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은 늘 피로하고 불안해 ‘소진증후군’에 빠지기 쉽다.
“아침 눈떴을 때의 첫 느낌, 스스로 근사하게 느껴지세요?”라고 종종 기업체 강연 때 물으면 손드는 이가 열에 한 명도 안 된다. 때론 100명 넘는 청중이 모두 ‘전사’해 필자를 당황케 한다. 근사함이란 건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최고의 정서 상태다. 근사함은 이성적 콘텐트가 아닌 감성 시스템이 제공하는 고품질의 에너지 콘텐트다. 누가 나를 뭐라고 하든, 경쟁 속에서 좌절이 닥쳐도, 내가 내 마음의 근사함만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스트레스로 감성 시스템이 녹다운되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강연 때 발견하는 희한한 현상은 신입직원들은 스스로가 근사하다며 번쩍 손을 드는데, 고생해 높은 지위에 오른 윗사람들의 손은 오히려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쑥스러워서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실제 지위는 올라가는데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되레 떨어지는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근사함이 사라진 마음은 충전될 수 없고, 계속 방전만 되기에 결국은 감성 시스템을 소진 상태로 만든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마음의 에너지가 다 방전된 상태를 영어로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이라고 한다. 뇌의 에너지가 다 타버렸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소진증후군’이라고 한다. 소진된 개인이 모이면 ‘피로사회’가 된다. 역으로 피로한 사회는 개인을 소진시킨다. 개인과 사회 시스템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다보니 소진된 마음이 전염병처럼 번진다. 소진된 마음은 근사한 사람에게서 근사한 마음을 빼앗는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면 세 가지 문제가 뚜렷이 생긴다. 먼저 의욕이 떨어진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의지를 동원해 애써봐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성취감도 떨어진다. 노력해서 무언가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공감 능력 역시 현저히 결여된다. 공감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이면서 내가 남에게 위로받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지쳤을 때 상대방에게서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받아 충전해야 하는데, 주는 건 고사하고 받는 것도 잘 안 되는 마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잘나가는 연예인이 필자의 클리닉을 방문했다. 대중에겐 항상 웃음을 주지만, TV 화면 속 밝은 모습과 달리 내면적 고통이 보였다. “방송에서 너무 재미있으세요. 근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선생님, 제가 공황장애인가요? 하루에도 여러 번 숨이 답답하고 불안해져요.” 공황장애는 가슴이 뛰고 숨이 차며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그러다가 곧 죽을 것 같은 수준의 불안이 엄습하는 공황발작(panic attack)이 반복될 때 내리는 진단이다.
“그 정도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힘들고 죽을 것 같아 응급실에 가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주로 어떨 때 그러세요?”라고 묻자 “응급실까지 간 적은 없고, 조그만 걱정이라도 떠오르면 심장이 마구 뛰고 불안해져요. 전에는 혼자서 잘 잤는데 요즘은 나이 들어 갑자기 귀신이 무서워요. 무서워서 혼자 잠을 잘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귀신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게 이해도 안 되고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3단계 합병증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돈을 번다. 그러나 돈을 벌어도 뇌에 피로가 쌓이면 지친 감성 뇌는 생존에 더 급급한 상태로 바뀌게 된다. 공황발작 같은 불안은 생존에 대한 압박,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 누가 이 잘나가는 연예인이 무의속 속먹고사는 문제로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돈은 보이는 세상의 두려움은 잠재워주지만, 보이지 않는 감성 무의식의 세계엔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시청자를 사로잡던 연예 프로그램의 스타가 진료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괴로워한다. 이것 참 안타깝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비즈니스, 감성의 뇌를 주로 쓰는 비즈니스를 하시잖아요. 그러다보니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이 온 것 같아요. 뇌는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하면 거기서 도망가고 싶어 해요. 요즘 사람 만나기 싫고 혼자 있고 싶고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지 않나요?” 그러자 그분 왈, “맞아요, 제 직업이 저랑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래서인가 요즘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나도 모르게 인터넷 검색 창에 ‘이민’이란 단어를 검색해요….”