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박용인
“여보세요.”
윤기철이 응답했을 때 이인수가 대뜸 물었다.
“윤 과장님, 지금 어디 계시죠?”
“예, 여기 옌지인데요.”
주위가 관광객으로 소란했기 때문에 윤기철이 로비 구석으로 다가가 섰다. 저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말씀드리는 게 좀 뭣하지만 윤 과장님 휴대전화 누구한테 주셨습니까?”
이인수가 물었을 때 윤기철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국정원이 회사 총무부도 아니고 이쯤은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윤기철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누구한테 주셨단 말입니까?”
이인수의 목소리가 조금 굳어졌다.
“누군데요?”
“그건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지요.”
“그 휴대전화 위치가 조중 국경 쪽이던데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것도 조금 후에….”
“지금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겁니까?”
“좀 바빠서요.”
“아니, 그것이….”
“오늘 오후에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몇 시쯤 말입니까?”
“2시쯤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럼 2시에, 죄송합니다.”
먼저 통화를 끝낸 윤기철이 허리를 폈다가 벽에 붙어 서서 이쪽을 주시하는 안내원 최영수를 보았다.
“어이구, 머리가 불덩이네.”
이마에 손을 얹은 할머니가 혀를 찼다. 오후 1시 반, 긴장이 풀린 때문인지 깜박 잠이 들었던 정순미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깨어났다. 팔다리가 납덩이로 변한 것처럼 무거웠고 앓는 소리가 저절로 뱉어지는 바람에 놀란 할머니가 머리맡에 붙어 앉았다.
“글쎄, 이런 날에 왜 강을 넘어?”
얼굴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할머니가 혀를 찼다.
“이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기서 누워 있으면 안돼.”
“곧 저를 데리러 와요. 할머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정순미가 열에 뜬 목소리로 사정했다.
“오늘밤까지만요, 할머니.”
“오늘밤도 여기서 잔다는 말이야?”
“아녜요, 할머니.”
무거운 팔을 뻗쳐 옆에 놓인 배낭을 당긴 정순미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50달러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할머니, 이것 받으시고 오늘밤까지만 여기서 기다리게 해주세요.”
“공안의 단속이 심해.”
돈을 받아 쥐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윗동네에서는 탈북자한테 옥수수 몇 개 준 사람이 공안에 끌려가 며칠간 고생하고 나왔어.”
할머니의 두 눈이 번들거린다. 처음에 10달러 주었다가 지금은 50달러다. 그러나 안 준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