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편집자가 되면서 직접 쓰는 일보다 남의 글을 ‘만질’ 일이 많다. 편집자는 기본적으로 잔소리꾼이다. “선생님, 이거 저거 추가해주세요.” “선생님, 너무 장황하니 확 줄이죠.” “선생님, 이 부분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원고의 구성에서부터 분량을 맞추는 일, 내용 확인, 매끄럽지 않은 문장의 교정 교열까지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저자를 들들 볶는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정작 편집자들은 글을 못 쓴다. 남의 글을 만지다 진저리가 난 걸까? 아니면 자신도 그런 잔소리를 듣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여하튼 “책을 써보라”는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친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자병, 편집자병이다. 그래서 할머니 무릎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힘 안들이고 자기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은 글을 보면 부럽다. 그러면서도 제 할 말 다 한 글을 보면 약이 오른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한·미·일 세 명의 이야기꾼이 바로 그런 글을 쓴다.
추억의 장인 무코다 구니코

어린 시절 무코다의 아버지는 보험회사의 지방 지점장이었다. 부친의 얼굴도 모른 채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성마르고 권위적이고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집에는 아버지의 술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전쟁 직후 부족한 살림에 술꾼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느 추운 아침, 술에 절어 새벽녘에야 돌아간 손님의 것이 분명한 토사물이 문지방 한가득 얼어붙어 있다. 엄마는 문지방에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토사물을 치운다. 벌겋게 부어올라 갈라터진 엄마의 손을 보고 있자니 장녀인 무코다는 화가 치밀었다. 이런 일까지 묵묵히 참아내는 엄마에게도, 시키는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무코다는 “제가 할게요” 하며 문지방 틈에 잔뜩 들러붙은 것을 이쑤시개로 파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버지가 마루 끝에 맨발로 서서 그 모습을 본다.
이쯤 되면 ‘미안하다’라든지 ‘잘못했다’라든지 무슨 위로의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했다. 며칠 후 학교에 가기 위해 도쿄의 할머니댁으로 돌아가는 날, 엄마로부터 한 학기분의 용돈을 받으며 무코다는 혹시 그날 일도 있고 하니 조금은 많이 주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딱 정해진 돈만 들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버지는 역에서 무코다와 동생을 배웅했다. 그런데 도쿄에 도착하자 할머니가 “네 아버지한테 편지가 왔더구나” 하며 건네준 편지에는, 붓으로 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 “지난번에는 각별한 수고”라는 한 줄이 있고 거기에만 빨간 펜으로 줄을 그어놓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과편지였다.
‘아버지의 사과편지’에는 스물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의 글에서도 기본적으로 네댓 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제각각 무심하게 나열된 듯한 에피소드들이 결말에서는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네즈미하나비(쥐불꽃놀이라는 뜻으로 쥐처럼 땅 위를 빙빙 돌다가 터진다)’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추억이란 네즈미하나비와 같아서, 일단 붙이면 순식간에 발밑으로 작은 불꽃을 쏘아올려,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날아가 터지면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처럼 기억의 심연에서 하나의 추억을 건져 올리면 다른 추억이 따라 나오는 연상작용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 시청각이다. 항아리 속에서 탁주가 발효되면서 내는 “폭, 폭” 끓는 소리, 밤새 발을 따뜻하게 해준 ‘유단포’(뜨거운 물을 넣어 보온을 해주는 금속통의 일본말)의 미지근한 물을 세면대에 쏟아낼 때 나는 쇳내, 짚으로 눈을 꿴 생선을 보고 있노라면 눈 안쪽이 따끔따끔 아파오는 느낌까지 무코다 구니코는 섬세한 표현으로 독자를 쇼와 시대(1926~89) 일본으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