 이번 행사 때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중국 작가들은 일단 체제가 다르니까 얘기 나눌 때 조심스러운 게 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른 작가들은 저런 식으로 일하는구나’를 보고 느낄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