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비록 늦봄 한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요와 함께하는 빛나는 풍광이 주는 그 강렬한 인상은 신록의 봄날은 물론 낙엽지고 눈발 날리는 때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소리는 뻐꾹새, 참매미한테 내주고 홀로 고요히 흐르지만 맥박이 뛰는 강은 더 큰 생명성을 지닌다. 하여 숲과 들판도 강에서부터 기지개를 켜며 새롭게 태어남을 적벽강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인삼어죽, 도리뱅뱅이
강을 좀 더 거슬러 올라 수통교를 건너고 둔덕을 넘으면 작은 강가 마을을 만난다. 마을 앞에 걸쳐 있는 적벽교를 건너갈 수 있지만 길은 그쯤에서 끝난다. 끊어진 길 앞을 가파른 산협이 막고 있는데 그곳 산비탈도 온통 산벚꽃으로 환하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금산 인터체인지를 나온 뒤, 금산 읍내로 가는 대신 영동 방향으로 진행해 제원대교를 건너면 머잖아 ‘인삼어죽’으로 유명한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에 닿을 수 있다.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르고 강 너머에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부엉산이 우뚝 서 있는 경치 좋은 곳이다. 이곳 바위 절벽 또한 붉은색을 띠고 있는 까닭에 이곳을 금산 적벽강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곳은 적벽강보다 훨씬 하류 쪽이다.
금산에는 인삼을 경작하는 농가가 많아 옛날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인삼을 곁들여 요리를 해먹던 풍속이 전해지는데, 오늘날 금산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소문난 인삼어죽도 그중 하나다. 특히 천내리에서는 풍부한 어족자원 덕으로 오래전부터 물고기에다 인삼을 넣고 죽을 쑤어 별미로 먹어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입소문만 탔던 천내리의 인삼어죽이 이후 여러 차례 방송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고 오늘날에는 인삼어죽마을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인삼어죽은 예부터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보양식이다. 금강 상류의 맑은 물에서 잡은 쏘가리, 메기, 붕어, 빠가사리 등에 인삼을 넣고 푹 곤 뒤에 수제비, 국수 등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어죽은 영양가도 높지만 맛 또한 일품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조리법은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물고기를 뼈째 우려낸 국물로 죽을 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민물고기를 중불에서 푹 곤 다음,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체에 걸러 가시를 발라내고 그 국물에 장을 풀어 간을 하며 이어 쌀을 넣어 쑨 다음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과 인삼을 썰어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면 인삼어죽이 된다.
사람과 함께한 자연
인삼어죽과 함께 도리뱅뱅이 또한 이곳 천내리의 대표 음식으로 손꼽힌다. 피라미와 같은 작은 물고기를 프라이팬에 빙 두르고 강한 불로 바삭해질 때까지 기름에 튀긴 뒤 양념을 해서 내놓는 도리뱅뱅이는 그 바삭바삭하는 식감이며 고소한 맛으로 인해 평소 민물고기를 꺼리던 사람들도 주저 없이 먹게 되는 별난 음식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인삼은 물론 각종 약재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 금산 인삼시장은 그 자체만으로 좋은 구경거리다. 나그네들을 위한 먹을거리도 많은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인삼막걸리와 인삼튀김이다. 장거리 어디에서나 편하게 앉아 인삼을 안주로 인삼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세계인삼엑스포를 계기로 인삼시장 또한 깔끔하게 정비됐는데 반듯하게 뚫린 시장 거리를 걸으며 귀한 약재들을 구경하고 흥정이라도 몇 번 하다보면 두세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가슴을 동여매던 오랏줄
그 땡볕 속에서도
펑, 옥수수 한 줌으로
하얗게 세상을 뒤집어놓는 사내
한낮의 무료를 마른 장작처럼 쪼개며
장터를 뒤흔들던 그 사내
어디로 갔나,
- 김완하 시 ‘금산 장’ 전문
그렇다. 엑스포까지 치른 금산 장에서는 이제 전통시장의 파수꾼 같던 그 뻥튀기 사내의 모습도 찾기 어렵다. 세상살이의 고단과 남루한 가난마저 폭음 하나로 뒤집어놓을 듯하던 그 사내들도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 돼버렸다.
읍내를 빠져나와 1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곧 종합운동장을 만나고, 여기서 2km쯤 더 가면 보석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금산의 진산(鎭山)인 진락산(進樂山) 남쪽 기슭에 앉은 보석사. 맑고 고요한 주위 풍광처럼 절 이름조차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절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집들이 정겹고 일주문에서부터 천년 수령의 은행나무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이 빼어나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저마다 천공을 향해 키를 세우고 선 모습이 시원스러우며 그 나무에서 떨어진 녹음은 상쾌하면서도 그윽하다.
숲길 초입에 영규대사의 의병승장비가 서 있어 행인의 발길을 끈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는 등 큰 공을 세웠던 영규대사는 한때 보석사에서 수도를 한 적이 있으며, 절에는 그의 영정도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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